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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30일 부활 제3주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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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복음24,35-48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문도 잠겨져 있고, 의심하기도 하고 두려워 하기도 하는 제자들 가운데에 서 계십니다. 오늘 복음 중 이 말씀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희망을 갖게 하십니다. 언제나 우리와 같이 우리의 모임 한 가운데에 서 계시는 예수님, 언제나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의 가운데에 자리하고 계신 예수님! 그리고, 우리 생활의 중심에 계신 예수님! 그래서 우리는 희망을 가집니다. 언제나 안심이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그런 희망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느님 중심의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내 중심이고, 내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내가 행동하는 것도 편하고 안락한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중심으로 이기적으로 살아갑니다. 또한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고 우선 나와 내 가족을 우선으로 살아갑니다. 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분을 멀리 떠나 있고 싶습니다. 그분이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습니다. 내가 잘 나갈 때, 바로 그 때는 우리는 예수님을 멀리 떼어놓고 싶어집니다. 그분이 나를 간섭하시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두려워하고 의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빌어주십니다. 그분의 평화를 빌어주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이 말씀은 아주 많이 들어온 말씀입니다. '너희가 평화와 함께'가 아니라 "평화가 너희와 함께!"입니다. 평화는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 때,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라고 신부님은 말합니다. 평화의 원천이신 주님께서 축복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있겠다고 하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내 중심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중심의 삶은 내가 만드는 것이지만 평화와 축복과 사랑이신 주님께서 내게 오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음을 주님은 강조하십니다. 평화도 사랑도 주님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평화와 사랑을 내가 한다고 생각하면 이기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말 어려운 삶이랍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 가운데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같이 함께 하겠다."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예수님은 형체가 있는 존재이셨고, 그 이름은 인간의 이름입니다. 제자들의 스승이셨던 분은 인간이셨고,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분은 인간이셨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 분은 인간이시면서도 하느님이신 분으로 신성과 인성을 같이 가지신 神人이십니다. 제자들에게 당신을 만지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살과 몸을 만져보면서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하여 새로운 몸과 새로운 삶을 가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집니다.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못자국도 보고, 손과 발을 만져봅니다. 일에 지쳐 막대나무 같은 어머니의 손에서 예수님의 못자국을 봅니다. 하루 종일 일하다가 피곤에 지쳐 쓰러질 듯 들어오시는 아버지에게서 예수님을 봅니다. 두려움에 떨면서 주님을 바라보는 외롭고 지친 형제들의 눈동자에서 십자가에서 고통으로 소리지르시며 아버지를 찾는 예수님을 봅니다. 아픈 환자를 간호하며 더러움을 마다않고 똥오줌을 받아내는 선한 손길과 미소에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전에 쌀에 돌이 많을 때, 조리로 쌀을 일어서 밥을 지었습니다. 쌀을 일기 위해서 조리로 물과 같이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켜 쌀을 뜨게 하고 조리로 쌀이 가라앉기 전에 재빨리 담아내야 무거운 돌을 밑 바닥에 가라앉히는 방법입니다. 세상의 많은 소용돌이에 맞물려 제자들에게 많은 의혹을 일으킵니다. 일반적인 상식과 소문과 의견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금을 일기 위해서는 모든 뜨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흘러가는 물에 씼어내듯이 모든 의혹을 버리고 보석을 간직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길입니다.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토막을 낸 물고기 한토막을 시장하신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정식 식사가 아닌 간식으로 드린 구운 물고기입니다. 유령처럼 형제가 없는 존재가 아님을 확인이라도 시킬양 먹을 것을 찾으시는 예수님, 많이도 바라지 않으시고, 간식처럼 물고기 한토막이면 충분해 하시는 예수님,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시기 위해서 먹을 것을 찾으시는 예수님! 지금도 우리에게 먹을 것을 찾으시고, 구운 물고기 한토막이라도 드리면 굶주리고 목말라 하는 사람에게 일일히 나누어 주실 예수님! 그리고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찾아서 손을 내밀고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라는 예수님! 당신의 갈증을 우리가 시원하게 풀어드리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다 완성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하시고, 나머지는 제자들과 우리에게 맡기십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 시간에 신앙의 신비를 크게 노래합니다. "이 세상이 마칠 때까지 주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을 믿고 세상 만방에 선포하겠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에게 선포하여야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선포하고 증인으로 살지 못하는가? 우리의 마음을 닫아 두었기 때문이라면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시지 않는 것인가? 우리는 왜 성경의 말슴을 깨닫지 못하고 있나? 의심없이 한번 시작해 보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신 주님! 보석을 얻기 위해 뜨는 쓸데 없는 것을 모두 흘려보내야 하듯, 당신과 같이 있기 위해, 당신의 평화를 받기 위해 모든 의혹을 버리게 하소서. 사랑의 작은 실천을 통해서 당신을 나누게 하소서. 그리고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을 선포하게 하소서. -선교사랑방 야고보 아저씨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