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 추억 #55, 히스기야와 돈까스
재화의 명명(세칭 동방교에서 부르는 이름)은 히스기야(구약 열왕기서의 유대 왕)다. 부산의 주학교회 시절에 내가 데리고 있으면서 이것 저것 심부름도 시키면서 세칭 동방교내에서의 생활을 지도하던 후배라 할 수 있는데 형님, 형님 하면서 많이 따랐다. 이 히스기야를 나는 군 복무시절에 딱 한번 서울에서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
서울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을때 소문을 들으니 히스기야도 서울 용산의 '수원정' 대기처(천국을 가기위해 이땅에 임시로 머물며 대기하는 곳, 집을 나온 세칭 동방교 신도들이 집단으로 머무는 곳을 말하는 은어-隱語)로 부름을 받아 올라 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산에 있을때 나를 많이 따랐고 정도 많이 들어 보고싶던 차에 어떻게 연락이 되어 서울역앞을 약속장소로 정해 상봉하게 되었다. 서울역앞에서 만난 히스기야를 맞은편 도동의 어느 흐름한 식당으로 데리고 들어가 돈까스를 시켜놓고 서로 마주앉아 먹으면서 그동안의 소식도 묻고 회포를 풀었다.
히스기야는 대기처에 들어와 대기자로 있으니까 돈이 있을 수가 없고 나도 군바리 신세라 돈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쫄병 월급 알뜰히 모아 두었다가 재화에게 돈까스를 사 먹이니 형된 도리로서 흐뭇했다. 대기처생활의 이모저모를 물어보고 선배로서 격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돈까스 한 그릇을 다 먹고 히스기야 하는 말, “우와 형님,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먹어 봅니더!” 경상도 억센 억양으로 그렇게 말하던 것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후 다시는 이 녀석을 만나보지 못했다. 용산 '수원정'에서 군기를 단단히 잡은 후 어느 농장으로 보내진것 같았다. 그후 세월이 한참 흐른후의 소문으로는 대기처 안에서 대학나온 어느 처자와 결혼해서 호주로 떠났다는 풍문만 어렴풋이 들리는 듯 했는데 확인 할 길은 없었다. 어쨌던 행복하게 살고 있으면 좋으련만, 참 순진하고 좋은 청년이었는데 . . . 재화야, 연락 닿으면 언제 얼굴 함 보자.
잡동사니 가방 속에서 히스기야의 편지를 발견했다. 가로로 줄이 그으진 편지지에 가장자리에서부터 안쪽으로 원형으로 돌아가면서 쓴 편지인데 수신처는 내가 근무하고 있는 부대로 되어있다. 아마 용산 '수원정'에 잠시 있다가 또 다른 대기처인 평택농장으로 보내져서 거기서 보낸듯 하다.
-------------------------------------------
형 보이소.
낙엽지는 소리에 허전한 마음이 더해가는, 그리움에 지쳐 가을밤 바람에 딩굴며 가는 낙엽에 저에 마음 전하고 싶은. . . 허공에 나의 숨결이 닿아도 무감각한 가을 하늘 찬란히 빛나는 별에 속삭입니다. 마치 별빛과 같이 빛나던 추억속에 도저히 잊지못할 형께 늦은줄 알면서 몇자 적습니다. 화내지 말고 읽어주이소.
형, 많은 세월이 흘렀지예. 제가 지금 있는 이곳은 한없이 한없이 넓은 평야입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바다가 있고 이름모를 물새가 떼를지어 나르고 따가운 태양이 서쪽 하늘을 살짝 넘는 그 순간을 바라보노라면 그져 인생무상함이 요마음을 울적하게 만듭니다. 또 황금물결이 출렁이던 곡식들이 농부들 손에 폭폭 스러지고 여기저기 탈곡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형, 멀지않아 이해도 지고 형과 저나 달기 싫은 인생계급장 하나 더 달고 멀리 보이는 인생길 더 더욱 힘차게 걸어야지예.
형, 진짜 얼마 안 있으면 그 군복을 벗겠네예. 형에 심각한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형이 이렇게 외칠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삶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형, 가을 수많은 인간들이 황홀함에 젖어 이유없이 눈물을 흘리는 때, 또 안개만이 자욱한 거리를 이유없이 거닐고 또 멍청하게 밤하늘에 별을 뜻없이 바라보며 스스로 억지로 고독에 잠기는 얼된 사람들도 있지예. 허황된 꿈을 붙잡고 몸부림치는 허무한 인간의 길, 조용히 생각하노라면 소리없이 꺼지고 싶습니다.
참, 형, 저는 7월달에 평택농장으로 왔습니다. 젖소잃은 서러움에 울었는데 그곳 생활마져 파멸당하고 보니 그져 먼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서글픈 인생, 그러나 결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삶이라고 생각하고 피었다가 지는 한잎의 꽃이라고 뜻없는 한쪽의 구름이라 생각하고 조용히 조용히 생활하렵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는 그곳을 향하여 힘차게 걸어가렵니다. 그럼 형, 간단히 줄이겠습니다. 하심이 다 뜻대로 이루어 지시고. 다음에 안녕히.
저에 주소는 180-11 경기도 평택군 팽성면
OO부락 OO정미소 재화
-------------------------------------------------------------------
이 편지는 또 특이하게 가로줄이 그으진 편지지에 대각선으로 꼬리를 물고 쓰여져 있다.
-------------------------
형님전.
별들이 창가에 찾아와 손짓을 할지라도 혹은 달님이 창가에 찾아와 유혹을 할지라도 멀리 지나쳐 버린 꿈길은 아득하기만 합니다. 꿈이 그리워 까아만 고요가 말해주는 이밤에도 핑크색 꿈이 그리워 한없이 손짓하는 공상의 세계로 한없는 날개를 저어봅니다. 지금쯤 군대말년에 시절을 보내면서 가끔 심각해지는 형께로 허공중에 맴도는 그리움 찾아 저의 글을 띄웁니다.
형, 늘어진 초목이 다 시들어져 ‘이산저산 누른산에 황혼이 깃들어’(註-성가의 한구절), 이 구절이 생각나지예. 지금이 이때인 것 같습니다. 이유없이 사람을 심각하게 만들고 철없는 소녀를 울리고 별빛마져 차게 만드는 이 가을이 한없이 미울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꼭 있어야 하는 계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고예. 사람은 이 가을이 오면 그 무언가를 생각하거든예, 내용은 어떠하던간에 자기주위를 생각하고 또 자기가 앞으로 갈 길을 조금이나마 생각하겠지예. 먼 인생행로를.......
형, 우리 탈곡을 다 마쳤습니다. 이제 한가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문을 비롯하여 여러가지를 배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형, 책 좀 보내 줄만한 사람 없는가예, 김OO씨 같이, 책은 아무것이나. 이곳은 진짜 농사꾼만이 살고 있는지라 서울에 잘 아는 사람이 없어 이런 부탁은 심히 힘이 듭니다. 또 왠지 사람들이 맘에 안들어 야단입니다.
내 이 인생이 갈로밖에 인생이라 그런지. 가끔 멀지않는 바닷가에 나가 끝없는 수평선을 말없이 바라보며 그 무언가를 남기며 걸어야겠다고 다집합니다. 그리고 형에 십팔번 '미워도 한세상 좋아도 한세상 마음을 달래며 웃으며 살리라' 이 곡조를 읊으면서 뜻없는 마음에 미소를 한없이 지으며 저 높고 푸른 하늘 구름만이 미소짓는 하늘을 벌렁 드러누워 한없이 바라봅니다.
저곳은 이 인간들은 걸어 다닐 수 없는가, 아니 날아서도 갈수 없는가 하는 똑 바보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하나님 손자 답지못한 생각을 할때가 있습니다. 형, 동심에 세계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은 바로 이 농촌이지예. 봄이면 씨를 뿌려 여름이면 김을 메고 가을에는 다 자란 벼를 싹뚝싹뚝 짤라 다락락락......돌아가는 탈곡기에 후두둑 털어서 탕탕탕.......돌아가는 정미소에서 하이얗게 찧어서 가마솥에 밥을 해서 멋있게 한숟갈 뚝 떠서 꾹꾹 씹어 먹어면서 그 피땀 흘리던 지난날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즐겁게 웃는 농사꾼들,
형, 여기에 흙속에 묻힌 참 삶이란게 있는 모양입니다. 형, 우리는 지금 지붕을 새로 이을려고 짚으로 영을 엮고 있습니다. 형, 곧 크리스마스가 오겠지예, 형 곧 이해도 가겠지예, 형 제대도 하겠고 아무쪼록 남은 군 생활이 가볍기를 이 기야(註-그의 명명 히스기야의 줄인말인듯)가 무지무지하게 빌겠습니다. 끝으로 늦은 소식을 화내지 마시고. 주신 글은 잘 받았습니다. 그럼 안녕을 고할까 합니다. 항상 근심이 가득한 형 얼굴에 행복한 미향이 풍기기를 빌며 안녕히.
동생 재화 띄움.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