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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שלח־לך 슐라흐-레카" : 토라포션 알리야(Aliyah) in 5776
민13:1-15:41(To), 수2:1-2:24(Haft), 히3:7-4:1(Brit), 살전1-5(신약)
화요일(셋째 날)
민14:8-25(To), 살전2(신약)
| 20160628.mp3 76.09MB PC저장 |
* 신약 살전2
살전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는 말씀은 굉장히 능력이 있고 파워가 있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것은 말씀을 받을 때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 사람의 말 vs 하나님의 말씀
어제부터 3일 동안 도은미 사모님 강의를 듣고 있다. 세상에서 많은 학문을 하고 박사가 되셨지만, 황금의 도읍, 예루살렘을 세우는 분이다. 모국어라는 단어를 우리가 배우고 있다. 결국 자기의 경험은 언어, 자기 언어로 모든 것을 또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 모국어가 죽지 않는 한 안 된다. 옛 자아, 십자가에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몸이 죽는게 아니라, 사람은 말이고 말이 죽는 것이다. 결국 모국어가 죽는 것이라고 했다.
자기 경험에서, 삶 속에서, 자기 가족 속에서 얻어진 언어가 바로 모국어라고 했다. 무슨 말을 들어도 한국어가 아니라 다 자기의 경험의 언어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사실 토라에서 이 모국어를 죽이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너희들이 사람의 말로 받지 않는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사람의 말로 받는다는 것은, 모국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씀을 들어도, 그것을 자기의 경험의 언어로 해석한다. 이게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유대인들이 제자를 삼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것을 모국어로 해석한다. 자기의 언어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그것을 다 자기의 언어로 해석한다. 자기의 지난 날의 사연, 상처, 이런 언어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들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그래서 모세가 토라를 받고, 신명기에 와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 가르침이다.
- 이것을 라메드라고 한다
למד 라메드 : 가르치고, 배우다
- 여기서 탈미딤, 제자라는 말이 나왔다.
훈련, 배움, 가르침이다. 토라에서 왜 신명기가 필요하냐? 왜 다시 가르쳐야 하는가? 모국어 때문이다. 사람의 말로 받기 때문이다. 다시 가르쳐 훈련하고 배우는 것, 제자를 삼는 것이 필요하다
주님도 왜 너희들은 땅 끝까지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하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국어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땅 끝까지 가서 제자 삼으라는 말은 영접 시켜서 구원받게 하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왜 안 되냐면, 성경책 하나 줬다고 되는게 아니다. 그대로 모국어로 성경책을 해석하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 경험의 언어가 정말 강력하다. 그것을 가르치고 훈련시켜라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모국어를 토라의 언어로 이야기한다면, דב 디바이다. 모국어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정에서 배운 언어이다. 집(ב)에서 배운 언어, 이것을 모국어라고 한다. 자기 환경, 경험, 사연에 의해서 배운 언어이다.
cf ) 진*가 밥을 안 해주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왜 짜증이 나는가? 밥을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모국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아침에 열 가지 음식을 평생 해 주셨다. 그런데 그것을 안 하면 정상적인 아내가 아닌 것이다
모국어라는 것은 아주 지독하다. 모국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시스템이라고 배웠다. ב 베트이다. 이 시스템은 집에서 형성된다. 그래서 그렇게 그냥 된다. 그것은 그렇게 해석되고, 그것은 그렇게 된다. 이게 아본, 습관, 시스템이 되어서 나무처럼 그냥 그렇게 된다. 그냥 그렇게 생각이 되고, 그런 감정이 솟아나고, 그것을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이것이 안 좋은 것이 시스템이 되면, 우리는 그것을 중독이라고 한다. 해야만 하는 것이다. 보통 시스템은 중독이다. 그렇게 되게 되어있다.
- 이 시스템에 종속된 것이 디바이다.
부부 싸움을 하다보면, 엄마 아빠가 맨날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싸우고, 제일 하는 소리가 당신 또 그랬어?이다. 정말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왜 그러냐는 것이다.
cf ) 제가 제 아내에게 제일 많이 들은 소리 중 하나가 이야기해도 소용 없다는 것이다. 왜 말해도 소용이 없을까? 말을 해도 그것을 내 식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만 하면, 그래.. 나 싫다는거지? 뭔 이야기를 하면, 그렇구나 이래서 고치면 된다고 하면 되는데, 다른건 상관 없고, 나 싫다는 거지? 관두자..? 이렇게 된다
이게 그냥 시스템이다. 뭐가 딱 들어가면 그렇게 나오게 되어있다. 아무리 해도 안 된다. 아주 지겹다. 결국 이 시스템(ב)에 종속(ד)되어서, 시스템의 노예가 되어서 늘 나오는 소리를 모국어라고 한다. 그것을 דב 디바라고 한다. 아주 지겹다. 디바로 살면 반드시 디비지게 되어있다.
이것을 제거하는 것이 슐라흐 레카이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토라포션이다. 이것을 어떻게 제거하느냐? 우리는 이 디바만 제거하면 정말 놀랍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으려면 반드시 디바가 제거되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디바로 받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게 하는 것을 훈련, 라메드, 제자삼는다고 한다.
주님이 왜 제자삼으라고 하면서, 제자 삼는 것에 대해서, 도 사모님이 교회에서 점점 사라지는 말 중의 하나가 가정이라고 했다. 어제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이 창조주라고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하실까, 가정주라고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하실까이다. 가정주라는 소리를 하셨다. 이게 정말 놀라운 소리이다. 하나님의 모든 창조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가족을 세우는 것, Family를 만드는 것을 בית 베이트라고 한다.
광야는 다 머리에 붙는 것이다. 광야에서는 디바를 다 죽인다. 40년 동안 악평을 한, 디바를 하는 자들을 다 죽인다. 한 사람도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간다. 이 디바와는 멍에를 같이 멜 수 없다. 절대 못 맨다. 무슨 이야기만 하면 자기 식으로 해석한다
결국 현대인들이 자꾸 이혼하는 이유가, 멍에를 같이 못 매서 그렇다. 멍에의 레벨이 다르기 때문이다. 디바는 어떤 사람과도 멍에를 같이 못 맨다. 왜냐면 디바는 바드에서 나왔기 때문에, 자기 홀로, 나 혼자 살겠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과도 멍에를 같이 못 맨다. 이게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제자삼는 것은 정말 어렵다. 광야에서 이것을 다 죽이는 것이다. 제자삼는 것은 일종의 Killer가 되는 것이다. 모세가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 한 일은 뭔가? 물론 백성들을 데리고가긴 했지만, 하나님과 합작으로 디바를 말하는 자를 다 죽인 것이다. 디바 킬러이다.
그래서 실제로 둘 중 하나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죽이려 한다던지, 디바 킬러가 된다던지이다. 그래서 이 제자를 삼으려면, 이 디바가 집에서 생겼다. 그래서 집이 없으면, 다른 언어로 대체를 못 한다. 광야에서 디바를 말하는 자들이 다 죽었다. 그러나 그들이 다 어린 아이들로 대체가 되어서, 숫자가 안 줄었다. 다시 집에서 길리운 자들, 하나님의 집에서 길리운 자들이 하나님의 말을 한다. 이게 제자삼는 것이다. 집을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다 가정을 세우는 것이다. 그것은 날 돌보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또 디바로 해석한다. 니들이 무슨 가족이니? 왜냐면 디바를 찾아내기 위해서 또 이런 소리를 한다. 그러면 또 디바한다. 그러면 또 죽인다. 거기서 나오는 아이들로 또 가족을 세운다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가족을 세우는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다. 모두 다,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אב 아브, 신성(א)으로 시스템(ב)을 세우는 것이다. 집을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민수기의 시작이 위대한 시작이다. 민수기는 다 머리에 붙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머리라는 그리스도에 붙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것을 훈련이라고 하는데, 다 아버지의 집에 따라서 머리를 계수한다. 머리를 보여준다. 또 משׁפח 미쉬파하, 가족에 따라 계수한다. Family에 따라 계수한다. 왜 그런가? 이게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이다
민수기에 들어왔는데, 왜 아버지 집을 따지는가? 너 집이 있는가라는 소리이다. 언어의 시스템이 있는 집이 있는가? 아무리 토라의 언어를 배워도, 자기 집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강조하냐면, 토라를 배우면 이리로 와야한다. 그래서 민수기에 들어오지 않으면 토라는 배울 수가 없다. 민수기는 계속 우리를 가족별로 카운트한다. 네가 진짜 가족에 있느냐는 것이다. 가족에 속해있지 않으면 광야에서 카운트가 안 된다. 하나님이 무작위로 카운트한게 아니다
하나님은 너 누구 제자야? 누구 딸이야? 이렇게 카운트 한 것이다. 누구 제자냐는 것이다. 그 라인이다. 물론 다 모세의 제자이다. 또 그 중에서 지파별로 카운트가 된다. 다 아브라함의 제자이고 모세의 제자이다. 전부 아버지가 누구냐고 하면 아브라함이라고 하고 모세라고 한다. 이스라엘은 다 그렇다. 그렇지만 각 지파별로 다 있다.
또 오직 아브라함 주의가 있다. 나는 다비드 제자이기만 하지, 어는 누구의 제자가 아니라고 한다. 그렇게 될 수는 없다. 항상 직통으로 올려는 사람이 있다. 이런 경우는 아예 이 집의 개념이 없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아브라함에게서 직접 태어날 수가 없다. 아브라함에서 직접 태어날 수가 없다. 그런데 직접 태어나려고 이스라엘까지 가는 사람이 있다. 절대 자기 위에 누구를 두는 법을 모른다
집이라고 하는 것은 잘났건 못났건 내 위에 내 아버지가 있다. 맘에 안 든다. 아브라함이어야 맘에 찬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진짜 이 디바가 제거된 사람들은, 자기 위에 못난 아비라도 받아들인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모른다
미쉬파하가 형성되는 것, 가족이 형성되는 것이 토라를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 베이트에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시스템화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시스템화 되는데, 디바에서는 머리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머리가 생긴다.
דבר 다바르 : 하나님의 말씀이 시스템(ב)화 되는데, 머리(ר)가 생긴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려면 Family가 없으면 안 된다. 오늘날 교회에서 Family개념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교회 왜 오는가? 나 구원 얻으려고? 교회는 다바르를 받기 위해서이다. 다바르는 시스템에 머리가 있는 것이다.
이게 광야에서의 일이다. 그런데 또 בר 바르가 아들이라는 뜻이다. 바르에 종속된다. 다바르는 아들(בר)에게 종속(ד)되는 것이다. 내가 아들이 된다는 것이다. 아들이 되야만 말씀이 있다. 자기 집에서는 절대 아들이 못 된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같은 말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아들 되는게 지옥 안 가는 것인 줄 안다. 천만의 말씀이다. 아들이 된다는 것은 아버지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아들이다. 모세는 이미 알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널 위해서 보내라고 하니까 이미 알았다. 여호수아, 자기 아들만 딱 부른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아버지와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모세의 관점으로 본다. 아들이 되야만 디바가 고쳐진다. 아들이 되는 것 자체가 디바가 다바르가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나는 하나님 아들만 된다는 사람이 있다. 정말 큰 문제이다. 내가 예수님 제자라고 하면, 절대 사람의 제자가 안 된다는 사람이 있다. 얼마 전에 그런 소리를 들었다. 예슈아비전교회 다니면 이것을 하도 강조하니까, 걱정이 되었나보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지 사람의 제자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가? 이 땅에서 제자의 삶을 살아야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 아닌가? 이 땅에서 아버지를 모르는 자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있을까? 이 땅에서 리더가 뭔지를 모르는 자가 정말 예수님을 리더로 섬길 수 있을까?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성경에서 이야기하는게 뭔가? 네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말이 안 된다고 한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하면, 아들의 삶을 이 땅에서 사는 길 밖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게 없다.
그냥 사람의 아들이 되라는 소리가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이 땅에서 아들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의 제자가 되려면 이 땅에서 제자가 되야한다. 땅에서 제자도 못 되면서 어떻게 예수의 제자가 되는가? 보이는 사람의 제자도 못 되면서, 어떻게 보이지 않는 예수의 제자가 되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그런 이야기는 다 디바에서 나온다. 왜?
틀림없이 리더십에게 상처받은 적이 있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믿을만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 디바에서 나온다. 아버지가 믿을만하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이 믿을만하지 않았다. 이 땅에서는 믿을 놈 하나 없다. 교회 가도 맨날 의심만 생긴다. 디바를 제거하는 것은 우리에게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이번 주 도 사모님 강의를 잘 들으시기 바란다. 제가 표현하지 못하는 언어로 표현하시는데, 심지어 약간의 절망감도 들었다.
* 토라포션 민14:8-25
이번 토라포션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민14: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 이스라엘 백성들이 밤새 울고 부르짖는다. 이 날이 유명한 날이다. 일 년 중에 디바가 가장 큰 힘을 발하는 날이 있다.
어떤 비디오를 봤는데, 노 부부가 해변가를 거닐고 있었다. 모래사장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파도가 확 들이치는 것이다. 순식간에 쓸어가더라. 자기 남편이 그냥 쓸려가는 것이다. 시기를 잘 모르면 이렇게 된다
태풍이 오는 시기이다. 시기를 모르면, 물이 밀려 들어오는 시기를 모르면 순식간에 당하게 되어있다. 토라는 그것을 미리 가르쳐준다.
Ex ) 이 시기에는 뜨거울 것이다. 이 시기에는 살랑살랑 바람이 불 것이다. 그 때 씨를 뿌려라. 이 시기에는 싹을 트게 하고, 생명이 태어나게 하는 가장 큰 힘이 우주를 지배한다. 이런 것을 가르쳐준다
그런데 디바의 힘이 가장 강해지는 시기가 언제일까? 뜨거운 여름이다. 가장 열정적이고, 자기의 감정이 가장 심해지는 때를 아브월(Av) 9일이라고 한다. 티샤 베아브라고 한다. 아브 안에 있는 티샤(9)이다.
이게 밤새도록 부르짖던 날이다. 티샤 베아브 9일 날 밤새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고 통곡한다. 디바의 절정에 달한다. 애굽으로 돌아가자. 나 이제 안 해..! 그만두자..!
그래서 이 티샤 베아브는 태양력으로 치면 주로 8월에 온다. 여름에 온다. 애굽으로 돌아가자..! 머리를 바꿔치우자. 하나님이 세운 머리를 잘라버리자는 소리이다.
그래서 제일 많이 신발 바꿔신고, 머리 갈아치우고, 부부 싸움 제일 많이 시작하는 것이 이 날이다. 이 8월이 오기 전에 보통 2달 전, 6-7월은 이 디바를 위한 사전 작업들이 진행된다. 디바가 디비디비딥 하고 있다. 이 6-7월 때 디비디비딥이 조금씩 진행된다. 그러다 8월에 완전히 터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8월 9일날 금식한다. 왜냐면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때,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는 때가 아브월 9일이기 때문이다. 이 때가 제1성전과 제2성전이 파괴된 같은 날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연이라고 한다. 이 성전들은 왜 파괴되었는지 아는가? 디바가 파괴한다. 하나님의 성전을 디바가 파괴한다
어제 도 사모님이 아주 놀라운 말을 하셨다. 알콜 중독이던지, 이런 것들은 자기 자신과 옆 사람만 괴롭히는데, 하나님의 집, 공동체,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는 것이 디바라고 했다. 수다라고 한다. 어떻게 이렇게 우리에게 쏙 다가오는 말로 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서든지 수를 내려고 하는 수다는 여기 저기 가서 이야기한다.
- 있잖아요..! 집사님에게만 이야기하는 비밀이에요..!
이거는 토라에 안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꼭 토라를 인용한다. 이게 공동체를 파괴한다. 1,2성전을 파괴한 것이 다 디바이다.
홀로코스트를 위한 유대인들 학살령이 내려진 것이 또 아브월 9일이다. 이게 우연이 아니다. 이 민족을 다 죽이는 이유가 뭔가?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디바이다. 머리를 바꾸자,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래서 내 위에 머리가 없게 된다. 아브월 9일이 작동하면 하나님도 떠나고, 내 위에 절대 머리가 없다
옛날에 청년 하나가, 성령이 임하니까 통곡을 하면서 내 위에 머리가 없었다. 머리를 둘 줄 모른다고 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것이다.
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모세와 아론이 지금 이 위기 상황을 타개해야 하고, 니들은 왜 그러냐고 해야 하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해야 하는데, 모세와 아론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엎드려 버린다. 기도하는 위대한 예지만, 이 이유가, 이것은 모세와 아론이 해결할 수 없고,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해결할 수가 있다. 이 큰 사건을 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해결할 수 있는가?
이 사건은 머리 바꾸자는 소리이다. 더 이상 모세와 아론이 우리 아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소리는, 아들이 해결할 수 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모세의 아들이다. 그러니까 노..! 하면서 아들들이 나서는 것이다.
온 인류가 하나님 아버지를 등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못 알아보고 등졌다. 이 문제를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해결하셨다. 나는 아버지 뜻대로만 산다. 애굽에 돌아가면 안 된다. 거짓 아비에게 돌아가면 안 된다. 아들만이 해결한다
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 심히 아름다운 땅이다. 여섯째 날까지 하나님이 창조를 마치고 하신 말씀이다. 토브 메오드 메오드, 심히 아름다운 땅이다. 하나님이 완성하신 땅이다. 여기를 가야지 우리는 일곱째 날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אם 임(엄마), 이렇게 시작한다
- 이것은 다 가족의 언어이다.
엄마는 생명을 낳는 자이다. 이게 왜 가능하냐면, 이 시스템의 언어는 절대 안 고쳐진다. 이것은 고쳐지지가 않는다. 제자사역을 하다보면, 정말 많이 하는 소리가 안 변한다는 것이다. 어른들의 특징이, 이 디바를 고쳐서 쓸려고 한다. 그 동안 갈고닦은게 얼만데 쉽게 버리는가? 내가 평생 만든 시스템이고 말인데, 절대 안 버린다. 그래서 이것을 조금 문제 생긴 것을 고쳐쓰려고 한다. 그러나 주님은 고쳐 쓸 마음이 없다. 안 고쳐진다. 얘는 죽이는 것이다.
사람은 죽이는 것이다. 도 사모님은 사람은 말이라고 했다. 예수님음 말씀이시다. 우리도 말이다. 이 말의 정체를 모르면 그 사람은 가능성이 없다. 그래서 사람은 죽여야 한다. 말은 죽여야 한다.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십자가에서 죽여야 한다.
이 시스템 자체를 멈춰야 한다. 시스템을 사용하면 안 된다. 시스템 자체는 죽여야 한다. 어떤 기계가 잘못 돌아가면, 그 기계의 시스템을 멈추고, 파워를 빼야한다. 죽여야 한다
그냥 죽이고나면 아무것도 없으면 살 수가 없다. 말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거기에 대체되는 말이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다시 가동시킨다. 대체되는 말이 있으려면 가족이 있어야 한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새로운 시스템이 있는 가정에 가야 다시 태어난다. 그래야 다시 태어나고 다시 말을 배운다. 여기서가 아니면 다시 말을 배우질 않는다. 말을 다시 배울 수 없다. 자기 혼자 아무리 토라 읽어도 다시 디바로 배울 뿐이다. 아무리 히브리어를 자기 혼자 배워도, 디바를 더 강화시킬 뿐이다.
그래서 제일 제자삼기 어려운 사람이 신학 박사, 말씀 박사들이다. 그러나 제자삼으시기 바란다. 주위에 신학 박사 있으면, 가셔서 반드시 넌 내 제자가 되야한다고 하라. 안 그러면 넌 죽는다. 말씀해줘라. 그래서 뺨 맞고 오는 것이다. 그러면 기뻐하는 것이다. 핍박받을 때 즐거워하고 기뻐하라.
그럴려면 엄마가 필요하다. 생명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매일 다시 태어난다고 했다. 그럴려면 엄마가 필요하다. 임이라는 것은 엄마이다. 만약에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만약에라는 말은 너무 중요하다.
אם 임 : 만약에
만약이라는 것은 이 시스템에 없는 것을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내가 이것을 안 해도 살 수 있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 만약이라는 생각, 만약(If I were..), 내가 새라면? 새가 되기를 소망해 본 적 있는가? 라이트 형제는 내가 새라면이라고 소망했기에 비행기를 만들었다
우리가 가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것이 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가정한다. 공간이동, 이런 건 다 될 수 있다. 그래서 가정할 수 있다. 내가 영원히 산다면.. 뭐 하시겠는가? 만약이라고 하는 것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힘, 엄마이다. 여러분들에 대해서 가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정하고, 그것이 실제가 될 수가 있다.
내가 결혼한다면..? 이게 실제가 될 수가 있다. 이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 결혼이라는 것이 낳아진다. 생명이 낳아진다. 내가 정말 아름다운 여자가 될 수 있다면..? 이게 있어야지 소망이 되고, 그 소망에 따라 산다. 엄마가 없으면 안 된다. 엄마는 다 ~면이다. 그래서 If로 시작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러면 하나님이 다 하신다는 것이다.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생명은 어떻게 다시 태어나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하나님이 다 하신다는 것이다. 이게 다시 태어난 자들이다. 모든 하나님의 뜻은 다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우리에게 엄마가 되어서 생명을 준다. 모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 하페쯔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다. 이는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
약속의 땅에 간다면, 약속의 땅은 다 If이다. 지금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다 소망이다. ~하면..이다. 그게 우리 엄마이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이 다 하신다는 것이다.
사실 이 슐라흐 레카는 우리에게 뭘 가르쳐주는가? 정탐하면, 우리의 감각은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이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야.. 잘 봐야해.. 어떻게 네 리더를 따라가? 잘 봐야해..! 이게 멋진 말 같은가? 다 감각, 오감으로 정탐한다. 좀 거시기하네. 하면서 다 오감으로 정탐한다.
그런데 슐라흐 레카는 다 얘로는 절대 약속의 땅에 못 간다는 것이다. 이성으로 모든 생각들을 다 찾아내는가? 그것을 누구든지 해야한다. 누구든지 하고, 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얘로는 약속의 땅에 못 간다는 것이다. 얘를 뛰어넘고, 믿음으로 간다. 약속의 땅에 데리고 가는 것은 하나님이 데리고 간다는 것이다
오감을 뛰어넘고, 이것을 믿지 않고 제거하고, 죽이고, 뭘 믿고 가는가? 아무것도 보이는 것은 사실 없다. 나를 믿을만하게 하는 것은 없다. 그런데 그냥 영으로 믿는 것이다. 이게 주님을 믿는 것이다. 이 슐라흐 레카에서, 정말 내 오감이 드는 생각들을 제거하지 않고는 아무도 그 땅에 갈 수 없다.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다른 영 רוח אחרת 루아흐 아헤레트 : 따르는 영
- 내 종 갈렙은 마음이 그들과 달랐다 : 영이 그들과 달랐다.
우리의 영에서 아들의 영이 중요하다. 우리는 아들의 영을 받는다. 아들의 영은 다 루아흐 아헤레트라고 한다. 이 따르는 영을 받지 않으면 아무도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간다. 그냥 머리를 잘라버리고, 내가 머리하겠다는 것은 아무도 따라가지 않는다. 이러면 아무도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간다. 갈렙은 루아흐 아헤레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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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슐라흐 레카는 이미 Family base이다. 이미 베이트, 아버지 집 베이스이다. 거기서 가족으로 따라간다고 하지만, 그 속에 디바가 있는 자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아직 가족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디바가 뭔지를 모른다. 한참 전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굉장히 높은 차원의 이야기이다. 가족으로 간다고 하면서, 다비드가 내 아버지라고 말을 하는데, 그 Base에서 디바가 나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나는 디바 절대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는데, 이 사람들이 디바의 사람들이다. 나는 끝까지 갈 겁니다? 이 속에 디바가 숨어있다.
Family로 가셔야 한다. Family가 뭔지 알아야 한다. 제자를 삼는다는 것은 베이트, 집을 세우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예슈아비전교회를 나오는 것은, 저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되기 위해서 나오는 것이다. 저는 그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가정, 베이트를 세우는 것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디바를 제거할 수가 없다. 끊임없이 다시 말을 한다. 다시 말을 가르친다. 우리는 계속 어버버버 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다시 말을 가르친다. 그게 아니다. 그것은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다
가르치면 자기들끼리 모여서 디비디비딥하고, 또 가르치고, 40년 동안 나타날 때마다 계속 죽이는 것이다.
Family라는 것은 붙어만 있으면 어쨌든 집 나갔다가 와도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되어있다. 어느날 갑자기 깨닫게 되어있다. 아버지가 이야기했던 것이 이거구나..! 디비디비딥 하다가도 저녁 때 되면 집에 들어오라. 아침되면 밥 먹으러 또 오라.
* 기도
주님, 슐라흐 레카를 통하여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게 하소서. 우리가 죽음을 알게하여 주소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다 우리의 말이 죽는 것이다. 내 사연이 죽는 것이다. 내 상처에서 나온 말이 죽는 것이다. 디바가 죽는 것이다. 하나님, 이번 주간에 이 놀라운 에너지가 내게 강력하게 임하게 하소서. 주님의 영이 강력하게 임하게 하소서.
이 슐라흐 레카 주간에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강력한 주님의 영으로, 정말 다른 영으로, 강력하게 일어나게하여 주십시요. 내 속에 완전히 디바가 제거되고, 주님의 말씀이 살아나는 그런 놀라운 역사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소서. 가정이 뭔지, 아비가 뭔지 알게 하소서. 그것에 붙게 하소서.
슐라흐 레카 주간에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이 아비의 집, 우리의 가족, 이것이 뭔지를 알게 하시고, 이제 가족의 언어를 배울 수 있게 하소서. 이 하나님의 가족의 언어를 배우게 하기 위해 우리 속에 디바를 제거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 일을 행하십시요. 내가 기꺼이 죽음에 넘기겠습니다
고쳐쓰는 것이 아니라, 내 속의 디바를 기꺼이 주님 앞에 드러내고 십자가에 못박겠습니다. 여기에 동의합니다. 우리 속에 부활의 힘을 주셔서, 기꺼이 죽음에 넘기울 수 있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주님이시기에, 우리 속의 디바를, 나를 기꺼이 죽음에 넘깁니다.
수요일(넷째 날)
민(To), 살전(신약)
| 20160629.mp3 54.85MB PC저장 |
어떻게 전진할까?
תוּר 투르 : 완성(ת)을 위한 머리, 영(ר)
영적이 되지 않으면 전진할 수 없다. 상승할 수가 없다. 내가 보고 판단한 것이 아니면 어떻게 전진하는가? 눈, 이성 감각을 쫓아가는 것은 우리가 확실히 안다. 여기, 저리 가라고? 네비가 우회전 하라고 하면 아는데,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런 정보대로 가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 이건 해도 되고, 안 되고, 이건 선하고, 악하고, 생 난리를 피지 않았는가?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육신의 세상에서도 이런 삶의 방식이 있다. 초고수의 방식이다. 감각을 따르는 것에도 그냥 감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감을 잡는 것 등이 있다.
- 너 뭔가 좀 이상한데?
정보는 없다. 확실한 것은 없는데, 딱 느낌으로 아는 것이다. 도박사들이 그렇다. 브렉시트 때 엄청난 돈을 번 사람들이 있다. 파운드화가 계속 떨어지니까, 이런거 가지고 선매물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측하느냐에 따라서 수억원씩이 왔다갔다한다. 그래서 도박사들이 브렉시트 안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으니 파운드화를 소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이 감으로 파운드화 빨리 팔고 금은 산 사람들이 있었다. 겉으로는 브렉시트 안 할 것이라는 운동에 돈도 댔는데, 속으로는 왠지 이상하다. 그래서 파운드화 다 팔고 금으로 샀다. 하루 아침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었다.
이건 뭘까? 분명 모든 정보는 브렉시트 안 한다였다. 이 건을 해야할까, 말아야할까는 무엇으로 정하는가? 이 바닥에도 그런게 있다. 그게 초고수이다.
우리가 정탐을 할 때 가장 유의해야 할 것들을 믿음이라고 한다. 정탐은 믿음으로 한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 믿는 그런 것등이 아니다. 이거 하면 다 잘 될거야. 이런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우리는 거의 열 스파이에 속한 것을 믿음으로 생각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까, 이거 하면 성공하고, 이거 하면 축복한다는 것등을 믿음이라고 한다
믿는 자라는 것은 사실 Heart로 사는 자들이다. Heart는 곧 영이다. 이게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Heart : (하나님의) 본성, 본질
- 어떤 정보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본성과 본질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양심과 비슷하다. 왜 그래야 하는가? Heart이다. 하나님의 본성과 본질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게 영을 따른다는 것이다. 영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뭔가? 하나님의 본성과 본질에 따른 생각이다. 이것을 Heart라고 한다. 만약 이 Heart가 잘못되어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Heart가 없이 아무리 생각해도 소용없다.
그러면 하나님의 Heart가 도대체 뭔가?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Heart에 맞는 것들을 찾을 수 있다
우리 리더십과 Follower의 관계도 리더십의 Heart를 쫓는 사람이 있다. 맨날 손으로 머리를 하트를 그리는 이유는, 나는 너를 선악과를 안 보고 Heart로 쫓아가겠다는 것이다. 팔짱끼는 것은 벌써 정탐하는 것이다. 마음이 안 편해진다. 2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정탐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희 마음을 넓히라고 한다. Heart의 문제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Heart를 모르면 늘 정탐을 선악과로 한다. 머리가 돌아가서 죽을 것 같다. 머리가 안 돌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 머리는 계속 돌아간다.
침묵 기도를 해 보면 안다. 침묵 기도는 생각을 잠깐 멈추고 주님에게만 집중하라고 하는데, 멈춰지지가 않다. 누가 한 이야기 생각나고, 해야 할 것 생각나고, 계속 머리가 지겹게 돌아간다. 그만 돌아가라고 해도 지가 돌아간다. 그만 돌아가라는 말을 가지고 또 돌아간다. 전화해야 할 것 또 생각한다. 또 그날따라 전화가 온다. 왜 이 전화를 받아, 말아, 이것으로 또 돌아간다. 온통 머리가 멈춰지질 않는다. 왜 그러냐면, Heart가 없기 떄문이다.
우리는 반드시 생명나무를 봐야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나무라고 하는데, 생명나무는 에하드라는 것이다. 갈렙은 온 마음, כלב 콜레브이다. 이 사람의 정체는 뭔가? 사람의 본질, 내 Heart라고 하는 것은 콜레브의 파트이다.
כלב 콜레브 : All heart
- 이 세상에 Heart, 마음은 딱 한 개밖에 없다.
네가 내 마음을 알아? 내 마음 모르지? 이게 모든 부부싸움의 시작이다. 그런데 이 토라는 특이하다. 사람도 한 사람이고, Heart도 딱 하나이다. 이 딱 한 개인 Heart를 콜레브라고 한다.
이것은 여러분들에게 혁명이다. 지금까지는 내 Heart만 Heart라고 했다. 내 마음이 중요했다. 상대방의 마음이 아픈데 왜 내 마음이 아픈가? 마음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콜레브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 하나였는데, 이 전체의 마음이 딱 한 개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이 전체를 콜레브라고 한다. 그래서 마음을 넓혀야 한다. 내가 나를 위해서 살려고 하는 한 마음은 절대로 넓어지지 않는다. 내가 살아남으려고 하는 한 마음은 절대 넓어지지 않고, 정탐은 내가 살기 위한 정탐이 된다. 이것을 선악과라고 한다. 내가 살기 위한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정탐꾼들이 정탐하고 와서 일제히 한 소리가, 그 땅 좋다는 것이다. 토라 좋다는 것이다. 동의 안 하는게 아니다. 그런데 내가 죽겠다는 것이다. 나는 메뚜기 같고, 나 죽겠다. 그러니까 나 살 수 있는 곳은 애굽밖에 없다. 결국 열 스파이 정탐의 가장 핵심은 내가 사냐, 죽느냐이다. 내가 구원되느냐 마냐이다. 이것으로는 어떤 영적 성장도 이뤄낼 수 없다. 내가 사냐 죽느냐, 내가 어떻게 되느냐, 이 관점이다
우리가 비전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도저히 살 수가 없다. 콜레브가 아니고는, 내가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살아야 하는구나, 이웃이 나구나, 얘가 가진 마음이 나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는 아무도 정탐을 할 수가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내가 살려고 하는 정탐으로 인해 죽음이 찾아오고, 하나님에 의해서 죽는다
* 토라포션 민
민14: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반드시 선악의 지식의 나무의 정탐을 하면, 자기의 감각과 이성으로 얻어진 것으로 정탐하면, 원망한다. 그런데 나를 향하여 원망한다고 한다
עלי 알라이 : 나에게, 나를 향하여
모든 원망의 기본적인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라는 것이다.
from על 알 : 위
왜 하나님이 위라는 말을 쓰냐면, 하나님은 עליון 엘욘, 지존자, The Highest one이라고 한다. 이 말을 왜 쓰고 계시는가? 모든 Heart로 사는 삶은 다 위에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 동그라미 두 개의 구조이다.
( 위 ) <-- ( 아래 )
이 구조가 없으면, 절대로 Heart로 살지 못한다. 뱀은 다 불신과 수치심에서 온다. 불신과 수치심은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준다. 나에게 해가 올 지도 모른다. 이것을 불신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나를 인정 안 할 수도 있다. 나는 왕따당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불신이라고 한다.
그러면 내가 죽을지도 모르고, 내가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은 언제 온다고 했는가? 이게 정착이 되는 때가 언제인가?
- 불신이 생겨나는 때가 구강기이다. 구강기에 믿음이 형성이 된다.
이 때 순종을 배우게 되고, 소망을 가지게 된다. 구강기는 만 0세부터 2살까지이다. 그래서 젖은 2살까지 먹이게 되어있다. 젖을 못 먹으면 구강기에 큰 문제가 있다.
저는 엄마가 직장생활을 해서 우리 집에 양이 있어서, 유모가 양 젖을 짜서 먹였다. 분유를 빨지도 못했다. 물론 굉장히 토라적이긴 하다. 이 구강기에 믿음이 형성된다. 이 때 믿음이 형성되지 않으면, 평생을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고 산다. 내가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인정받아야 한다. 그래서 불신이 그 Base가 된다.
그러면 불신이 Base가 되면, 사람이 감각으로 살아간다. 감각의 촛대를 세우고, 내가 감각이 살아있어야지, 계속 정탐을 해야, 나를 죽이려는지, 아니려는지를 판단을 내린다. 계속 감각으로 산다.
그래서 감각적인데서 벗어나질 못한다. 믿음은 감각을 통해서 온다. 감각이 와야지 믿어진다. 구강기의 특징이, 사랑도 여기서는 감각적인게 있어야지 사랑이라고 믿는다. 감각적인게 없으면 사랑이라고 믿지를 않는다.
이런 믿음의 Base가 있다는 것이다.
이 스파이 사건은 사실 이런 믿음의 Base 가운데서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 것인가? 스파이 사건은 구강기 같은가, 항문기 같은가? 구강기를 넘어오면 항문기에서는 자율성을 이야기한다.
- 자율성 : 자유 + 조절능력
여기서 창조성이 나온다. 특이한 것은, 왜 항문기에 이런 것들이 생겨나는가? 이 자율성에 의해서 사실 인간의 삶, 완벽주의자, 무법자들이 다 여기서 나온다. 그런데, 이 항문기를 배울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것을 놀이라고 했다. 놀이를 하지 않으면 항문기에 자율성을 가질 수가 없다.
누가 놀아줘야 하는가? 항문기에는 법을 배운다. 토라는 다 법이다. 그런데, 이 법을 요새 못 배운다. 토라를 다 사람들이 버린다. 그게 항문기의 문제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정말 놀이구나..!
법을 배움으로 자율성을 얻고, Harmony, 자율성이 있어야 Harmony이다. 사랑과 진리가 하모니를 이룬다. 어딜 가던지 조화로운 사람이 되고, 자율적으로 창조성을 발휘한다. 그런데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렇다
법을 처음에 배울 때 놀이로 배워야 한다. 특별히 배출하는 영역을 배울 때 놀이로 배워야 한다.
도 사모님이 자기 아들이 쉬 싸는데, 아빠랑 놀이로 했다고 했다. 조준하고, 했다고 했는데, 그렇게 배운 사람이 있는가? 그러니까 항문기에 문제가 왔다. 조절이 되지 않는다. 중독에 빠진다. 그리고 자유하기는 또 엄청 자유하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항문기라는 것은 인간에게서 엄청나게 중요한 것인데, 거의 모두가 이것을 안 하고 지났다. 도 사모님 아들만 했을 것이다. 우리는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이게 기본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주님이 가르쳐주시는 이유는, 이것을 안 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들을 우리는 삶 속에서 경험했다. 항문기의 문제가 와서, 문제가 있어 이렇게 살았다. 이것을 배운 이유가, 자율성에 문제가 생기면 다시 놀이를 해서 이것을 얻으라는 것이다. 다시 놀이를 해서 얻으면 된다. 다시 항문기를 재현하면 된다. 재현해서 그것을 얻으면 된다
다시 항문기를 재현하려면, 법을 배우려면 놀이로 해야한다. 그러면 어떻게 놀이로 하는가? 항문기는 배출이다.
צא 쩨 : 배출, 내보내는 것
사람은 토라를 배우면 내보냄이 중요하다. 빛을 비추는 것이다. 베하알로테카는 빛을 받은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내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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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라는 존재 자체가 놀이를 하게 한다. 그것을 놀이로 만들어준다.
메짜헤크 : 놀이
- 이쯔하크이다.
- 의의 삶을 가져올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것이 놀이이다.
정탐꾼들은 사실 그 위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아빠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빠시다. 알라이, 위에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원망이라는 것은 룬이라고 한다
לוּן 룬 : 원망
투르는 정탐꾼이고, 디바는 비난, 원망이고, 또한 이게 룬이 된다.
말론 : 호텔
- 룬 : 밤을 지새다
원망을 하면 밤을 지새게 된다. 밤새 자다 깨게 된다. 이것의 원래의 뜻은 훈련이다. לוּן 룬의 뜻은 훈련을 실제화 하고 신실하게 하는 것이다. 이게 또 호텔이라는 말인데, 잘 데가 없으면 우리는 훈련을 받을 수 없다. 밤의 때를 잘 지나가게 하는 것을 룬이라고 한다. 그런데 훈련을 받지 못하고, 밤의 때를 잘 지나가지 못하고, 호텔에서 잘 자지 못하고, 원망하고 밤을 지새는 이유가 뭔가? 위가 없다. 그러면 항문기를 제대로 지낼 수가 없다. 놀이를 하지 못한다. 위에 무엇을 두지 못하는 이유가, 구강기에서 불신이 왔기 떄문이다.
저 엄마가, 아빠가 나한테 규칙적으로 주질 않는다. 믿음이 없다. 불신이 왔기 때문에 위가 없다. 그러면 놀이를 할 수가 없다.
놀이를 할 수 없으면, 그 원래 본질로 살지를 못한다. Heart로 살지를 못한다. 이성으로, 감각으로 산다. Heart로 살면 인간은 정말 편하다. 다 그냥 살 수 있다. 결국은 아빠랑 놀이를 한다는 것은 Heart로 산다는 것이다. 내가 뭘 했네, 잘못했네가 아니라 Heart로 사는 것이다. 아빠 나 잘했어???
- 아이가 똥 놔눴고, 아빠, 엄마 하면서 왜 똥을 보여주는가?
이게 가능한게 아빠이다. 이들이 위에 내가 없다. 아빠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 가족 만들기이다. Heart로 사는 법을 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다.
정탐은 반드시 위에 누가 있으면 된다. 정탐은 놀이가 되야한다. 그래서 여호수아의 갈렙을 보고를 보면,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한다. 빵이라고 한다. 어린 애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빵이다. 한 놀이 수준이다. 또한 저들의 보호자가 이미 다 떠났다고 한다.
민14: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두려워하지 말라. 뭔가? 거인인데 어떻게 두려워하지 마는가? 애들은 아빠 밑에 있으면 다 놀이 수준이다. 무슨 일이 생겨도 다 놀이이다. 이게 항문기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와우..! 무슨 애들 주사위 놀이 하는 것이랑 비슷하다. 저기 가자..! 저거 살래..!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은 우리의 빵이라는 것이다. 우리 빵, 내 빵 먹자 하는 놀이이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다. 네필림, 아낙자손이다. 쪨렘이다. 오감이 인식하는 것은 다 허상이다
보호자 צלם 쩰렘 : 그림자, 허상, 망상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넌 도대체 뭘 보는 것이냐?
항문기를 아빠랑 같이 보내지 않으면 허상과 망상에 휩싸인다. 온갖 수치와, 어떻게 해서든지 인정받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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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중요한 영적 원리들을 배우고 있다. 도 사모님 강의랑 맞물리면서 이 모든 원리가, 투르, 열 정탐꾼 사건들은 온 인류가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원인을 하나님이 이야기 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반드시 에덴 동산의 가운데를 보여주셔야만 성장할 수 있따. 왜냐면 인간은 아무리 좋은 것도 투르를 안 하면 전진하지 않는다. 완성이 뭔지를 봐야만, 머리로 해야만 한다. 우리는 어디 좀 가자고 하면, 어딜 가자는 거냐고 한다. 목적지를 알려줘야만 인간은 가게 되어있다.
이 투르를 해야만 하는데, 문제는 투르를 보여주면, 선악과를 보니까, 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이 슐라흐 레카는 엄청나게 중요한 토라포션이다. 슐라흐 레카같이 중요한게 없다. 왜냐면 40년 동안 내가 다 광야에서 죽은 것이다. 이런 결과를 낳는다. 이것은 절대 안 된다. 그래서 반드시 배워야 한다
슐라흐 레카에서 마음으로 사는 법, 루아흐 아헤레트, 쫓는 영, 마음을 넓혀서 마음으로 사는 것을 배워야 한다. 콜레브를 가지고 마음을 넓혀야 한다. 이것을 해서, 이것을 배울 수 있는, Heart로 사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Heart로 사는 것이 자율성이다. Heart, 본성으로 살아야지 자유와 조절을 한다. Heart만이 사랑과 진리를 같이 볼 수가 있다. 머리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본성만이 사랑과 진리를 같이 보고 하모니, 티프에레트라는 것을 안다.
Heart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 유일한 것은 그 위에 누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여호수아라고 한다. 그래서 모세가 여호수아만을 부를 수 밖에 없다. 왜냐면 나머지는 다 자기가 머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열두 지파의 머리를 이야기한다. 열두 지파의 머리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가 부르는데, 아들로 부를 수 있는 것이 여호수아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호수아만 불러서 호세아를 여호수아로 바꿔서 정탐하게 한 것이다. 갈렙은 여호수아의 온 마음일 뿐이다. 여호수아, 갈렙은 한 사람이다
알라이, 저들은 위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모든 제자 사역과 토라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제자삼으라는 것이다. 제자는 뭔가? 그 아래에서는 놀이가 되야한다.
절대로 여러분들이 뭘 잘못했다고 해서, 잘라버리거나 미워하지 않는 것이 아버지이다. 만약에 지금까지 그랬다면, 다시 하면 된다. 그런 아버지 찾으면 된다. 꼭 예슈아비전교회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제발 어디 가서도 아버지를 찾으라. 그리고 그 아래에서 이제 생명나무, Heart로 사는 법, 놀이를 배우기 바란다.
* 기도
주님, 우리가 마음으로 사는 것을 가르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구강기와 항문기의 원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빠가 있어야 하는군요. 놀이를 해야하는군요. 내보내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이 은밀한 것들을 배우기 위해서는, 들내지 않고 배우기 위해서는 놀이를 할 수 있어야 하는군요.
주님 나에게 아빠가 있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빠로 만나게 하시고, 가족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내가 아빠가 되게 하시고, 또 그런 자녀들을 낳게 하시고, 그럼으로 내가 정말 자율적인 인간이 되게 하소서.
정말 아빠로 살게 하시고, 또 아빠가 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내가 아빠이신 주님을 만납니다. 이제 주님 아래에서 놀 것입니다. 웃을 것입니다. 이쯔하크 할 것입니다. 아빠 아버지, 아바, 주님을 아버지로 만납니다. 내 위에 주님이 계십니다. 알라이, 내 위에 주님이 계십니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아빠 아래에서의 놀이가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수치가 아니라, 이 모든 것이 나의 어려움이 아니라, 놀이가 될 수가 있습니다. 드디어 내가 법을 놀이로 배웁니다. 내가 이제 정탐을 놀이로 합니다.
주님, 이 세상에서 내가 아빠없이 고아로, 얼마나 정탐하기 위해서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정탐하기 위해서, 온 심령을 쓰고, 모든 스트레스를 받고, 정탐을 하고, 이게 선이고, 이게 악이고, 늘 그것을 정리했습니다. 주님, 이제 내 속에 열 스파이를 드러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내가 아빠를 봅니다. 온 마음으로 아빠를 봅니다. 아빠 아버지..! 나의 아버지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이제 아빠 아래에서 토라를 배울 것입니다. 내가 아빠와 함께 법을 배울 것입니다. 내가 살기위한 것이 아니라, 잘못하면 수치스러워 지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함께 놀이하는 것이, 주는 사랑을 살기 위해서 내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함께 놀이하는 것이고, 정말 즐거운 일이고, 놀이이고, 주는 사랑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모든 밥이고, 그것들은 그림자, 허상, 망상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빠.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동안, 성도들의 입 속에서 아빠의 소리를 많이 들으십시요. 오늘 하루 동안에 아빠 아래에서, 알라이이신 주님 아래에서 즐겁게 뛰어놀고 웃는 당신 자녀들의 웃음소리를 오늘 하루종일 많이 들으십시요. 감사합니다. 토라를 배우는 그 놀이에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빠의 기쁜 웃음이 오늘 우리 가족 속에 가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목요일(다섯째 날)
민15:8-16(To), 살전4:1-18(신약)
| 20160630.mp3 83.38MB PC저장 |
* 신약 살전4
3 여호와께 화제나 번제나 서원을 갚는 제사나 낙헌제나 정한 절기제에 소나 양을 여호와께 향기롭게 드릴 때에
화제를 드린다고 한다. 뒤의 것은 다 화제에 속해있는 것이다.
עשיתם אשה ליהוה 아씨템 이샤 라야훼 : 화제를 행한다
אשה 이샤 : 화제
עשׂה 아싸 : 행한다
- 화제를 행한다
너희들의 의지와 의도가 화제라는 것이다. 뭘 목적으로 하냐면, 화제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다 불태운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의 사랑, 신부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너희들이 신부의 사랑을 할 것이다
- 신부의 사랑 : 신랑의 형상을 목적으로 한다
예슈아가 영의 언어라고 했다. 이 형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영의 언어이다. 이게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생명나무이다. 신랑의 형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 생각이, 우리는 마음으로 살지 않고, 타락한 인간, 죄인은 생각으로 산다. 콜레브로 살지 않고, 콜레브가 타락한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내 마음이 있다. 내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 내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 습관을 가지고 산다. 이것을 인간의 타락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 타락을 고치려면 어떻게 하겠는가? 내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이 있다. 행동이 있고, 습관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보통 습관을 고치려고 한다. 그러나 안 고쳐진다. 내 마음이기 때문이다. 행동도 안 고쳐진다. 생각을 고치려고 해도 안 된다. 마음이 나만 생각한다. 그러면 당연히 그런 타락한 생각이 나오게 되어있다. 마음이 내 마음밖에 없다.
우리가 제일 어려웠던 것이, 자꾸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그림을 그려놓고, 저 그림이 뭘 이야기하는지를 읽어보라고 하는데,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데, 그림을 보고 전부 다 자기 마음을 읽고 있다. 그림을 읽으랬더니, 자기 마음 밖에는 모른다.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다.
그러니 아무리 생각을 바꿔도 내 마음에서 나온다. 아무리 행동을 바꾸려고 해도 안 된다. 그러면 이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이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마음을 바꿔주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왜냐면 마음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꾸면, 나 마음 없는 인간이 되는데, 무슨 소리냐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먼저 생각에 역사하시는 수밖에 없다. 마음은 안 바뀌어도, 생각으로는 바꿀 수가 있다. 이제 다시는 너를 위해 살지 말아라. 알겠습니다..! 라고 생각으로는 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아멘 하고 나면, 받는 의지가 진영을 형성하고, 광야로 살 수가 있다. 그러나 진짜 아멘이 아니다. 마음은 아직 내 마음이다. 이웃을 내가 고른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가, 내 마음에 안 드는 이웃을 갖다논다. 앞으로 네가 같이 살게 될 사람이, 네 마음에 든다, 안 든다? 처음에는 내 마음에 드는 줄 알고 결혼했는데, 살다보니까 아니다
처음에 이 여자는 내 짝이라고 결혼했는데, 살다 보니까 완전히 내 짝이 아니라 궤짝이다. 사도세자를 만들 수도 없고, 궤짝에 맨날 집어넣는다.
이 생각이 아멘을 하더라도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어쨌든 아멘한 생각이 안 되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면 거꾸로 올라간다. 영의 토라는 행동과 습관을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건드려봤자 의자이고 펜이다. 건드려봤자 안 된다. 괜히 바뀐 생각이 행동을 바꾸려고 하면, 안 된다. 바뀐 생각이 습관, 이웃 사랑의 행동을 하겠다? 천만의 말씀이다. 안 된다.
우리 교회는 이 생각을 계속 바꿔준다. 이게 거꾸로 올라간다. 이 생각이 이제 마음을 바꿔야 한다. 그러면,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이 생긴다. 이게 너무나 중요하다. 생각에 의해서 마음, 의지, 의도가 문제다.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알려준다. 왜 행동과 습관으로 가지 않는가?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면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 콜레브에서 나오는 생각이 있다. 이것을 하나님이 찾아낼 때까지는 안 된다. 콜레브에서 나오는 생각이 바로 여호수아와 갈렙이 한 이야기이다
마음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허상이다.
거기서 나오는 생각이 있을 때 거기서 나오는 행동을 할 수 있고, 거기서 나오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이게 인간을 구속하는 과정이다
화제라고 하는 것은 신부, 불의 사랑을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신랑의 형상, 신의 형상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거꾸로 가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생각을 행동, 습관으로 만들어서 또 나를 완성하려고 한다. 완성이라는 것은 행동과 습관이 나와야 완성이다. 이것은 굉장히 높은 단계이다. 행동과 습관이 결국 완성을 낳는다.
그래서 생각은 또 이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신부라는 것은 시선을 거꾸로 돌린다. 신랑이 영의 언어의 Side에 딱 있다. 우리는 영의 언어를 모르기에 신랑이라고 해 두는 것이다. 신랑을 딱 향한다. 이 생각이 신랑을 향하려면, 마음이 내 마음이면 안 된다.
결혼은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Practice하는 것이다. 신랑을 향하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어야 한다. 그런데 살다보면, 오히려 자꾸 행동과 습관 쪽으로 간다. 자꾸 내 마음, 네 마음을 이야기하게 된다. 신부라는 것은 자기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신랑을 향한다. 이것을 이샤, 화제라고 한다.
신의 형상을 향해라. 신랑의 형상을 향해라. 나의 형상이 아니라, 신랑의 형상이 되고자 하는 것이 신부의 사랑, 불의 사랑이다. 예슈아의 형상이 되고자 한다. 그떄만이 마음이 콜레브로 바뀐다. 불타버리는 것이다.
이 화제에는 뭐가 있는가?
- 번제, 서원을 갚는 제사, 낙헌제, 정한 절기제에 소나 양을 드린다
소나 양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 감정의 영역을 소라고 하고, 생각의 영역을 양이라고 한다. 여호와, 예슈아께 이 소나 양을 드리는 것이다. (=감정과 생각을 영의 언어에 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영의 언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4 그러한 헌물을 드리는 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일에 기름 사분의 일 힌을 섞어 여호와께 소제로 드릴 것이며
- 그런 헌물을 드리는 자는 고운 가루 1/10에 기름 1/4을 섞어서 여호와께 소제로 드릴 것이다. 소제를 드리라고 한다.
מנחה 민하 : 소제, 생명(ח)이 어디로부터(מנ) 왔는가?
מנ 민 : from
cf ) 한국 사람들이 어느날 이름을 민하라고 많이 짓더라.
아담과 하와가 선악의 지식나무에서 열매를 먹었는데, 질문이 어디로부터 먹었느냐고 하신다. 만나도 어디로부터 왔냐는 것이다. 소제를 드리라는 것은, 너는 도대체 어디로부터 오는 생명을 원하느냐는 것이다
행동과 습관까지 포함한 이 전체를 헤트, 삶이라고 한다. 너는 도대체 어디로부터 오는 생명을 원하는가? 이게 민하이다. 너로부터냐? 신랑으로부터이냐?
화제의 핵심은 From이다. 네 인생은 신랑으로부터 나오느냐, 너로부터 나오느냐?
cf ) 나도 그 인간으로부터 나오고 싶은데, 그 인간이 나보다 시원찮다.
아들이란 From이 없으면 설정이 안 된다. 오늘날 사람들이 아버지가 없는 것은 소제를 못 드린다. 아들이란 아버지같이 되고 싶은 사람을 말한다. 소제는 고운 가루로 드린다
סלת 쏠레트 : 고운 가루, 사닥다리(ס)에 대한 평가의 훈련이다. 그래서 완성한다.
- 갈아져야 한다, 평가, 측정에 따라 훈련하고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5 번제나 다른 제사로 드리는 제물이 어린 양이면 전제로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준비할 것이요
전제 : 술을 부어드린다
어린 양이면 전제로 포도주 1/4힌을 준비하라고 한다
כבס 케베쓰 : 어린 양
- 어린 양은 다 정복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린 양은 생각의 영역을 이야기하는데, 생각의 영역에는 야인, 포도주, 술을 부어드린다고 한다
יין 야인 : 포도주
토라에서 술을 너무 중요시 여긴다. 신약 성도들은 술을 안 먹기에 당황스런 장면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술 한잔 하는 것이 아니라, 야인은 요드 두 개가 들어가 있다. 이 두 개 들어있는 요드, 이 알파벳이 뭐가 있는가? 알레프이다. 야인이라는 것은 긴 장대가 하나 있고, 요드가 2개 들어가 있다. 이것과 같은 히브리어가 알레프이다.
알레프를 분해해 놓은 것이 야인이다. 술, 포도주라는 것은 알레프를 분해해 놓은 것이다. 왜 분해되었는가?
- 술 취하면 뭐가 위아래인지 모른다. 그런데 술취했을 때의 특징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봇대도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소변으로 전봇대를 물레 쓸려가게도 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좋은 차도 다 내 소유이다. 괜찮다고 백미러 한 번 부수고 간다.
하늘에 있는 손인지, 하나님 손인지, 내 손인지? 이제 지금 어디에 가 있어야 하는지? 이게 야인이다. 사람들이 술을 먹으면 이렇게 된다. 그런데 왜 술을 드리냐고 하는가? 인간은 이것을 제대로 위치짓지를 못한다. 이 야인, 전제를 드린다는 것은 네셰크이다.
סך 셰크 : 하나님의 평가(ס)를 적용(ך)하는 것
יין 야인, 하나님의 손이 있다. 내 손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붙일 수 있는 장대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손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디에 위치지어야 할 지도 모르고, 알레프, 신성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있다고 하는 것이 전제이다. 있다고 해야지, 그것을 조정을 해서 하나님이 알레프라는 글자, 신성을 만들어주신다. 그래서 전제를 드려야 한다
다 화제 드리는 이야기이다. 화제, 소제와 전제를 드리라는 이야기만 하신다. 약속의 땅에 반드시 들어갈 것이라고 주님이 이야기하신다. 우리는 반드시 콜레브로 살아야 하고, 예슈아라는 영의 언어를 얻어야 한다.
* 기도
내 마음이 악합니다. 내 마음으로 사는게 문제이군요. 예슈아의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신랑의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콜레브로 살고 싶습니다. 오늘 한 번 주님 앞에 말씀드려보자. 주님이 아마 우시지 않을까 생각되어진다. 내가 여호수아와 갈렙을 얻었구나.
내 마음이 어찌 이렇게 악한지요. 나밖에 모르고, 내 한 마음으로 살려고 하고, 주님, 이제 신랑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콜레브로 살기 원합니다.
주님, 오늘 내 마음을 악하다고 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축복하셔서, 갈렙이라고 불러주시고, 네가 드디어 콜레브가 되었구나. 네가 드디어 여호수아를 바라보는구나라고 말씀하시고, 이제 그 여호수아를 바라보는 자들에게 신부라고 불러주시고, 그들의 화제를 흠향하시옵소서.
그들의 화제를 통하여 이제 영의 언어로 살게 하시고, 마음의 언어로 살게 하시고, 거기서 나오는 진리로 살게하여 주시옵소서.
금요일(여섯째 날)
민15:17-26(To), 히3:7-4:1(Brit), 살전5:1-11(신약)
| 20160701.mp3 65.67MB PC저장 |
* Brit 히3:7-4:1
히3: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광야는 하나님과의 Communication,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인생은 광야이다. 인생은 우리가 몸이 되는 것이면, 또한 몸이 되어서 머리에 붙는 것이다. 머리에는 오직 믿음으로 붙는다. 머리에 붙는다는 것은 머리를 세운다는 것이다. 리더십을 머리라고 한다. 우리를 리드할 자를 머리라고 한다. 이 머리가 굉장히 중요하다.
이 머리에서 모든 영(ר)이 다 나온다. 영에 속한 모든 것들은 다 머리에서 나온다. 그래서 이 머리를 목자라고도 한다. 양 떼들은 반드시 목자를 봐야한다. 그래서 머리를 본다고 해서, 로이라고 한다.
רע 로이 : 목자, 머리를 본다(ע)
그리고 여러분들을 리드할 수 있는 것은 내 머리가 아니라, 이웃이 나를 리드할 수 있고, 목자를 보게 한다. 그래서 주님이 오셔서 네 이웃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한다. 이게 정말 놀라운 소리이다
רע 레아 : 이웃
우리는 머리에 붙으려면 이웃이 내 머리이고, 목자라는 것이 알아야 한다. 만약 이것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악에 빠진다.
רע 라아 : 악, 머리에 대한 관점(ע)이 또한 악을 알게 한다
우리가 반드시 인식해야 할 것이 악을 알아야 하는데, 머리에 대한 관점이 악을 알게 한다. 우리는 악에 빠지면 안 된다. 이 모든 것들을 행하기 위해 우리에게 존재하는 Stage를 광야의 Stage라고 한다. 광야에서 우리는 계속 머리와 Communication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경고한다.
16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오늘날 우리 기독교는 애굽에서 나오면, 이게 다다. 유월절이 다이다. 유월절만을 유난히 강조한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이 되어서 다 완성하셨다. 유월절 어린 양이신 예수를 믿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여기서 나온 자들이 주님을 격노하게하고, 광야에서 문제가 된다고 한다. 광야의 Stage는 성령을 따라 주님께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광야의 Stage 에서 우리는 믿음과 순종을 배운다. 이로 말미암아 소망을 가지게 된다. 무조건 믿는 것이다.
도 사모님 집회에서 배웠던 것이, 믿음, 순종, 소망은 구강기에 형성된다고 하였다. 우리가 애굽에서 막 태어났으면, 광야에서의 삶에서 최초로 오는 것은 구강기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이번에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까지 공부했다. 우리는 이런 시기들을 거쳤다. 육적인 것은 여러분들이 지나서 어쩔 수 없다. 육적인 세상에서는 선택이 없다. 이것을 잘 알아야 한다
주님이 왜 이것을 영적인 생명이라고 하냐면, 육적인 생명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다.
Ex ) 구강기에 엄마가 나한테 젖을 안 줬다. 이게 내가 선택한 것인가? 구강기에 믿음 모판이 다 결정되는데, 나는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것 때문에 이런 삶을 산다. 나도 도 사모님 같은 엄마를 두었으면 항문기 잘 보냈을 것 아닌가? 우리 아빠는 왜 나한테 놀이를 안 해줬는가? 육적인 것은 그렇게 정해졌다. 내가 이것을 선택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해서, 이것을 가르친 다음에, 이것을 선택하게 한다. 구강기를 보낼 것인지, 말 것인지이다. 이게 자유의지, 김멜의 위대함이다
사람은 다 영의 세계를 인정하고, 영적 생명을 인정해야만, 완전히 진짜 삶을 살 수 있다. 영의 생명을 인정하는 자들은, 이제 그 생명에 대해서 구강기를 선택한다. 나는 하나님을 믿겠다..! 그럴 때 하나님은 진짜 우리에게 엘샤다이, 젖을 주는 자로 나타나신다. 그래서 강력한 믿음이다. 내가 나로 말미암아 살지 않고, 오로지 주님을 위해 산다. 거기서 믿음, 순종이 생겨나고, 소망의 닻을 올린다. 이것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믿음의 은사가 부어지는 줄 안다. 이것은 이미 부어져있다. 하나님은 이미 엘샤다이 하나님으로 나타나있다. 문제는 내가 이것을 선택하느냐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살리시는 분이다. 그만을 사랑하겠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구강기를 지난다.
이제 광야의 시절에,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배운다. 사실 이 광야의 시절에, 항문기, 남근기도 배우지만, 핵심은 믿음이다. 아브라함에 대해 배우게된다. 아브라함이 대비하는 것이 헤세드인데,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나오는 믿음을 이야기한다.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하나님이 그것을 의로 여기신다
* 토라포션 민15:17-26
민15
18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인도하는 땅에 들어가거든
19 그 땅의 양식을 먹을 때에 여호와께 거제를 드리되
어제는 그 땅에 들어갔을 때, 아예 들어갈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그런데 오늘은 그 땅에 들어가면, 그 땅의 양식을 먹을 때에라고 하신다. 어제는 들어갈 것이라고 하면, 오늘은 그 땅의 양식을 먹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배경에 그 땅에 갔다가 안가겠다고 다 죽게 되는 상황에서, 그 땅에 들어가겠다고 하고, 그 땅의 양식을 먹을 때에 거제를 드리라고 하신다.
22 너희가 그릇 범죄하여 여호와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 모든 명령을 지키지 못하되
- 또 그릇 범죄한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24 회중이 부지중에 범죄하였거든 온 회중은 수송아지 한 마리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리고 규례대로 소제와 전제를 드리고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릴 것이라
- 부지중에 범죄하였다.
- 화제, 전제, 소제, 속죄제를 드린다.
25 제사장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면 그들이 사함을 받으리니 이는 그가 부지중에 범죄함이며 또 부지중에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헌물 곧 화제와 속죄제를 여호와께 드렸음이라
26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도 사함을 받을 것은 온 백성이 부지중에 범죄하였음이니라
- 부지중에 범죄한 사건을 다룬다.
하나님,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The Man이시다. 오시면서 당신 자신을 계속 인자,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신다. 주님은 당신을 Son of Man, 벤 아담이라고 하신다.
בן 벤 : 아들, 아담을 세우는 자
우리 예수님의 하나님이 아들이고, 우리는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이것은 교리적으로도 맞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우리들의 가장 큰 비전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는데, 이 자체가 우리의 비전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비전은 뭔가? 아들이란 집을 세우는 자이다.
Ex ) 돼지의 아들들은 뭘 세우는가? 돼지됨을 세운다. 호랑이의 아들들은 호랑이됨을 세운다. 사람의 아들들은 다 아버지가 되게 되어있다.
정말 많은 경우 착각을 하는게, 비전이라고 하면 세상에서 뭐가 되는 것을 비전이라고 한다. 물론 그 길을 가기 위한 중간 단계의 비전일 수 있다. 그런데 유일한 아들의 비전은 뭔가?
-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모든 아들은 다 아버지가 되야한다. 이 아버지가 집이 없어서, 아들을 낳아서 집을 세우는가?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집이라는 것은 아버지의 어떠함의 시스템이다. 아버지와 똑같은 형상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이렇게 사는 것을 그대로 아들이 재현해내는 것이다. 아들의 비전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이 되지 않고 아버지가 될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들이면 아버지가 하나님이라는 소리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들의 비전은 다 뭔가? 굉장히 위험한 소리이지만, 도 사모님은 서슴없이 이야기하신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비전은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이 되는가? 하나님이 되는 것인데, 우리를 왜 사람으로 태어나게 했는가? 이게 미스테리이다. 왜 우리를 사람이라고 하는가?
그 미스테리를 유일하게 풀어주신 분이 예슈아이다. 그래서 예슈아가 아니고는 절대 우리의 비전, 구원이 뭔지 알 길이 없다. 오직 예슈아를 믿는 길만이, 구강기를 스타트할 수 있다. 예슈아를 믿어야만, 인생이 이런 것이구나.. 하면서, 인생을 스타트할 수 있따.
예슈아는 사람으로 오셔서, 동시에 하나님이다. 초대교회, 니케아 공회부터 박터지게 인간들이 싸운 것이 인자가 하나님이냐 아니냐이다. 설명 좀 해봐라. 삼위일체로 박터지게 싸웠다. 오늘날도 이것은 잘 이해를 못한다. 왜? 다 내 구원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헷갈려 하냐면, 나를 구원하려면, 하나님이 인간이면 안 된다. 인간은 나를 구원할 수 없다. 같은 인간끼리 나를 어떻게 구원하는가? 나를 구원하려면 뭔가 달라야 한다. 하나님 이어야 한다. 헷갈리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셔서 사람인데 하나님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The Man이다. The Man이 하나님이다. 이것을 아는게 너무 중요하다. 이것을 우리가 그리지만, 이게 뭘 이야기하는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 Son of Man,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서 우리는 The Man이 되는 비전을 가지고 살아간다. 오직 이것만이 하나님의 길인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곳으로 가는 길을 Way, 도(道)이다. 아브라함의 도이다. 이리로 어떻게 가냐는 것이다
우리는 밑에서 Piece로 산다. 사는 목적이 다 함께 하나되어서 The Man을 향해서 가자이다. 이게 아브라함의 자손들의 이야기이다. 여기서 우리는 집, 시스템을 건설한다. 아버지의 가문이라고 하는 소리는, The Man을 향해서 가자는 가문이다. 우리는 그 가문이 된 것이 맞는가? 우리는 한 Family인가?
어떤 사람들은 우리는 Family라고 하니까, 나를 돌봐라. 이게 Family인 줄 안다. 가족이라면서 왜 나한테 이러냐고 한다. 이것을 한 Family라고 하면서, 광야에서 믿음이 없는 자들을 다 죽이신다. 이스라엘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다. 이 비전을 비전으로 하지 않고, 믿지 아니한 자들은 광야에서 다 엎드려진다. 이것이 Family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측면이다.
중요한 것은, 슐라흐 레카에서 이 사다리를 올라간다. 문제는, 2번째까지 올라갔는데, 세번째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음 스테이지를 전혀 예상할 수 없다. 이게 광야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이다. 왜 알 수가 없는가?
원래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이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을 영의 언어라고 한다. 영의 얻어가 닫히기 전에는 이것을 다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지금 있는 것은 모국어, 다 생각과 행동의 언어밖에 없다. 그런데 영의 세계는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기에, 알 수가 없다. 슐라흐 레카는 그것을 이야기한다.
תוּר 투르 : 정탐
-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핵심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이야기한다. 완성(ת)하려면 머리(ר)를 먼저 세운다. 이게 인간이 살아가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여러분들이 뭔가를 가려면 리더를 먼저 세우고, 리더보고 가라고 한다. 정탐을 할 때, 감각과 이성으로 할 것이냐, 영으로 할 것이냐이다. 영은 heart이다. 다음 차원으로 가는데 있어서 감각과 이성으로 할 것이냐, Heart로 할 것이냐?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감각과 이성은 절대 다음 Stage를 보지 못한다. 다음 Stage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Heart이다. 옷을 찢고 마음이 깨질 때이다. 니들 하나님을 배신하면 어떡하는가? 이게 Heart로 사는 사람이다. Giant, 다 안다. 그렇다고 ...? Heart이다. Heart는 여간해서 육신적인 것에 대해서 위협받지 않는다. 너 죽겠다고 배신하냐? 이게 Heart로 사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부인이 뭔가를 잘못했다면, 감각과 이성은 그것을 다 찾아낸다. 그런데 Heart라고 하는 것은, 그래도 내 언약적인 사람이 아닌가? Heart라고 하는 것은 상관없다. 이게 Heart의 본질이다. 오직 우리는 Heart로만 전진할 수 있다. 이게 정탐꾼 사건의 가장 큰 가르침이다
오늘 이 정탐꾼 사건에서, 여호와꼐서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이라고 되어있다.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אמר 아마르 : 이르다, 지각시키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고 이르시되라는 말을 하시는 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반드시 지각시키신다. 이게 도 사모님이 말한 말한다고 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반드시 지각시켜야 한다
אמר 아마르 : 자기(א)가 죽는 것, 신(א)의 죽음(מר)
- 지각 시키려면 반드시 자기가 죽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우리에게 지각시키기 위해 죽으셨다. 당신 자신이 죽으시지 않으면 지각시키시지 못한다. 이 길은 절대로 오감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오감이라는 것, 감각이라는 것은 다 내가 살겠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죽겠다고 해야만 지각을 시킬 수가 있다.
이 광야에서 주님은 우리를 다 죽음 가운데 몰아넣는다. 우리는 광야에서 이 죽음의 의미를 더 깊게 알아야 한다.
시82: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 없는 내가를 붙였다.
אלהים 엘로힘 : 신
- 너는 엘로힘이다? 옛날 같았으면 바로 돌 맞아서 죽는 일이다. 예수님도 결국 이 이야기 때문에 죽으셨다
cf ) 중국에 가서 집회할 때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중국 사람들이 난리가 났다. 순간 이단 나타났다는 듯이 막 난리가 났다. 더군다가 통역이 있으니까, 통역하는 사람부터 이게 뭔 소리냐고 한다. 이거 설명하느라고 한참 걸렸다. 그처럼 우리가 얼마나 엘로힘에 대한 오해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그러면 당연히 엘로힘이다. 나는 사람인데, 제 아들 하늘이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가 하나님이면 아들은 당연히 하나님이다. 위격이 같다는게 아니다. 위격은 다르다. 영원히 아버지는 아버지이시다. 그렇다고 하나님에게 맞먹으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러나 같은 종류이다
너희들은 엘로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다.
עליון 엘욘 : 지존자
- 예수 그리스도가 지존자이다.
가장 위에 있다.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것은 지존자여야 한다. 왕의 아들은 또 왕이다. 왕자라고 한다.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주님은 무슨 일을 하셨는가?
7 (그러나) -> (그리고)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 영 해석이 안 되서 그러나를 붙였다
그리고 너희는 사람처럼 죽을 것이라고 한다. 너희들은 엘로힘, 신이라고 했는데, 너희들은 사람처럼 죽을 것이라고 하면 말이 안 되니까, 그러나를 써 버렸다. 그러나가 아니라 그리고이다. 그리고 너희는 사람처럼 죽을 것이다.
아담이 죽어버린다. 이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엘로힘으로 만들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역사이다. 사람의 죽음,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이다. 그래서 토라에서 많은 죽음이 있는데, 이 죽음은 다 사람의 죽음, 성도의 죽음이다.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신이 된다. 사람을 계속 죽인다. 인간에게 있는 가장 큰 것이 사람을 계속 죽이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계속 사람이 등장한다. 사람을 진토로 보내버린다. 사람을 흙으로 보내버린다.
옛 사람을 자꾸 죽이라고 한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신이 되어진다. 무엇이 영원한 것이고, 무엇이 영원하지 않은지 알아야 우리는 영원 속으로 간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안에 영원하지 않은 것, 죽음에 속한 것들을 두어서, 얘를 죽음에 넘길 때마다 영원을 얻게한다. 생명을 얻게한다.
이 세상에 육신적인 것, 감각적인 것을 두어서, 얘를 죽일 때마다 우리는 영적인 것을 얻게된다. 그리고 영에 속한, Heart를 얻게한다. 이게 하나님의 원리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속해서 죽음을 말씀하신다. 그렇게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길을 걷는다. 이것이 슐라흐 레카, 광야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내 자신을 죽일 줄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을 죽이는 일을 뭐라고 하는가? 사람을 죽이는 일을 전쟁이라고 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슬퍼하는 이유가, 사람이 죽기 때문이다. 전쟁이 일어났는데, 전쟁에서 사람이 한 명도 안 죽었다는 것을 들어봤는가? 그런 전쟁은 없다. 전쟁 자체는 죽이기 위해 일어난다.
מלחמה 밀하마 : 전쟁 from לחמ 레헴 : 빵
19 그 땅의 양식을 먹을 때에 여호와께 거제를 드리되
오늘 토라포션이 그 땅의 빵을 먹을 때, 그 땅의 전쟁을 먹을 때라는 소리이다. 너희들이 그 땅에 가면 전쟁을 할 때이다. 약속의 땅에 가면 전쟁을 안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은 전쟁을 하는 것이다. 전쟁은 다 죽음에 넘기우는 것이다. 우리 속의 옛 사람, 감각, 이성으로 전진하려는 자들을 죽이는 것이다.
도 사모님은 그런 말을 죽이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이란 말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 나타났을 때, 언제 죽일 수 있냐면, 사건이 일어나야지 죽일 수 있다.
세계사를 공부해보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건수가 있어야 한다. 사건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삶에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사건을 주신다. 나는 한 번도 살아오면서 남편이나 친구와 전쟁을 해 본적이 없다는 사람 있는가? 하나도 없다. 결혼을 해야 하는데 왜 전쟁을 하는가? 사랑하라고 했지 누가 전쟁하라고 했는가? 우리는 전쟁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같이 광야를 지나야 한다. 광야를 안 지나고 결혼식 한 번으로 결혼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주님은 사건을 계속 일으켜서 전쟁을 일으키신다. 그 소리는 내 안의 열 스파이를 죽이라는 것이다. 열 스파이는 열 스파이가 하는 말이다. 얘를 죽이라는 것이다. 내 모국어로 끊임없이 이 사건을 해석하는 이 해석을 죽이라는 말이다. 이게 전쟁이다. 이게 끊임없는 아담의 죽음이다. 그렇지 않고는 엘로힘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얘를 죽이고 스토리를 만들어라.
도 사모님이 오셨을 때 왜 이렇게 감동했는지 알겠는가?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알아듣더라. 도 사모님 강의는 정말 제가 생각하기에는, 탈무드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편집해서 다시 유대인들에게, 여기 탈무드가 있다고 줘야한다. 모국어로 해석한다는게 뭔가?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을 모국어로 내 사연을 만들면 안 된다. 하나님 마음에 꼭 드는 이야기로 만들어야 한다. 이게 전쟁이다
똑같은 약속의 땅을 정탐한 사건에 대해서, 여호수아와 갈렙의 이야기는 얼마나 좋은가? 하나님 마음에 꼭 든다. 옷을 팍 찢고,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레헴이다..! 하나님이 이 사건을 일으킨 이유는 우리보고 전쟁하라는 것이다.
저들의 보호자는 저들을 떠났다. 이것은 망상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가자. 하나님 마음에 꼭 드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거기서 감각, 선악과에 속한 결혼이 아니라, 하나의, 사랑, Heart에 속한 교훈을 만들어낸다.
Ex ) 역시 마누라는 사흘에 한 번씩??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게 아니다. 이제 가까이 가지 말자? 그래서 차가워지자? 이런 결론을 얻는게 아니다. 적당히 거리 유지하고, 너는 너 대로, 나는 나 대로 살자
이게 아니라, Heart에 속한 교훈을 얻는 것이 전쟁이다. 모국어, 디바를 죽이는 것이다. 나의 시스템에서 나오는 디바를 끊임없이 죽이는 것이다. 이것이 너희들이 양식을 먹을 때라는 소리이다. 너희들은 전쟁할 것이다. 너희들은 전쟁의 신이다. 내가 바로 떡이다. 양식이다. 내가 빵이다. 나를 먹으라.
여호수아와 갈렙의 이야기를 먹어라. 왜 네 모국어에서 나오는 것을 그렇게 먹어 제끼는가? 너의 진정한 힘은 내 말에서 나온다. 나랑 같은 말을 하면, 그게 네가 살아가는 빵이다. 네가 굶주리지 않을 것이다. 열 스파이가 살아있는 한, 밤새도록 울부짖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고, 혼돈, 공허, 방랑과 네 삶은 어둠 속에 있을 것이다. 거제로 드려라.
רם 람 : 거제, 이게 너희들의 머리(ר)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빵이고, 이 전쟁을 하는 것의 가장 핵심은, 이 전쟁을 할 줄 모르면 너희들은 머리에 붙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인 것으로 정탐하고, 스토리를 만들고, 감각적인 교훈을 너를 머리로 하지, 절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지 않는다. 이야기 자체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할 때만이 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을 거제라고 한다. 이 교훈으로 거제를 드려라
만약 이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끝나는 것이다. 부지중의 죄와 고의적으로 짓는 죄는, 이것을 알고도 이 전쟁을 안 하겠다고 하면 이것은 고의적인 죄이다. 그러면 거기는 사함이 없다. 히브리서 기자가 사함이 없는 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오직 슐라흐 레카에서만 사함이 없는 죄를 배울 수 있다. 이것을 배우고도 이 전쟁을 안 하려고 한다. 이게 사함이 없는 죄이다.
샤밧 때 부지중에 범죄한 것을 배우도록 하겠다. 다시 한 번 기억하라. 여러분은 전쟁의 신의 아들들이다. 우리는 반드시 전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내 안에 끊임없이 죽어나가는 역사가 있어야 한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중요하냐면, 부활을 이야기한다. 부활의 정체가 뭔가? 부활의 정체는 오래 산다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오래 사는 것을 부활로 여기나, 부활의 정체는 내가 죽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죽음이 있어도 괜찮다가 부활이다. 부활을 믿는 자만이 이 전쟁을 한다. 안 믿으면 전쟁을 안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죽음을 피해가려고 한다. 안 죽으려고 할 때 상처는 임한다. 안 죽이려고 하는데 죽이려고 해서 Damage를 입는 것이 상처이다. 부활에는 상처가 없다.
디바는 다 상처의 언어이다. 모국어는 다 사연의 언어, 상처받은 언어이다. 안 죽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이 부활을 이야기하는 것은, 부활은 죽음을 밥 먹듯이 한다. 매일 죽노라..! 부활은 꺼뜻하면 죽인다. 부활의 생명 안에서는 죽음이 계속 일어난다.
우리 몸 안에도 계속 죽음이 일어나야 한다. 세포들이 계속 죽어나간다. 죽어야 다시 살아난다. 이 Circulation이 계속 일어난다. 오늘도 부활 생명 안에서 죽일 것을 죽이기 바란다. 죽이면 안되..! 하다가 죽이면 또 상처받지 말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킬러가 되서 전쟁을 하기 바란다. 엉뚱한 옆 사람 죽이려고 하지 말라. 내 안의 디바, 열 스파이를 눈을 크게 뜨고 죽이라. 내 사연으로 만든 말을 죽이기 바란다.
그래서 오늘 하루 동안에 사건이 일어나면, 주님 마음에 꼭 드는 이야기를 해 보라. 그게 여러분들이 쓰는 일기이고 기도이다. 다시 재 구성해보라. 주님 앞에 어떤 사건에 대해서 다시 말씀해보라. 디바로 해석했던 사건에 대해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다시 이야기해보기 바란다. 그것을 거제라고 한다. 주님께 올려드리는 것이다. 이게 내 머리이고 내가 만들어 낸 교훈이다
* 기도
주님, 내가 오늘 거제를 올려드리기 원합니다. 주님을 머리로 하는 이 거제, 이 전쟁, 정말 아름다운 전쟁을 내가 하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나에게 부활을 주신 주님, 이제 내가 전쟁을 해도 걱정이 없습니다. 정말 아담은 죽을 것입니다. 우리가 엘로힘이기에, 엘 엘욘의 자녀이기에, 우리가 전쟁을 수행할 것입니다.
주님, 우리 가운데 부활을 주셔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있어서, 전쟁을 하라고 하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그 땅에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서 전쟁을 하라. 그리고 거제를 올려드려라. 오직 주님을 머리로 하는 언어로, 다시 그 스토리를 재 구성하고, 거기서 주님을 얻겠습니다. 오직 주님을 얻겠습니다.
다비드리 목사
작성자 Daniel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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