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내려앉은 아담한 항구 기름기 오른 전어잡이에 분주
바닷가 따라 줄지은 식당 20여곳
날마다 잡힌 양 따라 값 다르지만 소비지보다 신선하고 가격도 저렴
노릇한 구이, 버릴 것 하나 없어 뼈째 손질한 회는 씹을수록 고소해
채소·초장과 버무린 회무침도 일품
가을이면 떠오르는, 몸이 반기고 미각까지 일깨우는 제철 먹거리가 있다. 전어와 송이, 추어가 그 주인공이다.
때마침 반가운 가족과 정 나눌 추석을 앞두고 가을 별미의 현장을 찾아가 봤다. 이와 관련된 음식 등 정보도 한아름 모았다.
가족과 함께 가을 별미 맛보며 도란도란 정담도 나누고 보다 즐겁게 추석을 보낼 수 있도록 말이다.
‘서해의 미항’으로 불리는 충남 서천의 홍원항. 바다가 육지로 파고들어간 만(灣)에 자리 잡은 이곳은 전경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아담한 항구다. 사시사철 갓 잡아온 수산물이 넘치는 홍원항은 가을이 되면 더욱 들썩인다. 왜냐하면 ‘집 나간 며느리도 되돌아오게 만든다’는 전어가 제철을 맞기 때문이다.
홍원항에 있는 고깃배들은 9월부터 본격적인 전어잡이에 나선다. 전어는 겨울을 보내기 위해 몸에 기름기를 축적하는 9~10월에 맛이 가장 뛰어나다. 이맘때 홍원항은 조업 나간 고깃배를 기다리는 활어차와 싱싱한 전어를 맛보려고 직접 산지를 찾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오늘은 배가 안 들어오려나봐요. 오후 4~5시면 들어와야 하는데, 7시가 넘도록 고기를 잡았다는 연락이 없네요.”
전어축제가 한창이던 12일, 이상원 홍원항 마을축제추진위원장(63)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다를 바라봤다. 오전 11시에 나간 고깃배에서 전어를 잡았다는 연락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수심 30m의 얕은 바다에 사는 전어는 움직임이 빨라 물때를 맞춰 나가도 쉽게 잡히지 않는다. 속도가 빠른 5t짜리 고깃배가 앞장서서 그물을 쳐 전어를 잡으면 뒤따르던 10t짜리 운반선으로 바로 옮겨 싣는다. 출항 후 몇시간 만에 운반선 가득 전어를 싣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안 잡힐 때는 이틀 동안 조업을 하고도 허탕을 치기도 한다. 결국 이날은 밤늦도록 고깃배가 돌아오지 않아 대기 중이던 활어차와 상인들은 빈손으로 철수해야 했다.
이 위원장은 “맨손잡기 체험에 사용할 전어를 구해야 하는데 걱정”이라면서도 “다행히 전날 들여놓은 물량이 있어 관광객들이 드실 만큼은 된다”고 말했다.
고깃배를 구경하지 못한 아쉬움은 싱싱한 전어를 맛보는 것으로 달랬다. 홍원항에는 바닷가를 따라 전어요리를 파는 식당이 20여곳 줄지어 있다. 항구로 들어온 전어는 위판장을 통하지 않고 곧바로 활어차에 실어 식당으로 옮겨진다.
홍원항 주변 식당에서는 소비지보다 30% 정도 저렴한 가격에 싱싱한 전어를 맛볼 수 있다. 1㎏당 가격은 3만원 내외로 그날그날 잡힌 양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식당 앞 수족관에는 은빛 물결이 넘실댄다. 전어는 보통 구이·회·회무침으로 먹는데 식욕을 가장 먼저 자극하는 것은 역시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구이다.
소금을 뿌려 노릇노릇하게 구운 전어는 뼈째 씹어먹어야 제맛이다. 2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는 서경순씨(60)는 살을 발라먹는 손님들을 나무라며 전어구이 먹는 법을 가르쳐줬다.
“머리부터 뼈까지 하나도 버릴 게 없어요. 잡은 지 하루가 채 안돼 싱싱하니까 안심하고 통째로 꼭꼭 씹어 드세요.”
뼈째 손질한 전어회는 감칠맛이 일품이다. 아삭아삭 씹히는 싱싱한 살은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강해진다. 초장에 미나리·깻잎 등 채소와 함께 버무린 회무침은 새콤달콤한 맛으로 입맛을 돋운다.
배를 든든히 채웠으니 이제 감성을 채울 차례다. 홍원항 북쪽엔 방파제와 등대가 있어 가볍게 둘러보기 좋다. 귓가를 간질이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방파제 위를 걸으면 오만가지 상념이 파도처럼 떠올랐다 가라앉는다. 언제봐도 아름다운 항구지만 일몰 때 등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특히 예술이다. 해가 저물며 서서히 붉은빛으로 차오르는 항구와 어둠에 잠기는 바다가 잘 어울린다. 운이 좋으면 바다에서 전어를 가득 싣고 돌아오는 고깃배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