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항상 생각나는 노래 듀스-여름안에서..... 듀스 포에버!!
데뷔/결성 : 1993년
멤 버 : 이현도(1972년),
김성재(1972~1995)
주류 속의 비주류, 한국 힙 합의 염세주의자 듀스
2001년 현재, 힙
합이란 음악장르는 한국에서 이 시대의 문법으로 자리잡았다. 꽤나 음악을 듣는다는 10대 후반, 20대 초중반의 음악팬들에게, 그들을 대변하는
음악은 록이나 팝, 댄스뮤직이 아닌 바로 힙 합이다. 그렇게 힙 합이 성장하기까지에는 대략 8년의 세월이 걸렸다. 바로 그 8년 전, 한국 힙
합은 듀스(Deux)라는 힙 합 그룹에 의해 시작되었다.
듀스는 서태지와 더불어 '당대의 음악감독'이라 평가받는
이현도(1972년생)와 '스타일리스트' 김성재(1972년~1995년)가 재적했던 그룹이다. 이들은 3년이라는 짧은 활동기간 동안 당시의 음악
지형도를 바꿀만한 혁신적 음악 스타일과 자조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묘한 어법으로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군에 입대하게 된
구준엽과 강원래의 뒤를 이어 현진영의 댄싱팀 '와와'에서 춤꾼으로 활동했던 이현도와 김성재는 1993년 8월 본격적인 힙 합 그룹을 표방한
듀스를 결성했다. 이현도가 작곡과 작사, 프로듀스를, 김성재가 안무와 코디네이션을 담당하는 등 각기 역할을 분담했던 이들은 1년의 작업 끝에
이듬해인 1993년 4월 23일 1집을 발표했고, '나를 돌아봐'라는 곡으로 인기를 얻으며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집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인 같은 해 11월 듀스는 곧바로 두 번째 앨범을 출시했다. 음악감독으로서 이현도의 진가는 바로 그 2집
에서부터 발휘되었다. 힙 합과 록, 펑크(funk) 등 흑인음악 요소에다가 발라드를 적절히 가미한 이현도 특유의 스타일이
탄생되는 순간이다.
'지금 그대 다시', '우리는' 등이 방송전파를 타며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정작 이현도의 재능이 번뜩이는
곡은 'Go! Go! Go!', '약한 남자', '無題(무제)' 같은 곡들이었다. 록 밴드 H2O와 함께 하며 장르 결합을 시도한 'Go!
Go! Go!는 간결한 라이밍과 그 속에서도 진지한 가사가 돋보이는 곡이다. 이현도와 김성재가 번갈아 랩을 하는 '약한 남자' 역시 재기 넘치는
흥겨운 래핑이 감칠맛 난다.
2집의 성공으로 국내 힙합 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듀스는 1994년 '여름 안에서',
'떠나버려' 등의 신곡과 함께 기존 히트곡들을 리믹스해 수록한 앨범 을 발표해 정규앨범 못지 않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1995년 4월에는 3집이자 정규음반으로는 마지막 음반이 된 를 출시했다. 이현도
스스로 '듀스의 앨범중에서 가장 명예로운 앨범'이라 자부할 정도로 완성도 높은 명반이었다. 힙 합과 1970년대식 펑크, 리듬 앤 블루스,
레게, 재즈, 어쿠스틱 발라드 등 실험적이랄 정도로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보여줬다.
하지만 대중적인 인기도는 다소 하락했고
앨범판매는 더 저조했다. 그만큼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 앨범이었고, 모 평론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저주받은 걸작'이었다.
가사
측면에서도 사랑노래 일색이었던 다른 댄스그룹들과는 달랐다. 2집 이후 이현도는 사랑과 더불어 주로 내부적 갈등, 좌절 같은 내면의 고민을 가사로
드러냈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현실과의 최대한의 투쟁이랄까?
단적인 예로, '메시지'란 곡에서는 '남들의 손끝에 앞날이
달려있는 피노키오'라 자신들을 정의하고, '살아 남기 위해 짓밟아야 하는가? 그런 모습과 현실에 같이 섞여 가는 나는 과연 똑같은 모습으로
부대껴야 하는가?'라고 스스로 묻는다. 결국 '껍질뿐인 위선의 허황된 황제보다 차라리 무관의 제왕이 되리'라는 염세적 메시지로 노래를 맺는다.
이 같은 메시지는 김성재 1집의 '염세주의자'로 이어진다.
앨범 발표한 지 3개월이 지난 1995년 7월 듀스는 매니지먼트, 병역
등 여러 문제가 겹쳐 결국 해체했다. 이후 솔로활동을 준비하던 김성재는 귀국 후 1995년 11월 19일 에 출연하여
성공적인 데뷔를 했으나, 바로 다음날인 11월20일 의문사하고 만다.
듀스와 서태지와 아이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와 연구대상이
되는 '문제적' 그룹이다. 이 두 팀은 모두 1990년대 이후 가요계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수많은 후배 가수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듀스는 언제나 2인자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주류의 맹주가 될 수 있었지만 듀스는 주류 속에서도 주류에 완전 편입되지 못한 채 철저한
'무관의 제왕'으로 남았다
그렇지만 지금으로 봐선 듀스가 결코 2인자의 위치가 아닌 듯싶다. 최근 워낙 힙 합이 강세이며 주류로
올라선 데다가 그 수많은 힙 합 팀들이 듀스를 한국 힙합의 효시로 받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듀스가 이제야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