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핵심 본문: 창세기 1장 26-28절, 시편 8편 3-8절
학문적·주석학적 과제: 헤릿 C. 베르카우어(G.C. Berkouwer) 교수의 교의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인간을 단순한 고등 영장류나 물질의 우연한 결합체로 격하시키는 '진화론적·생물학적 환원주의'와 인간의 본질을 자연과 초자연의 기계적 2층 구조로 분리한 '로마 가톨릭 스콜라주의의 오류'를 도륙한다. 창세기 본문의 원어 주석을 통해 인간은 고립된 자율적 실체가 아니라, 창조된 첫 순간부터 창조주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와 언약적 응답을 향해 지음받은 '관계적·언약적 전인(Relational Whole)'임을 확증한다.
1. 세속 인본주의와 스콜라주의 형상론의 치명적 오류 해부
20세기 이후 현대 사상은 인간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떼어내어 독자적으로 규명하려는 치명적인 오류에 빠졌습니다.
세속 인본주의와 유물론적 환원주의: 진화생물학, 행동주의 심리학, 유물론적 철학은 인간을 '복잡한 유기체 기계'나 '환경에 반응하는 고등 동물'로 전락시켰습니다. 영적 차원을 거세하고 인간을 물질로 환원시킨 결과, 인간 존엄성의 절대적 기초가 붕괴되고 도덕적 허무주의가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로마 가톨릭 스콜라주의(토마스 아퀴나스 계열): 인간의 본성을 '순수 자연(Pura Natura: 이성, 의지, 육체)'이라는 기본 구조 위에, 하나님을 향한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에서 덧붙여진 '초자연적 덧붙임 은사(Donum Superadditum)'가 결합된 2층 구조로 파악했습니다. 이 구조에 따르면 타락은 단지 덧붙여진 은사를 잃어버린 것일 뿐, 1층의 인간 본성(이성과 자유의지)은 본질적으로 손상되지 않은 채 온전하게 남아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베르카우어는 이러한 두 가지 접근 모두 성경적 인간관을 심각하게 왜곡했다고 비판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순수 자연'이라는 중립 지대를 결코 갖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부품처럼 떼어낼 수 있는 어떤 기능(이성이나 지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고 그분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 의미를 갖는 전인격적 실재'에 있습니다.
2. 창세기 1장: 첼렘(Tselem)과 데무트(Demuth)의 언약적 실재
창세기 기자는 인간 창조의 유일무이한 거룩한 신비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협의와 선포 속에서 기술합니다.
창세기 1장 26-27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히브리어 본문에서 사용된 두 단어는 인간의 본질을 명확히 규정합니다.
첼렘(Tselem, 형상): 고대 근동에서 왕이 자신의 통치권과 임재를 드러내기 위해 제국의 영토 곳곳에 세운 조각상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인간은 온 우주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와 거룩한 성품을 피조 세계 한복판에서 드러내는 '살아 숨 쉬는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Vice-regent)'로 세워졌습니다.
데무트(Demuth, 모양):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 유사성과 친밀한 관계'를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대화하고,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며, 그분의 거룩하심을 반영하도록 빚어졌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인간이 소유한 특정한 능력(지능지수, 예술적 감각, 신체 구조)을 가리키는 명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언약적 관계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세상을 의롭게 다스리는 '존재 방식(Way of Being)이자 거룩한 관계성' 그 자체입니다.
3. 시편 8편: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관을 씌우신 영광
다윗은 광대한 우주 속에서 인간이 누리는 독보적인 신분과 지위를 노래합니다.
시편 8편 4-6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다윗은 인간의 위대함을 인간 자신의 자율적 능력에서 찾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를 생각하시며(Tizkerennu)", "그를 돌보시는(Tipkedennu)" 신적 은혜의 관계 속에서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우셨습니다(We'kavod We'hadar Te'atterehu)".
피조물에 불과한 흙(티끌)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우주의 중심적 가치를 지니는 유일한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만물을 다스리는 청지기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의 이 언약적 관계의 끈을 끊어버리는 순간, 인간은 스스로 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짐승보다 못한 파멸과 허무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강의 요약 및 신학적 결론]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의 올바른 신학적 출발점을 확립하는 것은 모든 성경적 인간론의 기초입니다.
첫째, 인간을 물질로 환원시키는 세속 유물론과 인간 본성을 기계적 2층 구조로 나눈 가톨릭 스콜라주의의 한계를 도륙해야 합니다.
둘째, 창세기 1장의 첼렘(Tselem)과 데무트(Demuth)는 인간이 하나님을 대리하여 세상을 다스리고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관계적 대리 통치자'임을 확증합니다.
셋째, 시편 8편은 인간 존엄성의 절대적 근거가 자율적 능력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베푸신 영화와 존귀의 언약적 관계성에 있음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제1강의 결론은 서늘하고 명료합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단 1초도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세상의 우연한 산물로 취급하는 시대의 인본주의적 거짓을 깨부수고, 창조주의 숨결과 형상으로 빚어진 거룩한 피조물이자 언약적 청지기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하나님 앞에서 다시 굳건히 확립해야 마땅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