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외 2편
김명기
앞집 할매가 차에서 내리는 나를 잡고 묻는다
사람들이 니보고 시인 시인 카던데
그게 뭐라
그게······
그냥 실없는 짓 하는 사람이래요
그래!
니가 그래 실없나
하기사 동네 고예이 다 거다 멕이고
집 나온 개도 거다 멕이고
있는 땅도 무단이 놀리고
그카마 밭에다 자꾸 꽃만 심는
느 어마이도 시인이라······
참, 오랫동안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봄날은 안녕하다
삶과 죽음의 경계 명확한
도축장 한 귀퉁이
벙글 대로 벙근 목련 진다!
그 그늘아래 조팝꽃 한창이다
죽음 대수롭지 않은 여기
목 떨어지고 다리 잘린, 속내까지 다 파헤쳐진
핏빛 축생의 응고되지 않은 주검을
이리저리 끌고 밀며 다니는 내가 안녕하듯
저렇게 지는 꽃그늘 속 또 다른 생은 안녕하다
세상 어느 귀퉁이에는 누군가의 찬란한 치장을 위해
팔 다리 잘린 아이들이 절룩절룩 자라고
그 애비들 평균 수명은 마흔이 채 되지 않는다는데
그토록 비참한 얘기마저 이 봄 같은 홀망한 날
막 봉오리 터뜨린 여남은 송이 철쭉처럼
군데군데 자줏빛 핏방울 번지는 작업복 위로
이 살풍경의 배후 같은 햇살이 기울고
그 사이 꽃잎 몇 장 더 떨어지고
떨어진 꽃잎 몇 장 끌고 다른 꽃을 밀어 올리며
이렇게 안녕하신 봄날은 가고 있다
배회하는 저녁
시간이 허수란 걸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오래전이 언제인지 알 수 없듯
놀 깃드는 바다나
놀을 등진 채 물들어가는 세상이란
아주 없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이윽고 찾아드는 어둠조차
어제 쓰다 버린 것을
다시 기워 쓰는 재활용품
애초 없는 것들이 지금 어디에나 있고
당신에 대해 그에 대해
당신과 그가 나에 대해
어떤 견해를 말하든
그건 또 다른 모른 척일뿐
환상통을 앓듯 습성이 되어 버린 고통이 지겨워
사람들은 자꾸만 죽는다, 이제
죽음보다 오래 산 사람들의 말을 끊어버리고
더 이상 믿지 않음을 믿어 의심치 말아야지
착란을 생이라고 우기며 몰락한 과거와
오래전 들켜버린 시든 미래 사이에서
배회하듯 살아내는 것만큼
안전한 생은 없을 것이다
― 김명기 시집, 『종점식당』 (애지 / 2017)
김명기
경북 울진 출생. 2005년 계간 《시평》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북평장날 만난 체 게바라』 『종점식당』『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맛 칼럼집 『울진의 맛 세상과 만나다』. 제2회 작가정신 문학상, 제37회 만해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