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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8장 5-8절.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
구절 해설
5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Philip went down to the city of Samaria and began proclaiming Christ to them.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Φίλιππος δὲ, κατελθὼν εἰς τὴν πόλιν τῆς Σαμαρίας
Philip now, having gone down to the city of the Samaria
‘내려가’(κατελθ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gone down), 과거에 내려간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빌립’은 열 두 사도 중 하나인 사도 빌립이 아니고,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 중에 하나로서(행 6:5),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1장 8절에는 ‘전도자 빌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스데반의 순교와 사울의 박해로 예루살렘에서 흩어져 간 성도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 ‘사마리아 성’이란 사마리아 지방의 한 도성이란 뜻(a city of Samaria)이 아니고, 옛날 북이스라엘 나라의 수도인 ‘사마리아 성’(the city of Samaria)을 가리킵니다.
이 사마리아 성은 북이스라엘 나라의 오므리 왕이 건설한 곳이고(왕상 16:24), 헤롯 대왕이 세바스테(Sebaste)라고 개칭한 곳입니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20권 6:2).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ἐκήρυσσεν αὐτοῖς τὸν Χριστόν.
he was proclaiming to them the Christ
‘전파하니’(ἐκήρυσσεν)는 미완료 과거로서(was proclaiming) 계속 복음을 전하고 다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초대교회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양반이 상놈하고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결혼을 안 했고, 심지어 사마리아 지방에 걸어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4장의 수가성 여인은 유대인인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걸자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당시에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이 철저히 서로 상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예루살렘 성도들이 유대 뿐 아니라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예루살렘에서만 3천 명 5천 명씩 모여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강제로 사울을 통해서 예루살렘교회에 강한 핍박을 주시고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사마리아에 피난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2. 이처럼 핍박과 고난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편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했고(시편 119:71),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채찍과 징계를 주신다(잠언 3:12)고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당할 때는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3. 이처럼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와 온 땅으로 흩어졌는데(행 8:1), 그 중에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에 가서 전도했습니다.
앞에 7장에서는 스데반 집사가 산헤드린 공회에서 목숨 바쳐 전도했는데, 8장에서는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에 복음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7장과 8장에서는 사도들이 아닌 안수 집사님들의 활동이 두드러집니다.
그래서 오늘 5절에서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6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 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crowds with one accord were giving attention to what was said by Philip, as they heard and saw the signs which he was performing.
무리가---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προσεῖχον δὲ οἱ ὄχλοι τοῖς λεγομένοις ὑπὸ τοῦ Φιλίππου ὁμοθυμαδὸν
Were giving heed now the crowds to the things being spoken by the Philip with one accord
직역하면 ‘그 무리가 한 마음으로 빌립에 의해서 말해지고 있는 것들을 청종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따르더라’(προσεῖχον)는 미완료 과거로서(Were giving heed) 계속 청종하고 따르는 것을 가리키고, 주목하고 호의적인 관심을 가지는 것(paying attention and giving a favourable response)을 가리킵니다.
‘말해지고 있는’(λεγομένοις)는 현재분사 수동태로서(being spoken) 빌립이 말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무리’란 사마리아 성읍의 성민들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사마리아 성 사람들이 빌립의 전도를 열심히 추종하고 있는 것은 10여 년 전에 예수님이 이 사마리아 지역 수가성에 가셔서 전도하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요 4:40-42).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ἐν τῷ ἀκούειν αὐτοὺς καὶ βλέπειν τὰ σημεῖα ἃ ἐποίει.
in the [time] to hear them and to see the signs which he was performing
직역하면 ‘그 때 그것들(빌립이 말한 것들)을 듣고, 또 그가 행하고 있는 표적들을 보고’란 뜻입니다.
‘듣고’(ἀκούειν)는 부정사형 동사이고(to hear), ‘보고’(βλέπειν)도 부정사형 동사인데(to see), ‘청종하더라’(προσεῖχον, were giving heed)에 연결되고 있습니다.
‘행하는’(ἐποίει)은 미완료 과거로서(he was performing) 빌립이 계속 표적들을 행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빌립이 표적을 행한 것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참된 전도자인 것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요 3:2).
1. 그런데 빌립 집사가 복음의 말씀을 전파하자, 하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중풍병자를 고치고, 병자들을 치료하는 기적을 행하게 해주셨습니다.
이처럼 복음에는 예수님이 약속하신 표적이 따랐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6장 17-18절에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2. 이러한 빌립 집사의 전도는 오늘날 복음 전도가 사도들이나 성직자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해야 할 사명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본 마가복음 16장 말씀은 믿는 자들에게는 누구든지 복음을 전할 때 이런 표적이 따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 이런 빌립의 전도와 표적을 보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빌립의 말을 순종했다고 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과 대조적으로 참 복음 전도에 호의적이었습니다.
스스로 거룩한 자들이라고 자처하는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스데반 같은 위대한 복음 전도자를 죽이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지만, 유대인들에게 개 취급을 당했던 사마리아인들은 빌립의 복음 전도를 받고 한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야고보서 2장 1절에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한 모세도 신명기 16장 19절에서 <외모로 판단하여 재판을 굽게 하지 말라>고 했고, 예수님도 요한복음 7장 24절에서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으며, 베드로 사도도 베드로전서 1장 17절에서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신다>고 했습니다.
4.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전도하고, 사마리아인들이 빌립의 전도를 받아들임으로써 예수 안에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상종하지 않는 벽을 깨고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는 모습입니다.
즉 대립과 불신과 반목이 사라지고, 하나가 되고 한마음이 되는 참으로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장 11절에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27-28.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러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여러 파로 갈라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고린도전서 1장 10-13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라고 했습니다.
7절.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n the case of many who had unclean spirits, they were coming out of them shouting with a loud voice; and many who had been paralyzed and lame were healed.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πολλοὶ γὰρ τῶν ἐχόντων πνεύματα ἀκάθαρτα
many for of those having spirits unclean
직역하면 ‘왜냐하면 더러운 영들을 갖고 있는 자들의 많은 이가’란 뜻입니다.
‘갖고 있는’(ἐχόντων)은 현재분사로서(having) 현재 갖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크게 소리를 지르며
βοῶντα φωνῇ μεγάλῃ
shouting voice in a loud
여기 동사(βοῶντα)는 현재분사로서(shouting)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나가고
ἐξήρχοντο
they were coming out [of them]
‘나가고’(ἐξήρχοντο)는 미완료 과거로서(they were coming out) 계속 소리지르면서 나가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πολλοὶ δὲ παραλελυμένοι καὶ χωλοὶ, ἐθεραπεύθησαν·
many now having been paralyzed and lame, were healed
직역하면 ‘마비가 된 많은 사람과 절름발이가 나았다’는 뜻입니다.
‘마비가 된’(παραλελυμένοι)은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paralyzed) 사지가 마비되어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누가가 의사로서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Linguistic Key.
‘나으니’(ἐθεραπεύ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re healed) 단번에 분명히 나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1. 복음을 전할 때 귀신이 떠나가고, 병자들이 낫는 것은 예수님이 마태복음 10장 1절에서도 사도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이고, 마가복음 16장 17-18절에서는 모든 믿는 성도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이런 놀라운 표적이 나타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이런 역사가 나타나고, 특히 선교지에서는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표적은 현상이지 본질은 어디까지나 복음 전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0장 20절에서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신 후에 강조하여 말씀하시기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8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ere was much rejoicing in that city.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ἐγένετο δὲ πολλὴ χαρὰ ἐν τῇ πόλει ἐκείνῃ.
There was then great joy in the city that
‘있더라’(ἐγένετο)는 부정과거로서(There was) 과거에 있었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큰 기쁨이 있었던 것은 영혼들이 구원받아서 기뻤고, 귀신들이 떠나가서 기뻤고, 불치의 병들이 고침받아서 기뻐했던 것입니다.
이것들은 인간적인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실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었기 때문에, 크게 기뻐한 것입니다.
1.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가정이나 성읍에 큰 기쁨이 생깁니다.
복음 전도는 영혼을 살리고, 육신을 살림으로써, 큰 기쁨의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과 축복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2.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얻어먹으려고 헐떡였다고 했습니다(시편 119:131).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을 소생시키며(시편 19:7), 하나님의 말씀은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했습니다. (시편 19:10)
3. 그러므로 참된 행복과 기쁨을 맛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고(시 1편), 하나님의 말씀은 내 길에 빛이요 내 발에 등불이라고 했습니다(시 119:105).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을 받고 자녀가 잘된다고 했습니다(시 112편 1-2).
예레미야 15: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입니다.
이처럼 빌립은 동료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고,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무서운 핍박을 가해서, 살던 곳에서 도망가 사마리아 성에 갔지만, 빌립의 복음 전도와 표적을 통해서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을 이룩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우리가 살던 터전에서 어떤 어려움과 난관에 봉착해서, 다른 곳으로 터전을 옮겨 갈지라도, 낙심 말고 열심히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고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많은 복음의 열매를 맺고, 선한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서, 다시 큰 기쁨과 복된 생활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