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고 유치한 교훈. 無力で頼りにならない諸霊。( 2024년 10월 20일 주일예배)
https://youtu.be/OQ1K_9j7igs
본문 갈 4:8~11
갈 4: 8 ○그런데 전에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본디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을 하였지만, 9 지금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알아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무력하고 천하고 유치한 교훈으로 되돌아가서, 또다시 그것들에게 종노릇 하려고 합니까? 10 여러분이 날과 달과 계절과 해를 지키고 있으니, 11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염려됩니다.
8. ところで、あなたがたはかつて、神を知らずに、もともと神でない神々に奴隷として仕えていました。9. しかし、今は神を知っている、いや、むしろ神から知られているのに、なぜ、あの無力で頼りにならない支配する諸霊の下に逆戻りし、もう一度改めて奴隷として仕えようとしているのですか。10. あなたがたは、いろいろな日、月、時節、年などを守っています。11. あなたがたのために苦労したのは、無駄になったのではなかったかと、あなたがたのことが心配です。
지난 주일에는 우리의 영적인 정체성이 영생의 상속자인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단지 그 권한을 우리에게 직접 맡기시기 전까지는 잠시 세속의 지식과 처세술, 그리고 가치관을 임시로 사용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주님의 자녀는 이제 더 이상 세속의 가치관으로 자신을 헤아리거나, 혹은 그 지식에 휘둘리지 않아도 되는 자격과 권세를 은혜로 받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영생의 상속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매일의 일상이 든든함과 평강으로 충만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된 이후에도 여전히 죄의 영향력에 붙들리게 되는 현실에 대해서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앞서서 말씀을 드린대로 우리의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하나님의 자녀이며, 빛의 자녀, 그리고 죄악과 허물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 이후의 멸망이나, 혹은 지옥 그리고 심판에 대해서 걱정이나 두려움, 혹은 막연히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겪는 수 많은 문제와 고난, 환란에 대해서도 불평하거나 불만을 갖지 않아도 되는 능력을 선물로 받았지요. 신약성경의 서신서들이 많은 구절을 통해 우리가 어떤 복을 지금 누리고 있는 지를 지속적으로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일상을 지내면서 만나는 이런저런 행동과 말을 선택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요. 물론 성경을 가까이 할 때 그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요일 2:14b)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성경을 꾸준히 읽고 기억에 남겨 주시는 말씀을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 우리의 자유와 권세를 강화하는 거의 유일하고, 최선의 태도와 자세인 것이지요.
그리고, 예수님은 그것이 곧 당신 자신이 우리와 함께 동행하는 방법이고, 가장 큰 축복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5:7-8)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가장 큰 축복인 것이지요. 그 외에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경험들은 그 축복의 양분으로 맺어지는 열매들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특히 우리가 사는 이 일본 땅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그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체감하지 못한 채 무엇인가에 억눌려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요.
이런 모습이 단지 믿지 않는 사람들만 겪는 문제와 영적인 병리현상이 아님을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복음을 믿는 자로, 혹은 교회를 다니며 그 지체로 살고 있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허무하고 무익한 지식과 가치관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고 복음의 은혜와 혜택을 누리고 있다면 결코 빛의 자녀로 사는 자리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요. 무엇보다 자신의 가치를 헤아리고, 삶의 태도를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세상의 유치하고 천박한 교훈에 의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길거리에서 생활하던 청소년을 교회로 데리고 와서 깨끗하게 씻기고, 새 옷을 입혀서 새로운 생활이 가능하도록 돕는 사역을 했습니다. 단지 입던 옷만 바꿔준 것이 아니라, 학교도 보내 주고, 교회의 지체들과도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어도 몇 달이 되지 못해서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요. 왜냐하면 새로운 삶의 자리에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식사 시간이라던가, 학교에 갈 시간이라던가, 옷을 갈아입고 몸을 씻는 일들과 같은 것인데요. 거리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습관이 몸이 배어 있어서, 처음 며칠은 견디지만, 몇 달 뒤에 몸이 게을러지고, 새로운 삶의 패턴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지요. 그럴 때를 대비해서 그 목사님은 거리에서 지내던 옷을 버리지 않고 진공포장을 해 놓고 있다가, 제멋대로 살던 버릇이 나올 때 따로 방에 불러서 그 옷을 꺼내 그 친구 앞에 내 놓으면 질색팔색을 하며 괴로워한다고 합니다. 실은 몇 개월 전만해도 자기 자신이 입고 지내며 좋아하던 더러운 옷이었는데 말이지요.
인간의 죄는 이렇게 익숙해 있을 때는 죄로 여기지 못하다가, 빛을 경험하면 죄를 죄로 다시 인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그렇게 다시 어두움의 지식과 세속의 가치관에 의지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아마 우리도 그렇게 거듭나기 전의 영적인 실체를 우연이라도 마주치게 된다면 기겁하며 놀라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시며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단지 율법을 지키기 때문에 거룩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여기셨기 때문에 거룩하게 살 수 있는 행동규범과 본보기를 기록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구약의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거룩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직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고, 거듭나서 영생하는 거룩한 존재로 인정해 주시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능력은 바로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가치를 세속의 가치관이 헤아리는 기준에 맞춰서 보는 것은 무척이나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세속의 초등학문의 기준으로 삶의 기준을 갖게 되면, 그 정도의 인물로 밖에 살 수 없는 것이지요.
세상이 아무리 우리에게 많은 소유를 자랑하도록 유혹할지라도 주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며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눅 6:20-21a)
또한 세상이 우리에게 남들에게 피해를 입었다면 배로 갚아주어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고 유혹할 때 주님의 이 말씀을 기억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 12:19)
마찬가지로 세상이 우리에게 스스로의 능력과 실력을 뽐내야 한다고 미혹할 때 주님의 이 말씀을 기억해야 평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시 20:7-8)
또한 앞날의 일을 불안하게 하여 현재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유혹하는 일이 생길 때 우리는 이 말씀으로 세속의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물으신 바 은밀한 것은 지혜자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단 2:27-28a)
이 외에도 삶의 사소하고 소소한 부분까지 주님께서 우리를 면밀하게 살피시고, 보호하고 계심을 증언하는 말씀이 성경에는 넘쳐나고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의 지식들과 정보, 그리고 주변의 이야기들이 더 훌륭해 보시고, 더 멋있어 보이고, 더 든든해 보여도 결국 우리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는 모두가 풀처럼 마르고, 꽃처럼 시들어 버립니다.
성경은 이처럼 세속의 모든 가르침과 지식은 풀이나 꽃과 같이 아름답고 화려해도 영원토록 든든히 남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벧전 1:24-25)
이 땅에 살면서 이 땅의 지식과 정보와 안내, 그리고 세속적인 가치와 가르침을 완전히 무시하고 적대적으로 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주님의 뜻과도 맞지 않습니다. 다만 그러한 모든 세속적인 지적인 자산들은 때에 따라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할 뿐, 의지할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직 우리가 의지하며 붙들고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약속입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의해 우리가 지켜야 할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매주, 그리고 매일 기억하며 지켜가는 이 귀한 삶의 실천을 성실하게 지킴으로 천하고 유치한 세속의 교훈에 휘둘리지 않는 참된 평강과 풍성함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하며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생의 상속자가 된 우리들은 이제 세속의 가르침과 가치관으로 스스로를 속박할 필요가 없는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잠시 우리의 삶을 지배했던 지식에 다시금 자신을 얽어매는 어리석은 선택으로 말미암아 괴로움과 낙심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가장 먼저 주님을 부르고, 주님의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뭔가 거창하고 어렵고 뜬구름을 잡고서 모르는데도 아는 척을 하고 고상한 척을 하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부족한 것 그대로 주님께 아뢰면, 주님께서 성경의 구절들을 통해서 감동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영생의 자녀답게 어떤 유혹과 말초적이며 쾌락적인 자극에도 지지 않는 권세를 붙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옛사람의 헛된 망상에서 깨어나 주님과 동행하며 매일의 일상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