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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영한대역 만화 삼국지 제5권
위자즉기(爲者則己), 유자즉사(有者則士)
- 일을 행하는 것은 군주 자신이요, 전공을 소유하는 것은 장병들이다.
(1)‘위자즉기(爲者則己), 유자즉사(有者則士)’는 결책(決策)을 자신의 책임으로 하고, 공로를 장병들의 공으로 돌려야 한다는 뜻이다.
(2) 爲者則己(위자즉기), 有者則士(유자즉사), 焉知利之所在(언지리지소재)
爲者則己(위자즉기)
적국을 칠 계책을 내어 그 일을 한 자는 자기 자신인데,
有者則士(유자즉사)
적(敵)을 쳐서 얻은 땅이나 재물을 차지하는 자는 장수나 사졸들이다.
焉知利之所在. (언지리지소재)
그리하여 자기에게는 아무런 이득도 없는 것 같지만,
세상 사람들은 참으로 큰 이득이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3) 무경칠서(武經七書) 3-1-6 전공(戰功)을 나누어 주라.
제3장 용병(用兵)의 도(道)
제1절 권도(權道)
6. 전공(戰功)을 나누어 주라.
[爲者則己 有者則士] - 삼략 상략편 -
「일을 행하는 것은 군주 자신이요, 전공을 소유하는 것은 장병들이다.」
한(漢)나라 유방(劉邦)과 초(楚)나라 항우(項羽)가 패권을 다툴 때의 일이다. 여생이 제(齊)나라 왕을 찾아가 말했다.
“왕께서는 천하의 민심이 돌아가는 곳을 아십니까?”
“알지 못합니다.”
“왕께서 천하의 민심이 돌아가는 곳을 알면 제(齊)나라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이나, 만약 천하의 민심이 돌아가는 곳을 알지 못하면 제(齊)나라를 보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천하가 어느 곳으로 돌아가겠습니까?”
“한나라로 돌아갈 것입니다.”
“선생은 무엇을 가지고 그렇게 말하시오?”
“한왕(漢王 - 유방 劉邦)은 성을 함락하면 장수를 제후로 삼고, 재물을 얻으면 장병들에게 나누어주어 천하의 이익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영웅, 호걸과 현인, 재사들이 모두 그에게 등용되기를 기꺼워합니다.
그러나 항왕(項王 - 항우 項羽)은 남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고, 남의 죄에 대해서는 잊는 일이 없습니다. 그의 장병들은 싸워서 이겨도 상을 얻지 못하고, 성을 함락시켜도 봉읍을 받지 못합니다. 또한 재물을 얻고서도 그것을 쌓아둘지언정 상으로 주지 않으며, 관인을 새겨 놓고서도 손 안에서 그것이 닳아 이지러질지라도 아까워서 주지를 못합니다. 따라서 천하가 그를 배반하고, 인재들은 그를 원망하여 그를 위하여 일하는 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하의 민심이 한왕(漢王 - 유방 劉邦)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앉아서도 헤아려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여생의 예견대로 자신의 힘만을 믿었던 항우(項羽)는 갈수록 세력이 쇠퇴하여 결국 멸망하고, 천하의 민심을 거두어들인 유방(劉邦)은 마침내 승리하여 천하를 통일하고 한(漢) 왕조를 창업하게 되었던 것이다. - 통감 -
(4)
「재물을 얻으면 소유하지 말고 장병들에게 나누어 주고, 땅을 점령하면 스스로 지키지 말고 장수들에게 나누어 주며, 성을 함락하면 오래 머물지 말고 성주를 임명하고, 나라를 정복하면 제후를 세우되 스스로 취하지 말라.
일을 행하는 것은 군주 자신이요, 전공(戰功)을 소유하는 것은 장병들이다. 그러면 참된 이익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장수들은 제후가 되고, 군주 자신은 천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면 성은 절로 보전되고 영토는 절로 지켜지리라.」 - 삼략 상략편 -
「전쟁에서 승리하면 병사들과 그 공적을 나누어야 한다. 만약 장수가 다시 전쟁을 하려면 상벌을 중히 해야 한다. 만약 전쟁에 졌을 경우에는, 장수는 그 과실을 자신에게도 돌려야 한다. 다시 전쟁을 할 경우에는 서약을 하고 자신이 앞장을 서야 하며, 이전에 사용했던 전략을 다시 사용해서는 안 되는데, 이는 승리했던 패배했던 마찬가지이다. 이를 일러 전쟁의 정칙(正則)이라 한다.」 - 사마법 엄위편 -
「군대에 재물이 없으면 병사들이 오지 않으며, 군대에 상이 없으면 병사들은 전쟁에 나가지 않는다. 향기로운 미끼가 있을 때 물고기를 잡을 수 있으며, 무거운 상이 있을 때 용감한 병사가 모여든다. 그러므로 예(禮)로써 대우하면 병사들이 귀부하고, 상을 내리면 병사들은 죽음을 무릅쓴다. 예로써 맞이한 뒤에 후회하는 자에게는 병사가 머물지 않으며, 상을 주고 나서 후회하는 자는 병사를 부릴 수 없다.」 - 삼략 상략편 -
(5) 삼국지(三國志)에서의 예
爲者則己(위자즉기), 有者則士(유자즉사)는“일을 한 것은 나이지만, 갖기는 곧 그대들이라.”는 뜻으로 후한서(後漢書) “동탁전(董卓傳”의 주(註)에는 부연하여 “공은 내가 세웠다 해도, 더불어 갖는 것은 그대들(爲功者雖己苦有者乃士)”로 되어 있다.
동탁(董卓)은 중국 서북 변경인 임조(臨兆)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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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영한대역 칼라 만화 삼국지(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제5권 P184 – P185 / 아래 스캔 자료 참조
- 저자 :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21st C.E.T.A.)
- 출판사 : (주)파우스트 칼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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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칠서[武經七書] - 중국의 일곱 가지 병서(兵書)
(1) 조선 초기에 중국의 ≪무경칠서(武經七書)≫를 주해한 책. 10권 5책. 1452년 수양대군이 왕명에 따라 주해했다. 충남대학교 도서관 소장.
이칭별칭 : 무학칠서
유형 : 문헌
시대 : 조선
성격 : 병서
편저자 : 손무, 오기, 사마양저, 위료, 이정, 황석공, 여망
권수·책수 : 15권
목차 : 정의개설내용의의와 평가
(2) 개설
무학칠서(武學七書)·칠서(七書)라고도 한다. 주나라 손무(孫武)가 쓴 『손자(孫子)』, 전국시대 위나라 오기(吳起)의 『오자(吳子)』, 제나라 사마양저(司馬穰苴)의 『사마법(司馬法)』, 주나라 위료(慰繚)의 『위료자(尉繚子)』, 당나라 이정(李靖)의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한나라 황석공(黃石公)의 『삼략(三略)』, 주나라 여망(呂望)의 『육도(六韜)』를 일컫는 말로 송나라 원풍연간(元豊年間, 1078∼1085)에 이들 병서를 무학(武學)으로 지정, 칠서라고 호칭한 데서 비롯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들 무경칠서는 훌륭한 무전(武典)으로 채택되어, 과거(科擧) 무과의 두 고시과목인 강서(講書)와 무예(武藝) 중 강서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즉, 강서는 무과의 복시(覆試)에만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사서오경 중 하나와 무경칠서 중 하나, 『통감(通鑑)』·『병요(兵要)』·『장감박의(將鑑博議)』·『소학』 중의 하나를 각각 택하고 『경국대전』과 함께 네 가지 책으로 시험을 치르게 하였다.
(3) 내용
각 책의 내용을 보면, 『손자』는 제일 오래된 병서로서 1권으로 되어 있으며, 계(計)에서 용간까지 13편(篇)으로 되어 있다. 전쟁을 하는 데 필요한 갖가지 전략과 슬기가 총망라되어 있다.
또한 전략뿐 아니라 인사(人事) 전반에 걸쳐서도 비범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이 책은 『오자』와 함께 역과초시(譯科初試)의 교재로도 쓰였다고 한다.
『오자』는 1권으로, 도국(圖國)에서 여사(勵士)까지 6편으로 된 병서이다. 이 책은 오기의 문도(門徒)가 편찬한 것이라는 등 여러 설이 있다.
『사마법』 역시 1권이고, 인본(仁本)에서 용중(用衆)까지 5편으로 되어 있다. 『위료자』는 『손자』에 필적할만한 병법서로서, 전 5권이며 천관(天官)에서 병령(兵令)까지 24편으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한 장재(張載)의 주(註)가 있었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이위공문대』는 당나라 태종(太宗)과 저자인 이정이 병법에 관하여 문답한 것을 수록한 것으로 상·중·하의 3권으로 되어 있다. 이는 후에 다른 사람이 이정의 용병론(用兵論)을 수록한 것이라고도 한다.
『삼략』은 보통 ‘육도·삼략’이라 부르듯이 『육도』라고도 부른다. 상략(上略)·중략(中略)·하략(下略)으로 되어 삼략이라 하며, 모두 3권으로 되어 있다. 『황석공삼략』이라고도 한다. 『육도』는 문무도(文武韜) 등 6도로 나누어져 있고 전 6권으로 되어 있다.
이 『육도』·『삼략』은 위작(僞作)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육도』·『손자』·『오자』·『사마법』·『삼략』·『위료자』·『이위공문대』의 순으로 되어 있었으나, 그 뒤 주복(朱服)이 순서를 고쳐 『삼략』을 『이위공문대』의 뒤로 보내고 『육도』를 맨 뒤로 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순으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이 무경칠서에 관한 참고서적도 여러 종류가 있다. 송나라 증공량(曾公亮) 등이 왕명으로 편찬한 40권의 『무경총요(武經總要)』, 금나라 시자미(施子美)가 엮은 『칠서강의(七書講義)』 12권, 명나라 유인(劉寅)의 『칠서직해(七書直解)』 12권, 황헌신의 『무경개종(武經開宗)』 14권 등이 그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1452년(단종 즉위년)경수양대군(首陽大君)이 최항(崔恒) 등에게 명하여 편찬한 10권 5책의 『무경칠서주해(武經七書註解)』 등이 있다.
(4) 의의와 평가
이 무경칠서는 군사를 훈련시키고 전략을 세우는 등 용병하는 방법을 총망라한 것으로, 중국뿐 아니라 우리 나라의 당시의 군사제도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손자』 등은 광범위한 인간관계를 함께 다루고 있어, 오늘날의 일반 사회생활에서도 자주 인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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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판사명 : (주)파우스트 칼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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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읽는 영한대역 세계명작 만화]
징기즈칸[Genghis Khan, 成吉思汗]
출생 – 사망 : 1162 ~ 1227
재위 기간 : 1206 ~ 1227
지역 : 아시아 대륙
왕조 : 몽골 제국
거대한 몽골 제국은 동방으로부터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유럽 세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서양사에 공포의 상흔을 남긴 징기즈칸, 그리고 몽골은 어떠한 존재였을까?
(1) 배경 - 동방 왕의 전설
리처드 왕의 십자군도 만족스러운 전과(戰果)를 올리지 못하고 유럽 세계가 이슬람과의 오랜 싸움에 염증이 났을 무렵, "적국 이슬람의 동쪽 저편에 기독교도들의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 왕은 프레스터 존(Prester John), 즉 '사제 요한'이라고 한다"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동방에서 이슬람과 싸우면서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을 노리고 있다는 이 왕의 이름은 서방의 '십자군' 사이에 하나의 구세주의 전설로서 사실인 양 퍼져 나갔다. 전설의 근원이 된 것은 당시 위구르와 몽골 고원의 일부에서 널리 퍼져 있던 네스토리우스파(派) 기독교(景敎)의 일부인데 그 실체는 전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유럽은 이 허상을 바라고 있었다. 페쇄된 시대에 성스러운 왕이 동방에서 나타나 이슬람군을 격파해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결국 희망대로 동방에서 전설의 왕이 왔다. 하지만 그 왕의 이름은 징기즈칸이었다.
(2) 태생 - 몽골의 고아
징기즈칸이 이끄는 몽골이 역사의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13세기 초이다. 당시 몽골 고원에서는 위구르 유목 제국이 해체된 이후에 3세기 반에 걸쳐 분열과 할거(割去)가 이어졌다. 요(遼)를 비롯한 주위 국가들은 모두 몽골의 유목 부족이 하나로 뭉치는 것을 두려워했는데 그 이유는 과거의 흉노(匈奴), 돌궐(突厥)같이 하나가 된 부족 연합은 틀림없이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유력한 부족이 나타나면, 그 대항마(對抗馬)를 지원하여 서로 싸우게 했고 그래도 안 될 때는 대군을 북벌(北伐)하게 하여 직접 격파했다. 경연(硬軟) 양면에서 간섭한 결과 유목 부족들이 통일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요(遼)가 금(金)에 쓰러지고 멀리 중앙 아시아에서 서요(西遼)가 된 이 당시에는 몽골 고원에 대한 압박도 다소 느슨해져 있었다. 사실, 이 시대에 이르면서 몽골 부(部)는 통일되었고, 칸도 3대째에 이르렀다. 그러나 유목 부족 사이에서 여전히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고, 몽골 고원 전체를 하나의 군단(軍團)으로 통일할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징기즈칸, 그의 어릴 때 이름은 테무진이었는데 초년 시절은 그리 평탄치 않았다. 아버지 에스게이는 쿠트라 칸의 뒤를 이어 몽골 부의 제4대 족장에 오를 것으로 촉망받고 있었으나 테무진이 어렸을 때 숙적(宿敵) 타타르 부(部)에 의해 독살당했다. 그러자 에스게이를 따르던 타이치우트 씨족은 손바닥 뒤집듯이 테무진을 배신했고, 테무진의 복수를 염려해 어린 그를 죽이려고 계획했다. 난세에 이용 가치가 없는 사람을 배척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각별히 사악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테무진이 어리고 힘이 없을 때 제거하려 한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테무진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호에른의 엄한 교육 때문에 테무진은 아주 가혹하고 격렬한 성격으로 자라났다.
이런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테무진을 비롯한 4형제가 강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이때 에스게이의 또 다른 아내의 아들, 이복형제 두 명이 찾아와서 그들이 낚은 고기를 빼앗았다. 테무진은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말했는데, 어머니는 형제끼리 싸워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어머니의 책망을 듣고 테무진은 남동생 카사르와 활을 들고 집을 나가 이복형제를 앞뒤에서 공격하여 활로 쏘아 죽였다. 집으로 돌아온 두 아들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된 어머니는 "같은 집안 사람끼리 싸워서 어떻게 하느냐"고 테무진을 꾸짖었다고 한다. 그런 성격의 소유자가 조용히 참으며 살 리가 없었다.
테무진은 보르테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눈에 불이 있고 얼굴에 빛이 있는' 소년 테무진과 소녀 보르테를 약혼하게 한 것은 아버지 에스게이였지만 정식 결혼은 그로부터 9년이 지나서야 성사되었다. 이때 보르테가 갖고 온 결혼 선물 크로텐(검은담비) 가죽옷이 테무진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당시에 크로텐 가죽옷은 매우 고가품이었고 유목민 사이에서 진귀한 옷이었다. 테무진은 이 털가죽을 가지고 케레이트 부(部)의 군주 토오릴 칸에게 찾아갔다. 토오릴 칸은 선친 에스게이의 친한 친구였고 그를 같은 편으로 만들면 100만의 우군을 얻게 되는 셈이었다. 테무진은 몽골 고원 최대의 군주를 우군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이용하려는 과감한 도박에서 결국 이겼던 것이다. 크로텐 모피에 기분이 좋아진 토오릴은 기뻐하며 말했다.
"답례로 너의 해산된 씨족 사람들을 모아 주마."
(3) 인격 - '유린하라'고 초원은 말했다
유목민의 생활은 가혹한 편이다. 으레 초원이라고 하면 초목과 바람, 끝없이 높은 하늘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기후는 1년 중 짧은 여름에 불과하며 이 시기를 제외하고는 혹독한 추위 속에 갇힌다. 1월의 평균 기온은 영하 26.1도. '눈에 방목된 소의 머리가 얼어서 깨지거나' '쇠꼬리가 얼어붙어서 뚝 잘려 땅에 떨어지기도' 하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 유목민들이 철저한 약육강식의 논리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정확한 판단력과 단호한 행동력이 없으면 유목 생활을 해나갈 수 없으며 그것이 몽골 제국 전체의 특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징기즈칸은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는 "남자가 쾌락과 기쁨으로 삼는 것은 모반인(謀叛人)을 유린하고 적을 정복하여 재산을 박탈하고 그 시종들의 눈, 코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며, 그들의 살진 말을 타고 그들의 아내를 나의 침상으로 삼아 그 장미 같은 뺨을 애무하고 진홍빛 입술에 입맞춤하며 끌어당기는데 있다"고 말했다.
징기즈칸의 이 잔학성은 젊을 때 겪은 여러 굴욕적인 사건이 원인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죽음을 당하고 가난의 밑바닥에서 허덕이며 아내를 빼앗기고 아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의 아들을 낳은('징기즈칸의 큰아들' 박스 글 참조) 데 대한 분노는 마음 속 깊이 앙금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징기즈칸이 단순히 어두운 분노에 자극받아 행동할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떤 분노에도 좌우되지 않는 냉철함, 그것이 징기즈칸이 무서운 진짜 이유였다. 그의 냉철함과 지략(智略)은 원정(遠征)에서 충분히 발휘되었다.
(4) 징기즈칸의 큰 아들
징기즈칸의 아내 보르테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르키드족에 의해 납치당했다. 그녀는 토오릴 칸이 9개월 동안 교섭을 벌인 끝에 징기즈칸에게 돌아올 수 있었는데, 돌아온 직후에 사내아이를 낳는다.
징기즈칸은 아들의 이름을 주치[朮赤]라 했는데, '객인(客人)' 즉 '이방인'이라는 뜻이다. 이런 이름을 붙인 이유는 보르테가 남편에게 돌아오는 도중에 뜻하지 않게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설과 사실은 징기즈칸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5) 대서정(1) - 호레즘 샤와의 대립
1219년, 징기즈칸은 서양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때까지의 10년 동안 그는 몽골을 강력한 통일 국가로 통합하고 중국 북부의 금(金)을 침략하여 정복했다. 당초에는 유목민 특유의 약탈 행위로 시작된 이 침략은 해를 거듭하면서 토지를 제압하고 항구적으로 지배하는 정복 행위로 그 성격이 바뀌어 갔다. 혹독한 자연 속에 자란 유목민들에게 정착민들의 토지는 처분하기에는 너무 풍요로웠던 것이다. 지배를 하게 되면서 몽골 유목민들의 성격도 바뀌어 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지배하기 위해 서쪽으로 눈을 돌렸다. 몽골의 서양 정복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 당시에 서아시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이던 호레즘 샤 왕조는 1210년에 국력이 쇠퇴해 있던 서요(西遼)를 멸망시키고 북쪽은 카스피해 연안으로부터 남쪽은 페르시아, 동쪽으로는 힌두쿠시로부터 서쪽은 코카서스(카프카스)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징기즈칸은 몽골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호레즘 샤와 당초에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1215년에 징기즈칸은 호레즘 샤가 보낸 사절단에게 말했다.
"내가 동방의 패자가 될 것이니 샤는 서방의 패자가 되시오. 우리는 서로 평화와 우호를 유지하여 상인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겠소?"
그러나 징기즈칸의 진의는 다른 데에 있었다. 『집사(集史)』에 의하면 1216년에 대금(對金)침략에 일단락을 지은 징기즈칸은 몽골 전군에게 2년간 휴식을 명령했다. 부족 전체적으로 대원정 준비가 진행되어 서방으로 첩보(諜報)·조략(調略)을 목적으로 통상단이 보내졌다. 표면상의 우호 관계는 적의 내정을 다 살필 때까지의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1219년에 호레즘 영(領)인 오트라르(시르다리야 강의 동안, 그 지류 아리스 강 남쪽에 있었으며 옛 명칭은 파라브. 호레즘 왕국 시대에는 그 국경 도시가 되고, 태수가 몽골의 대상을 살해했기 때문에 징기즈칸이 서부 정벌을 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에서 몽골 통상단이 첩자 혐의로 학살을 당했다. 문명국 사이에서 통상단이 파견되는 경우 그것은 보통 스파이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받아들일지 아닐지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 방식이었다. 호레즘이 취한 방법은 그다지 문명적이지 못했다. 징기즈칸은 분노했고, 이것은 침략을 개시할 아주 좋은 빌미였다.
(6) 대서정(2) - 중앙 아시아에서 러시아로
용의주도한 첩보 활동을 벌인 결과 호레즘에 대한 조사가 끝났다.
골 왕조, 아바스 왕조를 누르고 이슬람 세계의 최대 패자(覇者)로 알려졌던 서방의 강국은 실은 겉보기보다 실속은 없었다.
호레즘 샤 왕조가 갑자기 대두하게 된 것은 아랄해(海) 북방의 사나운 유목 민족인 터키계 캉글리족(族)의 무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직접 충성을 맹세한 것은 호레즘 국왕 무하마드의 생모, 캉글리족 출신의 테르켄 하튼이었고, 호레즘 왕조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이 대립하고 있었다. 캉글리족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킬 것을 염려한 무하마드는 병력을 집중시킬 수 없었다. 이러한 사정은 몽골측에 바로 누설되었다. 몽골의 철저한 내부 교란(攪亂)의 결과, 공격의 손길은 무하마드의 어머니 테르켄 하튼에게까지 뻗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결국 호레즘 군대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개별적 도시 방위군으로 몽골 군대 전체와 싸워야 했고, 마침내 모조리 패하고 만다.
1219년, 징기즈칸이 이끄는 원정군은 오토라르 시를 공격하고, 이어서 마와라 안나르 지역을 침공했다. 나중에 제왕 티무르에 의해 번영하는 이 지역은 옛날부터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비옥한 지대였고 수도 사마르칸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탐내던 곳이었다.
오아시스 여러 도시를 공격, 함락시킨 몽골군은 공성전(攻城戰)에도 뛰어났다. 오토라르를 공략하는 데는 5개월이 걸렸지만 부하라는 며칠 만에, 그리고 사마르칸트는 4일 만에 함락되었다. 금(金)과 서하(西夏)에서 등용한 기술자에게서 습득한 공성전 기술이 주효했음은 물론이고, 몽골군(軍)이 두려워 자진해서 문을 여는 도시들도 많았다. 사전에 조사한 대로 호레즘 샤 왕조의 행동은 전혀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몽골군은 강력하고 잔학한 군대임을 알려 전쟁 전부터 정보전에서 상대방의 사기를 꺾어 놓았다. 사마르칸트에 몽골군이 오기 직전에 국왕 무하마드는 도시에서 도망쳐 버렸다.
서양 세계에 이 사태는 전설의 구현으로 전해졌다. 프레스터 존은 다윗 왕으로 이름을 바꾸고, 페르시아를 석권하고 바그다드 근처까지 육박했다는 정보가 로마 교황청을 통해 유럽에 퍼졌다. 환상의 구세주가 나타났다는 데 힘을 얻은 십자군은 아이유브 왕조의 수도 카이로를 공격했으나 물론 동방으로부터의 원군(援軍)은 오지 않았다. 십자군은 참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서양 세계에 동방에서 온 군단이 루시(러시아)를 향해 올라오고 있다는 새로운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7) 진격 - 러시아 공략전
사마르칸트에서 도망친 호레즘 국왕 무하마드는 서쪽으로 달아났다. 무하마드가 도망친 것은 몽골군을 내지(內地)로 유인, 공격하려는 책략이었다는 설이 있지만 이미 때늦은 일이었다. 국왕의 추태가 호레즘 샤 왕조의 해체를 앞당겼다는 설도 있다.
이 시기에 니샤푸르에서 징기즈칸이 낭독한 선언문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사령관, 대관, 평민들이여. 신이 동에서 서에 이르는 지상의 제국을 짐에게 준 것을 알라. 항복하는 자는 목숨은 살려 줄 것이다. 그러나 저항하는 자는 불행을 당하여 처자(妻子), 평민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풍요로운 마와라 안나르를 제압한 징기즈칸은 세계 제패의 실현을 계획했는지도 모른다. 징기즈칸의 군대는 이란 서부 여러 지역을 공략하는 한편, 장군 제베와 스베테이가 군대를 이끌고 루시로 향했다. 무하마드를 쫓아간다는 것이 명목이었지만 사실은 새로운 땅을 정복하기 위한 침략 행위였다.
무하마드는 추격을 피해 카스피해 남안의 쿠르간까지 달아났다. 그러나 결국 몽골군에게 발견되어 카스피해 앞바다의 아바스쿤 섬으로 다시 탈출했으나 폐병이 악화되어 죽고 말았다. 이것이 1220년 12월의 일이다.
제베와 스베테이의 진군은 계속되었다. 몽골군은 그대로 카스피해 서안에서 북진하면서 도시들을 함락해 나갔다. 카프카스 지방을 지나 흑해 연안으로 들어간 원정군은 곧 칼카 해반(海畔)에서 루시군(軍)과 일전을 벌인다.
몽골군은 당초에 남러시아 초원에 분포하는 터키계 유목민 부족 킵차크족(族)을 정복하려는 계획도 있었는데, 킵차크족은 예전의 징기즈칸의 숙적 메르키드족과 교류하는 부족이기 때문에 제압해야 할 적이었다. 몽골군이 쳐들어오자 킵차크의 족장이며 루시와 인연이 있던 코치아는 루시측에 협력을 요청했고, 루시의 대공 게오르규는 몽골에 대항하는 동맹을 맺게 된다.
루시 제후들로 이루어진 연합군은 드네프르 강 우안(右岸)에 진을 치고 몽골군을 기다렸다. 연합군은 8만 정도였고, 이에 비해 몽골군은 훨씬 열세였다. 첫 전투에서는 연합군의 가리치 공(公)이 몽골군을 압도했다. 기세등등해진 연합군은 후퇴하는 몽골군을 추격했고, 몽골군은 연합군을 방어하면서 칼카 강 동안(東岸)까지 후퇴했다. 그러나 그것은 몽골군의 책략이었다. 몽골에 비해 기동력이 뒤떨어지는 루시군(軍)은 추격전에 지쳐 있었는데, 가루치 공은 혈기만을 믿고 칼카 강을 건너는 작전을 감행했다. 때를 기다리고 있던 몽골군은 일제히 반격에 나섰고 루시군은 꼼짝없이 격파당하고 말았다.
가루치 공의 군단과 그것을 지원한 킵차크 군대는 괴멸되었고 몽골군은 제후들을 추격하여 그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키에프 공, 체르니고프 공은 붙잡혔고 공전승(共戰勝)의 연회석상에서 함께 처형되었다.
칼카 강의 결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후 원정군은 동쪽으로 전진하여 징기즈칸의 본군대와 합류하여 본국으로 돌아갔다. 루시 남쪽에 몽골군의 직접적 영향이 미치지는 않았지만, 이 패배는 루시 제후, 그리고 흑해 건너편의 비잔틴 제국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상흔(傷痕)을 남기고 몽골은 이렇게 떠났다. 1227년 징기즈칸은 서하 정복전이 한창일 때 죽었는데, 그가 만든 제국과 정복에 대한 야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서양 세계는 다시 한번 징기즈칸의 그림자에 떨게 된다.
(8) 재방문 - 유럽 침입
1236년, 루시인들이 몽골을 거의 잊어갈 무렵에 몽골은 다시 동쪽에서 왔다. 징기즈칸의 뒤를 이은 오고타이 칸의 명령하에, 죽은 징기즈칸의 장남 주치의 아들인 바투 칸이 군을 이끌었다. 이번 원정의 목적 또한 킵차크족 지배, 호레즘 잔당의 괴멸, 그리고 서양 세계의 정복이었다.
바투 원정군은 우선 가까이 있는 킵차크족을 공격했다. 유목민 집단에 불과하며 몽골처럼 군단으로서 통일되지 않은 킵차크족은 몽골군의 적수가 못 되었다. 어떤 자들은 서쪽으로 도망치고 어떤 이들은 투항하여 대부분이 몽골의 지배하에서 몽골군의 일원으로 재편성되었다.
새롭게 킵차크군을 얻게 된 바투 원정군은 그 다음으로 루시를 침공했다. 카스피해에서 북상하여 모스크바, 블라디미르 여러 도시를 장악하고 노브고로드를 위협한 후에 방향을 바꾸어 폴란드, 헝가리 방면으로 침입해 들어갔다.
겁에 질린 두 나라는 동유럽의 비잔틴 제국과 로마 교황에게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했지만 당시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는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2세와의 전쟁에 패해 그 호소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9) 압도 - 발슈타트 전투
유럽의 권력자들이 방관하고 있는 동안, 몽골군 별동대는 폴란드에 침입하여 폴란드 대공은 국내가 수습되지 않은 채 이를 맞아 싸우게 되었다. 1241년 4월, 양군은 리그니츠 평원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이고 몽골군은 폴란드군을 괴멸했다. 이곳은 훗날 발슈타트라 불렸는데 독일어로 '시체의 도시'라는 뜻이다. 이는 전투 후에 시체가 많이 나왔기 때문인 듯하다. 이 전투의 규모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몽골군의 가차없는 살육은 러시아인들에게 이질적인 모습으로 비쳤을 것은 확실하다.
그 무렵 바투가 이끄는 본대(本隊)는 헝가리로 향하고 있었다. 당시 헝가리 왕국의 군대는 유럽 최강으로 알려져 있었고, 국왕 베라 4세가 이끄는 헝가리군은 전력상 몽골군에 뒤지지 않았다고 한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현 부다페스트)로 진로를 잡은 몽골군과 헝가리 국왕군은 사요 강의 하반(河畔)에서 대치했다. 몽골군의 노궁포(弩弓砲)가 빗발치듯 쏟아져 헝가리군 내부에서는 참전한 수도원장과 국왕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이 혼란을 틈타 몽골군은 헝가리를 격파했다. 참패한 헝가리군은 몽골군의 추격을 받아 퇴로에는 여정 이틀에 걸쳐 시체가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10) 공포의 전설 - 타타르의 멍에
유럽은 위기에 처해 있었고, 몽골군이 어디까지 공격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헝가리에서부터 서쪽으로 향하면 그곳은 독일, 프랑스와 평원이 이어져 있었다. 라인 강 이외에 몽골군의 진격을 저지할 요충지는 없었다. 그대로 대서양에 도달하고 마는 것이다. 바투군은 헝가리 평원의 목초 지대에 주둔하며 전진에 대비하고 있었다. 만약 몽골군이 유럽을 정복했더라면 라인 강가의 구릉지대는 목초지대로 모습을 바꿔, 훗날 유럽의 역사, 아니 세계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유럽을 구한 것은 1241년 12월의 오고타이 칸의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정복 명령은 본래 오고타이 칸이 내렸으므로 그것을 계속할 것인지는 대회의를 열어 결정할 문제였다. 바투 칸은 빈을 눈앞에 두고 군사를 돌려 유럽을 떠났다. 그후에 몽골군이 유럽을 공격하는 일은 없었지만, 루시 땅에서는 제후와 각 도시, 그리고 정교회(正敎會)가 몽골의 지배를 완전히 받아들여 이후 수백 년간 루시는 킵차크 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를 러시아인들은 '타타르의 멍에'라 불렀고, 이 말은 지금도 불행을 뜻한다.
몽골인들의 지배는 몽골군의 가혹함과 잔학성에 비하면 훨씬 온후한 편이어서 기독교는 보호되었고 국내의 치안은 양호했다. 하지만 그들은 러시아인으로부터 10분의 1세(稅)를 거두는 한편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했는데, 거역할 경우에는 가차없이 학살했다.
러시아 제후는 이 타타르의 멍에 아래에서 단결을 결의했다. 1380년에 모스크바 대공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주위의 제후에게 킵차크한국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호소하여 크리코보 전투에서 한번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대군을 이끌고 역습한 킵차크한국에 패하여 모스크바는 황폐화되었고 1만 내지 2만 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결국, 러시아가 타타르의 멍에에서 탈출하려면 이반 뇌제(雷帝) 시대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11) 몽골 제국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서양 제국에게 몽골, 그리고 징기즈칸은 파괴와 약탈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몽골에 관한 저서들은 대부분 그들의 파괴와 약탈, 폭력과 살육만이 묘사되어 있다. 그들이 서양 세계에 던져준 공포를 생각하면 당연하겠지만, 몽골이 서양 세계에 준 또 다른 영향 ― 몽골이 동서의 교통을 활발하게 만들었다 ― 에 대해서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몽골의 지배자들은 '초원의 길'이라 전해지는 동서의 교통로에 역과 말과 숙사(宿舍)를 마련했고 그 때문에 외국 사절과 여행자들은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또한 금과 은으로 된 파이자라는 여권이 발행되어 이것이 있으면 외국인도 여행할 때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상인 마르코 폴로가 멀리 중국을 여행하다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그 영향이 크다. 파이자는 현재의 러시아 영(領)에서 여러 장 발견된 바 있다.
몽골인들은 통상을 통해 얻는 이익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결국은 육로뿐 아니라 해상로도 열렸다. 몽골 제국의 지배하에 통일을 회복한 중국 남부 항구에서 3층 갑판의 큰 배가 인도를 향해 항행(航行)했다. 몽골 제국의 보호하에 중국, 페르시아, 인도, 중앙 아시아, 흑해 주변에서 러시아까지를 포함한 거대한 통상 시장이 나타나 세계는 동과 서가 서로 통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쇄술, 항해자의 나침반, 화기(火器), 사회생활의 매우 중요한······이것들은 유럽에는 없는 것들이며 몽골의 영향에 의해 극동(極東)에서 유럽에 이입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몽골 고원의 한촌(寒村)에서 태어난 소년 테무진, 징기즈칸은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상징으로서, 또 한편으로는 세계를 발전으로 이끈 공로자로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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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읽는 영한대역 세계 명작 칼라 만화]
우주 전쟁 The War of The Worlds / H.G. 웰즈(H.G. Wells)
우주 전쟁 The War of The Worlds 개요
저자 H.G. 웰즈(H.G. Wells)
저자장르발표년도
허버트 조지 웰스 |
공상 과학 소설 |
1898년 |
영국의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의 공상 과학 소설로 1898년에 간행되었다. 영국의 후기 빅토리아 시대에 선진화된 무기를 장착한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는 줄거리로,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는 우주전쟁의 개념이 처음 사용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작품은 19세기 말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그는 유일한 지성체는 인간이라고 믿는 인간의 오만함과 냉혹하고 무자비한 외계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 날 그의 마을 근처에 둥근 통이 떨어진다. 둥근 통 안에는 거대한 눈과 촉수를 가진 화성인이 숨어 있었고, 화성인은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공격한다. 그들은 화성에 종말이 닥치자 지구를 공격한 것이었다. 화성인은 초록색의 열선과 독가스로 사람들을 공격하고 런던까지 초토화하기에 이른다. 생존자들은 지구가 화성인에게 정복당했다고 절망한다. 그러나 갑자기 화성인들이 죽어가는데, 그들은 지구의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죽게 된 것이었다. 생존자들은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가 우주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외계인의 침공에 대비하기로 한다.
작가는 작품 발간 당시에는 생소하게 들렸을 레이저 광선, 로봇 등과 같은 최첨단 무기가 미래에 등장할 것임을 예견하였고, 냉혹하고 잔인한 화성인이 진화한 인간의 모습이 될 수 도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과학 문명의 발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영국과 같은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는 제국주의적 식민주의도 비판하고 있다. 다양한 인물들의 심경변화와 행동을 통해 인간의 오만함과 무지함도 비판한다.
The War of the Worlds is a science fiction novel by English author H. G. Wells, first serialised in 1897 by Pearson's Magazine in the UK and by Cosmopolitan magazine in the US. The novel's first appearance in hardcover was in 1898 from publisher William Heinemann of London. Written between 1895 and 1897, it is one of the earliest stories to detail a conflict between mankind and an extra-terrestrial race. The novel is the first-person narrative of both an unnamed protagonist in Surrey and of his younger brother in London as southern England is invaded by Martians. The novel is one of the most commented-on works in the science fiction canon.
The plot has been related to invasion literature of the time. The novel has been variously interpreted as a commentary on evolutionary theory, British imperialism, and generally Victorian superstitions, fears, and prejudices. Wells said that the plot arose from a discussion with his brother Frank about the catastrophic effect of the British on indigenous Tasmanians. What would happen, he wondered, if Martians did to Britain what the British had done to the Tasmanians? At the time of publication, it was classified as a scientific romance, like Wells's earlier novel The Time Machine.
The War of the Worlds has been both popular (having never been out of print) and influential, spawning half a dozen feature films, radio dramas, a record album, various comic book adaptations, a number of television series, and sequels or parallel stories by other authors. It was most memorably dramatised in a 1938 radio programme directed by and starring Orson Welles that allegedly caused public panic among listeners who did not know the Martian invasion was fictional. The novel has even influenced the work of scientists, notably Robert H. Goddard, who, inspired by the book, helped develop both the liquid-fuelled rocket and multistage rocket, which resulted in the Apollo 11 Moon landing 71 years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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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걸리버 여행기 Gulliver's Travels / 조나단 스위프트 (Jonathan Swift)
(3) 우주 전쟁 The War of The Worlds / H.G. 웰즈(H.G. Wells)
(4)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 /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
(5) 로빈슨 크루소 Robinson Crusoe / 다니엘디포우(Daniel Defoe)
(6) 파우스트 Faust / 괴테(Goethe)
(7)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 /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8) 왕자와 거지 The Prince and the Pauper / 마크 트웨인(Mark Twain) - 사무엘 클레멘스(Samuel Clemens)
(9) 보물섬 Treasure Island / 스티븐슨(R.L. Stevenson)
(10) 백경(白鯨) Moby Dick 모비 딕 / 허만 멜빌(Herman Melville)
(11) 슬리피 해로우의 전설 The Legend of Sleepy Hollow / 워싱톤 어빙(Washington Irving)
(12) 노트르담의 꼽추 The Hunchback of Notre Dame /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3) 정글 북 The Jungle Book / 루드야드 키플링(Rudyard Kipling)
(14)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Dr. Jekyll and Mr. Hyde / 스티븐슨(R.L. Stevenson)
(15) 크리스마스 캐롤 A Christmas Carol / 촬스 디킨즈(Charles Dickens)
(16) 80일간의 세계일주 Around The World in Eighty Days / 쥴 베른(Jules Verne)
(17) 해저 2만리 20,000 Leagues Under the Sea / 쥴 베른(Jules Verne)
(18)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 / 촬스 디킨즈(Charles Dickens)
(19) 모히칸족의 최후 The Last of the Mohicans /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James Fenimore Cooper)
(20) 죄와 벌 Crime And Punishment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Fyodor Dostoevsk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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