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 가루 한 줌 나오기까지 / 박선애
올해도 어머니는 뒷마당에 들깨를 심었다. 트랙터는커녕 쟁기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씨 뿌리고 호미로 긁어서 갈았다. 장마가 길어서 밭농사는 볼 것이 없다고 하는데도 어머니는 작년보다 오히려 잘 길러 놓으셨다.
추석에 가니, 좀 이른 감은 있어도 때 놓치지 않게 베라고 하셨다. 주말에 가서 털겠으니 절대 하지 말라고 여러 번 당부하고 왔다. 전화할 때마다 잘 마르고 있는지 물어 봤다. 수요일은 아침에 조금 털어 보았더니 알맹이가 들깨 시늉만 갖췄다고 한다. 아무래도 수확할 것이 없을 것 같다고 하신다. 여물 시기에 가물어서 그런 거라, 터는 걸 포기할까 한다고 신경 쓰지 말고 쉬라고 하신다.
다음 날 아침에도 조금 털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주간 보호 시설에 다니기 때문에 낮에 시간이 없다. 어떻게든 혼자 해 보려고 꾀를 쓰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챘다. 지팡이 없이는 잘 걷지도 못하는데 들깨를 모아서 안고 다닌 걸 생각하니 아찔했다. 골다공증이 심해 넘어지면 중상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길에서 넘어지면서 어깨 뼈 부러져서 수술을 하기도 하고, 골반 뼈에 금이 가서 꼼짝 못하고 지내기도 했다. 다리에 힘이 없어 방에서 주저앉는 바람에 척추 시술도 두 번이나 했다, 그래서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뒷마당에 올라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해도 말을 안 듣는다.
이제 조금 남아서 조심히 하면 할 수 있겠다고 오지 말라고 했다. 나는 나대로 더 이상 하지 말고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우겼다. 토요일 오후 집에 갔다. 조금 했다고 하더니, 5분의 4는 해 버렸다. 그것을 나는 모아서 날라다 주면 어머니는 두드려 털었다. 그루터기와 돌멩이를 피하며 발을 디디려고 하니 조심스러웠다. 이런 곳을 어머니가 들깨를 걷어 안고 다녔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안 넘어진 것이 다행이다. 잔소리가 절로 나온다. 어머니는 듣기 싫다는 듯이 충분히 조심해서 다녔다고 대꾸하신다. 파란 비닐 자리에는 고운 흙먼지와 함께 하얀 가루가 풀풀 날렸다. 꽃 질 무렵에 약을 치지 않으면 벌레가 다 먹어 버려 거둬들일 게 없다고, 우리들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벌초하러 온 큰아들 졸라서 뿌려놓은 살충제 가루다. 비가 안 오니 씻기지 않고 잎에 붙어있다 떨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보니 끔찍해서 숨을 참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도 두드리면 더 강하게 풍기는 들깨 향이 좋아 일하는 것이 즐겁다. 작년에 해본 경험을 살려 체로 쳐서 거친 것들을 가려냈다. 선풍기로 티와 먼지를 날렸다. 옆에서 보고 계시는 어머니는 “풍구로 하면 금방 할 수 있을 텐데.”라고 하시며 일이 더딘 것을 답답해하신다. 당신처럼 너무 오래 써서 망가져 쓸모없게 되었다고 쓸쓸해하신다. 그래도 여러 번 반복했더니 제법 깨끗하게 모아진 동글동글한 하얀 알갱이가 큰 대야에 거의 찬다. 어머니는 작년보다 알이 실하지는 않아도 양은 더 많이 나왔다고 닷 되 이상 되겠다고 뿌듯해하신다.
아침이 되자 그것을 씻었다. 작년까지도 어머니가 했던 일이다. 대야에 담고 물을 부었다. 쌀을 씻는 것처럼 하면 될 거라고 쉽게 생각했는데 들깨가 위로 둥둥 떠 씻을 수가 없다. 농약이 묻었을 것 같아 팍팍 문질러 씻으려고 했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잠시 당황했다. 다시 바가지로 떠서 대소쿠리에 부었다. 플라스틱 바구니는 구멍이 커서 빠져 나가므로 안 된다. 거기에서 두 손으로 비비고 문지르기를 반복했다. 물을 떠 부어서 헹구고 또 치댔다. 대야에 다시 담고 물을 부었다. 조리로 위에 뜨는 들깨를 건졌다. 그렇게 골랐어도 바닥에는 흙과 티들이 까맣게 가라앉아 있다. 이 작업을 두 번 더 했다. 그제서야 이물질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쪼그리고 앉아서 하다 보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허리도 아파 힘들었다. 이것을 말려서 방앗간에 가서 들깨 가루로 만든다고 했다.
그동안 해마다 어머니가 해 주신 들깨 가루를 가져다 먹으면서도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나오는 줄을 몰랐다. 작년에 어머니와 함께 들깨 농사를 지어 보고, 올해는 씻는 것까지 해 보니 들깨 가루 한 줌이 얼마나 귀한 줄을 알겠다. 비로소 어머니가 이렇게 힘들여서 우리를 먹여 주셨냐는 낯간지러운 표현도 술술 나온다. 그동안 시골에 가면 어머니 말고도 이웃이나 친척들이 콩이나 팥 한 줌을 챙겨 주기도 하고, 텃밭에서 채소를 캐 주기도 했다. 물론 그동안도 가볍게 여긴 적은 없지만 이제는 더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맛있게 먹을 것 같다.
첫댓글 들깨! 그나마 제철만 잘 맞춰 심으면 수확도 많이 나고 쉬운 농사지요. 이 글을 읽으면서 들깨 향이 코를 찌르는 듯 합니다. 신안에서 남편 친구가 검정들깨 씨앗을 작은 물병으로 한 병 주었어요. 철을 놓혀서 너무 늦게 심었나 했더니 땅에 다닥 붙은 나무에서 털어보니 다섯되나 나왔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들깨는 향이 강해 벌레가 청하지 않아 약을 치지 않는 작물 중 한 가지예요. 참깨보다 들깨를 더 선호해서 가을이면 두 말 정도 사서 기름도 짜고 생들깨와 볶은 들깻가루를 내어 일 년 내내 음식에 넣어 먹는답니다. 들깨만의 영양 효능도 좋고요. 오메가3가 풍부하게 들어있어 혈관 청소를 해준다네요. 염증에 특히 좋은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 면역력에 도움 된다 하니 값도 저렴하고 영양성분도 좋은 들깨를 많이 먹어야겠어요. 공감하면서 글 잘 읽었어요.
작년까지 엄마가 해 주시던 것을 올해부터 선생님이 하시는군요.
당연한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만드는 세월이 야속하지요.
그래도 어머니 계시니...부럽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