조국이 멸문지화를 당해도, 지금 여전히 당하고 있어도, 그것을 안타깝게 바라만 볼 뿐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토론토의 '활동가'(가 맞다. 본인은 펄쩍 뛸 테지만) 김동욱 회계사가 책 공동구매를 한다길래 "조민 책도 주문 목록에 올리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 정도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다. 김동욱씨는 당연한 듯이 주문을 함께했다. 나는 책 4권을 받자마자 조민씨 책부터 펼쳤다.
그 이유는 '에세이'라는 장르 때문. 에세이는 무엇을 파헤친다거나 고발한다거나, 잘못된 사실관계를 바로잡아서 억울함을 푼다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부담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겠거니 하는 생각을 했다. 두번째 이유는,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유튜브며 인스타그램 활동을 활발히 펼치는 이 젊은 친구의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나 알고 싶었다. 나로서는 그게 가장 궁금했다. 이 책에 대한 생각이 이러했으니, 이 책에서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냥 한 두 시간이면 읽을 수 있겠거니 했었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이런 선입견은 판판이 깨져나갔다. 에세이라고 하지만 가볍지 않고, 그렇다고 읽기에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문장 하나하나에 내용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어서 허투루 넘길 것이 별로 없다. 의사가 왜 되고 싶어 했으며, 그것을 준비하려고 대학에서 어떻게 공부했으며, 친구 관계는 어땠는지에 관한 사적인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룬다. 지난 몇년 동안 단군이래 가장 유명한 정치적 희생물이 되었으니, 그 주인공의 이야기는 일부러라도 기록되어야 한다. 나로서는 그런 이야기들에서도 놀라운 점을 많이 발견했지만, 예술, 그 가운데서도 시각예술에 관한 조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깜짝 놀랐다.
책에는 '나는 이렇게 괴로워요' 따위의 징징거림이 없다. 그 대신 '나는 이렇게 살아왔어요'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어요' 하는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펼쳐진다. 허투루 쓴 대목이 없다 싶은 것은 글 내용 하나하나가 본인의 체험을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내용이 더할 수 없이 구체적이다. 이른바 이런 대목.
고대에는 과학도서관이라고 있다. 중앙도서관과 별개로 이공계 캠퍼스에 있는, 1983년 김준엽 총장이 지은 도서관인데 예전부터 학생들 사이에서는 '과도'라고 불렸다. 조민은 과도를 이야기하고 5층은 칸막이가 있어서 친구들은 4층의 열린 열람실을 좋아했고, 백색소음이 필요한 친구들은 하나스퀘어로 간다고 했다. 자기는 밀폐된 것이 좋아서 5층을 선호했다고. 매일 새벽에 나와 자리 잡기가 어려우니, 친구들끼리 돌아가면서 학생증을 가지고 미리 맡아주었다고 했다. 우리 때에는 자리 위에 책을 올려놓으며 했던 것을 2000년대에는 그렇게 했었나 보다. 물론 자리 대신 맡아주기가 바른 일은 아니라고 적기도 한다.
고대 과도관 풍경 몇 줄 묘사하는 것이 '나는 고대 다닐 적에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라고 백번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힘이 세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죽었다 깨도 쓸 수 없는 이야기이다. 거의 모든 이야기들이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반려묘를 데려와 함께 살게 된 이야기, 대학 1학년 때부터 독립해 살면서 방을 전전하며 좋은 방을 찾는 노하우에 관한 내용, 아빠와 동생에 관한 이야기 등등은 선명하고 구체적이다.
4분의 1 가량이 남았는데 서둘러 독후감을 적고 싶었다. 뒤로 갈수록 깜짝 놀라게 하는 내용이 자꾸 튀어나와서 그랬다. "예술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거나 조예가 깊은 건 아니지만 누구나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게 또 예술이니까.(...) 계속 감상하다 보니 취향이라는 것이 생겼다. 어떤 전시는 금세 보고 나오는데 또 어떤 때는 한나절을 곱씹으며 본다.(...) 갤러리에 가면 어떤 영감을 주고 나를 자극하는 감각들이 느껴진다. 깨어나는 기분이 든다. 이를테면 뒤샹의 <변기> 같은 작품은 이성으로 가득한 내게 더 극한의 이성을 끌어내게 한다. (지은이 본인이) 워낙 투박한 성격이라 감성적이고 세심한 면이 돋보이는 작품에 마음이 가는 것 같다."
예술 감상에 대한 기본기가 탄탄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즐기고, 자기가 가진 감흥을 저렇게 풀어낼 줄 아는 능력이 참 놀랍다. 소양이 깊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조민은 툭툭 내뱉는다. 조금만 더 훈련해서 미술 평론을 해도 될 것 같다.
조민은 무한한 긍정의 힘 또한 대수롭잖은 듯이 드러낸다. '크리에이터'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감회 같은 것도 술술 말하는데, 저런 생각에까지 도달한 그 무거운 이야기가 전혀 무겁지 않게 읽힌다.
"내가 세상으로부터 숨어서 살 때, 진짜 내 사람을 살 수가 없었다. 그러다 오히려 당당하게 세상에 나서기로 결정하니 우리 집에도 나에게도 공기가 통하기 시작했다. (...) 내가 유튜버로 성공하고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비난받든 뭘 하든 세상에 당당하게 나설 때 비로소 우리 가족에게 다시금 숨 쉴 틈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나 자신도 누군가의 딸이 아닌 한 사람의 성인 그 자체로서 진정한 자아실현이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곤경에 처해서도 이렇게 헤쳐나오는 모습을 담담하게 펼쳐놓은 내용이 <오늘도 나아가는 중입니다>에 들어 있다. 누구로부터 어떤 비난을 듣든, 고졸이 되었든, 어쨌든 간에 지은이는 이렇게 앞으로 나아간다.
졸지에 자기를 고졸로 만들고 직업까지 앗아간 세상에 대해 할 법한 분노나 원망을 이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더 무섭고 무거운 책이다. 자기 자식 지상주의니 뭐니 하며 사안 자체를 두루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않은 채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자기 시각이 옮다고 믿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지만, 그들이 펼친다 해도 다 읽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머리가 덜 굳었고 눈이 조금이라도 밝다면 조국이나 조민보다 자기 스스로에게 화를 내야 마땅할 테니.
조민은 본인이 꿈꾸는 의사로 일을 못해도 부모가 크게 걱정 안해도 되겠지 싶다. 재주도 많고, 그것을 드러낼 줄도 안다. 좌절하지 않고, 긍정의 무한한 힘을 믿는 사람이니 하는 말이다. 이른바 MZ세대를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강추한다.
#조민 #오늘도 나아가는 중입니다 #조국
*아래부터는
1) 비염, 축농증
2) 분노조절장애, ADHD
3) 여드름과 아토피 등 피부병
4) 만성피로 원기(에너지) 회복
5) 다이어트 및 성기능 향상에
관심있는 분만 보시길.
캐나다 토론토 종합병원 두 군데에 한방과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진료중인 한국인 한의사가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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