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 18: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해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마 19:17)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했느니라.
(갈 3:12)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해 돌아가셨도다.
(롬 5:6)
예수께서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4:2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했거니와,
(롬 10:5)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됐도다.
(롬 7:10)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롬 2:13)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분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딤전 3:16 상)
그분께서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분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고,
그분 경건하심 때문에 들으심을 얻으셨느니라.
(히 5:7)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생명의 길로서 여호와의 율법’을 말씀하신 바울 사도는 디모데전서 3장 16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칭의’를 증거하신다. 그러함에도 ‘생명의 길로서 여호와의 율법’을 “율법 따위”1)로 모독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예장 합동 꼴뚜기(서철원)파 Wolf이철은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칭의’를 부정함2)으로써 스스로 이단이 됐다.
{바른 믿음} 정이철 <김효남 개혁신학 vs 성경적 개혁신학, 거대한 총회를 둘로 분리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해법>
https://archive.ph/TDRh4
다음은 위 링크 글에서 옮기는 글이다. 오타 “나아게”는 ‘나에게’로, “같다가”는 ‘갖다가’로, “갖자가”는 ‘갖다가’로 내가 고친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했던 재미있는 말을 그대로 소개하니, 독자들은 필자가 한 말이라고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기 바란다.
“김효남 교수의 말은 그리스도가 대속적 죽음과 자신을 우리에게 연합시키심으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지 못하니, 모세의 율법을 다 준수하여 얻으신 율법의 의를 우리에게 더 추가하여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도 그리스도의 목욕 재계의 의, 그리스도의 구강 청결의 의, 그리스도의 항문 청결의 의, 그리스도의 금욕 생활의 의 … 이런 것을 갖다가 붙이는 것보다는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율법준수의 의를 갖다가 붙이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종교 다원주의 하자는 것도 아니고, 총신이 처음부터 개혁신학을 바르게 가르친 학교도 아니니 그냥 넘어갑시다.”
베드로후서 2장 22절을 떠올린 내 마음속에 ‘예장 합동 꼴뚜기 서철원파, 이 독사의 미친 개새끼들!’이라는 욕을 하도록 만든 말이었음에도, “재미있는 말”??????? 주인을 무는 개가 존재하지만, 개새끼들도 이런 미친 개새끼들이 없다. 주인을 무는 미친 개새끼처럼 간교한 독사의 긴 혀를 날름거린 “그리스도의 항문 청결의 의”가 ‘거룩하신 여호와의 거룩한 율법’을 “따위”로 모독하기를 마다하지 않은 신성모독자 Wolf이철에게는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참람僭濫한 말’이 아닌 “재미있는 말”이었을 것이다.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했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했도다. (벧후 2:22)
간교한 독사의 긴 혀를 가진 미친 Wolf이철이 뒤늦게 이 모독의 참람죄를 깨달았을까? Wolf이철은 미쳐 버린 제정신을 조금 차렸는지 <김효남 개혁신학 vs 성경적 개혁신학, 거대한 총회를 둘로 분리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해법>이라는 넋 빠진 제목도 <김효남 교수의 신학을 성경적 신학으로 받들면서 총회를 둘로 분열시키는 것이 옳은가?>로 고치며 “그리스도의 항문 청결의 의”를 삭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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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른 믿음} 정이철 [유창형 교수 능동 순종 논하다 스스로 이단 시비 만드는 상황]
https://archive.vn/s76Al
위 링크 글에서 ‘생명의 길로서 여호와의 율법’을 “율법 따위”로 모독하기를 서슴지 않았던 신성모독자 Wolf이철은 ‘정이철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 (서울: 도서출판 다움, 2022)’ 53쪽에서도 “율법 따위”를 두 번 쓴다.
2) {바른 믿음} 정이철 <노승수 목사 계속 미숙한 신학적인 주장으로 자신을 불리하게 해>
http://archive.fo/BXc14
디모데전서 3장 16절은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칭의’를 증거한다. 또한 히브리서 5장 7절은 ‘전 생애에 걸쳐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하셨던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구원(영생, 부활의 생명)’을 증거한다. 그러함에도 위 링크 글에서 성경 지식이 짧은 Wolf이철은 “그리스도가 칭의되었다는 것은 곧 구원받았다는 뜻이다. 대체 그리스도가 왜 칭의를 얻으셔야 한다는 것인가?”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디모데전서 3장 16절과 히브리서 5장 7절을 부정한 이단임’을 증명했다. 스스로 자신의 이단성을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증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