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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은 체벌 금지를 위해선 선진국처럼 모든 상황에 대비한 상세한 학생생활지도 매뉴얼을 개발·보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은영 교사가 재직 중인 영국의 공립학교는 '학생이 껌을 씹고 있을 때 대처법' '학생이 교사에게 의자를 들며 폭력을 휘두르려고 할 때 대응법' 등 예상되는 온갖 상황을 망라한 수백 페이지 분량의 매뉴얼을 갖추고 있고, 교사 훈련 때도 이 부분을 집중 교육한다는 것이다.
―영국도 생활지도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영어는 존댓말도 없으니, 학생이 덤비면 대책이 없다. 하지만 학교에 시스템이 굉장히 잘 갖춰져 있다. 도저히 말을 안 듣는 학생은 교사가 아니라 주임이나 교감·교장이 담당한다. 주임교사 이상은 무전기를 들고 다니는데, 무전을 치면 바로 와서 문제 학생과 면담하고 필요하면 학생을 격리시킨다. 교장·교감·교감보·주임들은 당연히 그게 자기 임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일본도 생활지도 방법을 세세하게 매뉴얼로 만들어 놓았다. 선진국은 훈육(discipline)에 대해 수십년간 연구해놓았기 때문에, 체벌 없이도 교육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 교사가 됐을 때, 학생 생활지도에 대한 교육이 너무 부족하다. 직장을 다니다가 교편을 잡았는데, 말 안 듣는 학생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교육받은 게 없었다.
―학생 생활지도는 처벌 이외에도 다각적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문제 학생들은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나 우울증을 앓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치료와 교육이 병행되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우리 학교에서는 상·벌점제를 시행해, 벌점이 많이 쌓이면 바른생활교실로 가게 한다. 바른생활교실을 매우 충실하게 만들었더니, 학생들이 벌점 쌓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3주 동안 심리상담도 받고, 한의사가 하는 금연교육이나 "폭력행위가 왜 나쁜가" 등의 강의를 들어야 한다. 효과 만점이다.
―청담중학교가 실시 중인 '전(全)교사 담임제'도 배울 만한 제도다. 수업은 40명씩 듣더라도 생활지도는 25명 단위로 하는 것이다. 학생들과 밀착해야 생활지도도 더 잘된다.
"체벌은 옳지 않지만 무조건 금지하면 수업 제대로 되겠나"
“인격적으로 대우하면서 수업 분위기 잘 이끌도록 교사들 스스로 연구해야”
서울시교육청이 9월부터 서울의 모든 초·중·고교에서 체벌(體罰)을 전면 금지하라고 지시하자, 일선 교사들은 "학교 현장의 실태를 잘 모르는 얘기"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현실은 '교실 붕괴'가 더 우려되는 상황인데, 정교한 대안 없이 체벌만 없애면 도리어 학교 교육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본지의 난상토론에 참석한 일선 교사들 역시 "학생들이 교사 말을 듣지 않는 '교실 붕괴'가 이미 심각한 상황"이라며 비슷한 생각을 쏟아냈다. 이들은 체벌이 궁극적으로는 사라져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체벌을 대체할 수 있는 제도 보완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난상토론에는 인문계고의 송요원(서초고·사회)·송형호 교사(면목고·영어), 전문계고 이민항 교사(용산공고·자동차)와 영국 학교에서 근무하는 김은영 교사(레딩홀트 공립중고교·수학)가 참석했다.
―갑자기 2학기부터 '체벌 금지' 방침이 시달되면서, 교사들이 상당히 우려하는 분위기다. 서울시교육청이 내놓은 자치법정 등의 대안은 교육 현실에 맞지 않는 "황당한 소리"라는 지적도 있다.
―곽노현 서울교육감이 현장 경험이 없지 않은가. (곽 교육감이) 한 달만 학교에서 교사를 해봤으면 좋겠다. 체벌은 옳지 않지만, 문제는 무조건 금지한 뒤 수업이 제대로 되겠느냐 하는 거다. 심지어 서울 강남의 학교에서도 한 반에 15명은 수업을 못 쫓아오고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게 현실이다.
―우리는 학생들 수준 차이가 너무 크다. 일부 학생은 수업시간에 눈이 반짝거리지만, 나머지 학생들은 아예 엎어져 있다. 현재 상태에서는 체벌 없이 가르치려면, "수업 듣기 싫은 사람은 모두 자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시범학교라도 지정해서 연구한 뒤 전면 실시해도 되지 않았나. 내년에 지정하는 혁신학교에서 먼저 체벌금지 매뉴얼을 실시해보고, 확대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양극화 이후 가난한 학생들은 더 가난해졌고, 이혼 가정 학생도 늘어났다. 이런 학생들은 가슴 깊이 분노와 우울증을 안고 있다. 그래서 생활지도가 더 힘들어졌다.
―공부에 왕도가 없듯, 생활지도도 왕도가 없다. 교사마다 가르치는 방법이 다양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방법으로만 간다"고 하면, 학교 현장의 혼란만 가중될 수도 있다. 자칫하면 학교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미 학교에서 체벌이 많이 사라졌고, 궁극적으로 체벌은 없어질 수밖에 없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요즘 부모 중 약 30%는 학생들을 집에서 때리지 않기 때문에 체벌을 하면 학생·학부모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체벌은 금지되는 게 맞다. 체벌하면 1분 만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되지 않는다. 학생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야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교사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야 한다.
―교사도 변화해야 한다. '사랑의 매'가 통용되던 시대는 끝났다. 인격적으로 대우하면서도 수업 분위기를 잘 잡을 수 있는 연구를 교사들 스스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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