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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nero production 원문보기 글쓴이: 愚羊
'연평해전' 시사회를 보고서 역사 앞에 고발한다
얼마 전에 영화 ‘명랑해전’ 이 관람객 14백만 명이란 흥행 기록을 했지만 이번 영화 ‘연평해전’ 은 ‘海戰’이란 점에서 유사하지만 다른 점은 前者는 약 500년 전의 역사상의 얘기인 반면 後者는 불과 13년 전 얘기 일 뿐 아니라 특히 다른 점은 ‘명랑해전’의 경우 열세의 전력으로 세계 해전 역사 상 유례가 없는 이순신 장군이 大勝한 海戰이라면, ‘연평해전’은 3년 전에 있은 ‘제1차 연평해전’에서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반면 이 영화의 무대인 제2차 ‘연평해전’에서는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 정장을 포함한 6명의 전사자와 18명의 부상자를 낳았을 뿐 아니라 고속정 마져 침몰한 불행한 역사이기에 이를 영화하기란 쉽지 않으리란 생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시사회장을 찾았다.
(사진:메가박스 시사회 상영관)
북한의 무전감청으로 이상 징후가 감지되었는데도 상부의 묵살로 참수리호는 이를 모른채 출동한다. 이어서 전개되는 실전 장면은 의도적으로 탱크포로 보강 무장한 북한 경비정으로부터 조타실 함교가 불의의 근접 포격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실제 전투와 똑 같은 30여 분 간 정장(艇長)을 포함한 장병들이 적 공격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사투를 벌린다. 이 처참한 장면에 손수건이 몇 번을 안경을 헤집었는지 모른다. 이 영화를 아들을 잃은 부모나 남편을 잃은 아내가 보면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특히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들은 같은 선배 해군 장교 출신인 윤영하 대위의 부친이 벽에 걸린 아들의 하얀 해군 대위의 정장을 살아있는 아들인양 껴안을 때 그 당당했던 모습은 어디가고 힘없이 축 쳐진 허물처럼 가슴에 안기는 장면을 보고서는 왈칵하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사진:생전의 윤영하 대위의 마지막 인사)
(사진:윤영하 대위의 부친)
이 영화를 보면서 흘린 눈물은 아들 같은 젊은 장병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보면서 애통해서 흘린 눈물인 동시에 분노의 눈물이었다. 나는 내가 흘린 분노의 눈물은 월드컵 열풍에 잊혀진 6명의 해군 전사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기에 몇 가지를 역사의 이름으로 고발하고자 한다.
첫째 6명의 전사자들은 모두 한 결 같이 서민 집안 출신이다. 군 복무가 의무제인 대한민국에서 전 현직 대통령이나 장차관이나 국회의원이나 서울 시장 아들이나, 명문 학교 출신은 다 어디가고 각자 어려운 집안을 지켜야 할 대들보인 이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는가? 이 나라의 노블리제 오블리쥬는 어디로 실종되었는가? 나는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감상문을 한마디 적는 종이에 “이 나라는 언제까지나 민초들이 지켜야 하는가?”라고 적고 내 자신 부끄러워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NLL을 넘어 남하하는 북한 경비정.아군은 총을 쏘지말고 밀어내라는 수칙을 준수한다)
둘째 ‘연평해전’에서 북한에게 당한 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4대 교전수칙 때문이 아닌지를 밝혀야 한다. 제1연평해전 이후 김대중 대통령은 1.북방한계선을 지키고 2.선제공격을 하지 말 것 3.상대가 먼저 발사하면 교전규칙에 따라 격퇴할 것 4.전쟁으로 확대시키지 말 것으로 이루어진 4대 교전 수칙을 지시함에 따라 해군은 ‘밀어내기’로 불리는 차단기동 개념을 도입했다.
이런 수칙을 만든 국군 통수권자와 이를 예하 부대에 하달한 국방장관 이하 명령계통의 지휘관들의 책임 유무를 밝히기 위해 ‘세월호 특별법’ 보다 앞서 ‘연평해전 진상 조사위원회’를 만들고 ‘연평해전 특별법’을 국회가 만들어야 했지 않은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행하라고 이 영화는 큰 소리로 항변하고 있다.
셋째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의 무력 도발로 국군 6명이 전사하였음에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4시간 35분 만에 여는 등 늦장 대응을 했을 뿐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의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도 우발적 충돌로 결론내고, 같은 내용의 북한 통지문이 오자 그대로 수용했다. 만일 영화에서와 같이 북한의 통신감청에서 이상 징후를 포착한 것이 사실인지 또 북한의 선제-기습-조준사격이라는 명백한 군사도발행위를 감추고 왜곡시켜 이를 우발로 변조시켰는지 조사해야 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남의 집에 들어와 나가라는 주인에게 칼을 휘두른 것이 고의 이지 이게 우발이란 말인가? 이게 ‘국가안전 보장회의’인가 ‘국가위해(危害)조장회의’인지 6명의 넋의 물음에 당시 안보 라인의 김동신 국방부장관,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특보, 신건 국가정보원장 등은 답해야 할 것이다
셋째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의 무력 도발로 국군 6명이 전사하였음에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4시간 35분 만에 여는 등 늦장 대응을 했을 뿐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의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도 우발적 충돌로 결론내고, 같은 내용의 북한 통지문이 오자 그대로 수용했다. 만일 영화에서와 같이 북한의 통신감청에서 이상 징후를 포착한 것이 사실인지 또 북한의 선제-기습-조준사격이라는 명백한 군사도발행위를 감추고 왜곡시켜 이를 우발로 변조시켰는지 조사해야 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남의 집에 들어와 나가라는 주인에게 칼을 휘두른 것이 고의 이지 이게 우발이란 말인가? 이게 ‘국가안전 보장회의’인가 ‘국가위해(危害)조장회의’인지 6명의 넋의 물음에 당시 안보 라인의 김동신 국방부장관,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특보, 신건 국가정보원장 등은 답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현장인 팽목항을 박근혜 대통령은 2번이나 방문하였고 유족들의 반대로 분향도 하지 못했다. 국토방위가 아니라 수학여행 중 사망한 참사인데도 시청 앞에 마련된 분향소는 7개월 이상 설치되었다. 그러나 연평해전 경우는 일반인 분향소는 설치되지도 않았고 현장 방문은커녕 영결식에도 그림자도 안 비친 대통령을 포함하여 이런 사실에 침목을 지킨 여야 정치인들과 언론을 역사 앞에 고발한다.
다섯째로 유족들에 대한 보상 문제이다.
제2 연평해전 유족은 3천100만~8천100만원의 일시금을 받은 반면 세월호 특별법에 의해 세월호 사고 희생자(304명) 1인당 배상금과 위로지원금으로 단원고 학생(250명)은 평균 7억2천여만원, 교사(11명)는 10억6천여만원이 지급될 것으로 추산된다. 더더욱 놀란 것은 6ㆍ25 전쟁 전사자의 사망보상금으로 유족에게 2011년 까지 분향 향 값도 안 되는 5천원을 지급해 오다가 1000만원으로 인상되었다 한다. 보상금의 과다의 문제에 앞서 이 나라를 지탱하는 국민들이 공유하는 가치관은 민주주의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다. 위의 6ㆍ25 전쟁 전사자와 연평해전 전사자와 세월호 사고 희생자의 보상금 수준을 보고 과연 자라는 세대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이러한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에게 묻는다.
끝으로 세월호 유족들에 비하여 연평해전 유족들은 집단적인 제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고 한상국 중사의 부인의 경우 울분을 못 참아 이것이 나라인가 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한마디로 너무 착한 유족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새삼 인식해야 한다.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어 우는 아기에게만 젖을 주는 나라가 과연 건전한 나라인지 이 영화는 묻고 있다.
(사진:고 박동혁 하사 부친)
영화는 엔딩에서 ‘우리는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 뒤에 숨은 뜻은 정치인, 군인, 언론인을 포함한 전 국민에게 대한민국이 지금껏 발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과오를 직시하고 이를 과감히 개선하여 통일 된 건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할 것을 잊지 말라는 6명의 ‘연평해전’ 전사자들의 피맺힌 소리를 이 영화는 전하고 있다.
(사진:기념품으로 받은 포스타)
(기관총사수가 전사하자 대신 기관총을 잡은 의무병 박동혁 상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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