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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동포에게 보내는 편지
함석헌
오래 막혔습니다.
그러나 어느 땐들 서로 잊을 수 있습니까? 지금도 늘 꾸는 꿈, 꿈만 꾸면 언제나 평안북도 용천 우리 집에 가 있습니다. 헤어진 지 30년이 거의 돼오고,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단 말이 있으니, 모든 것이 많이 변했을 줄 압니다. 그러나 강산이 변할지언정 마음이 변할 리야 있습니까? 또 생각이 혹시 좀 달라지는 때가 있다손, 너도 나도 한국 놈이요 조선 놈인 그 바탕에서야 어떻게 변함이 있겠습니까? 멀리 아프리카에서 끌려와 종살이를 했던 검둥이처럼,
온 세상이 다 재미없고
늘 슬플 뿐일세
내 늘 원은
내 집에 보내주오
그것이 언제나 입속에 씹는 노래입니다.
가을이 벌써 깊었습니다. 나도 늘 해보던 농사, 지금은 가을도 거의 다 끝나 가겠습니다. 여기도 벼가 누렇게 익어갑니다. 그래도 조금도 기쁜 것이 없습니다. 우리 평안도 말에 “강기리 간덴 가을도 봄이다.” 하지 않습니까? 강기리를 여기서는 이무기라 합니다. 용이 되다 못되고만 그 거짓된 꼴이 보기 싫기 때문에 세상까지 화를 입어 가을이 와도 먹을 것 하나 없는 노랑 봄철 같다는 말입니다. 이무기면 어떻고 강기리면 어떻습니까? 이름이 다르다뿐이지 하나입니다. 이북 사람이나 이남 사람이나, 용인 체 하면서 되다 못된 것들 때문에 씨알이 화를 입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가보나 마나 거기도 가을이 와서 곡식이 익었어도 기쁨이 없긴 매일반일 줄 압니다.
서풍이 설렁설렁 불어옵니다. 아침이면 이슬 위에 여러분 눈매가 비쳐 있고 저녁이면 바람 속에 여러분 숨결이 깃들었습니다. 당나라 때 유명했던 중 한산(寒山)의 글귀가 생각납니다.
沼露千般草 (소로천반초)
吟風一樣松 (음풍일양송)
此時迷徑處 (차시미경처)
形問影何從 (형문영하종)
이슬에 눈물지는 천만 가지 풀
바람에 읊조리는 한결같은 솔
길 몰라 헤매는 이제 이 자리에
몸 그림자더러 묻는 말 “어디로 가?”
한산이야 도를 통한 사람이었으니 어떤 깊은 지경을 읊은 것인지 모르지만, 내게는 이것이 꼭 우리 모양 그대로인 것같이 생각이 됩니다. 저 어지러이 엎디는 가을 풀 위에 수북하게 맺히는 차디찬 아침아슬, 천 가지 시름, 만 가지 분함에 지쳐 밤새워 울던 여러분 눈물 아닙니까? 또 그 눈물 들여다보는 내 늙은 눈에 그칠 새 없는 눈물 아닙니까? 여기도 저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뜻이야 어찌 그럴 리 있습니까?
눈물에 녹아버릴 그런 약한 것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사람이니 정이 없을 수 없고 정이 있으니 울기는 울지만 정만이 사람은 아닙니다. 뜻이야말로 사람입니다. 버티고 꿰뚫는 뜻이 사람을 사람으로 만듭니다. 허트러 지는 풀만을 보지 말고 그 가운데 우뚝 서는 늙은 소나무를 보십시오. 아버지 같이 서는 그는 한결같이 변함이 없는 기상(氣像)입니다. 그것이 우리 ‘뜻’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남산 위에 저 소나무......” 하지 않습니까?
해 묵어 다 부스러져는 가면서도 그래도 그 가지 이리 벌리고 저리 벌려 그 풀같이 몸 가눔 못하는 감정을 달래고 보호하는 듯하고, 하늘에 오르자 악쓰는 용인 듯 우불구불 파동치는 그 몸집 그칠 줄 모르고 피어 오르는 기운 그대롭니다. 살갗은 시커멓게 다 타 늙고 상처투성이지만 잎은 바늘바늘 날카롭고 젊어 언제나 다름없이 파란 평화와 이김과 자람의 빛입니다. 사나운 바람 닥쳐오면 저도 한가지로 몸을 떨어 으흐흐 부르짖지만 겁나서 우는 울음이 아니라 정신을 가다듬노라 결심을 굳히노라 이를 윽 무는 데서 나오는 정신의 터짐입니다.
그 첫 순간이 지나가면 그 다음은 욍강젱강 칼소리요, 앞으로 내모는 나팔소리요, 그렇지 않으면 이김을 외치는 북소리입니다. 그러다가 달 밝은 밤 오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크고 작은 풀들의 춤을 맘대로 놀라는 듯 그냥 두고 혼자서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스르렁 거문고를 타, 때 가는 줄을 모릅니다. 이것이 한배 뫼 하날 못(天池)가에서 우리 할아버지께서 나라를 세우신 때부터 오늘까지 모든 너와 나의 가슴 속에 버티어 오고 자라오는 한 뜻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너와 나의 마음이요 뜻인데, 오늘의 이 꼴이 웬일입니까? 한산은 모든 것을 뛰어 넘은 경지에 섰기 때문에 세상도 나도 간 곳이 없어 此時迷徑處(차시미경처)라 했고, 몸과 마음의 갈라섬이 사라졌기 때문에 形問影何從(형문영하종)이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글자 그대로 몸에 그림자같이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인 것이 서로 갈라져 맞서서 어디서 왔냐, 어디로 갈거냐, 싸우고 헤매고 있으니 어떻게 합니까?
하나 됩시다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 돼야 합니다. 하나 돼야 삽니다. 갈라진 이대로는 살 수도 없고 산다 해도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잘해서 해방 후 오늘까지 양편에서 한 일이 옳고 발라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날까지 쌓아온 역사적인 속알의 덕택으로 이만이라도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조상의 물려준 유산으로 살아가는 셈입니다. 그것이 민족적 전통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6·25 때와 마찬가지로 양편이 다 그렇게 어리석게 악독하게 파괴 행동만 했다면 오늘까지 살아남을 수 있겠나? 살린 것은 소련의 무기, 미국의 무기도 아니요, 민주주의나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도 아니요, 사람을 풀처럼 무찔러 버리는 중공의 도움도, 말은 정의요 인도라지만 속살은 제 나라 이익만 생각하는 소위 중립국이라는 것들의 간섭도 아닙니다. 세상도 모르고 남이 충동하고 몰아넣는 싸움에 어리석게 넘어가 4년 동안을 싸우다가도 그래도 씨가 남은 것은 우리 조상들이 여러 천 년 이 땅에서 갖은 고난과 싸워가며 닦아낸 이 인간성, 사람다운 정신 때문입니다. 그것마저 아주 없어졌다면 살아남았을 수가 없고 설혹 살았다 해도 짐승보다도 더 흉악한 물건이었을 터이니 어떻게 생존했겠습니까? 선전에 속아서는 아니 됩니다. 사람의 세상을 만드는 것은 결코 정치가 아닙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인간 양심을 뺏어 버려야 코 꿰인 소나 목 매인 강아지인 양 지배를 할 수 있고 그래야 짜먹고 저희들이 호강을 할 터이니까 그런 선전을 하지만, 절대로 거기 속아서는 아니 됩니다. 정치하고 지배했다는 것들 다 갔습니다. 잘난 것 같지만 가고 나면 물결에 놀다 흘러가버린 가랑잎입니다. 죽어도 남는 것이 참입니다. 영웅이라던 것들 어디 있습니까? 그것들과 한가지로 그 정치도 그렇게 가버렸습니다. 오늘까지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붙들어 갑니까? 인정입니다. 양심입니다. 정신입니다. 뜻입니다. 이것은 정치가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정치와 싸워가면서 얻은 것입니다. 몸은 죽어도 이것은 넘겨주고 넘겨 받아졌습니다. 같은 사람 중에서도 우리 조상은 우리 식으로 한 것이 있고 남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한이란 것이요, 조선이란 것입니다. 소금이 소금 맛 잃으면 의미가 없듯이 개인이 제 개성 잃으면 사람 아니고, 민족이 제 민족성 잃으면 짐승의 무리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6·25를 치르고도 오늘까지 아직 스파이 싸움을 하면서도 그래도 살아남은 것이 이 인간정신, 민족정신, 남 속에 나를 보고 내 속에 남을 보는, 그리해서 전체를 살려갈 줄 아는 이 정신적 유산 하나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이 싸움 즉시로 그만두고 하나 돼야 합니다. 이 이상 더 가면 간신히 남아 있는 이 정신이 아주 없어져 버리고, 소나 강아지처럼 중국 사람 혹은 일본 사람의 가축 노릇을 하고 기계 노릇을 할지언정 한국이니 조선이니 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방심 마십시오. 시각이 급합니다.
씨알이 일어서야 합니다.
씨알이란 말 들었습니까? 처음입니까? 민중이란 말입니다. 이북에선, 인민이라고 하지요. 인민이거나 민중이거나 마찬가지 민(民)인데, 민은 중국말이지 우리말이 아니어서 우리는 그렇게 부르기로 했습니다. 알아두십시오, 정치가들의 버릇이 그렇습니다. 옛날 중국 사람이 자기를 부를 때에 짐(朕)이라 했는데 진시황이란 것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천하를 제 손아귀에 넣자 사람을 영원히 억누르고 해먹을 심정으로 짐(朕)을 자기만이 쓰고 일반 사람들이 못쓰도록 강제하여 자기는 백성과 다른 거룩하고 높은 존재인 것처럼 만들려 했습니다. 모두 그 식입니다. 민(民)이란 그저 그런 사람인데 봉건시대에는 신민이라 하면서 속였고, 민족주의 시대에는 국민이라 하면서 속였고, 공산주의는 인민이라면서, 민주주의는 민중이라면서 속입니다. 다 정치가와 거기 붙어먹는 학자들의 장난입니다. 나는 그것이 싫어서 아무것도 붙일 수 없는 씨알이라는 말을 씁니다.
제 본성 곧 인간성, 민족성을 잃지 않은 맨 사람이 곧 씨알입니다. 곡식의 알, 나무의 열매 그 곡식 그 나무의 특성이 들어 있어 그 한 알이 있는 한 그 종류는 없어지지 않는 모양으로 우리가 우리 노릇을 하는 것은 우리 속에 사회적 역사적 생활을 함으로 알들고 박혀오는 그 특성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떤 지위나 특권 같은 것을 얻으면 그 속알을 그만 잊어버립니다.
그러기에 보십시오. 소위 정치가라 군인이라 하는 것들 사람을 학대하고 죽이는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압니다. 그들은 나라가 갈라져도 합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한국적인 것이 있어도 없어도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 자기네가 지배권을 쥐고 마음대로 씨알을 억누르고 짜먹어서 호강을 하고 스스로 잘났거니 하는 권위욕에 취하면 그만입니다. 그들에겐 조국도 민족도 인간도 없습니다. 일본에게 망할 때도 그렇게 망했고, 남북으로 갈릴 때도 그렇게 갈렸고, 6·25도 그렇게 일어났습니다. 우리 씨알이, 누가 나라 갈라지기를 원했습니까? 누가 싸우기를 원했습니까? 그들이 공연히 공산주의라 민주주의라 하면서 그럴듯한 말로 우리를 속였고, 그 결과로 얻는 것은 그들의 더러운 부귀 대신 나라는 파리하고 민족은 멸망이 가깝게 된 것 뿐입니다.
요새 가족 찾기 운동 이야기가 있습니다마는 여러분 무엇을 아는 것이 있습니까? 가보지 못하지만 아무것도 없을 것을 내가 여기 있어도 짐작합니다. 말은 민간이라지만 거짓말입니다. 민간 아닙니다. 역시 정치에서 하는 일입니다. 그러한 한 진정한 남·북 교통 될 리가 없습니다. 남·북의 순수한 씨알이 아무 정치적인 독균이 전염되지 않은 사람들이 어떤 정치적인 속셈도 없이 진정으로 인간을 살리고 인도 사회를 살리고 민족적인 전체를 살리기 위해 서로 만나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의 변함 없음을 믿습니다. 내가 그러니 여러분도 그럴 것을 믿습니다. 예로부터 민(民)은 씨알이 언제나 썩지 않았습니다. 잘 알지 않습니까? 종자는 썩는 법이 없습니다. 역사의 기록으로는 만주 어느 절간에 보존됐던 연밥이 600년 넘은 후에도 아귀를 텄고,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4천년이 넘는 고전 속에서 나온 피 알이 싹이 나왔습니다. 씨는 제 속에 알갱이가 있어 그것이 산 생명이기 때문에 썩지 않습니다. 그 알갱이가 죽어 버리면 야자같이 큰 알도 남에게 먹히는 데나 쓸지언정 종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람 씨알도 그렇습니다. 무엇에 쓰이려 할 때 속 생명을 잃습니다. 쓰려는 놈은 산 것이 소원이 아니고 죽어 밥 돼주는 것이 소원이기 때문에 반드시 인간의 알갱이 곧 양심을 제해버립니다. 양심을 완전히 죽일수록 잘 쓰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한테 쓰이려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 속에 알갱이로 들어있는 전체를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요 존재의 의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것은 무슨 지위에 있는 사람 아닙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순 씨알을 향해 하는 말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다만 가난과 낮음과 아들·딸 뿐일진대, 여러분이 한 사람 사람 조선 인간 그대로 있을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믿습니다. 여기서도 여러 십 년 갈라져 있으니 많이 달라졌을 거라 걱정하는 사람들 상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모르고 조국을 모르는 말입니다. 칼로 물을 잘라도 빼는 순간 곧 합합니다. 물대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칼에 잘라지는 것은 물이 아닌 것처럼 정치나 전쟁으로 인해 변할 수 있는 것은 사람도 아니요 민족도 아닙니다.
남은 북을 믿고 북은 남을 믿고 일어섭니다. 빨리 일어설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준비가 못됐거든 서둘지 마십시오, 봄이 와야 싹은 납니다. 그 대신 올 때까지는 아무리 기다려도 걱정 없습니다. 다만 속이 썩지만 마십시오. 속은 제가 스스로 내주지 않는 한 어떤 흉악한 도둑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혁명입니다.
민족통일은 곧 혁명입니다. 이것은 민족혁명만도 사회혁명만도 아니요, 그보다도 더 크고 더 깊고 더 새로운 혁명입니다. 쉬운 생각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런 각오를 못 하거든 통일 소리 하지도 마십시오. 그런 싸구려 싸구려 식의 통일론에 참여한댔자 야심가의 배를 불려주고 또 속아 전보다 더 심한 종살이를 할 뿐이지 아무 소득이 없습니다. 다른 나라 정부들은 물론 믿을 수 없고 우리 남·북에 있는 정부들을 믿어서도 아니 됩니다. 그들에게 성의도 없거니와 맘만 있다 해도 그들은 할 수가 없습니다. 썩은 살은 되살리는 재주가 없습니다. 지금 있는 정치 기구들은 다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지난 시대의 물건입니다.
혁명을 하는 씨알은 이 시대를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갈라진 것은 우리 때문만이 아니고 변하는 세계 역사의 한 구절입니다. 우리가 갈라진 것이 그럴진대 앞으로 바라보는 통일도 옛 껍질에 도로 돌아가는 것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낡은 껍질이 깨진 것은 벌써 몸이 자랐기 때문인데 어떻게 다시 그 속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될 수 없는 시대착오요, 설혹 된다 해도 그것 죄악입니다. 역사에 되풀이는 절대 없기에.
지난 불행을 불행만으로만 알아서는 혁명은 못합니다. 그것은 지배층의 낡은 관념입니다. 불행을 도리어 다행으로 알 만큼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합니다. 병은 아이의 정신 연령을 자라게 합니다. 우리가 38선의 잔혹한 칼에 맞지 않았던들, 6·25의 비참한 칼싸움 노예 노릇을 시키는 대로 어리석게 하니 않았던들 소련놈의 뱃속이 어떻고 미국놈의 속셈이 어떠며 중공놈의 심장머리가 어떤 것을 몰랐을 것이며, 이 국가주의가 어떻게 낡아 빠진 것이고, 이 세계가 어떻고 새 시대에 들고 있는 것을 세상이 몰랐을 것입니다. 이제 이것을 이해해서만 우리는 혁명의 자격이 있고 우리 사명이 분명해집니다.
나는 위에서 낡은 껍질에 돌아가서는 아니 된다 했습니다. 낡은 껍질이 무엇입니까? 국가주의입니다. 깊이 생각하십시오. 통일은 결코 한 정치 주권 밑에 들어가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래 이 남한이 이북 정권 밑에 들어가기를 바랍니까? 절대 그렇게 생각 아니할 줄 압니다. 거기서 지금까지 견디는 것도 지긋지긋한데 그들을 도와 우리를 또 그 멍에 밑에 들어가게 할 만큼 그렇게 여러분은 잔혹하지 않은 줄 압니다. 그러니 그렇지 만일 여러분이 정말 같이 그 정책을 찬성했다면 6·25는 다시 났을 것입니다. 다시 나지 않은 것은 이쪽에서 잘 막았다기 보다는 여러분이 김일성과 같은 마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나는 여러분을 이 정치 주권 밑에 들어오기를 바라느냐 하면 절대 아닙니다. 여기서도 잘 사는 것들은 나라와 민족 생각은 조금도 없는 몇 몇 뿐이고 전체 씨알은 못살겠다는 소리뿐인데 내가 어떻게 양심을 가지고 그것을 바라겠습니까? 이날껏 남한이 나라 전체를 통일 못한 것은 김일성 군대가 강해서가 아니라 따지고 들면 이 민중이 6·25 같은 그런 살인 연극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권력욕에 취한 지배집단들은 할 수가 없어 그러지 만일 할 수만 있다면 전쟁을 해서라도 제 손아귀에 넣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는 절대 되지 않습니다. 이 역사의 대세가 그것을 허락치 않습니다. 그 대세를 누가 만들고 있습니까? 절대로 절대로 소위 정치가란 것들 아닙니다. 인간성을 토대로 하고 인도적인 문화 교통에 의해서 더 높은 정신적인 가치를 바라고 향해 하나로 협조하고 있는, 수 없고 이름 없는 세계의 씨알들입니다. 자기네도 그것을 의식 못하는 때 많지만, 사실은 그것입니다. 이제 이미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동안에 하고 있는 그 혁명을 깊이 깨달아 의식적으로 계획적으로 해야 한단 말입니다.
사람은 어느 형식의 제도 없이는 못 삽니다. 그러나 이 사회제도는 근본에서 우리에게 방해가 됩니다. 그것이 좋다는 사람은 다 직접·간접으로 지금 있는 권력 구조에 붙어서 전체의 발전을 막는 대가로 향락을 누리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정치계에만 아니라 종교계에도 예술계에도 어디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수입니다. 그들의 다 같이 가지고 있는 심리는 급격한 변동을 싫어하는 일입니다. 앞으로 오는 세계는 그들의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맨 씨알의 것이지. 씨알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나가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혁명은 폭력으로는 하지도 못하고, 또 그러기 때문에 폭력으로는 막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난날의 모든 혁명이 참 혁명이 못되고 만 것은 폭력을 썼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씨알은 언제나 동지를 제물로 바치며 수고는 하고도 언제나 협잡꾼한테 속아 팔려 넘어갔습니다.
소위 혁명가 치고 민중을 배반하고 특권적인 지배자 되지 않은 놈 없습니다. 그 주되는 원인은 폭력을 쓴 데 있습니다. 폭력을 쓰면 외양으로 보기에 성공이 빠른 것 같으나 뵈지 않는 속에서 사회생활의 근본 생명인 인간성을 망가쳐 버립니다. 소위 말하는 혁명의 영웅이라 하고 폭력을 써서 사회악을 바로 잡으려 급급했던 인물 중에 인심을 타락시키지 않은 자 없습니다. 사람의 속에는 선·악 두 성질이 다 있습니다. 그 악한 것을 동원시키는 것이 정말 영웅입니다. 역사에 찾아보면 환합니다. 세상이 정말 고쳐지는 것은 시기와 미워함과 화풀이와 원수 갚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되는 것이 아님을 이제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민중은 손에 무기를 쥐어줄 때 강한 것 아니라 순전히 용서와 희생과 봉사의 정신으로 맨 손을 들고 나설 때에 정말 강합니다. 옛날도 그 예가 없지 않으나 이제는 그것을 세계적인 규모로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2천 년 3천 년 전에 모든 위대한 종교의 스승들이 고난과 죽음으로 부르짖었던 계시와 이상이 이제는 과학적인 사실이 됐습니다. 좁은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난날 모든 가짜 혁명가들이 했던 것같이 혁명한 뒤에 행복을 줄 것을 약속하면서 할 수 없습니다. 전체를 위해 제물이 될 각오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몇은 죽어도 전체가 살 것입니다. 전체가 살면 나는 거기보다 새 생명으로 살아나 있습니다. 몸만이 생명인 것같이 알던 것은 폭력 숭배 시대의 일입니다. 이제 생명은 보다 높은 새 진화의 단계에 오르려 하고 있습니다. 생명에도 내적이 있고 외적이 있으며, 통일도 내적이 있고 외적이 있습니다. 외적 생명이 생명이 아니라 내적인 것이 보다 참 것입니다. 다음 단계는 그것으로만 연속이 되기 때문입니다.
통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정권 밑에 강제로 묶는 것을 통일로 아는 그런 따위 역사의 유물은 죽은 시대와 함께 장사하십시오. 우리가 맡은 것은 내적 통일 정치에 상관없이 인정으로 이성으로 뜻으로 하나가 되는 새 나라입니다. 몸만 아니라 사상이 서로 달라도 같이 살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에 이르는 혁명은 희생을 각오해야 되고 또 희생할 만한 보람이 있습니다.
신납니다
우리 할 일 크고 보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 자유를 빼앗는 지배자들 때문에 기운이 줄었섰습니다. 권위주의의 가장 큰 죄악은 사람에게서 자유 판단의 능력을 없애버리는 일입니다. 억눌러 놓고는 그것이 우리의 못난 것 때문이다, 지배받고 남의 사상에 사는 것이 마땅한 것이라고, 자꾸 노예 교육을 시켜 놓으니 정말 우리는 못났거니 하고 잔악한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알고 왔습니다. 이제 그것을 다 벗어 버립니다. 스스로 강자의 자리에 올라야 합니다. 정말 강한 것은 정신입니다. 정신의 높은 봉에 설 때 마음은 저절로 커져서 옛날의 원수를 무조건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것 없이는 앞에 오는 통일 못합니다. 죄를 지은 놈은 제 죄를 아는 법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를 사형수로 규정하고 제 갇혀 있는 감방에 악착같이 달라붙으려 합니다. 그래서는 통일이 아닙니다. 지옥이 한구석에 있는 곳이 하늘나라일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보복주의, 차별주의가 없다는 것을 뭣보다도 먼저 저쪽에 이해시켜야 합니다. 우리 속이 넓어질 때 저쪽 속도 넓어집니다. 이것을 공상같은 소리라 하지 마십시오. 정신은 기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사실은 기적이 아닙니다. 제 본성을 도로 찾는 것이지.
나는 이 말이 틀림없이 여러분 마음에 울려질 것을 믿습니다. 물론 남쪽 정부도 북쪽 정부도 이것이 전해지도록 허락 아니할 줄 압니다.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통신은 반드시 철사나 전기로만 되는 것 아닙니다. 내 정신은 날아 갑니다. 아니, 날아갈 것까지 없습니다. 여기는 우주 방송국입니다. 정신은 틀림없이 반응하는 것입니다.
믿습니다.
신이 납니다.
나는 어떤 압박자 보다도 더 오래 살 것입니다.
우리는 만날 것입니다.
씨알의소리 1971. 10월 5호
저작집30; 5- 139
전집20; 14- 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