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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안녕하십니까? 여러분들 우리가 잠시 전에 마르다와 마리아에 대한 누가복음 10장 39절 말씀을 위주로 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거기에는 마르다와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바로 나사로의 누이들이 등장하는데요 그 이름의 뜻은 바로
반역하는 그들이라는 천연적이고도 타고난 이름의 뜻인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을 만나 죄 사함을 받고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인식함으로 말미암아 천연적이고도 거역적인 육적인 마음들을
가진 그런 자들이 온전히 순종하고 복종함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필요를 위하여 사는 자들로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주님의 크고도 놀라운 구원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 보면 모세의 누이가 미리암인데 이 미리암은 히브리어 이고 헬라어로는 마리아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종 모세에게 온전히 순종치 않고 거역하는 사람이 됨으로 말미암아 문둥병자가 되어 고통을 받았던 구약의
미리암과 같은 사람이 신약의 마리아처럼 온전히 주님 앞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바로 주님의 아름다운 품성을 지닌 최고의 인간적 도덕적 품성을 지닌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 본성과 신적인 속성의 연합으로 인하여 그분을 인식한 결과
이런 순종하고 복종하는 사람이 된다 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이 누가 복음이 이와 같이 주님의 그러한 신성한 속성들을 지닌 사람으로 오신 바로 이 구주의 이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준 그러한 아름다운 도덕적인 품성들 안에서의 삶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계시해 주시고자 이런 삶을 살아가시는가라는 것을 우리가 한 번쯤 이렇게 교제를 나누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 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누가복음은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왜 그 인간의 본성과 신적인 속성들을 가지신 그 두 종류의 본성을 가지신 그분께서 그 인간적인 본성을 통한 인간적인 미덕들과 신적인 속성들을 통한 신성한 속성들의 그러한 연합을 통하여 보여준 삶이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그러한 것을 그런 최고의 아름다운 도덕적 품성들을 산출하셔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가라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누가 복음을 전체적으로 구성함에 있어서 기본적인 요소들은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인간적 본성과 신적인 속성인 구주의
인성과 신성인 것입니다. 이 구주의 인성과 신성의 연합된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특별히 계시해 주고자 하는 중요한 의미는
바로 희년 때문에 그렇다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되어진 인류는 사탄의 죄의 굴레와 세상의 굴레와
그리고 우리 자신이라는 혼적인 생명을 가진 우리 존재의 자아인 그런 굴레를 모두 자유롭게 해주고 해방시켜주고 또한
우리가 잃어버린 그 에덴동산의 땅을 회복해 주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분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장자권에
대한 것을 상실되어진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삶의 연합을 통하여 세 분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영, 하나님께서
영 안에 계신 그러한 하나님의 온전한 권리의 누림 안으로 들어가 살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사람으로오신 구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성과 신성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계시하는 성경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을 통한 인간적인 미덕들과 이 신적인 속성들을 통한 하나님의 속성들의 연합의 결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33년 반 동안의 삶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특별히 3년 반 동안의 최고 수준의 아름다운 품성을 통한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계시함으로 말미암아 이 사람으로서 구주의 인성과 신성으로 인하여 산출되어진 그런 최고 수준의 도덕성은 우리들의 희년을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희년 안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 희년 안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해방시켜주고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무엇이죠?
사탄에게 사로잡힌 것에서 죄로부터 사로잡힌 바 된 것에서 세상으로부터 사로잡힌 바 된 것에서 곧 사탄의 굴레에서 죄의
굴레에서 세상의 굴레에서 그리고 나 자신의 혼 생명을 통한 자아의 굴레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짐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에덴동산 땅을 다시 회복하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장자권에 대한 신분을 다시 회복시켜주는 것 때문에 주님께서는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산출하기 위하여 바로 구주의 인성과 신성을 통하여 최고의 아름다운 품성을 나타난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희년을 가져오게 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참 평안. 곧 샬롬에 대한 의미라는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래서 누가 복음은 다름 아닌 신약 성경에 희년을 선포하고 있는 책이다라고 정의를 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희년의 선포는 누가복음 4장 18절 19절에서 기록되어 있는데요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라는 이야기를 통해서 전쟁의 포로가 된 우리들 유배된 사람들인 우리들 사탄의 속박 아래에 있는 우리들 죄의 속박
아래에 있는 우리들을 완전히 사탄의 권세로부터 해방시켜 줌으로 말미암아 자유를 우리에게 부여해 주어서 삼일 하나님 바로
(셋 모든 분이 하나이신 ) 아버지와 아들과 영, 하나님을 누리는 누림 안으로 들어가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산출하는 삶을 사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복음은 사람의 본질과 연합된 인간 마리아의 몸에 수태되어진 사람의 본질과 그리고 또한 신성한 영을 통하여
잉태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신성한 본질을 가지심으로 말미암아 두 종류의 본성을 가지신 사람의 본질과 연합된 신성한 본질을
통하여 최고 수준의 아름다운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품성들을 통한 미덕들을 산출함으로 말미암아 이 인간적인 미덕들과
연합된 신성한 속성들을 통해서 산출되어진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통하여 신약의 희년을 우리에게 부여해 주셔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누가 복음의 완전한 특징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이 누가 복음은 사람으로 오신 구주를 사람의 본질과 연합된 신성한 본질의 구성체인 연합되어진 분으로 계시하고
있다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 말씀을 묵상하고 상고할 때 우리는 누가 복음에 숨겨진 영적인 의미를 우리가 온전히 볼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사실은 성령님으로 잉태되어진 온전한 하나님으로서 오셨지만 또한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사람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온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으로서 하나님 사람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형적으로는 아주 가난한 갈릴리 나사렛 출신의 그냥 변변치 않은 사람인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 사람의 본성
안에 바로 신적인 본성과 신성한 속성들을 지니신 완전 온전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인식해야 될 필요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을 통하여 그분의 행동들을
통하여 우리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으로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온전한 하나님과 완전한 사람을 보게 되는데 이것을 인식 하지 않고 보게 되면은
우리가 누가 복음을 통해서 계시하고자 하는 이 특징적인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산출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희년을 선포하고 희년을 부여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잘 깨달을 수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 안에서 완전한 사람과 온전한 하나님의 연합인 하나의 완전한
구성체를 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참 온전한 사람 하나님으로 오시고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오셨다고 해서 그 신성한
본성인 하나님의 본성을 약간 훼손시킨 것이냐 전혀 조금도 미비하거나 결함이 있거나 부족함이나 훼손됨이나 상실함이 없이
또한 인간적인 본성 역시 전혀 잃지 아니하시고 훼손됨도 없고 부족함도 없고 미비함도 없고 결함도 없고 오히려 이러한
신성한 본성인 하나님의 본성과 인간적인 본성인 사람의 본성을 가지셔서 하나의 구성체로 이루어진 이 연합 안에서 온전히
구별할 수 있는 채로 남아 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바로 외형적인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신성한 본성인 하나님의 본성과 인간적인 본성인 사람의 본성의 연합 안에서 구별할 수 있는 채로 그대로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라는 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얼핏 생각에 그렇다면 또 제3의 어떤 본성을 산출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이렇게
오해의 소지를 가질 수 있는데 전혀 제3의 본성을 산출하지 않고 오히려 신성한 본성인 하나님의 그 고유의 본성을 가지고
계시고 인간적인 본성인 사람의 본성도 고유로 가지고 계셔서 바로 이 온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을 동시에 볼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질과 연합된 신성한 본질을 가지셨기 때문에 바로 이러한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산출하는 이러한 놀라운
품성으로 인하여 이 사단의 모든 굴레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우리는 뭐라고 그럴까요?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가지고 계신 이러한 인간적인 본성인 사람의 본성과 신성한
본성인 하나님의 본성을 가지고 특별히 3년 반 동안의 공생애의 생활을 사심으로 말미암아 최고 수준의 아름다운 품성을 통한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산출 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인간적인 미덕들과 신성한 속성들의 연합을 통하여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산출하였다라는 것입니다.
이 누가복음은 그래서 전적으로 온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 곧 온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신 바로 사람으로오신 구주 안에서 인간적인 이 미덕들과 신성한 속성들의 연합을 통하여 온전한 하나님이신 그분은 오히려 신성한 속성들을 가지신
분으로서 드러나셨고 그리고 완전한 사람이신 그분은 인간적인 미덕들을 지닌 사람의 본질을 소유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밝히 계시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온전한 하나님이신 사람으로오신 구주께서는 신성한 속성들을 지닌 신성한 본성을 소유하셨으며 그리고 완전한 사람으로서
인간적인 본성을 지닌 인간적인 미덕들을 통하여 사람의 본성을 소유하신 것을 우리는 누가 복음을 통하여 바로 인식할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이 3년 반 동안에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산출하는 그 인격을 통해서 우리는 최고 수준의 아름다운 품성을 통한
최고 수준의 도덕성 안에 있는 생명을 살기 위한 속성들을 지닌 하나님으로서의 신성한 본성과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미덕들을 지닌 사람의 본성인 두 종류의 본성을 지니신 분의 삶의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최고 수준의 도덕성 안에 있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속성들을 지닌 신성한 본성과 사람의 본성을 통하여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산출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까요? 예 아름다운 품성들을 통한 미덕들을 통하여 사람의 본성과 그리고 신의 속성들을 지닌 신성한 본성의 연합은 바로 누가복음 4장 18절, 19절 말씀에 기록되어진 희년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립니다.
이 희년 안에서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사람의 본성과 이 신적인 본성을 통한 신성한 본성의 연합을 통하여 나타내진 최고 수준의 도덕성이 바로 우리를 사단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줬고 죄의 굴레에서 바로 이 자유를 주었고 세상의 굴레와 혼, 생명을 지닌
나 라는 존재의 자아의 굴레에서 완전히 자유와 해방을 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으나 사단으로 인하여
상실되었던 잃어버린 땅 바로 에덴동산 그 잃어버린 땅을 회복시켜 주시게 되었고 그 땅을 잃어버리고 생명나무를 취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분인 장자권에 대한 신분을 회복시켜 줌으로 말미암아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버지와 아들과 하나님을 누리는 권리의 완전한 누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를 사단의 굴레에서 포로로 사로잡혔던 우리를
해방시켜주고 자유를 준 것이 바로 이 희년의 선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누가복음 특별히 누가복음 11장을 통해서 누가 복음의 본질적인 요소들이 가장 적나라하게 잘 나타나진
이 말씀을 묵상하고 상고함으로 말미암아 신성한 속성들을 지닌 주님의 신성한 본성과 그리고 인간적인 아름다운 품성들을
통하여 나타내진 그 미덕들을 지닌 그분의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드러내신 인간의 본성을 우리가 살펴보고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립니다.
이 말씀은 왜 중요하냐 하면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온전한 하나님과 완전한 사람으로 연합된 구성체이시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 구성체가 제3의 본성을 산출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3의 본성을 전혀 도출시키거나 산출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적인 본성인 사람의 본성도 그대로 고유로 남아 있고 신성한 본성인 하나님의 본성도 오히려 고유로 나타내짐으로
말미암아 고유로 나타내어진 이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산출하는 미덕들을 통하여 희년을 가져오게 할 수가 있다라는 것을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람의 본성과 신성의 본성을 가지신 온전한 하나님과 완전한 사람으로 연합된 구성체이시기 때문에
그러한 분으로서 바로 이 삶을 사신 주님께서는 최고 수준의 아름다운 품성을 통한 도덕성 안에 있는 생명을 사심으로
말미암아 중요한 것은 그 생명을 통하여 우리를 사단의 굴레에서 자유케 하였다는 것입니다.
죄의 굴레에서 우리를 해방시켰다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나 라는 자아로부터 나를 자유케 하고 해방케 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버지와 아들과 영, 하나님의
누림안으로 우리를 완전히 옮겨 놓음으로 말미암아 누가복음 4장 18절, 19절 말씀에 선포하신 희년의 선포를 위해서
그 희년을 성취하기 위한 일로 주님께서는 최고 수준의 도덕성 안에 있는 생명을 사시는 삶이 필요 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누가복음 1장부터 24장까지의 전체적인 특징의 요약이라는 것을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립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히 3년 반 동안에 최고 수준의 도덕성 안에 있는 생명을 사하신 그 생명이 우리를
모든 굴레로부터 사단의 굴레, 죄의 굴레, 세상의 굴레, 나라는 자아라는 굴레에서 자유케 한 그 최고 수준의 도덕성 안에 있는
생명을 우리가 소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라는 궁금증과 그리고 의문이 우리에게 발생되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복음 11장 1절부터 13절에 보면 제자들에게 기도에 관하여 가르치신 장면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0장 38절부터 42절까지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영접 받으신 구주께서 바로 그러한 순종치 않고 거역하는
삶을 살고 있던 자들에게 주님께서 큰 구원을 베풀어 주셔서 주님의 그 생명 안에 들어온 자들에게 어떻게 하면은 이 생명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 해답의 열쇠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는 것이 11장 1절부터 13절까지의 기도에 대한
사람으로오신 구주께서 바로 제자들에게 곧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누가복음 11장에서는 악한 세대에 의하여 거절당하시는 사람으로오신 구주에 대한 말씀과 어둠 가운데 있지 말라는
그분의 강한 경고의 말씀과 악한 세대에게서 배척당하시는 말씀과 어두움 가운데 머물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11장 33절부터
36절까지의 말씀과 11장 31절부터 54절까지의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을 크게 꾸짖으시는 장면을 이렇게 나란히 이 말씀을
통하여 배열하고 계시는 장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에 관한 가르침이 있었고, 악한 세대에 의하여 구주께서 거절당
하시고 어두움 가운데 있지 말라는 그분의 경고와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을 크게 꾸짖는 장면이 왜 배열되어서 기록되어
있는지를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11: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1: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11: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
11:6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11:7 저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11: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찌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11: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1: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11:11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1:12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11:13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11:14 〔예수와 바알세불〔마 12:22-30, 43-45; 막 3:20-27〕〕 예수께서 한 벙어리 귀신을 쫓아 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벙어리가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기이히 여겼으나
11:15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1:16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니
11:17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11:18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단이 스스로 분쟁하면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11:19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11: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11:21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11:22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저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11:23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11: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11:25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11:26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11:27 〔복이 있는 자〕 이 말씀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11:28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11:29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③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11: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11: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
11: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
11: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속에나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니라
11: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11: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11: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데가 없으면 등불의 광선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11:37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11: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이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11: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11:40 어리석은 자들아 밖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11:41 오직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11:42 화 있을찐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찌니라
11:43 화 있을찐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11:44 화 있을찐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11:45 한 율법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11:46 가라사대 화 있을찐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11:47 화 있을찐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도다 저희를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11:48 이와 같이 저희는 죽이고 너희는 쌓으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11:49 이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저희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 더러는 죽이며 또 핍박하리라 하였으니
11: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11: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11:52 화 있을찐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11:53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맹렬히 달라붙어 여러가지 일로 힐문하고
11:54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을 잡고자 하여 목을 지키더라
이 11장에 기록되어진 네 부분의 방면에 대한 기록을 우리가 깊이 묵상하게 되면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이 삶을 통하여
특별히 33년 반 동안의 생활 가운데서 3년 반 동안의 공생애의 생활을 통하여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11장에서 이 네 가지 방면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산출하는 인간적인 미덕들을 지닌 그분의 인간의 본성만을 가지고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산출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천만에입니다.
그분의 인간적인 미덕들을 통한 인간의 본성과 그리고 연합되어진 신성한 본성들을 지닌 그분의 신성한 본성에 기초하여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누가복음 4장 18절, 19절 말씀을 통한 희년을 선포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11장의
전체적인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장 1절부터 13절까지는 기도에 대한 가르침이 있고 그리고 14절부터 32절까지는 악한 세대에 의하여 거절당하시는
구주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고, 33절부터 36절까지는 어두움 가운데 있지 말라는 그분의 경고와 그리고 37절부터 54절까지는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을 향한 그분의 큰 꾸지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누가복음 11장 1절부터 13절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한 이 기도에 관한 가르침은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한 주님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이 기도가 무엇 때문에 중요합니까?
바로 이 기도를 통하여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생명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최고 수준의 도덕성 안에 있는 생명을 바로 신성한 본성과 인간적 본성을 가지신 그분의 삶을 통하여 나타내 주신
최고 수준의 도덕성 안에 있는 생명을 사셔서 그 생명을 사신 그분께서 우리를 모든 사단의 굴레에서 자유케 하고 죄와 세상과
자아라는 굴레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고 해방시켜주셨기 때문에 이 해방시켜 주신 이 생명을 우리가 생명으로 살기 위해서는
이 생명을 소유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생명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그 생명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길이 바로 주님의 기도문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생명 안으로 친히 들어가도록 이끌어주시기 위하여 제자들
에게 가르쳐주신 이 기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생명을 소유받을 수 있기 때문에 누가복음 11장 1절부터 13절 말씀에 기록하고
있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암시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이 주기도문이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생명 안으로 이 생명은 신성한 본성과 인간적인
본성과 연합되어져서 기초되어져서 나타난 생명이기 때문에 이 생명 안으로 들어가도록 우리를 이끄는 것이 주님의 기도문
이기 때문에 그렇다 라는 것입니다.이 기도의 의미를 아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1장 1절에서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계실 때 기도를 하고 계셨는데 기도를 마치자 궁금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도대체 혼자 저 약간 외떨어진 곳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셨을 때 그 기도한 내용이 과연 무엇이었을까라는
이 궁금증과 호기심과 의문이 아주 가득 차있기 때문에 제자들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우리에게도 제발 기도를 좀 가르쳐 주십시오 라고 이렇게 요청한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 우리는 주님께서 무엇을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계시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진 제자가 물어보아서 주님의 기도문을 가르쳐 주시기 전에는 그 주님께서 친히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한 장면의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바로 주님께 자신들에게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방법을 제발 가르쳐 주시옵소서라고 간절히 요청했을 때
주님께서는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말씀 하시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도록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왕국이 오게 하시며
3절 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를 또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라고 하면서 떡 3개에 대한 비유에 대한 말씀을 또 재차 설명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2절부터 4절까지 이 세 구절에 기록한 너희는 기도할 때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고 나라에 임하옵시며 바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니 우리의 죄도 용서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라는 이 짤막한 이 기도문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바로 하나님의 자신 안에 있는 생명인
하나님의 안으로 들어가도록 기도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이끄시는 기도문이라는 것을 우리가 암시받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짤막한 기도문을 우리가 묵상하고 상고하고 인식하여서 기도하게 될 때 우리는 그동안에 우리가 했던 기도의 방식에서
탈피하여 하나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그러한 기도의 결과의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이 주님의 기도문대로 기도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사람들 곧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이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암시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도록 기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죠. 지금까지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서 하는 기도가 아니라 바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기도를 했을
가능성이 아주 많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도록 기도했다라면 하나님의 생명 안에 있는 그분의 그 풍요로운 떡덩이
3개를 통하여 나타내지고 있는 생선과 알 떡덩이를 통하여 그분의 그 성령님을 통한 부유함과 함께 풍성함과 함께 바로 우리
세 분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영, 하나님을 우리 안으로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응답받는 삶을 살 수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사람인 우리는 사실은 하나님 밖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그 생각 속에 나타난 기도들은 바로 하나님 밖에
있는 기도가 될 수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가지고 계신 풍성함과 그분이 가지고 계신 부유함으로 나타내어진 떡덩이와 생선과 알을 통하여 이 성령님으로
암시된 이 생명 공급인 떡과 생선과 알을 통하여 그분이 가지고 계신 풍성과 부유함과 우리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 된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아무리 풍성함을 가지고 부유함을 가졌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분 밖에서 그분의 생명 밖에 있는 삶을 통하여
기도를 한다면 그분의 풍성함과 부유함을 우리가 전혀 누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풍성함과 부유함 안으로 들어가는 기도가 반드시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분 안에
있는 자들로서 그분의 풍성함과 함께 부유함과 함께 있는 성령님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분의 풍성함과 부유함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바로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곧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열두
제자들을 통하여 하나님 안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도록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바로 주님께서는
이 하나님 안에 있지 아니한 그들을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도록 이끄시기 위해서 이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립니다.
그런데 여러분들께서는 이런 의혹을 가질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안에 있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할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체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종종 하나님 안에 있지 않다
라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 안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분 안에 머무르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기도하여도 하나님 안에 있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밖에 있는 기도를 대부분 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하루의 일과 동안에 어떤 문제 속에서 살고 있었다면 그 문제를 그냥 가지고 하나님 밖에서 그 문제를
가지고 하루의 휴식을 취하는 잠자리 안으로 들어가서 이렇게 하나님 밖에 있는 삶의 문제를 해결치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풍성함과 부유함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안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풍성과 부유함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바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그 기도를 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통하여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도록 기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할 때 우리가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루의 삶을 통해서 문제없이 삶을 살지 않는 자는 거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문제가 있고 사람을 만나다 보면 여러 가지 충돌과 분쟁과 그러한 다툼으로 인하여 마음속에 미운 마음 때로는 악한
마음 때로는 분노하는 마음 이런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기도하기를 하나님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고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소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허락하여 주시고,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삶을
통해서 분쟁과 충돌과 다툼을 통하여 미워하는 사람이 있었고 내 가족, 내 아내, 내 부모, 내 자식 미워함이 있었는데 내가
내 아내를 용서하듯이 내가 나에게 이렇게 악한 행위를 한 그 자를 완전히 용서하듯이 주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를
그러한 분쟁과 충돌과 다툼으로 인하여 미워하는 마음, 분노하는 마음, 화난 마음, 그런 시험에 다시 들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안에 있는 자신이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풍성함과 부유함 안으로 들어가서 그 하나님의 풍성함을
소유받을 수 있는 기도의 삶의 길로 우리가 가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단순한 사람과의 다툼의 문제를 통해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TV를 통해서 또는 핸드폰을 통해서 나타내지는 어떤 영화들을 통해서 거기에 나타나는 광고들나 유튜브같은 매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여러 현상들을 통해서 하나님 안이 아닌 하나님 밖에서 미혹될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여러 가지 세상에 살면서 접하는 특별히 미디어나 유튜브나 이러한 뉴스거리들을 통해서도 우리가 종종
미혹되어지는 일들이 생겨짐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을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문을 통하여 주님 안으로 들어가도록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매일매일 매시간 주님과 함께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주님의 안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풍성함과
부유함을 우리 것으로 소유케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삶을 통해서 다툼과 충돌과 분쟁으로 인하여 흐트러진 마음을 주님 안에서 해결하기 위하여 아버지여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다 용서하오니 주님께서도 저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면 된다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아버지여 내가 오늘을 살면서 부딪혀 온 모든 그런 흐트러진 잘못된 것들, 허물들 죄들 다툼들, 충돌들, 미워하는 것들, 화내는 것들 이런 것들을 다 용서하오니 아버지여 제가 아버지께 생각나는 거 생각나지 아니하는 모든
것들을 모두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라는 것입니다.
포괄적으로 모든 사람을 내가 용서하였듯이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저의 모든 죄들을 오늘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용서하여 주옵
소서 라고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 밖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부유하시고 풍성하신 주님께서 허락
하신 하나님 안에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허락하신 성령님이신 생명 공급을 우리가 소유받게 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 주기도문은 생명 공급을 받는 문제 때문에 중요하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생명 공급을 받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기 위하여
바로 이 5절 말씀을 통하여 친구여 떡 3개만 빌려주게 하고 떡 세 덩이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11:11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어떤 사본에,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11:12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11:13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라고 바로 이 떡 세 덩이로 나타나진 이 생명 공급이 성령님으로 암시되고 있는데 이 성령님으로 암시된 이 부유하고
풍성한 이 생명 공급은 생선과 알로 기록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통하여 주님 안으로 들어가는 기도를 할 때 우리는 주님의 그 부유함과
풍성함을 가지고 있는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가 생명을 공급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부께서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님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심으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가장 가치
있고 참으로 좋은 선물은 바로 다름 아닌 성령님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왜 성령님이 가장 참으로 좋은 선물이죠? 생명 공급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생명 공급은 우리가 아버지 안에 있는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 안에 들어가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그 이 세 분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그 부유함과 풍성함, 하늘에 계신 모든 영적인 것들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 것이 될 수 있는 희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참으로 좋은 선물이 성령님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 뒤에 자신의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받아라 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장면이
요한복음 20장 22절에 기록되고 있는데요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0: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래서 주님께서 이 수많은 말씀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미 이루어진 계명들이
있습니다. 이 이루어진 계명들은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받아 들어야 되고 아직 이루어지지 아니한 계명들, 차후에 이루어질
그 계명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구하는 것을 이 누가복음 11장 9절을 통해서 11: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라고 이렇게 계시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짤막한 주님의 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을 때 주님께서는 지속적으로 계속적으로 반복적으로
기도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 때문에 또한 계시의 말씀을 주신 것이 바로
11: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
11:6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11:7 저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11: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찌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여러분 그 사람이 왜 괴롭습니까?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에 대한 얘기를 나를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나에게 그렇게 막 문을 두드리면서 시끄럽게 하지 말라 왜 그렇습니까? 가족들 모두가 부모를 비롯해서 아버지 어머니,
자녀들 심지어는 그 아이들까지도 어떤 경우에는 종들까지도 같은 방에서 기거하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시끄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무리 시끄럽고 그 좋지 않은 환경과 상황이라 할지라도 끈덕진 기도의 요청함을 통하여 소용대로
필요대로 요청한 대로 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 필요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받는데 그 떡 세 덩이는 바로 성령님의 부요함과 풍성함을 나타내고 있는 떡 세덩이 인
것입니다. 이 떡 세덩이가 바로 생명 공급인 바로 성령님의 풍성을 계시하고 있죠. 이 떡 세 덩이는 다름 아니라 떡덩이와
생선과 알들인 것입니다. 떡은 어디에서 나타나고 있습니까? 떡은 여러분들 세상의 땅의 소산물을 통하여 떡이 소출되는
것입니다. 땅의 풍성함을 나타내는 것이 떡덩이라면 생선은 바다에서 산출되는 것입니다.
바다의 풍성함을 나타내는 것이 생선이에요. 알들은 하늘을 나는 공중의 새들.
그래서 공중과 땅 위에 있는 곳의 모든 풍성을 나타내는 것이 알들이므로 말미암아 이 떡덩이와 생선과 알들은 땅과 바다와
공중의 모든 풍성함과 부요함을 나타낸 것이므로 말미암아 이것은 땅 하늘, 바다 서로 각기 다른 종류의 풍성함을 가지고 계신
분이 바로 성령님으로 나타난 떡 덩이 곧 생선과 알의 총체가 다름 아닌 성령님인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귀한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이 떡덩이는 사람들을 성장하고 자라게 하고 이렇게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먹이고 기르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9절과 10절에서 구하라 너에게 주실 것이요.찾으라 찾을 것이오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오, 두드린 이에게 열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구하는 것은 뭐고, 찾는 것은
뭐고, 두드리는 것은 무엇인가요? 예 구하는 것은 우리가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아직까지도 주님의 계명들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미래에 성취되어질 그러한 일들에 대해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구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구하는 것은 평범한 방법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지 못할 미래의 것들이기 때문에 평범한 방법으로 기도하는 것이 구하는 것이라면 찾는 것은 내가 눈을
똑바로 뜨고 특별한 장소로 가서 특별한 방법으로 탄원하는 것이 찾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찾는 것과 더불어 두드리라는 것은 직접 가서 문을 막 꽝꽝꽝 다급하고 시급하고 긴급한 어떤 상황이 연출되어졌을 때
두드림을 갖게 되는데요 .이 두드리는 것은 가장 가까운 방법으로 그 문에 이르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방법으로 그 문에 이르러서 그 문을 열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부터 13절까지 주님께서는 생선 대신 뱀을 줄 자가 어디 있고, 알 대신 전갈을 줄 자가 어디 있겠느냐 하물며
아버지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땅의 풍성함과 바다의 풍성함과 바로 이 땅과 바다와 공중의 풍성함을 나타내는
알을 주지 않겠느냐라고 얘기함으로 말미암아 바로 생선 대신에 뱀을, 알 대신에 전갈을 줄 자가 어디 있겠느냐라고
얘기함으로 말미암아 뱀과 전갈에 대한 얘기를 우리에게 이렇게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뱀에 대한 얘기는 바로 사탄의 사자들인 타락한 천사들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뱀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고요.
전갈은 사단의 뜻대로 도구가 되어서 일하는 사단의 귀신들을 의미하는 것이 전갈인 것입니다.
뱀은 사단과 타락한 천사들이라면 바로 3분의 1을 말하는 것이죠. 전갈은 사단의 뜻을 쫓아 사단의 왕국을 건축하기 위해서
도모하는 악한 영들인 귀신들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문을 통해서 생명 공급을 반드시 받는데 그 생명 공급이 바로 각기 서로 다른 종류의 풍성인 땅의
풍성함과 바다의 풍성함과 공중과 땅 위에 있는 것의 풍성함인 알과 떡덩이와 생선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떡덩이와 이 생선과 알들은 바로 땅과 바다와 공중의 풍성함을 나타내는 서로 각기 다른 종류의 풍성함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떡덩이와 생선과 알의 총체가 다름 아닌 성령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이 성령님은 떡덩이와 생선과 알의 총체인데 풍성함의 총체 각기 서로 다른 종류의 풍성함인데 이 성령님은 모든 것의 모든 것 곧 인간이 필요로 하고 요청하고 요구하고 간청하는 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 하나님의 선하신 방법대로
하나님께서 하늘에 있는 영적인 것들 땅에 있는 모든 좋은 것들 가운데 모든 것들이 바로 다름 아닌 성령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령님을 통하여 생명 공급을 소유받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포기하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그 성령님 안에 있는 생명 공급의 부유함과 풍성함이 총체적으로 담겨 있는 떡덩이와
생선과 알을 소유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통하여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기도가 아주
중요하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기도한 후에 하나님 안에 있는 자들로서 우리는 떡덩이가 되시고 생선이 되시고 알로 암시되어진 생명
공급이신 성령님을 우리가 소유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의 모든 풍성한 것들 아버지께서 준비하신 모든 하늘의 영적인
것들, 땅의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바로 이 땅과 바다와 공중의 풍성함의 총체인 성령님을 소유받음으로 말미암아
생명 공급을 우리가 받을 수가 있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안으로 기도하게 되면 우리는 성령님을 하나님
안에 이끌어져서 있게 됨으로 말미암아 생명 공급이신 성령님을 소유받을 수 있다는 것을 특별히 계시하고 있는 이 누가복음
11장의 말씀은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떡덩이, 생선, 알로 상징된 이 부요함과 풍성함을 상징하고 있는 이 생명 공급은 우리 자신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고 우리와 연관되어져 있고 이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돌봄 아래에 있는 자들
까지도 풍요롭게 하고 살찌게 한다는 것을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기도할때에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안이 아닌 하나님 밖에서 기도하는 것이라면 그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의 기도가 우리를 하나님 안으로 옮겨 놓지 아니한 그런 기도는 잘못된 기도로써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 공급의 총체가
되시는 떡덩이와 생선과 알을 우리에게 생명 공급으로 소유 할수 있도록 할 수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응답을 받지 못한다라는 얘기인 것이죠. 그래서 이 하나님 안으로 옮겨 놓지 못한 기도는 잘못된 기도다.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다. 그것은 소용이 없는 기도다. 하나님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기도다 라는 것을 여러분들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통제하는 원칙 가운데 가장 중요한 원칙은 우리가 하나님 안으로 옮겨놓는 기도 그것이 가장 중요한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고 나라에 임하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이 여기에서는 우리 부모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직장 동료일 수도 있어요.내 가족들일 수도 있습니다. 내 아내일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자들을 내가 용서하여 준것 같이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아버지여 저를 그러한 시험에 다시는 빠져들게 하지 마옵소서라는 이 기도의 이 통제하는 바로 이 주님 안으로 들어가는 이 기도의 원칙 안에서 하는 기도를 통해서만이 우리가 하나님 안으로 옮겨놓아짐으로 말미암아 이 풍요로움 바로 이 떡덩이와 생선과 알의 총체인 성령님, 서로 각기 다른 종류의
풍성함과 부유함을 우리에게 부여해 주시는 생명 공급이 되시는 성령님을 소유받을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기도를 해야 한다라는 이러한 인식 하에 이런 기도의 통제 원칙을 가지고 기도하게 되면
세상과 죄와 사단이 아무리 우리를 미혹케 할지라도 우리가 그 시험에 빠지지 않고 그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안으로 옮겨지는 그러한 방식으로 기도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기도문을 인식하고 여러 참고 문헌이나
또는 여러 교제의 말씀을 통해서 이 주님의 기도문에 대한 말씀을 인식한 후에 주님의 기도문을 반복해서 기도하기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기도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많은 기도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할 때 뭐 5시간 10시간 이렇게 한다는데 여러분 우리가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안으로
가져가서 하나님 안에 있는 풍성함과 부유함이 있는 생선과 알과 떡덩이의 총체인 바로 서로 각기 다른 종류의 풍성함을 가지신 그것도 생명 공급이 되시는 바로 이 성령님 안으로 들어가서 성령님을 통하여 부여해 주시는 그 성령님 안으로 들어가서 그 생명 공급을 부여받는 일이 가장 올바른 종류의 기도인데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니라 주님의 기도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올바른 종류의 기도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도록 기도하는 것인 주님과 더불어 주님과 함께하는 기도인 주님의 기도문이며 바로 이러한 주님의 기도문을 통하여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기도를 할 때 우리는 바로 아버지와 아들과 영, 하나님의 부요하시고 정말 풍요로우신 그분의 그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안에 체현된 부요함과 풍성함과 풍요로움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최고의 좋은 선물이 성령님이라는 것입니다.
생명 공급의 주가 되시는 성령님을 우리가 우리의 생명 공급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 기도문을
통하여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기도를 통하여 우리 자신을 자라게 하고 우리 자신을 기르게 하고 성장하게 하고 양육하게 하여서 우리 자신이 좋은 열매를 맺고 또한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이들까지도 돌봄 아래에 있는 다른 모든 자들까지도 성장하고 양육하게 하여서 좋은 열매들을 맺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의 교제의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주기도문에 대하여 막연하게 의미를 모른채 앵무새처럼 읖조리기만 하였는데 정말 놀랍고도 이렇게 중요하고 깊은 의미가 담겨있는 말씀인지를 몰랐습니다. 특별히 누가복음 11장 2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 주기도문과 떡덩이 3개 생선과 알에 대한 말씀과 또 구하라, 찿으라,두드리라에 관한 말씀과 벙어리된자를 마귀를 쫓아내신 장면까지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다른말씀도 너무나 중요하지만 이말씀은 정말로 총체적인 각기다른종류의 주님의 풍성함과 부요함이 넘치는 생명공급의 말씀이셨습니다. 늘 새롭고 풍성하신 주님의 생명공급이신 말씀을 오늘도 저에게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드리며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기도를 하게 될때 생명공급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 영 하나님이신 삼일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풍성하게 누리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희년이며 참 안식이며 그러할때 벙어리 되었던 우리가 하나님을 말로 표현해 낼수 있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래서 끝에 벙어리된자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생명공급이신 성령님을 하나님안으로 들어갈수있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밖에 있는 기도를
할때마다 이상하리 만치 하나님을 입술로 표현해 내지 못하고 있는 저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가 바로 제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기도를 하지 못하였고 사단의 세력에 눌려 벙어리가 되어 있었던 것이였습니다.
이 말씀을 정리하면서 시편 다윗의 기도가 생각나 제마음이 그마음과 같아서 함께 올려드립니다.
시편:51:10 오 하나님이여, 내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바른 영을 새롭게 하소서.
51:11 주의 임재로부터 나를 내어쫓지 마시고 주의 거룩한 영을 내게서 거두어 가지 마소서.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주의 자원하는 영으로 나를 붙드소서.
51:13 그리하면 내가 범법자들에게 주의 길을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리이다.
51:14 오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구해 주소서. 주는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내 혀가 주의 의를 소리 높여 노래하리이다. 51:15 오 주여, 주께서는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그리하면 내 입이 주를 찬양함을 보이리이다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게 되시는 모든 분들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통하여 성령님의 풍성함과 부요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