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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09주일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심 같이 아내를 사랑하라]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엡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하나님은 성령충만한 그리스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가정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을 명하신다.
하나님은 아내된 자들에게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명하시면서, 동시에 남편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하신다.
이 명령을 순종하는 남편들과 아내들은 영원한 생명과 복의 영역으로 인도받는다.
[결혼 생활이 위협받고 있다]
결혼 생활은 성경에서는 생명의 은혜라고 부를 정도로 특별하다.
벧전3:7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단순히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인간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들어올 수 있는 귀한 기회다.
창조주 하나님이 의도하신 결혼의 목적이 온전히 잘 이루어지는 부부의 경우는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결혼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런 이유는 부부간에 서로에 대한 자세가 옳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는 그런 부부 갈등문제가 많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리스도 교회에서도 그렇다고 하면 문제다.
그리스도 교회는 당연히 하나님의 창조의 뜻과 맞는 가르침을 받고, 양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과 똑같이 가고 있다면,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사람의 삶속에서 결혼만큼 중요한 사건도 없다.
그럼에도 갈등의 문제가 계속 존재하는 이유는 원래 결혼이 갖는 목적에 충실하기 보다, 부부 한쪽 또는 양쪽이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부간에 자기 중심적인 것은 죄의 성질이다.
죄의 성질로 결혼에 임하면, 그 결혼이 온전할 수 없다.
사람에게는 죄의 성질이 있다. 이런 인간의 성질은 억누르고 가야한다.
평소에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양성화하고, 도구로 삼으면 안된다.
이기적인 죄성은 사랑이 부족한 요소이고, 가정의 조화롭고 행복한 삶을 해치는 요소다.
이런 죄성은 어떻게 활개를 칠까.
큰 그림에서 보면, 사단의 소행이다.
사단은 거짓된 아이디어를 사람에게 집어넣고, 조정한다.
가정의 평화를 깨므로, 가장 기본적인 사회인 가족관계를 해치므로 인류 전체가 통일성을 갖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멸망의 길을 가게 한다.
애초에 사단으로 인해 멸망의 불씨가 시작되었다.
[인류 타락과 함께 온 부부관계의 변질]
인류타락과 함께 가정에서의 혼란도 함께 왔다. 원래 결혼은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조화스러운 것이었다.
아담이 하와를 처음 봤을 때, 하와는 아담에게 너무나 완벽한 동반자였고, 아담은 그런 아내에 대한 진정한 자기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창2: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부부간의 이런 관계는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다. 서로 순수했고, 이기심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 때 남자는 여자의 머리되는 권세를 받았다.
기능적으로 볼 때,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다고 보여지지만,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는데 자기 권위를 사용하지 않았다.
남자의 머리됨은 온전히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났다.
남편의 머리됨은 사랑 그 자체였다는 것이 성경에 증거되었다.
둘의 관계는 너무 훌륭했기 때문에, 둘이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도 대단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의 뜻에 너무나 부합하게 행동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이 세상을 관리하는 자로서 임무를 맡기셨다.
창1:26,28
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런 엄청난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창조주 하나님을 노골적으로 거역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래서, 인류의 타락이 생겼다.
인류의 타락은 남편과 아내의 역할의 왜곡을 함께 가져왔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역할의 혼란이라는 저주다.
마귀에게 속아서 했지만, 인류가 자초했고, 하나님의 저주로 인해 자기들이 선택한 삶이 인류의 삶속에 뿌리박히게 되었다.
이 역할의 혼란은 죄로 인한 형벌과 같이 온 것이다.
죄로 인한 사망의 심판에 추가로 온 것이다.
사망에 대한 증거로 삶속에서는 성의 역할의 혼란이 저주로써 그 삶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 저주는 상당히 광범위하다.
남자들은 이 세상에서 고생해야 하고 댓가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여자들은 자녀를 기르는 고난을 함께 겪는다.
이런 역할의 배반이 인류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항상 갈등의 여지를 갖고 살게 된다.
자기 중심적인 사고는 가정의 행복을 위협한다.
[자기 중심 사고는 가정의 행복을 위협한다]
자기 중심적인 생각은 자기를 섬기는 성질이 있다.
모든 사고에서 자기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모든 관계에서 이런 이기심이 문제가 된다.
결혼에서 이것이 문제가 되면 안된다.
결혼은 내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기여할지 고민해야 할 문제인데, 무엇을 얻어내야 할 것을 고민한다면, 결혼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런 수레바퀴 안에 갇혀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원리에서 벗어난 것이다. 인간의 저주받은 신세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사망의 심판받은 자의 표적을 성질로서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당연히 바꾸어야 한다.
비록 많은 인류가 멸망하겠지만 교회라는 보금자리 안에서 생명 있는 세대들이 살아남아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통해 하늘나라의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창조의 원리를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단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인간이 알아서 하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사단은 인간을 교묘히 조정할 꾀가 있다.
인간의 가정이 약해지면, 사회도 약해진다.
모두 가정에서 행복하면, 사회도 행복해질 것이다.
사단은 현실에 눈 뜨지 않도록 자꾸 속인다. 행복은 네 자신을 위한 것이다. 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라.
이런 사람들이 결혼에 임하면, 이미 불순물로 시작하는 것이다.
사단이 이런 미끼를 던졌을 때, 물게 되면, 자기 스스로 멸망으로 이끄는 실수를 하게 되고, 자기와 관계를 가진 자들도 불행하게 만든다.
결국 자아라는 것은 사랑보다 위에 있으면 안된다. 사랑이 먼저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 자아를 사랑보다 위에 놓는다.
그래서, 자기 마음과 욕심이 현실을 떠나 있다.
항상 환상 속에서 이래야 정상이라고 하면서, 불만으로 끌고 간다.
이기심은 원수가 내미는 겉은 달콤하지만, 멸망으로 이끄는 미끼다.
[자격 없는 우리인데도 사랑해주신 희생]
우리의 원래 모습을 잊는다면, 원래 가질 행복도 가질 수 없다.
지난주의 말씀은 아내에게 주시는 말씀이었다.
오늘부터 주시는 말씀은 남편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엡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사실 이 말씀이 나오기 전에 아내들에게 남편들에게 복종하라고 하니까, 다음절에는 아내를 어떻게 다스릴지 기대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막상 다음절은 상상한 내용과 다르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셨듯이 사랑하라.
이 때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지 얼마되지 않아서, 대단히 생생한 말씀이었다.
이 말씀은 사회전통과 어긋나는 말씀이다.
사회 전체에 만연되는 성차별 관습과는 다른 의외의 것이었다.
남자들은 남자의 권위로 인식이 박혀 있었는데, 머리됨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제시했다.
남편의 머리됨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주님은 명하신다.
머리됨은 아내를 사랑하므로 복종의 의무를 하는 것이다.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그가 교회에 자신을 주셨던 사실에 대해서, 체감하면서 대단히 충격을 받는다.
사도 바울에게는 하늘에서 번개가 내려치는 것 같은 문제였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을 때, 어떤 각오로 오셨을까.
그가 오셨을 때, 사람들에게 환영받으셨을거라고 생각하셨을까.
그는 자신이 극심한 어려움과 아픔을 겪을 것을 각오하고 오셨다.
주님은 겸손하시고, 온유하시고, 오래 참으신다. 착하신 분이신데, 조롱받고, 비방당하고, 억울하게 많이 당하셨다.
그는 죄도 없으시고, 의로우신데, 억울하게 정죄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가 당할 일을 모르시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셨다.
주님은 이 사랑을 책임지실 것을 각오하고 오셨다.
이 세상에는 전혀 없던 사랑.
인류를 향한 사랑.
그 사랑이 요구하는 값을 치러야 했다.
그러기 위해 특권들을 다 버리셨다.
여기 대단한 변수가 있다.
그가 사랑하러 오셨는데, 사랑받는 대상이 누구냐는 것이다.
그가 사랑의 책임을 다해, 자기의 특권과 자기를 버리셔야 했는데, 그 대상은 다름아닌 악인들이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 땅의 사람들이 아담안에서 죄로 물들었는데, 신분만 죄인일 뿐 아니라, 죄의 성품이 가득했다.
진짜 가까이 하지도 말아야 할 존재들이었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사단에게 물들었지만, 작은 사단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하지 않는 죽어야만 마땅한 존재였다.
어떤 교회도 이 부분에서 성도들을 혼란하게 만들면 안된다.
법적으로만 죄인이 아니라, 성질이 죄인이다.
그리스도는 그런 자들이라 할지라도, 구하시러 오셨다.
결국 인류 전체를 위해 오셨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결과적으로 모두 회개한 것은 아니고, 교회된 자들만 회개하고 나왔다.
그 효력은 교회에 있는 자들에게만 나타났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전달되었다.
그 사랑은 완전한 희생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확증되었다.
이것은 너무 큰 은혜의 희생이었다.
은혜를 받을 수 없늕 자들, 구원을 받아서는 안되는 자들이 받았다.
그들을 살리는 방법은 이것 뿐이었다.
그들은 죽어 마땅하다. 그래서 은혜로운 희생만으로 살릴 수 있다.
모든 인간들이 죽음의 심판아래 있다.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자들이다.
나는 아무짓도 안했다고 해도, 당신 속을 보라. 지옥 가야 마땅하다.
주님은 사랑받을만한 자들을 위해 희생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스럽지 않고, 합당치 않고, 죽어 마땅한 자들을 위해 희생하셨다.
[세상의 사랑은 매력 중심, 조건 중심]
이 세상은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사랑한다.
외적으로 매력적이거나, 성품이나 지혜, 사회적 위치 때문에 사랑한다.
세상이 가치를 두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가치는 변덕이 심하다.
매력적이어서 사랑하지만, 매력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는가.
그러면 더 이상 어필이 안된다. 사랑이 떠난다.
자기가 받았던 사랑도 떠난다.
부부간에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까, 결혼이 결렬된다.
자기 배우자가 세상에서 갖는 매력을 잃게 되면, 사랑이 떠난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대상에 대해서, 사랑해야 할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사랑받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합당해서가 아니다. 합당하지 않아도, 사랑 없으면 안되니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택하는 것이다. 사랑하기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이다.
그가 그냥 무시하셔도 된다.
물론 그가 사랑하시는 것은 그의 성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품이기 때문에 사랑하기 싫은데,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주님이 악인들을 성품대로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분에게 온 우주의 운명을 맡기는가.
그는 심판의 주님이시다.
그는 우주의 누구보다 가장 강한 정의의 심장을 갖고 있고, 가장 의로운 심판을 하실 분이시다.
온 우주의 마지막 심판자.
그는 자기 성품에 구속받아, 끌려다니는 분이 아니다.
자기가 선택해서, 사랑하신 것이다.
모든 통상적인 전통과 생각을 꺠고, 그는 사랑하기로 선택하셨다.
우리에게도 사랑하라고 명하신다.
[명령은 새 삶의 길, 선택할 길]
그는 우리에게 사랑하도록 심어주셨다.
롬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그는 사랑할 능력을 부어주셨다.
회개하고, 주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자들은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의 성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약2:8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명령받았으니, 사랑하기 싫어도 저절로 사랑해질까.
아니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구정물에 빠졌는데, 냄새가 나더라도 사랑으로 끌어내야 한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죽으리라는 명령도 있지만, 명령이지만 선택을 주는 것들도 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선택의 여지는 네게 있다.
요일3:7,16,23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절대적인 확정 사실을 말하고 있지 않다.
네가 선택하여 계명을 순종할 것인지 물어보신다.
마음이 원치 않는데도 강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 자기 의지를 갖고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 선택을 통해 하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치가 있다.
무언가 매력이 있어서, 내게 유익이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같은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하라는 명령에 기반이 되어있다.
이 명령을 받을 것인지는 내 선택이다.
결단하고 순종하여 행함이 이루어진다.
그리스도가 사랑하셨듯이 하는 것은 그 대상이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명령을 순종하는 내가 중요하다. 내 신령한 신분이 근거다.
우리는 주께서 주신 새본성에 맞추기 위해, 거룩한 선택을 통해 이 명령을 순종한다.
거룩한 선택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강제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내 신분에 맞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내 운명을 그가 기뻐하는대로 내가 만드는 것이다.
[사랑은 필요가 있는 곳에서 행한다]
남편이 아내의 아름다움, 매력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 매력을 느끼는 것도 나쁠 일은 아니다. 오히려 더해진 복이다.
그러나, 그것이 주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아내가 갖던 매력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그렇더라도, 여전히 남편은 아내를 사랑할 의무가 있다.
감정적 끌림, 매력보다 더 중요한 이유에서 의무가 있다.
아내에게는 남편의 이기심 없는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남편의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힘이 필요하다.
아내에게는 남편의 사랑이 필요한 것 자체가 가장 큰 이유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교회를 향해 갖는 사랑이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 남편들이 그들의 아내를 향해 가져야 할 태도이다.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보면, 어떤 유대인이 강도를 만나 죽게 되었다.
그런데, 정치적, 종교적 원수인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구해주었다.
사랑이 아니었다면, 구할리가 없다.
사마리아 사람이 긍휼하고, 착한 사람이어서 하기도 했지만, 진짜 이유는 강도 당한 사람은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유대인에게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비슷하게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것도 사실 말이 되지 않는 것이지만, 하셨다.
그들이 주님의 그런 사랑을 받을만해서 하신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진짜 치사하고, 교만하고, 질투가 많고, 변덕이 많았지만, 그래도 사랑하셨다.
주님은 자기 본성에 충실하셔서 사랑하실 뿐 아니라, 사랑하기로 선택하셔서 하신 것이다.
대상이의 자격과 상관없이 하신 것이다.
그 사랑 자체에 정당성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세상은 주님을 거절했다.
주님은 사랑을 갖고 오셔서, 베푸시는데, 세상은 그것을 거절하고, 주님을 나쁘게 취급했다.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다.
그럼에도 주님은 피흘려 죽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에게 요구하신 책임이다.
자신의 의지로 이 책임을 질 것을 선택하셔서 하신 것이다.
사랑은 필요가 있는 곳에서 행해진다.
사랑을 행하려면, 내게 어떤 유익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필요가 있는 곳에 주는 것이다.
자기가 환영받지 않고, 무시당하더라도, 거기 필요가 있다면,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가 받기 위해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사랑이 아니다.
아내를 위한 자기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남편은 이기심이 죽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사랑의 방법이다.
이것이 남편의 머리됨이고, 남편의 복종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사랑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오늘 명령되어진 것이다.
[초대교회에게 계시된 사랑의 시작점]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죽음과 직결된 말씀이다.
오직 초대교회에서만 시초에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본문은 주님의 십자가에 죽으시고, 얼마후에 쓰여진 서신이다.
주님의 죽으심, 그것 때문이었다는 것을 완전히 알게 된 것이다.
진짜 사랑의 시작은 이천년 밖에 안된다.
왜 사랑하는가.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생생한 사건을 기억하면서, 계시를 받았다.
물론 창세전부터 그리스도께서 계획하셨지만,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그날은 그가 사랑을 베푸신 날이다.
현실에 있는 사랑이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책임을 다하셨다. 그는 진짜 사랑을 행하셨고, 바울과 초대교인들에게는 대단한 충격이었다.
바로 현실속에 있었던 놀라운 사건 자체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할 수 있도록, 사랑을 심어주시고, 명하신다.
성령충만함에 의해서, 주께 복종하는 모든 남편들은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 아내를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므로, 살아있는 주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