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으로 들어간 화가들
파스칼 보나푸 저자(글) · 이세진 번역
미술문화 · 2023년 08월 23일
위대한 화가들의 독특한 숨바꼭질,
자기 작품에 카메오로 등장하다?
영화, 만화, 그리고 그림까지… 오래전부터 다양한 작가들이 자기 작품 속에 존재하기를 원했다. 보티첼리는 동방박사들의 경배에 ‘참석’했고, 엘 그레코는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에 함께했으며, 벨라스케스는 1625년 6월 5일 브레다가 함락될 때 그 자리에 있었다. 또 앵그르는 랭스 대성당에서 샤를 7세의 대관식이 거행될 때 잔 다르크 뒤에 서 있었다. 이렇게 단역으로, 혹은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장난처럼 은밀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카메오는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그리고 이들은 왜 그림 속에 자신을 그려 넣은 것일까?
질문에 답하려면 그림이 제작되던 방식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 제작되던 대부분의 작품은 후원자나 일시적 발주처의 주문으로 이루어졌으며, 역사를 그리는 것은 인정받는 예술가 반열에 드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다. 그러므로 역사의 한 장면에 화가 자신이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미래의 후원자가 될 수도 있는 왕족과 고위 성직자, 그림을 감상하는 수많은 예술 애호가들에게 자신이 어떤 작품의 작가임을 알리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었으리라. 이때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은 작품에 서명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슬쩍 모습을 드러내는 작품 속 카메오는 ‘도움 차원의’ 자화상으로서 작품의 서명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확실하거나 혹은 모호하거나 …
은밀한 존재들의 이유 있는 등장
이 책에서 저자는 화가가 스스로 들어가 있는 작품들을 보여준다. 언급되는 화가들 중에는 오늘날에도 널리 알려진 이름들이 있는가 하면 생소하게 느껴지는 낯선 이름들도 있다. 이들의 숨바꼭질에는 나름의 이유가 숨어 있다. 자신의 실력을 잠재적 후원자에게 홍보하기 위하여, 계약 조건을 성실하게 이행했음을 알리기 위하여, 공모와 연대 의식을 다지기 위하여, 역사적으로 영광스러운 순간을 기록하기 위하여 화가들은 비밀스럽게 그림 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한편 작품 속 자화상은 저자와 감상자 사이의 결탁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런 경우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과 맞부딪히는 작중 인물의 시선이 자화상의 증거가 된다. 〈강단에 오른 성 베드로〉에서 브루넬레스키, 알베르티 등과 함께 선 마사초는 유일하게 고개를 들어 관람자와 시선을 마주한다. 〈동방박사들의 경배〉의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성령의 강림〉의 샤를 르 브룅, 〈아테네 학당〉의 라파엘로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모든 규칙에는 예외가 존재하는 법! 감상자와 마주하는 작중 인물의 시선을 자화상의 규칙으로 삼을 수는 없다. 일례로 산타 크로체에 있는 아뇰로 가디의 자화상은 그림 가장자리에 옆모습으로 나타나고, 〈성 카타리나의 신비한 결혼〉 속 한스 멤링은 그림 가장자리에 아주 작은 크기로 그려졌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화상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는지가 아니다. 식별이 가능한 자화상들부터 사람의 형체조차 모호한 자화상들까지… 다양한 작품 속 ‘은밀한 존재들’의 의도는 모두 동일하기 때문이다. 시대별로 구분되는 네 가지 주요 주제 “신화와 현존” “죄와 기도” “역사와 우화” “만남과 환시”, 그리고 56개의 독립적인 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의 숨은 화가 찾기는 화가들의 꿈과 야망을 발견하는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며, 사회적 지위에 대한 화가의 신조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