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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떡이란 곡식을 가루 내어 찌거나 삶거나 기름으로 지져서 만든 음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떡의 어원은 옛말의 동사 찌다가 명사가 되어 찌기 - 떼기 - 떠기 - 떡으로 변화된 것으로 '
본디는 찐 것이라는 뜻이다.
시루떡 · 인절미 · 송편 · 주악 · 경단 등이 모두 이에 속한다.
떡이란 것은 밀기루를 반죽하여 합하는것 : 병이(餅餌)
이餌 - 쌀가루를 찐 것
자瓷 - 가루를 하지 않고 쌀로 쪄서 치는 것
유병油餠 - 기름에 지진 것
당궤餹鐀- 꿀에 반죽한 것
박탁餺飥 - 가루를 반죽하여서 국에 넣고 삶는 것은
혼돈餛飩 - 찰가루를 쪄서 둥글게 만들어 가운데에 소를 넣은 것
교이絞餌 - 쌀가루를 엿에 섞은 것
탕중뢰한湯中牢丸 - 꿀에 삶는 것
만두(饅頭 - 밀가루를 부풀게 하여 소를 넣은 것
중국에서는 밀가루가 보급된 한대(韓代) 이후에는 떡을 가리키는 용어가 병(餅)으로 불리었지만,
문헌상 떡이란 글자가 나타나는 조리서는 한글 조리서인 <규곤시의방(일명 음식디미방)>이며 여기서는
떡을 편이라 칭하고 있다.
떡이란 호칭은 <규합총서>에서 비로소 나타난다.
1. 우리떡의 가치와 우수성
떡은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 발전해 온 음식으로 우리의 정서와 문화가 담겨져 한국인의 생활과 의식
속에 깊숙이 들어앉아 희로애락을 함께 해 왔으며 그 종류도 많거니와 맛과 영양, 질감과 향을 위한
배합이 과학적이고 절묘하다.
떡은 계절에 따라 지방에 따라 맛과 향기와 빛깔이 다양하며 제철에 나오는 재료를 가지고 때와 절기를
맞추어 조리해 먹음으로써 건강을 도모하는 자연식이다.
가. 영양의 균형
떡에 들어가는 재료는 제철에 나는 자연식품으로 쌀에 견과류, 과일과 채소를 혼합하여 5대 영양소를
고루 갖추고 있으며, 향약성 효과가 크다.
나. 높은 소화율
떡은 주재료가 쌀이기 때문에 다른 부재료와 모양, 색, 향의 조화가 잘 어울리며, 소화율이 매우 높다.
다. 친환경 자연식
떡에는 여러 가지 식용꽃과 한약재료가 들어가며 쑥, 계피, 치자, 지초, 오미자 등의 다양한 천연염료와
천연향신료의 이용은 떡을 한층 화려하면서 품위 있게 해 준다.
인공색소나 인공 감미료를 넣지 않은 현대인의 몸에 좋은 친환경 자연식이다.
라. 한국인의 나눔의 철학
떡은 계절과 지방의 색채가 함께 어우러져 한국인의 일생의례를 같이하여왔다.
한국인은 삶의 기쁨과 슬픔을 떡과 더불어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음으로써 상부상조하며 정을 나누는
의미를 담고 있다.
(2) 떡의 유래
가. 역사성
우리나라 떡의 유래와 발달 과정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청동기시대의 유적지인 나진초도패총 및 삼국
시대의 고분군에서 시루가 출토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떡은 삼국(三國:고구려, 신라, 백제)이
정립되기 이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로 접어들어 본격적인 농경시대가 전개되면서 쌀을 중심으로 한 곡물의 생산량이
증대되어 쌀 외의 곡물을 이용한 떡도 다양해졌다.
특히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고구려인들의 생활상이 자세하게 나타나는는데 안악 3호분의 부엌장면에는
흰 포를 입은 여인이 큰 시루에 떡을 찌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를 근거로 당시에 떡은 즐겨먹는 음식이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고려시대에 한층 더 발달하게 되었고, 상류층이나 세시행사와 제사 음식
으로서가 아닌, 하나의 별식으로서 일반에 이르기까지 널리 보급되었다.
또한 농경을 바탕으로 형성된 절기와 세시풍속은 다양한 세시음식을
발전시켰다.
세시음식 가운데 떡은 절기의 의미는 물론이고, 제철의 재료를 활용하여
다양하게 발달되었다.
<고구려벽호 안악3호분 부엌장면>
* 절기와 떡의 의미
절기 | 시기 | 떡 | 떡의 의미 |
정월 초순 | 음력1월1일 | 흰떡국 | 순수무구한 경건을 표함 |
정월 보름 | 음력1월 15일 | 약식 | 까마귀에게 보은(報恩) |
중화절 | 음력2월 1일 | 송편 | 상전이 노비에게 송편을 나이수 대로 해 먹이고, 새해 농사를 시작하는데 수고해 달라는 대접 |
삼짇날 | 음력 3월 3일 | 진달래화전 | 집안의 우환을 없애고 소원성취를 비는 신제(神祭) |
초파일 | 음력 4월 8일 | 느티떡 | 석가탄일을 경축 |
단오 | 음력 5월 5일 | 쑥절편 | 단오차례(茶禮) |
쑥인절미 | 앵두천신(앵두), 햇쑥을 넣은 절편, 인절미 | ||
수리취절편 | 수리취를 넣은 절편(車輪餠) | ||
유두 | 음력 6월 15일 | 떡수단 | 햇외(瓜)를 천신하고 떡은 논에 나가 용신께 풍년을 기원 |
삼복 | 음력 6월 | 주악 | 한여름 잘 지내기를 기원 |
칠석 | 음력 7월 7일 | 찰떡 | 올벼를 천신께 바치며 기원 |
추석 | 음력 8월 15일 | 송편, 시루떡 | 햅쌀로 조상께 감사드림 |
중양절 | 음력 9월 9일 | 국화전 | 조상께 제사를 지냄 |
상달 | 음력 10월 | 시루떡(붉은 팥) | 고사일(告祀日)을 택해 집안의 평안을 기원 |
동지 | 음력 11일 | 팥죽(찹쌀경단) | 작은 설, 잡귀를 막아내는 벽사(辟邪)의 뜻 |
섣달그믐 | 음력 12월 30일 | 온시루떡 | 남아 있는 재료를 한데 모아 시루에 찌는 떡 |
시대별
(1) 삼국시대 이전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떡을 먹기 시작하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삼국이 성립되기 이전인 부족국가 시대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시기에 떡의 주재료가 되는 곡물이 이미 생산되고 있었고, 떡의 제작에 필요한 갈판과 갈돌,
시루가 당시의 유적으로 출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황해도 봉산 지탑리의 신석기 유적지에서는 곡물의 껍질을 벗기고 가루로 만드는 데 쓰이는 갈돌이,
경기도 북변리와 동창리의 무문토기시대 유적지에서는 갈돌로의 발전 이전 단계인 돌확이 발견된 바 있다. 또한 나진 초도 조개더미에서는 양쪽에 손잡이가 달리고 바닥에는 구멍이 여러 개 난 시루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곡물을 가루로 만들어 시루에 찐 음식이라면 '시루떡'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민족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시루떡 및 시루에 찐 떡을 쳐서 만드는 인절미, 절편 등도 보인다.
다만 아직 쌀의 생산량이 많지 않았으므로 쌀 외에도 조, 수수, 콩, 보리 등 각종 잡곡류가 다양하게 이용
되었을 것이다.
(2)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사회가 안정되자 쌀을 중심으로 한 농경이 더욱 발달하게 되었다.
쌀을 주재료로 하는 떡이 더 한층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고구려 안악 3호분 벽화에는 시루에 무엇인가를 찌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으며 여러 삼국시대의 고분
에서는 시루가 출토되고 있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삼국사기」,「삼국유사」 등의 문헌에는 떡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 당시의 식생활 중에서
떡이 차지했던 비중을 짐작하게 한다.
「삼국사기」신라본기 유리왕 원년(298년)조에는 유리와 탈해가 서로 왕위를 사양하다 떡을 깨물어
생긴 잇자국을 보아 이의 수가 많은 자를 왕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 같은 책 백결 선생조에는 신라 자비왕대(458∼479년) 사람인 백결선생이 가난하여 세모에 떡을 치지
못하자 거문고로 떡방아 소리를 내어 부인을 위로한 이야기가 나온다.
깨물어 잇자국이 선명히 났다든지 떡방아 소리를 냈다든지의 기록으로 보아 여기서 말하는 떡은 찐 곡물
을 방아 등에 쳐서 만든 흰떡, 인절미, 절편 등 도병류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백결선생이 세모에 떡해먹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겼다고 하여 당시에 이미 연말에 떡을 하는 절식
풍속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3) 고려시대
삼국시대에 전래된 불교는 고려시대에 이르러 역사상 최고조로 번성하게 된다.
불교문화는 고려인들의 모든 생활에 영향을 미쳤으며 음식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육식의 억제와 음다(飮茶)풍속의 유행은 과정류와 함께 떡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와 더불어 권농 정책에 따른 양곡의 증산은 경제적 여유를 제공하여 떡의 발전을 더 한층 촉진하였다.
고려시대에는 특히 떡의 종류와 조리법이 크게 다양해져 주목된다.
「거가필용」에 '고려율고'라는 떡이 나오는데, 한치윤의 「해동역사」에는 고려인이 율고(栗?)를 잘
만든다고 칭송한 견문이 소개되고 있다.
율고란 밤가루와 찹쌀가루를 섞어 꿀물에 내려 시루에 찐 일종의 밤설기이다.
설기떡을 찔 때 꿀물을 내리면 공기가 고르게 들어가 떡의 탄력성이 커지고 쉽게 굳지 않으므로 상당히
과학적이라 할 수 있다.
이수광은 그의 저서「지봉유설」에서 상사일(上巳日)에 청애병(靑艾餠)을 해먹는다고 하였다.
어린 쑥잎을 쌀가루에 섞어 쪄서 만든다고 하였으니 쑥설기인 셈이다.
이 외에도 송기떡이나 산삼설기 등이 등장한다.
즉, 이전에는 쌀가루만을 쪄서 만들던 설기떡류가 쌀가루 또는 찹쌀가루에 밤과 쑥 등을 섞어 그 종류가
다양해졌다.
(4) 조선시대
조선시대는 농업기술과 조리가공법의 발달로 전반적인 식생활 문화가 향상된 시기이다.
이에 따라 떡의 종류와 맛은 더 한층 다양해졌다.
특히 궁중과 반가(班家)를 중심으로 발달한 떡은 사치스럽기까지 하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곡물을 쪄
익혀 만들던 것을 다른 곡물과의 배합 및 과실, 꽃, 야생초, 약재 등의 첨가로 빛깔, 모양, 맛에 변화를 주었다. 조선 후기의 각종 요리관련서들에는 매우 다양한 떡의 종류가 수록되어 있어 이러한 변화를 짐작하게 한다. 각 지역에 따라 특색있는 떡이 소개되어 있는 것도 이채롭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관혼상제의 풍습이 일반화되어 각종 의례와 대소연회, 무의(巫儀) 등에 떡이 필수적
으로 사용되었다. 고려시대에 이어 명절식 및 시절식으로의 사용도 증가하였다.
떡은 사철절기와 명절에 따라 달라진다. 각 절기에는 그 시기에 많이 나오는 재료를 쌀가루에 가미하여
만드는데, 절기에 만드는 떡은 어느 것이나 의미를 부여하였다.
또 매달 하게 되는 떡들은 그 달에 있는 명절의 뜻을 가지고 만들어서 신에게 바치거나 아랫사람 혹은
친척간에 나누거나 하였다.
정조다례(正朝茶禮)에는 흰 떡가래를 만들어 떡국을 끓여 먹으므로 순수 무구한 경건함을 표했으며
정월보름에는 까마귀에게 보은하는 약식을 만들었다.
2월 중화절(中和節)에는 상전이 조비에게 송편을 나이수대로 먹이고 새해 농사를 시작하는데 수고해
달라고 대접한다.
3월 삼짇날은 봄이 온 것을 느끼며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부쳐 벅고 집안의 우환을 없애고 소원성취를
비는 산제를 드렸다.
4월 초파일은 석가의 탄생을 축복하기 위하여 어린 느티싹을 넣은 느티떡을 해 먹는다.
5월 단오에는 천중절이라 하여 단오차사를 거피팥 시루떡을 만들어 지내고 앵두차사라 하여 앵두를
천신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 햇쑥으로 버무리, 절편, 인절미를 만들어 쑥의 향취로 봄을 느끼는 떡을 많이 하였다.
6월 유두에는 새로 나온 외를 천신하고 떡을 만들어 논에 나가 용신께 풍년을 축원하였다.
7월 칠석에는 올벼를 가묘에 천신하고 삼복에는 깨찰떡, 밀설기, 주악 등을 해 먹었다.
백중절에는 망혼을 위하여 절에서 제를 올린다.
8월 한가위에는 햇쌀로 시루떡, 송편을 만들어 조상께 감사하며 제사를 지낸다.
9월 9일 중양절에는 추석제사 못 잡순 조상께 제사를 지내고 국화의 계절이라 국화전을 한다.
10월 상달에는 가을 고사일을 택하여 붉은팥 시루떡을 만들어 집안의 풍파가 없기를 기원한다.
또 무오일이라 하여 마굿산에서 말이 병이 없기를 빌기도 하였다.
동지달 동지날에는 작은 설이라 하여 팥죽을 꿇여 찹쌀경단을 만들어 넣고 먹는 풍습이 아직도 남아있다.
섣달그믐에는 온시루떡과 정화수를 떠놓고 고사를 지낸다.
또 흰떡을 가지고 색색으로 만들어 골무같이 빚어서 나누어 먹는다.
이와같이 우리나라는 일년 열두달 떡을 해먹지 않는 달이 없을 정도였다.
통과의례
통과의례란 사람이 태어나서 생을 마칠 때까지 반드시 거치게 되는 몇 차례의 중요한 의례를 말한다.
이러한 의례에는 응당 떡을 하기 마련이었는데 떡에는 각기 의미를 부여하여 의례와의 관련성을 더욱
크게 하였다. 또 통과의례의 풍속이 떡의 풍속에 크게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통과의례와 관련된 떡의 풍속은 다음과 같다.
(1) 삼칠일
우리 조상은 아이를 출산한 지 세이레가 되면 삼칠일이라 하여 특별하게 보냈다.
이 날에는 그 동안 대문에 달았던 금줄을 떼어 외부인의 출입을 허용하고 산실(産室)의 모든 금기를
철폐하였다. 따라서 가까운 친지들도 방문하여 산모의 노고를 치하할 수 있었다.
삼칠일의 떡으로는 아무 것도 넣지 않은 순백색의 백설기를 마련하는데 아이와 산모를 속인의 세계와
섞지 않고 산신(産神)의 보호 아래 둔다는 신성의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삼칠일의 백설기는 집안에 모인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끼리만 나누어 먹고 밖으로는 내보내지
않는다.
(2) 백일
'100'은 크고 완전함, 성숙 등을 의미하는 수로, 백일날은 아이가 이 완성된 단계를 무사히 넘김을 축하
함과 동시에 앞으로도 건강하게 자라기를 축복하기 위한 날이다.
백일상에는 흰밥과 고기 미역국, 푸른색의 나물 등을 올리고 떡으로는 백설기, 붉은팥고물 찰수수경단,
오색송편을 준비한다.
이 날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축의음식을 밖으로 돌려 나누었는데 특히 백일떡은 백 집에 나눠주어야
아이가 수명장수하고 큰복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백설기에는 삼칠일 때와 마찬가지로 신성의 의미를, 붉은팥 고물의 찰수수경단에는 귀신이 적색을 피한
다하여 액을 막는다는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런데 찰수수 경단은 백일로부터 시작하여 10살 이전의 생일날에는 반드시 해주는 풍습이 있다.
이는 삼신이 지켜주는 나이에 이르기까지 잡귀가 붙지 못하도록 예방, 벽화(僻禍)하기 위한 것이다.
오색송편은 아이가 장성한 다음에도 생일 또는 책례축의(冊禮祝儀)에 사용되는데 평상시에 만드는 것
보다 아주 작고 예쁘게 만든다.
송편에 물들이는 다섯가지 색은 오행(五行), 오덕(五德), 오미(五味)와 마찬가지로 '만물의 조화'를 뜻한다.
이 외에도 송편은 그 안에 들어있는 속처럼 속이 꽉 차고 혹은 속이 빈 송편과 같이 뜻이 넓으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3) 돌
돌날에는 아이의 장수복록(長壽福祿)을 축원하며 아이에게 의복을 만들어 입히고 떡과 과일을 주로 한
돌상을 차려 돌잡이를 한다.
돌 음식으로 흰밥과 미역국을 하여 아이를 위해 새로 마련한 밥그릇과 국그릇에 담았고, 백설기와 붉은
팥고물 찰수수경단, 오색송편, 무지개떡, 인절미, 개피떡 등의 떡도 만들었다.
이 중 백설기와 수수경단은 반드시 준비하며 과일도 여러 색이 고루 들어가도록 하여 마련한다.
(4) 혼례
혼례는 남녀가 부부의 인연을 맺는 일생 일대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이다.
그런데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함을 보내는 절차에 봉채떡(혹은 봉치떡)은 빠지지 않는다.
신부집에서는 붉은팥시루떡을 하고 기다리다가 함이 들어오면 함을 시루 위에 놓고 북향재배(北向再拜)를
한 후 함을 연다.
바로 이 때 사용되는 떡이 봉채떡이다.
봉채떡은 찹쌀 3되, 팥 1되로 찹쌀시루떡 2켜만을 안치되 윗켜 중앙에 대추 7개를 방사형으로 올린다.
봉채떡을 찹쌀로 하는 것은 부부의 금실이 찰떡처럼 화목하게 귀착되라는 뜻이며 떡을 2켜로 올린 것은
부부 한 쌍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붉은팥 고물은 벽화(僻禍)를, 대추 7개는 아들 7형제를 상징하여 남손번창(男孫繁昌)을 기원한다.
(5) 회갑
나이 61세가 되는 생일에는 회갑이라 하여 자손들이 연회를 베풀어 드리게 된다.
회갑연 때는 큰상을 차리는데 음식을 높이 고이므로 고배상(高排床) 또는 바라보는 상이라 하여 망상(望床)
이라고도 한다.
혼례나 희수연(稀壽宴)에도 차리는 큰상은 한국의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한 것이다.
그런데 회갑연에서도 떡은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다.
갖은편이라 하여 백편, 꿀편, 승검초편을 만들어 차곡차곡 높이 괸 후 화전이나 주악, 단자 등 웃기를 얹어
아름답게 장식한다.
또 인절미 등도 층층이 높이 괴어 주악, 부꾸미, 단자 등의 웃기를 얹는다. 예전에는 색떡으로 나무에 꽃이
핀 모양의 모조화(模造花)를 만들어 장식하기도 하였다.
회갑연에서 사용했던 떡은 잔치가 끝난 후 서로 나누어 먹는다.
(6) 제례
제례란 자손들이 고인을 추모하며 올리는 의식이다.
이 때도 떡은 중요한 음식의 하나로 녹두고물편, 꿀편, 거피팥고물편, 흑임자고물편 등 편류로 준비한다.
정성스럽게 만든 떡들을 여러 개 포개어 고이고 위에 주악이나 단자를 웃기로 올린다.
만드는 방법에 따라
(1) 찌는 떡
곡물 가루를 시루에 안쳐 솥 위에 얹고 증기로 쪄내는 떡을 시루떡이라 한다.
시루떡은 증병(甑餠)이라고도 하는데 설기떡과 켜떡으로 나뉜다.
이 중 쌀가루에 물을 내려 켜를 만들지 않고 한 덩어리가 되게 하여 찐 떡이 설기떡 혹은 무리떡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켜떡은 고물을 사이사이에 넣어 켜를 만들어 찐다. 주로 멥쌀이나 찹쌀을 떡가루로 하여 팥·녹두·깨 등을 고물로 사용하지만, 고물 대신 밤·대추·석이채·잣 등을 고명으로 얹어 찌는 각색편도 있다.
(2) 치는 떡(搗餠)
치는떡은 도병(搗餠)이라 한다. 일단 시루에 쪄낸 찹쌀이나 떡을 뜨거울 때 절구나 안반에 쳐서 끈기나게
한 떡으로 인절미, 흰떡, 절편, 개피떡 등이 있다.
인절미는 찹쌀을 불려서 시루나 찜통에 찐 다음 바로 절구나 안반에 쳐서 적당한 크기로 썰고 콩고물이나
거피팥 고물을 묻힌다.
가래떡, 절편, 개피떡은 멥쌀로 만든다. 멥쌀가루에 물을 내려 시루에 찌고 절구나 안반에 끈기가 나게 친다. 친 떡을 길게 막대 모양으로 만들면 가래떡이 되고, 길게 빚어 떡살로 문양을 내어 썰면 절편이 된다.
개피떡은 친 떡 덩어리를 얇게 밀어 팥소를 넣고 접은 후 반달모양으로 찍어 공기가 들어가게 한 떡이다.
(3) 빚는 떡
빚는떡에는 경단, 송편, 단자 등이 있다.
경단(瓊團)은 찹쌀 가루나 수수가루 등을 더운물로 익반죽을 하여 동그랗게 빚어서 끓는 물에 삶아내어
콩고물이나 깨고물을 묻힌 떡이다.
송편(松餠)은 쌀가루를 익반죽을 하여 콩·깨·밤 등을 소로 넣고 조개처럼 빚어서 시루에 솔잎을 켜켜로
깔아 쪄낸다.
단자(團子)는 찹쌀가루를 물을 주어 찌거나 익반죽을 하여반대기를 만들어 끓는 물에 삶아 꽈리가 일도록
쳐서 적당한 크기로 빚거나 썰어서 고물을 묻힌다.
(4) 지지는 떡(油煎餠)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모양을 만들어 기름에 지지는 떡으로 화전·주악·부꾸미 등이 있다.
화전(花煎)은 반죽을 동글납작하게 빚어서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지진 떡이다.
지질 때 철에 따라 진달래꽃·장미꽃·감국(황국화) 등의 꽃이나 국화잎을 얹고 지져 계절의 정취를 즐기는
떡이다.
떡의 종류
(1) 궁중의궤에 나오는 각색병 종류
구분 | 1877 (고종 14년) 高1尺5寸 17종 대왕대비(익종비) 신정왕후 조씨 7순 | 1887 (고종 24년) 高1尺3寸 12종 대왕대비(익종비) 신정왕후 조씨 8순 | 1901 (고종 38년, 高1尺3寸 12종 고종 탄생 50년 축하잔치 | 1902 (고종 39년, 高1尺5寸 12종 고종이 황태자의 간청에 의하여 望 6으로 耆老所에 入所 | 各色粳甑餠 | 白豆粳甑餠 | 白豆粳甑餠 | 白豆粳甑餠 | 白豆粳甑餠 | 各色粘甑餠 | 白豆粘甑餠 | 白豆粘甑餠 | 白豆粘甑餠 | 白豆粘甑餠 | 웃기떡 | 各色助岳 | 各色助岳 | 花煎 | 花煎 |
(2) 옛음식책 속에 나오는 떡의 종류
서명 | 연대 | 저자 | 표기 | 수록된 떡의 종류 | 음식디미방 | 1670년경 | 안동 장씨부인 | 한글 | 상화떡, 증편법, 잡과편법, 밤설기법, 석이편, 인절미 굽는 법(맛질방문), 전화법, 빈쟈법 | 요록 | 1680년경 | 미상 | 한문 | 건알판, 산약병, 상화병, 증병, 소병, 송고병, 송병, 쇄백자, 경단병 유병, 청병, 수자 | 주방문 | 1600년대말 | 하생원 | 한글 | 겸절병법, 화전, 귀증편, 상화 | 음식보 | 1700년경 | 진주 정씨부인 | 한글 | 겸전편, 긔증편법, 잡과편법, 소병법, 교의상화, 유화전, 모피편법 | 산림경제 | 1715년경 | 홍만선 | 한문 [출처] 전통떡의역사 | 작성자 행복한세상을위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