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과 아이의 이야기
(1)
요사이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대하다 보면 머리가 빙빙 돌고 현기증이 나서 도저히 참기 힘들 지경이다.
돈 잘버는 의사가 더 벌려고 몇십, 몇백억 원어치 땅투기를해서 수사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외삼촌이 조카를 유괴하여 살해한 후 누나 집에 돈을 요구하다가 구속되었다. 통화를 빨리 끝내라고 독촉한다고 해서 아기 업은 여인을 그 자리에서 칼로 찔러서 살해하였다고 한다.
이토록 끔찍한 뉴스를 접하면 망연자실할 뿐만 아니라, 인생의 허무함을 더욱 짙게 하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한 지경이다.
어쩌다 이 모양이 되고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하고 곰곰이 되외이다 보면 아무런 해결책도 떠오르지 않고 깜깜 절벽인 것만 같아 한숨밖에 나오는 것이 없다.
과연 어디의 무엇이 잘못되었길래 오늘 우리의 삶은 진흙 구덩이 속에서 한없이 신음해야만 하는 것일까? 정치인들이 정신 차리지 못하고 이기적인 욕심에 눈이 어둡기 때문일까? 아니면 기업인이 노동자 생각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 자기 배만 불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일까?
제아무리 골머리 썩이며 생각에 몰두해보아도 이 커다란 혼란의 근원적인 책임은 사회구성원 각자에게 있음이 분명하다는 결론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찾을 수 없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가 남을 탓하고 남을 헐뜯기에 바빠서 자기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것 같다. 너나 할 것 없이 마치 물질이 삶의 모든 고뇌와 번민을 해결해줄 수 있는 요술단지라도 되는 듯 한결같이 물질(돈)을 향해서 숨쉴 사이도 없이 달려가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은 진정한 삶의 의미를 스스로 갖출 때 비로소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다. 남과 자기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구분할 줄 모르는 어른은 겉모습만 어른이고 속은 여전히 미숙한 아이에 지나지 않는다.
(2)
콜버그라는 심리학자는 인간의 도덕성 발달단계를 7단계로 본다.
첫 번째 단계는 처벌을 피하고 순종하는 단계로서, 인간과 사물의 가치를 구분하지 못한다. 두 번째 단계는 이기적이며 상대주의적인 시기이다. 삶을 욕구충족 과정으로 보며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동이 정당하다고 여긴다. 보통 일곱 살까지의 아이들은 첫 번째 및 두 번째 단계에 머문다. 세 번째 단계는 남의 칭찬을 받으려고 하며, 가정적이고 남과의 공감을 중히 여긴다. 네번째 단계는 권리와 의무를 존중하고 도덕과 종교의 질서를 가치있다고 여긴다. 열세 살 정도의 아이들은 세 번째 및 네 번째 단계에 자리잡는다. 다섯 번째 단계는 사회복지는 양심에 따라 행동하며 개인의 인격을 존중한다. 일곱 번째 단계는 영원한 삶을 추구하며 인간과 우주의 통일을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나 콜버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세 살 정도의 수준에서 더이상 발달하지 못하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다섯번째, 여섯번째 및 일곱번째의 단계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콜버그의 말은 단지 심리학적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특정한 사회를 놓고 볼 때, 일곱 살짜리 사회도 있고, 열세 살짜리 사회도 있으며 또 성숙한 어른의 사회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보면 우리 사회는 일곱 살도 채 되지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처벌을 피하고 상을 받으려고 하기는커녕, 처벌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거의 본능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을 부정하기 힘든 실정이다.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만이 열세 살짜리 행동을 한다면 몰라도, 가장 많이 배우고 가장 많이 가진 사람들이 대낮에 버젓이 일곱 살짜리보다도 못한 행동을 일삼는 것을 볼 때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3)
"가장 고귀한 것은 드물고 어렵다"고 말한 철학자가 있다. 사실 행복이란 우리들에게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행복을 "가장 작은 점"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행복이란 과거의 것도 아니며 미래의 것도 아니고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의 보람있는 삶을 제외하면 행복이란 무의미하다. 돈이나 물질 그리고 권력이나 명예는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있어도 그것들 자체가 행복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들에게는 모든 것이 뒤집혀 있다. "착각은 자유"라고 하는 농담도 있지만, 실은 착각이 삶을 무의미하게 한다. 참답게 성숙하지못한 인간, 곧 미숙한 아이들은 멋대로 착각하여 끊임엇이 방황한다. 그러나 어른이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그러한 어른은 결코 성숙한 인격을 소유할 수 없다.
아이들은 인간과 사물의 가치를 혼동할 뿐만 아니라 외적인것에만 몰두한다. 아기들을 보면, 아기들은 고유한 인격이라든가 삶의 가치 등에 관해서 아직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청소년은 자기 자신 속에 갇혀서 헤어날 줄 모르므로 이기주의에 물들어 있다. 자신이 천재일지도 모른다든가 아니면 이 세상의 모든 고뇌는 자기만이 짊어지고 있다는 등의 생각에 몰두했던 기억은 청소년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같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지금 이날까지 우리들은삶의 무거운 시련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성숙한 어른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 맛보았으므로 미숙한 아이의 의식을 과감히 벗어던질 줄 아는 지혜와 용기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시점에 와 있다.
또한 미숙한 아이의 의식을 버리고 성숙한 어른의 의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각자의 실존적 삶의 결단만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