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 "3저 호황"이라 불리는 "저유가, 저금리, 저달러"에 힘입어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고, 88년 서울 올림픽을 성황리에 마친 한국은 이제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신흥국이라 불리기 시작했으며 머지않아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던 시절이었죠. 특히 반도체와 자동차 그리고 산업용 전자 산업이 크게 성장하여 한국의 경제를 주도했고, "1인당 GNP"가 1만 달러를 돌파했다며 각종 매스컴들은 대서특필하고 한국의 경제 성장에 대해 자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승승장구하던 한국에 왜 경제 위기가 찾아오게 된 걸까요? 당시 국가의 경제정책은 "성장과 확장" 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한국이 유례없는 고속성장을 이뤄내긴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거품이었죠.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문어발식 경영을 이어가는 기업들을 규제하기는 커녕 뇌물을 받고 기업을 도와 금융기관에서 거액의 돈을 빌릴 수 있게 해주었고 기업들은 계속해서 문어발식 확장을 이어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국제정세에 이상기류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 원유 가격의 폭등 - 태국 바트화의 폭락과 경제 붕괴 - 동아시아 국가들의 수출 주도형 경제의 몰락 ( 공급 과잉으로 인한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 초래)
위에 언급한 사건들로 인해 결국 달러 환율 급등과 주가의 폭락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는 수출 주도형 정책 국가에는 치명적 타격이었습니다. 무역으로 먹고살던 한국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기 시작한 겁니다. - 1997년 1월 30일 "한보그룹" 부도 처리 (당시 재계순위 14위) - 1997년 3월 19일 "삼미그룹" 부도 처리 (당시 재계순위 26위) - 1997년 5월 15일 "삼립식품" 부도 처리 - 1997년 5월 30일 "한신공영" 부도 처리 - 1997년 7월 15일 "기아그룹" 부도유예협약 체결 (당시 재계순위 8위) - 1997년 8월 26일 "대농그룹" 해체 (당시 재계순위 34위) - 1997년 10월 15일 "쌍방울그룹" 부도 처리 - 1997년 10월 16일 "태일정밀" 부도유예협약 체결 - 1997년 10월 28일 종합주가지수 500선 붕괴 - 1997년 11월 1일 "해태그룹" 부도 처리 (당시 재계순위 24위) - 1997년 11월 4일 "뉴코아그룹" 부도 처리 (당시 재계순위 25위) - 1997년 11월 21일 IMF에 구제금융 공식 신청.. 결국..
- 1997년 11월 26일 "온누리여행사" 부도 처리 - 1997년 12월 5일 "고려증권" 부도 처리 - 1997년 12월 6일 "한라그룹" 부도 처리 (당시 재계순위 12위) - 1997년 12월 12일 "동서증권" 부도 처리 (당시 증권업계 4위) - 1997년 12월 27일 "청구그룹" 화의 신청 (당시 재계순위 35위) - 1998년 1월 18일 "극동건설" 부도 처리 (당시 재계순위 31위) - 1998년 1월 30일 "삼양식품" 화의 신청 - 1998년 2월 1일 "파스퇴르유업" 화의 신청 - 1998년 3월 7일 "단국대학교" 부도 처리 (첫 대학 부도) - 1998년 3월 18일 "미도파백화점" 부도 처리 (국내1호 백화점) - 1998년 5월 12일 "거평그룹" 부도 처리 (당시 재계순위 28위) - 1998년 5월 18일 "동아그룹" 해체 - 1999년 "대우그룹" 해체 및 워크아웃 시작 - 2000년 11월 "현대건설" 최종부도 모면 - 2001년 5월 11일 "동아그룹" 해체 - 2001년 8월 23일 IMF 관리 체제 종료
뉴스와 신문은 매일 기업들의 부도 기사를 보도하느라 바빴죠. 원 달러 환율은 2000원을 돌파하고 주식시장은 붕괴되고.. 중소기업을 포함하면 하루에 100개 이상의 기업들이 문을 닫던 시절이었습니다. 회사가 문을 닫으니 실업자 수는 폭증하고 다행히 살아남은 기업들도 구조조정이다 뭐다 하면서 정리해고가 유행하던 참담한 시절.. 이때 자살률이 최고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 원 달러 환율 2000원 돌파 - 실직자 수 80만명 돌파 - 도산하는 기업 수 하루 100개 이상
그렇다면 IMF라는 기관은 어떤 곳일까요? 1944년 체결된 브레턴우즈협정에 따라 1945년에 설립되어, 1947년 3월부터 국제부흥개발은행(IBRD: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와 함께 업무를 개시한 국제금융기구다. 이 두 기구를 총칭하여 브레턴우즈기구라고도 하며, 약칭은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국제통화기금)이다. 2011년 기준 가입국은 총 188개국이며, 본부는 미국 워싱턴 D.C.에 있다. 국제통화기금 IMF는 세계무역의 안정된 확대를 통하여 가맹국들의 고용증대, 소득증가, 생산자원개발에 기여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며 이를 위하여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기관이라고합니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너무나 부정적인 기억만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죠..
그렇다면 한국은 사상 초유. 사상 최대의 금융위기 IMF 사태를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대표적인 사례로 "금 모으기 운동"이 기억이 납니다. 망해가는 국가를 살리겠다고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장롱 속에 보관하던 금을 들고 나왔습니다. 패물, 예물부터 돌 반지까지.. 기록을 보면 금 모으기 운동에 참여했던 국민은 약 351만 여명이며, 모금된 금의 양은 약 227톤으로 당시의 시세로 약 21억 달러치라고 합니다. 국가 경제의 어려움 속에서도 국민들의 자발적인 희생정신의 대표적인 사례로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예정보다 3년이나 앞당겨진 2001년 8월 IMF로부터 지원받은 195억 달러의 차입금을 모두 상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들 참 대단합니다. 그쵸? 하지만.. 국가 경제가 저 지경이 되기 전에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고자 노력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IMF 시절에 도산했던 대기업들과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아직까지 건재했다면 우리 대한민국도 중소기업부터 탄탄한 진정한 경제 강국이 되어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IMF 3일 전의 신문기사 위 사진의 신문 기사는 IMF 3일 전에 기사라고 합니다. 정부가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놓고 국민들의 알 권리를 묵살했던 아픈 과거입니다. 지금으로써는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만,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고 그냥 언론에서 이렇다 저렇다 하면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던 그런 시절이기에 가능했던 일이겠죠. 개인적으로 IMF의 교훈은 "정부가 부정부패하고 무능하면 결국 나라는 망한다" 아닐까 싶네요. 경제라는 게 참 어렵습니다. 국가 경제에 거품이 끼기 시작하면 그 한계점이 나타나기 전에 정치가 나서서 거품을 걷어내는 정책을 만들고 규제를 하면서 문제를 바로잡아야 하는데.. 부정부패한 정권은 규제를 해서 거품을 걷어내면 집권당의 지지도에 타격이 생기고 정권을 빼앗길 수도 있으니,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회피 방안만 내놓고 버티기를 합니다만 오래 못 가죠.. 그렇게 버티다 버티다 보면, 상처는 더 곪고 곪아서 더 큰 위기가 되고 결국 IMF 사태처럼 대공황 사태가 벌어지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정 부 가
무능하면 결국 나라의 근간이 되는 기업과
나라가 망한다.
대출여부 를 떠나서 기업은 본질적으로 고효율을 추 구 하 기 때문이다 .
조금만 재빨리 수습되거나 대책안대로 행하였으면 뼈를 깍는 노력이 수반되었지는 잘 모르지만
IMF만큼은 막을 수가 있었다.
인간도 완전무결 하지 않듯이 나라도 국가는 완결무결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