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는 스페인 남부 항구 도시로 인구는 60만 정도, 여섯 번째로 큰 도시다. 자체로 휴양 도시이고 피카소 박물관이나 히브랄파로 같은 관광지를 보유하고 있지만, 네르하나 프리힐리아나 같은 인근 휴양 도시로 가는 관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왕의 오솔길로 가는 전초기지로 삼았다.
# 2023년 1월 13일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아직 11시다. 체크인이 되려나 걱정하며 숙소를 찾아가 보니, 아직 청소 중이니 기다리란다. 10분 정도 기다려서 올라가 본 객실은 이번 여행 중 최하급, 처음으로 맘에 들지 않는 방을 만났다. 방은 그럭저럭 봐줄 만한데 침대가 너무 작고 안정성이 없다. 싼 숙소를 예약할 때 대략 예상할 수 있었던 수준이긴 하다. 오히려 그동안 전부 괜찮은 방만 만난 게 운이 좋은 거였겠지.
시내 나가는 길에 기차역에 들러 내일 왕의 오솔길 다녀올 기차표를 예매하려고 들어갔더니 직원이 키오스크를 가리킨다. ida 08:58 - 09:37 vuelta 13:51 - 14:34 말라가에서 엘초로 왕복표가 인당 10유로, 키오스크 좋은데? 인적 사항도 필요 없고 온라인 예약보다 훨씬 간편해. (오솔길 입장권은 출국 전에 미리미리 예약해 두었다. 늦으면 못 사는 경우도 많다고 해서)
물이 거의 말라버린 작은 강을 건너 한참을 건나가서 만난 첫 관광지는 말라가 중앙 시장.
건물 밖에도 안에도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우리도 끼어서 꼴뚜기 튀김과 문어 튀김으로 허기를 달래고
피카소 박물관이 있다는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니 앞에 성당 종탑이 나타난다. 성당은 작은데 종탑만 큰가?
했더니, 그게 아니다. 가까이 가 보니 그동안 보아 온 대성당들 못지 않게 커다란 성당이다.
말라가 대성당, 정식 명칭은 Catedral de Encarnación de Malaga 말라가 강림 성당 - 종탑 투어를 해볼까 하고 들어갔다가 투어 시간이 맞이 않아 성당 내부만 보고 나왔다.
성당을 나와 찾아간 곳은 알카사바, 알카사르와 어원이 같고 마찬가지로 "성"이란 뜻이라는데 알카사르가 "궁성"이라면 이것은 "성채"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산비탈에 위치한 고급 정원?
히브랄파로 성은 알카사바 뒤쪽에 있다. 비탈길을 힘들게 걸어 올라가니 정상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더라는... 내려올 때도 걸어 내려왔다.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시내 뷰는 뭐, 그냥 평범한... 일몰이나 야경은 못 봤으니 모르겠고...
# 2023년 1월 14일
왕의 오솔길(El Caminito del Rey, 누가 예쁘게도 번역을 했다. 직역하면 왕의 작은 길)은 1900년대 초에 수력발전소 건설을 위해 만든 절벽 잔도가 포함된 7킬로미터 가량 되는 길인데, 준공을 축하하러 온 왕(알폰소 13세)이 지나간 다음에 붙은 이름이다. 이후 수력발전소는 관리가 안 되고 버려졌는데, 그래서 길도 버려졌는데, 모험심 강한 여행자들이 이 잔도를 건너다가 여러 번 사망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2000년에는 지방 정부에서 길을 폐쇄했으나 이후에도 몰래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럴 바엔 차라리 안전하게 복원하여 관광 자원으로 만들자?) 2010년에 복원 공사를 시작하여 2015년부터 관광객에게 개방하고 있다고 한다. 예전처럼 목숨을 건 짜릿한 모험은 아니지만, 절벽에 매달린 잔도를 걸어가며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감상하기 위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기 때문에 미리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입장권을 구입하지 못한다고 한다.
8시 58분 세비야행 기차를 타고 40분 만에 엘초로역에 도착했다. 미리 메일을 받아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산사태로 인하여 트래킹 코스가 바뀌어 있었다. 원래는 기차역에서 셔틀을 타고 북쪽 출입구로 간 다음, 거기서부터 남쪽 출입구까지 걸어오는 것인데, 복구가 끝날 때까지는 (그게 마침 오늘이란다. 내일부터는 원상 복구 ㅠㅠ ) 남쪽에서 들어가서 중간쯤까지 갔다가 남쪽으로 돌아오는 걸로 변경되었다고. (그런데 미리 지불한 셔틀 요금을 돌려줄 기미가 안 보여서 돌려주기는 할까? 의심을 품었었는데, 나중에 보니 카드결제에서 부분취소가 되어 있었다.)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 헬멧을 반납하니 1시 가까운 시간이다. 1시간 일찍 들어가길 잘했지, 예약한 대로 11시 반에 들어갔으면 기차 시간 지난 거잖아? 트래킹 시간이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두 시간 반이 걸렸다. 물론 시간 넉넉한 거 알고 천천히 움직이기는 했지.
북쪽 부분을 못 본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핵심 부분은 다 이쪽에 있다는 얘기에 위안을 삼으며 기차를 타고 말라가로 돌아왔다.
어제 지나가며 보았던 중국집이 생각나서 역 근처에서 검색해 보니 샤오위춘(소어촌)이라는 맛집이 나온다. 밖에 빈자리가 하나 있어 별 생각없이 앉았는데 이후에 오는 사람들은 한참씩 줄을 서서 기다린다. 유명한 집인가 봐. 세트 메뉴로 시켰더니 닭고기, 탕수육, 볶음밥, 딤섬, 샐러드까지 푸짐하다. 맛있게 먹고 25유로, 가격도 저렴하다.
식당 근처에 아시아 마트가 있길래 들어가서 쌈장 한통을 사고, 한국 컵라면도 두 개.
어제 들르지 못했던 피카소 박물관을 들어갔는데 (입장료 9.5유로), 초기 작품 위주로 전시되어 있고 어디서 봤음직한 그림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가보다 하면서 구경 마치고 나오려다가 마지막에 들른 방에서 재밌는 걸 발견했다. 피카소 그림 속으로 내가 들어가게 찍어주는 사진 - 즐거운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