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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목간
―총 449점 가운데 판독 가능 총 117점
나종혁
진로연 소장
<목차>
1. 인천 계양산성 목간(총 2점)
(1) 인천 계양산성 논어 목간 1
(2) 인천 계양산성 논어 목간 2
2. 양주 대모산성 목간(총 2점)
(3) 양주 대모산성 부적 목간
(4) 양주 대모산성 기묘년 목간
3. 금산 백령산성 목간(총 1점)
(5) 금산 백령산성 목간
4. 부여 관북리 목간(총 329점)
(6) 부여 관북리 목간 23
(7) 부여 관북리 목간 27
(8) 부여 관북리 목간 28
(9) 부여 관북리 목간 36
(10) 부여 관북리 목간 37
(11) 부여 관북리 목간 58
(12) 부여 관북리 목간 63
(13) 부여 관북리 목간 283
(14) 부여 관북리 목간 285
(15) 부여 관북리 목간 286
(16) 부여 관북리 목간 288
(17) 부여 관북리 주도성 목간
(18) 부여 관북리 목간 289
5. 부여 구아리 목간(총 13점)
(18) 부여 구아리 목간 31
(19) 부여 구아리 사언시 목간
(20) 부여 구아리 목간 88
(21) 부여 구아리 목간 89
(22) 부여 구아리 목간 90
(23) 부여 구아리 목간 93
(24) 부여 구아리 적미 목간
(25) 부여 구아리 목간 109
(26) 부여 구아리 후부 목간
6. 부여 동남리 궁남지 목간(총 8점)
(27) 부여 동남리 궁남지 49-2번지 목간
(28) 부여 동남리 궁남지 117번지 서부 후항 목간
(29) 부여 동남리 궁남지 117번지 목간 궁1
(30) 부여 동남리 궁남지 117번지 연습 목간 궁2
7. 부여 쌍북리 목간(총 27점)
(31) 부여 쌍북리 목간 316
(32) 부여 쌍북리 목간 317
(33)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85-8
(34)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87
(35)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91
(36)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94
(37)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95
(38)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96
(39)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105
(40) 부여 쌍북리 소작 장부 목간
(41) 부여 쌍북리 목간 173-8번지-122
(42) 부여 쌍북리 목간 173-8번지-194
(43) 부여 쌍북리 목간 173-8번지-197
(44) 부여 쌍북리 173-8번지-223
(45) 부여 쌍북리 목간 184-11-71
(46) 부여 쌍북리 목간 201-4번지-1
(47) 부여 쌍북리 목간 201-4번지-2
(48) 부여 쌍북리 328-2번지-목간A
(49) 부여 쌍북리 328-2번지-목간B
(50) 부여 쌍북리 구구단 목간
(51) 부여 쌍북리 뒷개 목간-112
(52) 부여 쌍북리 외량부철 목간
(53) 부여 쌍북리 정사년 목간
(54) 부여 쌍북리 여 목간
(55) 부여 쌍북리 대불호기 목간
(56) 부여 쌍북리 논어 목간
8. 부여 석목리 143-16번지 유적 목간(총 2점)
(57) 부여 석목리 143-16번지 유적 목간 1
(58) 부여 석목리 143-16번지 유적 목간 2
9. 정읍 고사부리성 목간(총 1점)
(60) 정읍 고사부리성 상부 상항 목간
10. 남원 척문리산성 목간(총 6점)
(61) 남원 척문리산성 상항 목간
(62) 남원 척문리산성 중항 목간
(63) 남원 척문리산성 장덕 목간
11.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총 29점)
(64) 부여 능산리 사지 남근형 목간
(65) 부여 능산리 사지 296
(66)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297
(67)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298
(68)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299
(69)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0
(70) 부여 능산리 사지 육부오방 목간
(71)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2
(72)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3
(73)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4
(74) 부여 능산리 사지 숙세가 목간
(75)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6
(76)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7
(77)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8
(78)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9
(79)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0
(80)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1
(81)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2
(82)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3
(83)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4
(84)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1
(85) 부여 능산리 사지 사면 목간
(86)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3
(87)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4
(88)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5
(89)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6
(90)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7
(91)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9
12. 나주 복암리 목간(총 41점)
(92) 나주 복암리 목간 1
(93) 나주 복암리 목간 2
(94) 나주 복암리 모라 목간
(95) 나주 복암리 목간 4
(96) 나주 복암리 목간 5
(97) 나주 복암리 목간 6
(98) 나주 복암리 목간 7
(99) 나주 복암리 목간 8
(100) 나주 복암리 목간 9
(101) 나주 복암리 목간 10
(102) 나주 복암리 목간 11
(103) 나주 복암리 목간 12
(104) 나주 복암리 목간 13
13. 익산 미륵사지 목간(총 2점)
(105) 익산 미륵사지 수사 목간 318
(106) 익산 미륵사지 수사 목간 319
1. 인천 계양산성 목간(총 2점)
(1) 인천 계양산성 논어 목간 1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1면)
자천은 군자와 같은 사람이다
(2면)
저는 아직 믿지 못합니다
(3면)
염유가 인자한가 알지 못한다
(4면)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
(5면)
재여에 이르러 이를 고친다 <끝> <2026년 8월 2일>
* 4~5세기경 백제 시대 한성 시대 인천 계양산성 논어 목간
*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일명 논어 목간이라고 한다. 국내 최초의 5각 다면 목간이다.
* 선문대 고고연구소 판독이며,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와 윤선태 판독은 “(1면) 賤君子哉若人魯/(2면) 吾斯之未能信子說/(3면) 也不知其仁也求何/(4면) 也聞一以知十賜也/(5면) 於予與改是子曰吾”이다.
* 2006년 인천 계양산성 내부 저수 시설인 집수정에서 백제 한성 시대의 토기 ‘원저단경호’와 같이 논어 목간이 출토되었다. 같이 출토된 항아리가 4~5세기 백제 한성 시대의 전형적인 토기로 확인됨에 따라, 계양산성 목간도 백제 한성 시대로 추정되었다. 6세기 중반 계양산성이 신라의 한강 유역 점령기 신라에 의해 점유되었다는 역사적 사실로, 신라가 백제 토기에 목간을 남긴 것으로 유추하기도 한다. 그러나 백제 항아리가 1~2세기의 시대적 격차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4~5세기 백제 한성 시대 토기와 같은 시대로 목간의 연대가 추정된다. 주변에서 발굴된 나무 조각들의 연대 측정에서도 400년대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논어 목간은 400년대의 백제 한성 시대 목간이라고 할 수 있다. 논어 목간은 현재 인천계양산성박물관에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 목간의 길이는 13.8cm이며, 소나무로 만든 5각형 목간이다. 2004~2006년 3차에 걸친 선문대고고연구소의 조사에서 2006년 발굴되었으며, 당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이라고 발표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우리나라의 논어 목간은 이제까지 총 4점이 발굴되었으며, 평양 정백동 논어 목간, 부여 쌍북리 논어 목간, 김해 봉황동 논어 목간, 인천 계양산성 논어 목간이 있다. 쌍북리 논어 목간은 학이 편이며, 봉황동 논어 목간과 계양산성 논어 목간은 공야장(公冶長) 편이다. 이들 가운데 계양산성 목간은 400~480년 4~5세기경으로 연대가 추정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이다.
仁川桂陽山城論語木簡
作者 未詳
(一面)
子賤君子哉若人魯無
(二面)
日吾斯之未能信子說子曰
(三面)
也不知其仁也求也何
(四面)
何敢望回回也聞一以
(五面)
何行於予與改是子曰吾未 <끝>
* 원문 출전: 계양산성 목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31; 인천 계양산성,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8-18;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2) 인천 계양산성 논어 목간 2
작자 미상
□庚子書□ <끝>
* 4~5세기경 백제 시대 한성 시대 인천 계양산성 논어 목간 2
*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일명 논어 목간이라고 한다. 국내 최초의 5각 다면 목간이다.
* 선문대 고고연구소,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윤선태 판독은 “□□子□□”이다.
* 출토지는 인천 계양구 계산2동 산 8번지외 14필지이다. 2006년 논어 목간과 같이 인천 계양산성 집수정에서 출토되었으며, 길이 49.3cm의 두 번째 목간은 중간에 ‘子’ 자 한 글자만 확인이 되지만, 첫 번째 목간과 유사한 논어 목간으로 논어의 내용을 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제2 목간은 상단부가 원통형이고, 하단부는 5각형 다면체로 되어 있다. 글자는 하단부에서 7자의 묵흔 사이에서 판독되었다.
* 같이 출토된 항아리가 4~5세기 백제 한성 시대의 전형적인 토기로 확인됨에 따라, 계양산성 목간 1과 2도 백제 한성 시대로 추정되었다. 4~5세기 백제 한성 시대 토기와 같은 시대로 목간의 연대가 추정된다. 주변에서 발굴된 나무 조각들의 연대 측정에서도 400년대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논어 목간은 400년대의 백제 한성 시대 목간이라고 할 수 있다. 논어 목간은 현재 인천계양산성박물관에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 2004~2006년 3차에 걸친 선문대고고연구소의 조사에서 2006년 발굴되었으며, 이 두 개의 논어 목간은 당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인 것으로 주장되었다(김태식 기자, 「“계양산성 논어 목간은 400년대 백제 작품”」, 『연합뉴스』, 2008-11-12 참조).
* 원문 출전: 인천 계양산성,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8-18 참조.
2. 양주 대모산성 목간(총 2점)
(3) 양주 대모산성 부적 목간
나종혁 판독
작자 미상
尸尸尸夫金 也 <끝>
* 5세기 439년경 백제 시대 한성 시대 양주 대모산성 부적 목간
*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부적 목간
* 2025년 11월 기호문화유산연구원이 경기도 양주시와 공동으로 양주 대모산성 내부 아래 저수지 백제 문화층에 대한 양주 대모산성 제15차 유적 발굴 조사에서 3점의 목간이 발굴되었다. 목간에 기묘년(己卯年)이라는 묵흔이 확인되어 439년경 백제 시대 비유왕 13년 목간으로 추정된다.
* 김예나 기자, 「양주 대모산성서 1500년 전 ‘기록’ 나왔다…“가장 오래된 목간”」, 연합뉴스, 2025-11-20 참조.
(4) 양주 대모산성 기묘년 목간
나종혁 판독
작자 미상
夫夫夫己卯年 夫夫夫白也 <끝>
* 5세기 439년경 백제 시대 한성 시대 양주 대모산성 기묘년 목간
*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
* 2025년 11월 기호문화유산연구원이 경기도 양주시와 공동으로 양주 대모산성 내부 아래 저수지 백제 문화층에 대한 양주 대모산성 제15차 유적 발굴 조사에서 3점의 목간이 발굴되었다. 목간에 기묘년(己卯年)이라는 묵흔이 확인되어 439년경 백제 시대 비유왕 13년 목간으로 추정된다.
* 양주 대모산성 금물노 목간, 구글 Gemini, 2026-08-18; 김예나 기자, 「양주 대모산성서 1500년 전 ‘기록’ 나왔다…“가장 오래된 목간”」, 연합뉴스, 2025-11-20 참조
3. 금산 백령산성 목간(총 1점)
(5) 금산 백령산성 목간
작자 미상
去行二百
以傭 <끝>
* 538~660년 백제 시대 사비 시대 금산 백령산성 목간
* 발굴지는 충남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건천리 사이 백령고개 산봉우리 백령산성이며, 소장처는 국립부여박물관이다.
* 2003년 충남 역사문화연구원이 금산 백령산성 1, 2차 발굴 조사에서 금산 백령산성 목관창고 내에서 출토되었다.
백제 금산 백령산성 목간은 총 1점이며,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판독은 “長二百/以滴”이고, 윤선태 판독은 “□行二百/以□”이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4. 부여 관북리 목간(총 329점)
(6) 부여 관북리 목간 23
작자 미상
人心草 <끝>
* 54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 백제 최초의 목간이며, 충남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목간 329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목간 발굴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세상의 모든 역사, 「부여 관북리 목간 경신년 계해년이 540년, 543년이라고 댄 근거」, <http://historylibrary.net/>, 2026-08-24 참조
(7) 부여 관북리 목간 27
작자 미상
庚申年十一月下部 <끝>
* 540년 백제 시대 사비 시대 경신년 부여 관북리 목간 27
* 백제 최초의 목간이며, 부여 관북리 경신년 목간이라고 칭할 수 있다. 충남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목간 329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목간 발굴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세상의 모든 역사, 「부여 관북리 목간 경신년 계해년이 540년, 543년이라고 댄 근거」, <http://historylibrary.net/>, 2026-08-24 참조
(8) 부여 관북리 목간 28
작자 미상
癸亥年正月送 <끝>
* 543년 백제 시대 사비 시대 계해년 부여 관북리 목간 28
* 백제 최초의 목간이며, 부여 관북리 계해년 목간이라고 칭할 수 있다. 충남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목간 329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목간 발굴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세상의 모든 역사, 「부여 관북리 목간 경신년 계해년이 540년, 543년이라고 댄 근거」, <http://historylibrary.net/>, 2026-08-24 참조
(9) 부여 관북리 목간 36
작자 미상
餘首白參 <끝>
* 54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36
* 백제 최초의 목간이며, 충남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목간 329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목간 발굴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세상의 모든 역사, 「부여 관북리 목간 경신년 계해년이 540년, 543년이라고 댄 근거」, <http://historylibrary.net/>, 2026-08-24 참조
(10) 부여 관북리 목간 37
작자 미상
玄曲愷 <끝>
* 54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37
* 백제 최초의 목간이며, 충남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목간 329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목간 발굴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세상의 모든 역사, 「부여 관북리 목간 경신년 계해년이 540년, 543년이라고 댄 근거」, <http://historylibrary.net/>, 2026-08-24 참조
(11) 부여 관북리 목간 58
작자 미상
馬卅二 <끝>
* 54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58
* 백제 최초의 목간이며, 충남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목간 329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목간 발굴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세상의 모든 역사, 「부여 관북리 목간 경신년 계해년이 540년, 543년이라고 댄 근거」, <http://historylibrary.net/>, 2026-08-24 참조
(12) 부여 관북리 목간 63
작자 미상
仁賢 <끝>
* 54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58
* 백제 최초의 목간이며, 충남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목간 329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목간 발굴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세상의 모든 역사, 「부여 관북리 목간 경신년 계해년이 540년, 543년이라고 댄 근거」, <http://historylibrary.net/>, 2026-08-24 참조
(13) 부여 관북리 목간 283
작자 미상
1면
攻自嵎城□尸民軍
以功夫成而□□□
2면
□□自中部□
南吉次中城自□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 백제 최초의 목간이며, 충남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목간 329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목간 발굴이다.
* 백제목간 소장품조사자료집 판독.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은 “中阝/本我自”이며, 윤선태 판독은 “攻舟嶋城 □城/ 攻負□城□□□/□/□自中□/□□久□ □城□”이다.
* 출토지는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연지이며, 소장처는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이다. 1982년 국립부여박물관 발굴 조사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연지에서 출토되었다.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부여 관북리 목간, 고대 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8-25 참조
(14) 부여 관북리 목간 285
작자 미상
<前面>
中方向殳 □□
<後面>
二月十一日兵与記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 백제 최초의 목간이다.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15) 부여 관북리 목간 286
작자 미상
夷嵎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 백제 최초의 목간이다.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16) 부여 관북리 목간 288
작자 미상
下賤相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 백제 최초의 목간이다.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17) 부여 관북리 주도성 목간
작자 미상
<前面>
攻舟嶋城中阝城軍
攻負□城中阝禾質
<後面>
馬吉次 本城自中可□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주도성 목간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원문 출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18) 부여 관북리 목간 289
작자 미상
丑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 백제 최초의 목간이다.
*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 발굴보고 III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부여 관북리 목간, 고대 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8-25 참조
5. 부여 구아리 목간(총 13점)
(19) 부여 구아리 목간 31
작자 미상
(一段)
□□ □□ □□
(二段)
不戶
(三段)
□□服 □□□
(四段)
并監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 판독은 “卅枚/幷□”이다.
* 소장처는 백제고도문화유산단이며, 2010년 부여 구아리 유적 수로 유구에서 출토되었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 총 13점 가운데 19번 목간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로 확인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은 총 13점이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20) 부여 구아리 사언시 목간(夫餘四言詩木簡)
나종혁 국역
사비인(泗沘人) 원작
보내신바 서신이 온
까닭에 삼가 수고했소
이 빈궁하고 천한 곳에서
하나도 가진 게 없이
일도 맡지 못했으니
좋고 그른 일 성내지 마소
번거로워도 음덕을 입은 후
영원히 잊지 아니하리니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사언시 목간
* 일명 서신 목간, 청탁 목간, 사언시 목간이라고 불린다.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 판독은 “所違信來以敬辱之於此貧薄/一无所有不得仕也 莫睄好耶荷陰之後/永日不忘”이고, 심상육, 김영문 판독은 “所遣信來 以敬辱之 於此貧薄 一無所有 不得仕也 莫瞋好邪 荷陰之後 永日不”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2010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발굴조사로 출토된 백제 목간 13점 가운데 하나이다. 청탁 목간이라고도 하며 서신 목간이라고도 한다. 1,400년 전 백제 시대 최초의 답신 형식 서신문 사언시 고체시이며, 목간의 크기는 길이 25.2cm, 너비 3.5cm, 두께 0.3cm이다. 목간의 사언시는 전면 4언 3구, 후면 4언 5구, 총 4언 8구 32자이고, 이 가운데 앞의 5구는 큰 글씨, 뒤의 3구는 작은 글씨로 쓰였다(『한국사데이터베이스』 참조).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은 총 13점이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夫餘四言詩木簡
泗沘人
(全面)
所遣信來以敬辱之於此質簿
(後面)
(一段)
一无所有不得仕也
(二段)
[左]
莫睄好耶荷陰之後
[右]
永日不忘 <끝>
* 원문 출전: 김태식 기자, 「벼슬자리 주십시오... 백제 편지목간 발견」, 『연합뉴스』, 2013-05-22, <https://www.yna.co.kr/>.
(21) 부여 구아리 목간 88
작자 미상
<前面>
□等 堪彼□牟
<後面>
□□□□□□□□□□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 판독은 “□等堪波禮牟”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은 총 13점이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22) 부여 구아리 목간 89
작자 미상
見識耳者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 판독은 “見諸有者”이다.
* 소장처는 부여군문화유산보존센터 현 백제고도문화유산단이며, 2010년 구아리 유적 수로 최하층 유구에서 출토되었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은 총 13점이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23) 부여 구아리 목간 90
작자 미상
<前面>
者 中卩奈率得進 下卩韓牟札
<後面>
各一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은 “者 中卩奈率得進/下卩韓牟禮/若”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은 총 9점이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24) 부여 구아리 목간 93
작자 미상
□□□□眞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
* 소장처는 백제고도문화유산단이며, 2010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 유적 유구 웅덩이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은 총 13점이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25) 부여 구아리 적미 목간
작자 미상
太公西美前卩赤米二石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일명 적미(赤米, 붉은 쌀) 목간, 부찰 목간이라고 불린다.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 판독은 “太□□實前卩赤米二石”이다.
* 소장처는 백제고도문화유산단이다. 2010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 유적 수로 최하층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은 총 9점이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26) 부여 구아리 목간 109
작자 미상
<上段>
文 雀麻石 牟多
<下段>
鳥□□ 鳥石渚 鳥兮管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 판독은 “□文烏/□省□烏石□/牟多烏兮留”이다.
* 소장처는 백제고도문화유산단이다. 2010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 유적 웅덩이 최하층 유구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은 총 9점이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27) 부여 구아리 후부 목간
작자 미상
<前面>
後卩□□□□□人
<後面>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은 총 9점이다.
6. 부여 동남리 궁남지 목간(총 8점)
(28) 부여 동남리 궁남지 49-2번지 목간
작자 미상
<前面>
安□敬禾田犯□□兄□□敬事
<後面>
□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동남리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판독이며, 윤선태 판독은 “宅敬禾田犯□兄者爲敬事”이고, 부여 동남리 216-17번지 유적 판독은 “ 宅敎和田犯必兄害爲敎事”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216-17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역사문화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2005년 충남 역사문화연구원 발굴 조사로 충남 부여 동남리 216-17번지 1차 석축 우물내부에서 출토된 부찰 목간이다.
* 1995~2003년 사이 6차례 조사에서 3~4세기와 6~7세기 유물이 발굴되었고, 목간은 6세기경 유적지의 인공 수로와 목조 저수조에서 발굴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사적 135호) 출토 목간은 2022년 동남리 49-2번지에서 목간 5점이 발굴되었으며, 동남리 117번지 일대에서는 서부후항 목간 등 3점의 목간이 공개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 목간은 현재 총 8점이 공개되어 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29) 부여 동남리 궁남지 117번지 서부 후항 목간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서부 후항에 사는 사달과 사사가 장정 의활□□□ 장정 귀인 중구 4인 하구 2인과 매라성 법리원의 논 5형을 개간했다
서부 중부 이 <끝> <2026년 7월 14일>
* 538~663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궁남지(宮南池) 117번지 서부후항 목간
* 서부후항 목간이라고 불린다.
* 길이 35cm 소나무 목간으로, 백제 시대 도량형 기준인 영조척(길이 약 35.05cm)과 일치한다.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은 “西阝後巷巳達巳斯丁依活□□後阝/歸人中口四 小口二 邁羅城法利源 水田校勘 五形/西阝中□夷”이며, 국립청주박물관 판독은 “西阝後巷巳達巳丁 依活 丁/歸人中口四 小口二 邁羅城法利源 水田五形/西阝中 阝夷”이고, 박현숙 판독은 “西部後巷巳達巳斯部依活□□□□/歸人中口四 下口二 邁羅城法利源水田五形/西部中部□”이며, 윤선태 판독은 “西ア後巷巳達巳斯丁依舌□丁/歸人中□四小□二邁羅城法利源水田五形/西□ ア利”이고, 이용현 판독은 “西ア後巷巳達巳斯丁 依舌□□□丁/帰人中口四 小口二邁羅城法利源畓五形/西□校勘 丁 校勘 ア夷”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번지 궁남지(사적 135호)에서 출토되어, 현재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부여 궁남지는 궁 남쪽의 연못을 뜻하며, 634년 백제 무왕 35년에 궁의 남쪽에 연못을 조성했다고 한다. 신선이 사는 섬이라고 해서 신선정원(神仙庭園)으로 불렸다고도 한다. 백제 부여 궁남지는 현재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궁궐 연못이다.
* 1995~2003년 사이 6차례 조사에서 3~4세기와 6~7세기 유물이 발굴되었고, 목간은 6세기경 유적지의 인공 수로와 목조 저수조에서 발굴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사적 135호) 출토 목간은 2022년 동남리 49-2번지에서 목간 5점이 발굴되었으며, 동남리 117번지 일대에서는 서부후항 목간 등 3점의 목간이 공개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 목간은 현재 총 8점이 공개되어 있다.
* 백제 시대 인명,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도량형의 기준 영조척에 대한 단서가 된다.
扶餘東南里宮南池西部後巷木簡
作者 未詳
<前面>
西阝後巷巳達巳斯丁 依活于□畑丁
歸人中口四 下口二 邁羅城法利源水田五形
<後面>
西千阝中阝夷 <끝>
* 원문 출전: 김길식, 「부여 궁남지」, 『민족백과사전』, 2026-07-14 참조
(30) 부여 동남리 궁남지 117번지 목간 궁1
작자 미상
<前面>
死所可依故背□作弓穀日間落
<後面>
蘇君蒔軍日今敵白隨之心□之刁 <끝>
* 538~663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궁남지 목간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번지 궁남지(宮南池)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적 135호이며, 백제 사비기 궁원지(宮苑址) 유적지에서 발굴되었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국립부여박물관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 조사했으며, 궁남지 목간은 6세기경 인공수로와 목조 저수조 내부에서 발굴되었다.
* 1995~2003년 사이 6차례 조사에서 3~4세기와 6~7세기 유물이 발굴되었고, 목간은 6세기경 유적지의 인공 수로와 목조 저수조에서 발굴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사적 135호) 출토 목간은 2022년 동남리 49-2번지에서 목간 5점이 발굴되었으며, 동남리 117번지 일대에서는 서부후항 목간 등 3점의 목간이 공개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 목간은 현재 총 8점이 공개되어 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31) 부여 궁남지 117번지 연습 목간 궁2
작자 미상
<一面>
□文文文文文文文文
<二面>
□進文之也也也也也也
<三面>
□□文之之文文之之之之
<四面>
書文書文文令令文也也也文也文 <끝>
* 538~663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궁남지 목간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번지 궁남지(宮南池)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적 135호이며, 백제 사비기 궁원지(宮苑址) 유적지에서 발굴되었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국립부여박물관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 조사했으며, 궁남지 목간은 6세기경 인공수로와 목조 저수조 내부에서 발굴되었다.
* 1995~2003년 사이 6차례 조사에서 3~4세기와 6~7세기 유물이 발굴되었고, 목간은 6세기경 유적지의 인공 수로와 목조 저수조에서 발굴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사적 135호) 출토 목간은 2022년 동남리 49-2번지에서 목간 5점이 발굴되었으며, 동남리 117번지 일대에서는 서부후항 목간 등 3점의 목간이 공개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 목간은 현재 총 8점이 공개되어 있다.
7. 부여 쌍북리 목간(총 27점)
(32) 부여 쌍북리 목간 316
작자 미상
<前面>
來時兄來
<後面>
□言以聞□成□□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백제목간 소장품조사자료집 판독이며, 윤선태 판독은 “<前面> □時□兄□□□□/<後面> □上部 □ □”이다.
* 1998년 백제문화유산연구원과 충남대박물관의 발굴 조사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102번지 쌍북 주공아파트에서 출토되었다. 이후에도,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 있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부여 능산리 사지 출토 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33) 부여 쌍북리 목간 317
작자 미상
那連公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나니와 목간
* 백제목간 소장품조사자료집 판독
* 고대 일본의 인명 나니와 무라지(那你波連, 이름 나니와(那你波), 성 무라지(連))가 기록된 백제의 나니와 목간이다. 부찰 목간이라고도 한다.
* 소장처는 국립부여박물관이다.
* 1998년 백제문화유산연구원과 충남대박물관 주관으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102번지 쌍북 주공아파트에서 출토되었다.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102번지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부여 쌍북리 목간 총 27점 가운데 현내들 목간 현85-4번, 현내들 목간 현85-6번, 현내들 목간 현85-9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이다.
* 원문 출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34)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85-8
나종혁 판독
작자 미상
<全面>
奈率牟氏丁一
寂一信不丁一
□及酒丁一
<後面>
□□□
実□□□北
実加來辶之東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나종혁 판독이며, 그 외에 윤선태 판독이 있다. 북포유적 보고서 판독은 “1면 奈率牟氏丁一 寂信不丁一 □及酒丁一/2면 □□□ 吳□□ 吳加赤工已奈 ”이다.
* 소장처는 충청문화유산연구원이다. 2006~2007년 충청문화유산연구원 발굴 조사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현내들 백제 시대 2층 2호 수혈에서 출토되었다. 이후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 있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부여 쌍북리 목간 총 27점 가운데 현내들 목간 현85-4번, 현내들 목간 현85-6번, 현내들 목간 현85-9번, 현내들 목간 현85-10번, 현내들 목간 현86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이다.
* 원문 출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부여 능산리 사지 출토 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 nrich.go.kr/>, 2026-07-17 참조
(35)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87
작자 미상
<前面>
水不好記上不在
<後面>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이 있고, 북포유적 보고서는 “大大好記一不在”이다.
* 소장처는 충청문화유산연구원이며, 2006~2007년 충청문화유산연구원 발굴 조사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현내들 백제 시대 2층 2호 수혈에서 출토되었다.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 있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부여 능산리 사지 출토 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8-25 참조
(36)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91
작자 미상
<前面>
德率首此
<後面>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이며, 북포유적 보고서 판독은 “德中節比”이다.
* 부찰 목간이라고도 불린다. 소장처는 충청문화유산연구원이며, 2006~2007년 충청문화유산연구원 발굴 조사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현내들 백제 시대 2층 2호 수혈에서 출토되었다.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37)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94
작자 미상
<前面>
爲丸□月□ □
<後面>
天□之□ □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 북포유적 보고서 판독
* 2006~2007년 충청문화유산연구원 발굴 조사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현내들 백제 시대 2층 2호 수혈에서 출토되었다. 이후에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 있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38)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95
작자 미상
□ 上ア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 북포유적 보고서 판독은 “上卩”이다.
* 2006~2007년 충청문화유산연구원 발굴 조사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현내들 백제 시대 2층 2호 수혈에서 출토되었다.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 있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부여 능산리 사지 출토 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8-25 참조
(39)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96
작자 미상
<一面>
□春□□春 尙倩八官當津
<二面>
□春□丘春 □□□□□□
<三面>
當兩正經正□ □□
<四面>
□□□□□□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북포유적 보고서 판독은 “1면 □春□尙高尙倩八/2면 □□□□/3면 /4면 漢卄中漢□比□ 尙面正䌹則□”이다.
* 소장처는 충청문화유산연구원이며, 2006~2007년 충청문화유산연구원 발굴 조사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현내들에서 출토되었다.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 있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부여 능산리 사지 출토 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8-25 참조
(40)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105
작자 미상
漢 □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41) 부여 쌍북리 소작 장부 목간(扶餘雙北里小作帳簿木簡)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앞면>
무인년 6월 고순몽 3석 전마나 2석
상부 3석 상급 4석 비지 2석 상급 1석 미 2석
좌관 대식기 소작 목록의 2석 상급 2석 미 1석 습리 1석 5두 상급 1석 미 1
<뒷면>
소마 1석 5두 상급 1석 5두 미 7두 반 소작 수문 1석 3두 반 상급 석 미 석 갑 병 19석 금고 1석 3두 반 상급 1석 미 1석 갑 도기읍 좌관에게 3석을 주다 이득 11석 <끝> <2026년 8월 2일>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 부여 쌍북리 창고신축부지내 유적 판독
* 소장처는 백제문화유산연구원이다. 2008년 백제문화유산연구원 주관 부여 쌍북리 조사에서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280-5번지 신성전기 창고에서 출토되었다. 이후로,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 있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扶餘雙北里小作帳簿木簡
作者 未詳
<前面>
戊寅年六月中 固淳多三石 佃麻那二石
上夫三石上四石 比至二石上一石未二石
佐官貸食記 佃目之二石上二石未一石 習利一石五斗上一石未一石
<後面>
素麻一石五斗上一石五斗未七斗半 佃首行一石三斗半上石未石甲 幷十九石
今沽一石三斗半上一石未一石甲 刀〃邑佐三石与 得十一石 <끝>
* 원문 출전: 「부여 쌍북리 목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s://db.history.go.kr/>, 2026-06-04;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42) 부여 쌍북리 목간 173-8번지-122
작자 미상
<前面>
□部兮礼至文奴利□□
<後面>
□□利□去背□卄斗□□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동방문화재연구원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43) 부여 쌍북리 목간 173-8번지-194
작자 미상
五石六十斤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동방문화재연구원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44) 부여 쌍북리 목간 173-8번지-197
작자 미상
部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동방문화재연구원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45) 부여 쌍북리 173-8번지-223
작자 미상
<前面>
□四斤一兩
□五斤四兩
<後面>
丁卅四
婦十三
洦一□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동방문화재연구원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173-8번지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46) 부여 쌍북리 목간 184-11-71
작자 미상
斤止 受子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47) 부여 쌍북리 목간 201-4번지-1
작자 미상
恍時予丁 彡□□
□□□丁 □珎久丁
□真相丁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정훈진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48) 부여 쌍북리 목간 201-4번지-2
작자 미상
兄習利丁
□諸之□□臣丁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정훈진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49) 부여 쌍북리 328-2번지-목간A
작자 미상
中□□子 三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정훈진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50) 부여 쌍북리 328-2번지-목간B
작자 미상
上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정훈진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51) 부여 쌍북리 구구단 목간(夫餘雙北里九九段木簡)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구구팔십일
팔구칠〇〇
칠구육십삼
--------
팔팔육십사
칠팔오십육
육팔사십팔
오팔사십
--------
칠칠사십구
육칠사십이
오〇삼십오
사칠이십팔
--------
육육삼십육
오〇삼십
사육이십〇
--------
오오이십오
사오이십
삼오십오
--------
사사십육
삼사십이
이사팔
------
이삼육
------
이이사
----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구구단 목간
* 일명 구구단 목간, 백제 가요 목간(「숙세가」), 남근형 목간과 함께 백제 기타 목간의 3대 목간이다.
* 정훈진 판독
* 2011년 6월 백제 수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328-2번지에서 발견된 한반도 최초의 구구단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2011년 6월 백제 수도 부여 쌍북리에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목간 1점을 발굴하였으며, 칼 모양 형태로 9단부터 2단까지 단마다 구분선을 평행으로 그었다. 목간의 크기는 길이 30.1cm, 너비 5.5cm이며, 소나무 판재로 만들어졌고, 먹글씨로 쓰였으며, 9단에서 2단까지 내려서 적었다. 반복 계산을 생략하여 이제까지 발견된 한중일 구구단 목간 가운데 가장 체계적인 구구단 계산법이다. 백제 관영 유적 유물들 사이에서 발굴되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夫餘雙北里九九段木簡
作者未詳
九〃八十一
八九七□□
七九六十三
--------
八〃六十四
七八五十六
六八卌八
五八卌
--------
七〃卌九
六七卌二
五□卅五
四七卄八
--------
六〃卅六
五□卅
四六卄□
--------
五〃卄五
四五卄
三五十五
--------
四〃十六
三四十二
二四八
------
二三六
------
二〃四
---- <끝>
* 원문 출전: 이기환 기자, 「백제 구구단 목간의 수수께끼」, 『이기환 기자의 흔적의 역사』, 2017-01-20, <http:// leekihwan.khan.kr/758>.■
(52) 부여 쌍북리 뒷개 목간-112
작자 미상
<一面>
慧草而開覺
<二面>
□人□□直□
<三面>
<四面>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정훈진 판독, 기타 판독
* 소장처는 부여군문화유산보존센터이며, 2010년 부여군문화유산보존센터 발굴 조사로 충청남도 부여군 쌍북리 15번지 일원에서 출토되었다.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부여 능산리 사지 출토 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53) 부여 쌍북리 외량부철 목간
작자 미상
<前面>
外椋卩鐵
<後面>
代線十兩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54) 부여 쌍북리 정사년 목간
작자 미상
<前面>
丁巳年十月□□
<後面>
湌米七石六斗半
岑凍宮□□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55) 부여 쌍북리 여 목간
작자 미상
与□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56) 부여 쌍북리 대불호기 목간
작자 미상
一大不好記上□□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57) 부여 쌍북리 논어 목간
작자 미상
<一面>
□子曰學而時習之不亦悅
<二面>
有朋自遠方來不亦樂
<三面>
人不知 而不慍 不亦
<四面>
子乎 有子曰 其爲人也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논어 목간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8. 부여 석목리 143-16번지 유적 목간(총 2점)
(58) 부여 석목리 143-16번지 유적 목간 1
작자 미상
전부 <끝>
* 538~660년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석목리 유적 목간 1
* 한국목간학회 보고서 판독
* 백제 사비 시대 행정 구역 단위 5부(五部)의 하나인 ‘전부’(前部)가 기록된 목간
* 2017년 충남 부여군 석목리 143-16번지 농협 주차장 예정 부지에 대한 조사에서 백제 사비 시대의 목간 총 2점이 출토되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扶餘 石木里 百四十三-十六番地 遺蹟 木簡 一
作者 未詳
前部 <끝>
* 원문 출전: 부여 석목리 유적 목간, 구글 Gemini, 2026-08-19 참조
(59) 부여 석목리 143-16번지 유적 목간 2
작자 미상
양호사 <끝>
* 538~660년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석목리 유적 목간 2
* 한국목간학회 보고서 판독
* 백제 사비 시대 식량이나 양곡을 뜻하는 “양”(糧) 자가 포함된 목간
* 2017년 충남 부여군 석목리 143-16번지 농협 주차장 예정 부지에 대한 조사에서 백제 사비 시대의 목간 총 2점이 출토되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扶餘 石木里 百四十三-十六番地 遺蹟 木簡 二
作者 未詳
糧好邪 <끝>
* 원문 출전: 부여 석목리 유적 목간, 구글 Gemini, 2026-08-19 참조
9. 정읍 고사부리성 목간(총 1점)
(60) 정읍 고사부리성 상부 상항 목간
작자 미상
상부 상항 <끝>
* 538~660년 백제 시대 사비 시대 정읍 고사부리성 상부 상항 목간
* 백제 사비기 지명 목간으로 상부 상항 목간이라고 칭할 수 있다.
* 소재지는 전북 정읍시 고부면 고부리 산1-1번지이다. 정읍시와 전라문화유산연구원이 공동으로 2021년 1월 고사부리성에 대한 8차 정밀 발굴조사에서 “상부상항” 목간이 발견되었다. 전북 정읍 성황산 고사부리성(사적 494호) 남벽 안쪽 계곡부 저습지에서 백제 사비기 오부(五部) 오항(五巷)의 행정 구역을 뜻하는 백제의 목간이 발굴된 것이다. “상부”(上部)는 백제 시대 사비기 오부의 한 곳이고, “상항”(上巷) 역시 백제 시대 사비기 오항의 한 곳이었다. 정읍 고사부리성은 백제 시대 사비기 오방의 한 곳인 중방성(中方城)으로 백제의 지역 거점이었음이 비정되며, 백제 시대에 처음 축성(築城)되어 통일 신라 시대에 개축되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성으로 이용되었다. 한편, 고사부리성에서는 이전에 “상부”와 “상항”이 각기 표기된 기와 편(片) 2점이 발굴된 바가 있다(정읍 고사부리성(井邑 古沙夫里城), 국가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 2026-08-20; 김동욱 기자, 정읍 고사부리성서 ‘상부상항’ 목제 유물 첫 발견, 세계일보, 2021-01-12 참조).
* 백제 상부 상항 목간은 부여 궁남지에서 출토된 백제 서부 후항 목간과 함께 백제의 지명 목간을 대표한다.
井邑 古沙夫里城 上部 上巷 木簡
作者 未詳
上卩上巷 <끝>
* 원문 출전: 정읍 고사부리성 목간, 구글 Gemini, 2026-08-20; 김동욱 기자, 정읍 고사부리성서 ‘상부상항’ 목제 유물 첫 발견, 세계일보, 2021-01-12 참조
10. 남원 척문리산성 목간(총 6점)
(61) 남원 척문리산성 상항 목간
나종혁 판독
작자 미상
上巷 地上囚二之其
地辶百麥二 <끝>
* 538~660년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남원 척문리산성 상항 목간
* 나종혁 판독
* 백제 사비기 지명 목간으로 상항 목간이라고 칭할 수 있다.
* 소재지는 전북 남원시 이백면 척문리 244번지이다.
* 2025년 3월 전북 남원시와 전주문화유산연구원 공동 조사로 남원 척문리산성을 조사한 결과, 산성 집수 시설 내부에서 목간 총 6점이 발굴되었다. 백제 사비기의 “상항”과 “중항”이라는 지명과 “장덕”(將德)이라는 백제 16관등 제7품의 관직명이 묵서로 적힌 목간이 발견되었다(김동욱 기자, 「남원 척문리산성서 백제 행정 구역·관등명 기록 목간 출토」, 『세계일보』, 2025년 3월 5일자 참조).
(62) 남원 척문리산성 중항 목간
나종혁 판독
작자 미상
中巷□椋大□中巷尸二 <끝>
* 538~660년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남원 척문리산성 중항 목간
* 나종혁 판독
* 백제 사비기 지명 목간으로 중항 목간이라고 칭할 수 있다.
* 소재지는 전북 남원시 이백면 척문리 244번지이다.
* 2025년 3월 전북 남원시와 전주문화유산연구원 공동 조사로 남원 척문리산성을 조사한 결과, 산성 집수 시설 내부에서 목간 총 6점이 발굴되었다. 백제 사비기의 “상항”과 “중항”이라는 지명과 “장덕”(將德)이라는 백제 16관등 제7품의 관직명이 묵서로 적힌 목간이 발견되었다(김동욱 기자, 「남원 척문리산성서 백제 행정 구역·관등명 기록 목간 출토」, 『세계일보』, 2025년 3월 5일자 참조).
(63) 남원 척문리산성 장덕 목간
나종혁 판독
작자 미상
將德 <끝>
* 538~660년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남원 척문리산성 장덕 목간
* 나종혁 판독
* 백제 사비기 지명 목간으로 장덕 목간이라고 칭할 수 있다.
* 소재지는 전북 남원시 이백면 척문리 244번지이다.
* 2025년 3월 전북 남원시와 전주문화유산연구원 공동 조사로 남원 척문리산성을 조사한 결과, 산성 집수 시설 내부에서 목간 총 6점이 발굴되었다. 백제 사비기의 “상항”과 “중항”이라는 지명과 “장덕”(將德)이라는 백제 16관등 제7품의 관직명이 묵서로 적힌 목간이 발견되었다(김동욱 기자, 「남원 척문리산성서 백제 행정 구역·관등명 기록 목간 출토」, 『세계일보』, 2025년 3월 5일자 참조).
11.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총 29점)
(64) 부여능산리사지 남근형 목간(扶餘陵山里寺址男根形木簡)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1면>
대가 의를 받들지 아니하니
길 제사를 서라 서라 서라
<2면>
4 6
<3면>
받들지 아니하니
하늘
<4면>
길 위의 제사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남근형 목간
* 속칭 남근형 목간이라고 불린다(길이 22cm).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며, 다른 판독자에 따라서는 “道□立立立”(길에 서라! 서라! 서라!)라고 판독 및 해석하기도 한다. 박중환 판독은 “(앞면) 奉儀□ 道□立十二□/(뒷면) 无奉 天”이며, 윤선태 판독은 “(1면) 大天 天泰義 道緣立立立/(2면) 緣道□/(3면) 奉无 天/(4면) 泰无”이고, 일본인 근등호일(近藤浩一) 판독은 “(앞면) (男根모양) 无奉義□ 道□立 十二□/(뒷면) (男根모양) 无奉 天”이다. 뒷면의 “天” 자는 거꾸로 쓰여 있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 nrich.go.kr/>, 2026-07-17 참조).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扶餘陵山里寺址男根形木簡
作者 未詳
<一面>
大无奉儀 □道禓立立立
<二面>
□□□四□□六
<三面>
无奉 天
<四面>
道禓 <끝>
* 원문 출전: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s://db.history.go.kr/>, 2026-06-04.
(65) 부여 능산리 사지 296
작자 미상
<前面>
三月十二日梨田三之□滕□□滕□□□
<後面>
广淸靑靑靑用□□用今用今□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며, 박중환 판독은 “(앞면) 三月十二日梨田□之□□□□/(뒷면) 渼淸麥靑耳□□□□□”이고, 윤선태 판독은 “(앞면) 三月十二日梨田□ 之□□□□□□□/(뒷면) 广淸麥靑耳 用□□麻□□”이며, 근등호일 판독은 “(앞면) 广淸麥靑耳□□□□□/(뒷면) 三月十二日梨田□之□□□□”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66)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297
작자 미상
漢城下部對德疎加鹵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이며, 박중환 판독은 “韓城下部對德刀加鹵”이고, 근등호일 판독은 “韓城下部對德䟽刀加鹵”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67)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298
나종혁 판독
작자 미상
<前面>
奈率加鹵白劦之息□□淨
<後面>
急朋□□左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은 “(앞면) 奈率 加姐白劦之意□淨/(뒷면) 急明靜□□□師□□”이고, 근등호일 판독은 “(앞면) (구멍) 奈率 □□□□ □ □/(뒷면) (구멍) 慧朋 □□□□ □ □”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68)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299
작자 미상
<前面>
三貴 土牟 市丁
-------------
至丈· 至夂· 大貴
-------------
今由· · ·
女貴
-------------
欠夂 □文
-------------
□
<後面>
乙乙乙乙乙乙乙乙乙乙
乙乙乙乙乙乙乙乙乙乙
乙乙乙乙乙乙乙乙乙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박중환 판독은 “三貴 至女 今母 兄父/□幸 至父 女貴 □文/□ □ 貴 □ □”이고, 윤선태 판독은 “(앞면) 三貴 至丈 今毋 兄久/ 文牟 至攵 安貴 □文/□丁 大貴/(뒷면) 乙 乙乙乙 乙/乙 乙 乙/ 乙 乙 乙乙乙 乙/乙 乙 乙/乙乙 乙”이고, 근등호일 판독은 “三貴 至女 今母 兄父/□幸 至父 女貴 □文/□□ 大貴 □□”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참조
(69)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0
작자 미상
三月仲椋山上丑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며, 윤선태 판독은 “(앞면) 三月□椋內上田/(뒷면) □□□”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70) 부여 능산리 사지 육부오방 목간(扶餘陵山里寺址人行木簡)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앞면>
글 또한 이에 법을 좇으니 육부 오방에 무릇
<뒷면>
또한 가노라니 기와 굽는 형형색색의 중부의 기구 <끝> <2026년 8월 2일>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육부오방 목간
* 박중환 판독은 “(앞면) 書亦從此法爲之凡六部五方/(뒷면) 人行色也凡作形之中□具”이고, 윤선태 판독은 “(앞면) 又行色也凡作形之中了其/(뒷면) 書亦從此法爲之凡六ア五方”이며, 근등호일 판독은 “(앞면) □ □ 書亦從此法爲之凡六ア五方 □ □/(뒷면) □ □ 人行色也凡作形之中□具 □ □”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扶餘陵山里寺址六部五方木簡
作者 未詳
<前面>
書亦從此法爲之凡六阝五方
<後面>
又行之也瓦作形形中阝具 <끝>
* 원문 출전: 부여 능산리 목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31.
(71)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2
작자 미상
大家貳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며, 박중환, 윤선태, 근등호일 판독은 “大大家貳”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72)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3
작자미상
竹山六
□□六日□□□ □□四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고, 박중환 판독은 “竹山六/二十六日□□□ 服庫四”이며, 윤선태 판독은 “竹山六/月卄六日上來□ 眼岸四”이고, 근등호일 판독은 “□ □ 廿六日□□□ 服庫四 □ □/竹山六”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73)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4
작자 미상
<前面>
智眞
四月七日 寶憙寺
智直
<後面>
□送塩二石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과 박중환 판독이고, 윤선태 판독은 “(앞면) 智眞/ 四月七日 寶憙寺/乘/(뒷면) □送塩二石”이며, 근등호일 판독은 “(앞면) 智眞/四月七日 寶憙寺/慧 □ □/(뒷면) □ □ □送塩二石”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74) 부여 능산리 사지 숙세가 목간(扶餘陵山里寺址宿世歌木簡)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전생에서 맺은 업
한 곳에 같이 태어나
시비 서로 따지며
높이 절하고 날 새어 오라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숙세가」 목간
* 서기 6세기 부여의 이두 표기 사언 고시 백제 최고(最古)의 시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宿世歌)
* 삼국 시대 당대인 기록(목간) 현존 유일의 시가
* 국립부여박물관, 박중환 판독이며, 윤선태 판독은 “(앞면) 慧暉 前/(뒷면) 宿世結業同生一處是/非 相 問 上拜白來”이고, 근등호일 판독은 “(앞면) 우행 宿世結業同生一處是/좌행 非相問上拜白 事/(뒷면) 慧量□前”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숙세가」 원문 판독본은 다음과 같다:
宿世歌
<앞면>
宿世結業同生一處是
非相問上拜白事
<뒷면>
慧量□前 <끝>
宿世歌
作者 未詳
<前面>
宿世結業
同生一處
是非相問
上拜白來
<後面>
慧量師前 <끝>
* 원문 출전: 『부여 능산리 목간』(2003년 7월 『부여 능산리 목간』 「숙세가」 관련 언론 보도 참조);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75)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6
작자 미상
<一面>
斗之末米□□
<二面>
□当也
<三面>
<四面>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76)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7
작자 미상
<前面>
德干尔
<後面>
无資丁
□□□□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며, 박중환 판독은 “(앞면) □ □ 德干□ □ □/(뒷면) □ □ 爲資丁 □ □”이고, 윤선태 판독은 “(앞면) 德干尔/(뒷면) □为資丁”이며, 근등호일 판독은 “(앞면) □ □ 德干 □ □/(뒷면)/(우행) □ □ 爲資丁 □ □/(좌행) □□□”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77)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8
작자 미상
<前面>
□二百十五□
<後面>
疑□□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78)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9
작자 미상
<前面>
□七定□死□
<後面>
□再拜□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79)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0
작자 미상
<前面>
□立卄方斑綿衣□
<後面>
己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80)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1
작자 미상
百者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81)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2
작자 미상
<前面>
此
<後面>
□ □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82)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3
작자 미상
<前面>
子基寺
<後面>
代和寫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부찰 목간이라고 불린다.
* 국립부여박물관, 박중환, 윤선태, 근등호일 판독, 백제목간 소장품조사자료집 판독
* 2000~2001년 국립부여박물관 주관 부여 능산리 사지 7차 조사에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5-1 일대 제2, 제3 목책열 사이 북쪽 초기 배수로 내부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능산리사지 목간 총 29점 가운데 314번, 능8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이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83)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4
작자 미상
<前面>
□飮
<後面>
□日□□□固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백제목간 소장품조사자료집 판독
* 2000년 국립부여박물관 주관 부여 능산리 사지 6차 조사에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5-1 일대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능산리사지 목간 총 29점 가운데 314번, 능8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이다.
* 원문 출전: 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8-25 참조
(84)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1
작자 미상
<前面>
二裏段行
<後面>
擧拱知矣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백제목간 소장품조사자료집 판독
* 2000년 국립부여박물관 주관 부여 능산리 사지 6차 조사에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15-1 일대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85) 부여 능산리 사지 사면 목간(扶餘陵山里寺址四面木簡)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1면>
지락아의 식사 일기 첫날 4두 작은 되로 밥을 먹다 1주 3일 4두 밥을 먹다
<2면>
5일 3두 큰 되로 밥을 먹다 1주 6일 3두 큰 되로 밥을 먹다 2주 7일 3두 큰 되로 밥을 먹다 2주 8일 4두 밥을 먹다
<3면>
밥을 먹고 길을 조금 걷다 사관을 만남이니 조금 걷는 사관 도치의 몸이 검었다 길 위의 관리는 뒤로 활의 탄환을 칼의 방향으로 모모 씨의 창 창검을 겨누고
<4면>
석 22석 또 10 또 석 또 12석 또 12석 또 10 목구멍 석 12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사면 목간
* 윤선태 판독이며, 근등호일 판본은 “(앞면) 五日食米三斗大升壬日食三斗大二七日食三斗大升二□□□ □ □/(뒷면) □道使□次如逢火吏 猪耳其身者如黑也道使浚□彈耶方□□□□ □ □”이다.
* 원문의 4면은 거꾸로 쓰여 있다.
* 2002년 부여 능산리사지 8차 조사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 15-1 일대 제2, 제3 목책열 사이 북쪽 초기 배수로 내부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扶餘陵山里寺址四面木簡
作者 未詳
<一面>
支藥兒食米記初日食米四斗小升一二日食米四
<二面>
五日食米三斗大升一六日食三斗大二七日食三斗大升二八日食米四斗
<三面>
食道使□□次如逢使猪耳其身者如黑世道使後後彈耶方 牟 牟氏 祋祋耶
<四面>
又十二石又十二石又十二石又十二石又十二石□十二石 <끝>
* 원문 출전: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31.
부여 능산리 사지 사면 목간 3면 이두문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하급 관리 도치의 몸이 검었다. <끝> <2026년 7월 13일>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사면 목간 왼쪽 옆면 이두문
* 이두문 목간이라고도 불린다.
* 536년경 신라 이두문보다 31년 뒤인 567년 백제 이두문으로서, 백제 최초의 이두문이다. 신라 최초의 이두문인 「영천청제비 병진명」이 최초 연대를 536년경으로 추정하므로, 사면 목간은 그보다 31년 이후의 연대로 추정된다.
* 소재지는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이며, 부여 능산리 고분군이라고 불린다. 능산리 절터에서 백제 금동 대향로, 백제 창왕명 석조 사리감, 백제 능산리 사지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백제 능산리 사지 고분군 목간에서는 현전 최고의 향가계 백제 시가 「숙세가」가 발견되기도 했다.
* 능산리 사지는 567년 조성된 백제 왕실 사찰의 터이다. 이 사찰은 백제 창왕이 부왕인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고, 660년 백제 멸망과 함께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능사(陵寺)라고도 불리며, 2001년 9월 29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본 고분군은 1992년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조사를 시작해서 1995년 4차 발굴 조사를 했고, 2002년 조사에서 목간 30여 점이 발견되어, 백제 유적 가운데 가장 많은 목간 발굴지로 기록되었다. 여기서 발굴된 목간에는 숙세명 목간, 보희사명 목간, 꼬리표 목간, 삼귀명 목간, 이전명 목간, 육부오방명 목간, 지약아식미기명 목간, 남근형 목간, 기타 목간 및 목간 껍질 등이 있다.
* 2009년 9월 28일자 『동아일보』 보도에서 서울시립대 국문학과 김영욱 교수가 한국목간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논문 「고대 한국 목간에 보이는 석독표기(釋讀表記)」에서 2002년 충남 부여 능산리 출토 백제 목간의 이두문에 대해 보고했다. 목간 원문 “猪耳”가 돼지라는 뜻이며, 이를 석독(釋讀)하면 돼지를 뜻하는 옛말 ‘돝’+‘이’가 되고, 이는 곧 ‘도치’로 해석된다. 고슴도치의 옛말이 ‘고솜돝’이거나 ‘고슴돛’이었다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김영욱 교수는 우리나라 이두문이 8세기 신라에서 6세기 백제로 소급되며, 이두문의 기원이 신라에서 백제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유성운 기자, 「향찰, 6세기 백제인들도 사용」, 『동아일보』, 2009년 9월 28일자).
扶餘陵山里寺址斜面木簡三面吏讀文
作者 未詳
小吏猪耳其身者如黑也 <끝>
* 유성운 기자, 「향찰, 6세기 백제인들도 사용」, 『동아일보』, 2009년 9월 28일 자 참조
(86)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3
작자 미상
<一面>
牟己兒前子
<二面>
□□□□□□□□□□
<三面>
□□□□□□□□□
<四面>
□□□□□今□□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2000~2001년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부여 능산리사지 7차 조사에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5-1 일대 제2, 제3 목책열 사이 북쪽 초기 배수로 내부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87)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4
작자 미상
<一面>
前憙拜而受之伏願常上此時□ □
<二面>
□□浩□□□□言□□□□
<三面>
經德此辛値員因故□灼除八永仰者斷四地
<四面>
道和□□□□□死□□禾禾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2000~2001년 국립부여박물관 부여 능산리사지 7차 조사에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5-1 일대 제2, 제3 목책열 사이 북쪽 초기 배수로 내부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88)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5
작자미상
<一面>
永春□□
<二面>
一□江
<三面>
□□□
<四面>
□□ □□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5-1 일대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89)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6
작자 미상
<一面>
馳聖辛露隋憲壤醞强治
<二面>
□□□是□□□
<三面>
阿節□□□□□□□□□□□
<四面>
□ □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백제목간 소장품조사자료집 판독
* 2000~2001년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부여 능산리 사지 7차 조사에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5-1 일대 제2, 제3 목책열 사이 북쪽 초기 배수로 내부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90)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7
작자미상
<一面>
□覺
<二面>
□□
<三面>
苦
<四面>
□□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주술 목간이라고 불린다.
* 윤선태 판독이며, 백제목간 소장품조사자료집 판독은 “1면 /2면 □大□□/3면 旨 □□/4면 ”이다.
* 2007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5-1 일대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앞서서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능산리사지 목간 총 29점 가운데 314번, 능8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이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91) 부여 능산리 사지 연습 목간 능9
작자 미상
<前面>
道 道
見 公 德
<後面>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12. 나주 복암리 목간(총 41점)
작자 미상
(92) 나주 복암리 목간 1
작자 미상
<前面>
庚午年三月中監數肆人
出背者得捉得安城
<後面>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이며,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판독은 “□三月中監數肆人/□出背者得捉得□奴”이다.
* 총 31점의 나주 복암리 목간은 부여 이외의 지역에서 발견된 백제 최초의 지방 목간이며, 발견된 목간들 가운데 길이 60.8cm의 우리나라 최장(最長) 문서 목간이 발견되었다. 문서 목간 외에 꼬리표 목간, 봉함 목간, 다면 목간, 습자 목간 등 다양한 목간이 발견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여)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93) 나주 복암리 목간 2
작자 미상
<前面>
軍 次月光將除云丁 從口四二 小口四
□□羅□□光定文丁妹中口一 小口四 妹非善 □□羅 光定文丁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2010년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875-6번지 일원 1호 수혈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나주 복암리유적 발굴조사보고서 판독. 윤선태 판독은 “□兄將除公丁 婦中口二 小口四/定/□兄定文丁 妹中口一/前口 手決”이며,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판독은 “□兄將□立□□如□ □四二中□四 □二/定/□定文丁□□一女 □□□二巴四入”이다.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94) 나주 복암리 모라 목간(羅州伏岩里官等名毛羅木簡)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전면>
모 년 칠월 십칠 일부터 팔월 이십삼까지 모라
모 군 일곱 고려인 오다
<후면>
호지 전항 나솔 오호치
밤사이 들인 무리 비두 한솔 마진
득 모 모 차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작자 미상 나주 복암리 관등명 모라 목간
* 나주 모라 목간으로 알려져 있다.
* 윤선태 판독이며,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판독은 “(앞면) □年自七月十七日至八月卄三□/□ 毛羅/半那水校勘 高滴人□□□/(뒷면) 尤戶智次 前巷奈率烏胡留/夜之閒徒 劍釰非須扞率麻進/□得□戶匊次 又徒□□”이다.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후면에 나솔, 한솔 등 백제 시대 관등 명이 등장하며, 우측 하단이 일부 깨진 완형에 가까운 형태로서 현재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2008년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나주 복암리 고분군 사적 제404호에서 직경 5.6m, 깊이 4.8m의 대형 원형 수혈유구에서 목간 31점이 일괄 출토되었고, 이 가운데는 길이 60.8cm의 국내 최대 목간도 포함되어 있다. 백제 수도 부여 이외의 백제 지역에서 대량의 목간이 출토된 것은 나주가 처음이다.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 나주 복암리 관등명 모라 목간의 다른 원문 판독은 다음과 같다.
羅州伏岩里官等名毛羅木簡
<前面>
□年自七月十七日至八月卄三日
□毛羅
半那比高墻人等若□□
<後面>
尤戶智次 前巷奈率烏胡留
夜之間徒 釰非頭扞率麻進
□將法戶匊次 又德率□ <끝>
羅州伏岩里官等名毛羅木簡
作者 未詳
<前面>
庚午年自七月十七日至八月卄三日
毛羅
半郡比高濾人等名定道
<後面>
尤戶智次 前巷奈率烏胡甾
夜之閒徒 釰非頭扞率麻進
將法戶匊次 又德率□ <끝>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백제 목간」, 2020-10-01, <http://yokeru.egloos.
com/2275596>;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95) 나주 복암리 목간 4
작자 미상
<前面>
郡佐賢□
<後面>
受米之及八月八日高嵯支□記遺□之好二□□又及告日□□
䝴之□□ 一 □□□ □八月六日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이며, 나주 복암리유적 발굴조사보고서 판독은 “”이다.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96) 나주 복암리 목간 5
작자 미상
<前面>
丁一 中四
大祀村主弥首山作中四
傭丁一 牛一
<後面>
涇水田二形得七十二石 右月三十日者
畠一形得六十二石
得耕麥田一形半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97) 나주 복암리 목간 6
작자 미상
<前面>
大村首山
丁一□呂一倡丁一
中一牛一
<後面>
涇水田二形得七十二石 在月三十日有
白田一形得六十二石
□得耕麥田一形半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나주 복암리유적 발굴조사보고서 판독이며, 윤선태 판독은 “<前面> 上/<後面> 十一□”이다.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98) 나주 복암리 목간 7
작자 미상
<前面>
竹悅
竹遠 竹□
竹麻
□□道
<後面>
幷五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99) 나주 복암리 목간 8
작자 미상
上去三石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100) 나주 복암리 목간 9
작자 미상
麻中練六四斤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101) 나주 복암리 목간 10
작자미상
<前面>
郡得分
<後面>
□子本州久川米付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나주 복암리유적 발굴조사보고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102) 나주 복암리 목간 11
작자미상
(前面)
庚午年四月□
(後面)
□□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2010년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875-6번지 일원 1호 수혈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103) 나주 복암리 목간 12
작자 미상
<前面>
軍那德率至安
<後面>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부찰 목간으로 알려져 있다.
* 2010년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 발굴 조사로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875-6번지 일원 1호 수혈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104) 나주 복암리 목간 13
작자미상
<前面>
德德德德德
衣 衣衣衣
道道道道道
<後面>
道 衣率
道道 率率率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이며, 나주 복암리유적 발굴조사보고서 판독은 “1면 □ /道道 平平/□□行/2면 鳥二德德□德/衣 衣衣衣/道道道道□”이다.
* 총 41점의 나주 복암리 목간은 부여 이외의 지역에서 발견된 백제 최초의 지방 목간이며, 발견된 목간들 가운데 길이 60.8cm의 우리나라 최장(最長) 문서 목간이 발견되었다. 문서 목간 외에 꼬리표 목간, 봉함 목간, 다면 목간, 습자 목간 등 다양한 목간이 발견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여)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13. 익산 미륵사지 목간(총 2점)
(105) 익산 미륵사지 수사 목간(益山彌勒寺址數詞木簡) 318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광유 5월 2일
사듭 닐곱 역사 이듭 좌 하읍
읍 이여읍 이
읍 여듭 <끝> <2026년 7월 14일>
* 716년경 백제 시대 이후 익산 미륵사지 수사 목간
* 우리말 수사를 이두문으로 표기
* 수사 목간이라고도 불린다.
* 백제 시대 미륵사지 서쪽 연못지 출토 목간 2점으로,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서연못지 동남쪽 호안 뻘층에서 발굴되었으며, 현재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판독은 “(1면) □ □ 央以山五月二日 □ □/(2면) 新台𢀳□□𢀳善/𢀳𢀳/□伽□𢀳/(3면) 𢀳□ □ □/(4면) □ 𢀳毛 長”이며, 윤선태 판독은 “(1면) □光山五月二日人/(2면) 新台𢀳□□𢀳一雨/ 矣毛𢀳 /□□□𢀳/(3면) 𢀳□□𢀳/(4면) □𢀳今毛𢀳□”이고, 전경목 판독은 “(1면) □ □ 央以山五月二日人 □ □/(2면) □ □ 新台𢀳□□𢀳一雨三十/矣毛己/□ □ □伽□𢀳/(3면) 艮 □□/(4면) □艮今包己長”이다.
* 발굴된 목간에 기록된 총 39개 문자 가운데 백제어 이두문 수사가 포함되었고, 백제어의 수사는 이두문으로 표기했으며, 그 예는 다음과 같다. 하읍(伽第邑, 하나), 이듭(矣毛邑, 둘), 사듭(新台邑, 셋), 다습(刀士邑, 다섯), 닐곱(日古邑, 일곱), 여듭(今毛邑) 총 6개 수사(1, 2, 3, 5, 7, 8).
*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2가 900 국립전주박물관과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104-1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재한다.
* 익산 미륵사지는 사적 150호이다. 미륵사지는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백제 최대 사찰의 절터이다. 601년 백제 무왕 2년 사찰이 창건되었다고 한다. 922년 후백제 시대에 혜거국사비문(惠居國師碑文)에 미륵사의 개탑(改塔)에 대한 기록이 있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되어 17세기 조선 중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에 대한 발굴은 1970년대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와 1980년~1994년 사이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실시되어, 다양한 유적, 유물과 함께 목간 2점이 발굴되었다. 목간은 사지 궁남지 서쪽 연못 안에서 사면 목간과 묵흔 목간으로 발견되었다(미륵사지 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4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益山彌勒寺址數詞木簡 318
作者 未詳
□光幽五月二日□
□新台𢀳日古𢀳刀士 矣毛𢀳 坐伽第𢀳
𢀳以如𢀳二□
口𢀳今毛𢀳□□□ <끝>
* 원문 출전: 박상현 기자, 「미륵사지 목간서 수사(數詞) 확인... 백제어와 신라어는 유사」, 『연합뉴스』, 2017년 10월 12일자 참조; 익산 미륵사지,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8-18.
(106) 익산 미륵사지 수사 목간(益山彌勒寺址數詞木簡) 319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량부 <끝> <2026년 7월 14일>
* 716년경 백제 시대 이후 익산 미륵사지 목간
* 우리말 수사를 이두문으로 표기한 수사 목간 총 2점의 두 번째 목간으로 추정한다.
* 백제 시대 미륵사지 서쪽 연못지 출토 목간 2점으로,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서연못지 동남쪽 호안 뻘층에서 발굴되었으며, 현재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판독은 “(1면) □ □ 央以山五月二日 □ □/(2면) 新台𢀳□□𢀳善/𢀳𢀳/□伽□𢀳/(3면) 𢀳□ □ □/(4면) □ 𢀳毛 長”이며, 윤선태 판독은 “(1면) □光山五月二日人/(2면) 新台𢀳□□𢀳一雨/ 矣毛𢀳 /□□□𢀳/(3면) 𢀳□□𢀳/(4면) □𢀳今毛𢀳□”이고, 전경목 판독은 “(1면) □ □ 央以山五月二日人 □ □/(2면) □ □ 新台𢀳□□𢀳一雨三十/矣毛己/□ □ □伽□𢀳/(3면) 艮 □□/(4면) □艮今包己長”이다.
* 발굴된 목간에 기록된 총 39개 문자 가운데 백제어 이두문 수사가 포함되었고, 백제어의 수사는 이두문으로 표기했으며, 그 예는 다음과 같다. 하읍(伽第邑, 하나), 이듭(矣毛邑, 둘), 사듭(新台邑, 셋), 다습(刀士邑, 다섯), 닐곱(日古邑, 일곱), 여듭(今毛邑) 총 6개 수사(1, 2, 3, 5, 7, 8).
*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2가 900 국립전주박물관과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104-1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재한다.
* 익산 미륵사지는 사적 150호이다. 미륵사지는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백제 최대 사찰의 절터이다. 601년 백제 무왕 2년 사찰이 창건되었다고 한다. 922년 후백제 시대에 혜거국사비문(惠居國師碑文)에 미륵사의 개탑(改塔)에 대한 기록이 있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되어 17세기 조선 중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에 대한 발굴은 1970년대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와 1980년~1994년 사이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실시되어, 다양한 유적, 유물과 함께 목간 2점이 발굴되었다. 목간은 사지 궁남지 서쪽 연못 안에서 사면 목간과 묵흔 목간으로 발견되었다(미륵사지 출토 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4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益山彌勒寺址數詞木簡 319
作者 未詳
椋不 <끝>
* 원문 출전: 익산미륵사지-319,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02; 익산 미륵사지,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8-18.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