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동명천제단입니다.
가끔 대종교 관련 카페들을 보다보면 많은 분들이 대종교에 대한 많은 관심과 함께 자신의 수행에 대해 좋은 글들을 많이 올려주시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와 관련하여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대종교가 과연 무엇을 위한 종교가 되어야 하고 또 그 목표는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고민. 다시 말해, 논하고 말하기 어려웠던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교우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떤 분은 사찰 등에 가서 절을 3000배를 했다, 또 어떤 분은 또 약 보름, 한달을 묵언수행을 했다, 그리고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사찰에 가서 자기는 21일 원도를 했다는 등. 저마다 여러가지 많은 수행을 한 이야기를 하면서 저에게도 비슷한 수행을 권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런데, 수행이라는 것이 조금 순서가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치, 목적지가 없이 또는 엉뚱한 곳으로 목적지를 정해서 정처없이 걸어가는 모습. 이것이 지금의 수행방식이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다시말해 무조건, 수행이라고 하는 것을 아무 생각없이 시작하는 것은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물론 어떤 누구도 아무 생각없이 하는 분은 없으리라 여겨지지만, 솔직히 몇몇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인지 사실상 목표가 없이 하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돈을 버는 이유는 바로, 소위말해서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 각자 여러가지 직업도 가지고 직장생활도 영위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의식주만 해결하기 위해 돈을 벌고 인생을 사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목적이자 삶의 목표는 무엇일까.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자신의 행복, 개인적인 이익추구를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를 든다면, 멋진 세계일주 여행과 또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근사한 집에서 사는 것, 그것도 아니라면 아름다운 배우자와 함께 멋진 드라이브를 즐기기 위한 고가의 자동차 구매 등.
이와같이 저마다 행복에 대한 가치나 생각, 기준 등은 모두 다 다릅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컬 한 것은 사실, 삶의 고난이나 인간의 갈등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부분이 바로 이 행복추구와 이익추구인데, 바로 이런 것을 각자 모두가 삶의 목표이자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살면서 이러한 것을 전혀 무시하고 살수는 없을거라 보여집니다. 자신의 행복추구가 없다면 인생의 삶이 정말 무료하고 의미가 없어질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위의 사진을 한번 게재해 보았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My Way, 2011) 영화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바로 1939년 5월에 있었던 할힌골 전투(Battles of Khalkhin Gol)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당시는 소련과 일본과의 전투였고 이 전투에서 일본은 소련에 참패를 당하게 되는 만주에서는 당시 최대 규모의 전투였습니다.
영화에서도 보는 바와같이 당시 일본의 전력은 소련에 많이 뒤쳐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일본의 패배가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일본은 최대의 전력을 다해 싸웁니다.
저는, 다만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할힌골 전투 뿐만이 아니라 바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내내 보여준 투혼과 일본 천황에 대한 일본인들의 충성심은 바로 어떤 의미가 있고 의의가 있는 것인지 한번쯤은 지금 이 시대에 다시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를 믿는 이유가 단순히 자신의 행복과 복을 빌기 위한 하나의 기복신앙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물론 인정을 안하고 또 하고싶어하지 않지만, 내심 결과론적인 부분만 생각해본다면 기독교나 천주교, 불교, 그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거의가 안그런 상황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앞에서도 언급하였습니다만, 자신의 행복추구는 결국 필연적으로 타인과의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고 또 그렇기에 결과적으로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생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집멸도(苦集滅道)라는 것이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이 될 정도입니다. 각 종교마다 기적을 이야기하고 또한, 각각 주신의 보살핌과 도움을 각각 이야기하지만, 이 모두가 사실은 모순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각자의 모든 사정과 기도를 모든 신들이 다 들어줄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아무런 모순이 없이 가능할 수 있는 일일까. 그렇다면 정말, 종교 자체는 현실세계에서 그 어떠한 모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일까.
이것은 사실상 사후세계라면 몰라도 분명하게 현실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렇기때문에 개인적인 이익이나 행복의 추구보다는 보다 큰 대의적이고 대승적인 차원에서의 이익과 행복추구가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그 속에서 자신의 행복도 얻을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바로 저의 생각입니다. 대승적인 차원에서의 근본적 이상과 대도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인간사이에서의 행복추구는 필연적으로 동물세계의 법칙인 약육강식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현재의 삶은 과거로부터 이어져서 미래를 향해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도이자 인간사의 법칙입니다. 과거와 단절된 삶을 산다는 것은 자신에게 타임머신이 없는 한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목표이자 목적은 그 과거에 대한 정의와 역사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미래로 갈 수 있고, 또 그에 따라서 우리 인간도 그 시간의 흐름과 삶속에 순행할 수 있습니다.
만약, 과거의 역사가 잘못되었다면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은 같이 잘못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과거의 역사가 정의롭고 그야말로 전성기를 구가한다면 현재의 삶, 또 미래의삶도 마찬가지로 전성기를 이어갈 가능성은 그만큼 커집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 역사 이런 것에 대해서는 자신과 무관하며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따라서 얼마든지 개별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사실상 본인은 그렇게 착각, 또는 생각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큰 틀에서 본다면 마치 어항속의 물고기와 다름없을 것입니다.
저는, 과거의 역사에 대한 심판과 개선, 혁신이 없다면 현재의 삶이나 미래의 삶은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혼자 제아무리 수행하고 기도한다고 하여 소위, 우화등선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믿고 있는 대종교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대종교를 믿으면서 대종교라는 종교 자체가 깨끗하지 못하고 문제가 많이 발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나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나만 잘하면 된다라고 생각한다면 그 속에서 과연 그는 도를 깨달을 수 있을까. 근본적으로 불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따라서, 보다 많은 우리 교우님들이나 또는 대종교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보다 대종교 종단 자체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리고 현재 대종교가 가지고 있는 경리업무의 부실함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의 개진을 부탁드립니다. 그것이야 말로 대종교에서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정도의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대종교 백봉대종사 숭모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