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선
지구상에 많은 나라가 있지만 우리가 사는 한국에는 사계절의 향연이 펼쳐지는 나라이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계절의 초록 물결을 황홀하게 펼쳐놓고 우리를 초대한다. 우리는 그 향연 속으로 여행을 떠나며 인생을 즐기며 산다.
특히 꽃 웃음 무성한 봄의 들머리에 오면 우리 시골집(베나의 집)에서는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어버이날 축하 잔치를 해왔다. 올해는 코로나로 몇 해 주춤했던 잔치를 새로 펼쳤다.
마을에 별일 없고 비 없는 5월 2일로 날을 잡자 조 교장 부부를 초대하였다. 박 교장은 기타 음악 가수로 대구에서 버스킹을 해왔고, 조 교장은 대구 다도회 회장으로 모임 있는 곳마다 다기를 들고 찾아가 다례 의식을 함께 나누는 봉사자인데 기꺼이 우리와 함께하겠단다. 그래서 올해 어버이날 축하 잔치 주제는 베나의 집 세로 현수막에 <박찬명 기타리스트와 함께하는 어버이날 축하 잔치>라고 써 붙였다.
하루 전날, 시골집에 와서 마당의 잔디부터 깎고 정자와 차 식탁에 날아든 송홧가루랑 새똥을 물로 씻어내며 청소하였다.
당일 새벽 2시에 일어난 우리 부부는 서로의 임무에 나섰다. 나는 부엌에서 전복의 입을 찾아 떼어내는 작업을 시작하고 전복죽을 끓일 준비를 하는 사이, 남편은 황토방 가마솥에 불을 때며 삼계탕 요리할 닭을 삶았다. 뼈랑 함께 삶으면 수삼의 기운을 뼈가 다 빼앗아 갈 수도 있고, 연로한 어르신들의 이를 다칠 수도 있어서 닭을 삶은 뒤, 뼈만 발라낸 살코기를 삶았던 물에 넣어 수삼과 전복을 넣고 새로 삶았다. 반찬 종지에도 생수삼과 꿀을 담으며 어르신들의 편안장수를 염원하는 마음을 함께 담았다. 그런데 이장 사모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음식 많이 하지 마라꼬 전화 했니더. 어제 회관에 모였을 때는 17명이었는데 오늘은 열 서너명도 될지 안 될지 모르겠니더.”
힘이 빠졌다. 전복죽도 20인분을 준비해 두었고, 점심 밥할 쌀도 이미 밥솥에 앉혀 두었는데 ….
다리 건너 있는 우곡우체국 국장님께 전화했다. 오늘 점심때 뭐 하시느냐고 대뜸 물었더니 별일 없단다. 그러면 우리 집에 마을 어르신들 모시고 어버이날 축하 잔치를 하는데 오실 수 있느냐고 했더니 ‘교장선생님이 부르면 단방 가야지요.’ 하며 시원하게 승낙했다. 친한 친구분도 같이 모시고 오라고 청한 뒤 대왕 소나무 그늘 밑에 식탁과 의자들을 내어놓고 상차림을 점검했다. 잡채. 과일, 야채, 숯불 돼지고기 거리, 두부무침, 전 요리 등 12가지 명목을 체크하며 손님 가시고 난 뒤에 냉장고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음식이 없도록 확인하였다.
조 교장 부부랑 노 원장이 오시고 마을 어르신 열 분, 우체국장은 혼자 오셨다. 면장도 같이 오려고 했는데 무슨 행사가 있어 참석하느라고 거기 가셨단다. 그래도 친구 대신 우곡 수박 두 덩이를 들고 오셨다. 이미 참외, 키위, 사과, 토마토로 채워진 과일 접시에 빨간 수박을 썰어 담으니 쟁반 음식이 작품처럼 보였다. 와인과 솔주 담은 것, 사이다, 콜라도 곁들여 내었다. 참석한 열여섯 분께 장미꽃을 한 송이씩 나눠드리며 잔치 기념식을 시작하였다. 구 이장님, 신 이장님, 베나의 집 주인장 인사에 이어 특별 손님으로 오신 노주희 도예원 원장, 조성희 다도회 회장, 박찬명 기타리스트 가수, 우곡 한석동 우체국장을 소개한 뒤 기타리스트는 앰프를 설치해 둔 곳으로 가서 기타를 울러 메었다.
“이 마을 어르신들은 찔레꽃 노래를 좋아해요. 찔레꽃 노래부터 들려주소.”
신청곡이 들어오고 노래 연주에 맞춰 가수랑 마을 어르신들이 손뼉 치며 노래를 함께 불렀다. 함께라야, 내부터 가사를 잘 몰라 입안으로 웅얼거리며 손뼉만 쳐대는 수준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노래를 들으며 음식을 먹었고, 식후에는 다도회 회장이 내는 차를 얻어 마셨다. 여태껏 우리 집에서 연 어버이날 축하 잔치에 이렇게 품격 높게 격식을 차리기도 처음이다. 어르신들이 가실 때 천으로 된 비옷과 카스텔라 빵 봉지를 선물로 들려드렸다. 예전에는 평상에서 윷놀이도 하고 스테인리스 그릇 같은 선물도 드렸지만 오늘은 차 대접 도중에 일찍들 서둘러 가셨다. 조 교장이 목련차, 무차, 말차 등 차 준비를 많이 했는데….
조 교장 부부의 재능기부와 차 봉사가 고맙고 그 먼 거리를 달려와서 상차림을 거들어준 노 원장도 고마웠다. 텃밭의 나물이라도 좀 들려 보냈어야 했는데, 뒷설거지하느라 미처 챙겨드리지 못하고 봉사한 친구들을 그냥 보내어 아쉬웠다. 둘 다 지친 몸이라 허리도 아프고 눈도 감기고 해서 서둘러 대구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경비실에 우체부가 맡겨둔 등기를 찾으러 갔다. 일전에 하나투어 대표에게 <교육과 사색> 책 한 권과 감사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송료 1,210원이 들었다). 그에 대한 답례로 등기 편지를 보내왔나 보다. 찾아 읽어보니 손 글씨로 정성 들여 답장을 보내왔다.
<안녕하세요, 하나투어 대표 이사입니다. 모든 여행에는 저마다의 꿈이 담겨 있습니다. 설레는 여행의 꿈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투어의 존재 이유입니다.
귀한 시간 내어 하나투어와 함께 해주시고 장가계 여행의 멋진 경험을 공유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투어는 지금도 여전히 여행을 공부하며 여행자들 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으며 새롭게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박경선 고객님의 (남편분과 같이) 행복한 여행을 찾아 떠나는 길에 하나투어가 든든하게 함께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 어린 편지 보내주시고 하나투어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4년 4월 29일 000 배상>
(⁕내 홈페이지에 4월 22일 자로 올려둔 장가게 여행 후기는 오늘부로 조회 수가 400명이 넘었다.)
편지에 지나친 어투나 자랑도 없이 소박하게 써 보낸 손 글씨가 친구처럼 다정하고 진실하게 느껴졌다. 동봉한 봉투 속에는 하나투어 여행 상품권 한 장이 들어있었다. ‘와, 상품권까지 보내시다니!’
남이섬 여행 후 신문에 칼럼으로 여행 후기를 써 보냈을 때에도 남이섬 전명준 사장으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은 기억이 났다. 하지만 이런 상품권 선물은 처음이다. 내 생에 처음 받아보는 고귀한 상품권인 만큼 평생 내 곁에서 함께 베풀며 봉사해 준 그 님께 멋진 선물이 될 것 같다.
우리 인생에 몇 번이나 봄의 향연에 초대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남은 시간이 이끄는 대로 감사하며 여행하는 기분으로 인생을 즐기며 살 것이다. (17쪽)
첫댓글 교장선생님의 또 하나의 나눔 행사를 보니 감동의 눈물이 납니다
정말 훌륭하고도 훌륭하신 교장선생님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