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처의 「피아노악어」 평설 / 오형엽
피아노 악어
서영처
혼자 지키는 집,
늪으로 변해 버린다
땀이 거머리처럼 머리 밑을 기어다니고
눅눅한 공기가 배밀이를 하며 들어온다
수초가 슬금슬금 살을 뚫고 자라난다
피아노 뚜껑을 연다
쩌억, 아가리를 벌리며 악어가 수면 위로 솟구친다
여든여덟 개의 면도날 이빨이 덥석 양팔을 문다
숨이 멎는다
입에선 토막 난 소리들의 악취
손가락은 악어새처럼 건반 위를 뛰어다녔는데
놈은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 내동댕이친다
물 깊이 물고 내려가 소용돌이 일으킨다
수압에 못 이긴 삶은 흐물거린다
대궁 아래 숨어 있는 눈망울
나는 수초 사이 처박혀 한없이 불어 터진다
어디선가 웅성거림 들려오는데
핏물 흥건한 이곳으로
물거품이 궤적을 일으키며 다가온다
죽어라 헤엄치다 돌아본 늪엔
수련이 가득
구설수처럼 피어있다
—시집 『피아노악어』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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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문학•판》으로 등단한 서영처는 첫 시집 『피아노악어』에서 ‘피아노’로 대표되는 음악의 세계와 ‘햇빛’으로 대표되는 삶의 원초적 생명력 및 ‘무덤’으로 대표되는 죽음의 심연을 상호 충돌시키는 형상화 방식을 통해 삶과 죽음, 소음과 침묵의 경계를 해체하는 할달한 상상력을 펼치면서 2000년대 이후 시 쓰기의 한 방향성을 보여주었다.
이 시의 기본 구도는 표면적으로 “피아노”로 대표되는 ‘음악’ 상징과 “악어”로 대표되는 ‘동물’ 상징을 상호 유비하는 방식으로 형성된다고 간주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피아노악어」라는 제목과 함께 주로 2연에서 “피아노” 연주의 상황을 “악어”의 역동적 움직임과 중첩시켜 유비적으로 묘사하는 대목에서 유추되는 것이다. 그런데 2연에서 “피아노 뚜껑”을 열자 “쩌억, 아가리를 벌리며” “솟구”치는 “악어”의 본래적 거처는 “수면” 아래고 그 “입”에서 나는 “소리들의 악취”도 물밑의 정체와 비밀을 내포한다. 또한 “놈”이 “나를” “물 깊이 물고 내려가 소용돌이 일으”키고 결국 “수압에 못 이긴” “나”의 “삶”이 “흐물거린다”는 점에서 악어의 불길하고 음산한 충동의 근저에는 “늪”의 ‘물밑’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심층적인 차원에서 이 시의 기본 구도를 이루는 것은 비가시적인 ‘태양’ 상징과 “늪”의 ‘물밑’으로 대표되는 충동의 심연 간의 대립 구도이고, 이 두 항의 충돌과 중첩의 결과 생성되는 것이 “피아노”로 대표되는 ‘음악’ 상징과 “악어”로 대표되는 ‘동물’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서영처의 시에서 “피아노”로 대표되는 ‘음악’ 상징은 ‘태양’ 상징으로 표상되는 아폴론적 세계와 “늪”의 ‘물밑’으로 표상되는 디오니소스적 세계가 충돌하면서 융합된 결과로 생성된다. 따라서 2연을 중심으로 “피아노” 연주의 상황을 “악어”의 역동적 움직임과 중첩시켜 유비적으로 묘사하는 대목은 ‘음악’ 상징이 내포하는 불길하고 음산한 내면적 충동의 심연이라는 디오니소스적 세계를 형상화하는 것이다. 이 디오니소스적 세계는 화자의 내면적 충동의 심연으로서 1연에서 “혼자 지키는 집”으로 대변되면서 “땀이 거머리처럼 머리 밑을 기어다니고/ 눅눅한 공기가 배밀이를 하며 들어”오며 “수초가 슬금슬금 살을 뚫고 자라”나는 등 촉각적 감각을 중심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 묘사는 2연에서 “피아노” 상징과 “악어” 상징의 ‘이율배반적 유비’를 경유하여 3연에 이르면 화자를 “수초 사이 처박혀 한없이 불어 터”지게 만드는 상황으로 전이된다.
3연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이미지는 “대궁 아래 숨어 있는 눈망울”인데, 이 이미지는 “늪”의 ‘물밑’ 세계가 디오니소스적 세계를 형성하는 동시에 감시와 처벌의 기능을 하면서 화자를 주시하는 초자아적 위상도 가진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디오니소스적 세계가 가지는 내면적 욕망 및 충동의 어두운 심연이라는 이드의 차원과 자아를 감시하고 처벌하는 초자아의 차원이 충돌하면서 중첩되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수련”을 “구설수”에 비유하는 마지막 문장에서도 유추될 수 있다. 이 “눈망울”의 이미지는 “웅성거림”과 연결되고 결국은 “수련”으로 귀결된다. “핏물 흥건한 이곳”의 “핏물”은 ‘태양’ 상징으로 표상되는 아폴론적 세계와 “늪”의 ‘물밑’으로 표상되는 디오니소스적 세계가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사랑과 충동,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중첩된 결과물이고, “수련이 가득/ 구설수처럼 피어 있다”라는 마지막 문장의 “수련”도 이 “핏물”과 등가성을 가지는 결과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결국 “대궁 아래 숨어 있는 눈망울”-“핏물”-“수련”은 “늪”의 ‘믈밑’ 세계만이 아니라 그것에 비가시적인 ‘태양’ 상징이 개입되어 상호 충돌하고 중첩되는 과정에서 ‘이율배반적 유비’를 경유하면서 ‘몽타주’라는 내적 필연성의 방법론에 의해 생성된 상징인 것이다.
—《현대시》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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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엽 / 문학평론가. 고려대 국문과 교수. 본지 편집주간. 1994년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부문으로 등단. 비평집으로 『신체와 문체』 『주름과 기억』 『환상과 실재』 『알레고리와 숭고』 등이 있다.
*출처 : 푸른 시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