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다해 3월1일 [(녹) 연중 제7주간 금요일]
제1독서 집회서 6,5-17
복음 마르코 10,1-12
◈ [서울] 연중 제7주간 금요일
2019년 다해 3월1일 연중 제7주간 금요일
오늘은 3월의 첫날이며, 100번째 맞이하는 삼일절입니다. 일본의
침략에 항의하면서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외쳤던 선조들이
있었습니다. 만주와 간도로 넘어가서 독립운동을 하던 선조들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말과 우리의 얼을 지키려던 선조들이 있었습니다.
어렵게 벌었던 돈을 독립군의 군자금으로 기꺼이 내어준 선조들이
있었습니다. 사라져가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지키고 보존하였던
선조들이 있었습니다. 겨울이 길면 봄이 오듯이,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오듯이 언젠가 밝은 세상, 밝은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간직했던
선조들이 있었습니다. 100번째 맞이하는 삼일절을 지내면서 독립의
제단에 기꺼이 몸과 마음을 바쳤던 선조들의 희생과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정부는 독립을 위해서 헌신했던 독립 유공자와
가족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시류에 편승했던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매국노, 친일파, 민족의 반역자라고 부릅니다. 독립운동 하던 사람을
밀고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의 순사보다 더 가혹하게 같은 민족을
잡아가고 고문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에 협력한 대가로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가졌던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은 패망했고, 조국은
독립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매국노, 친일파, 민족의 반역자를
심판하지 못하였습니다. 100번째 맞이하는 삼일절을 지내면서 친일과
매국으로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졌던 사람은 겸허하게 반성하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많은 것들이 퇴색되었지만 다시는 우리의
분열과 갈등 때문에, 우리의 무능과 무지함 때문에 외세의 침략을
받는 일이 되풀이 되면 안 될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진정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고난의 때,
시련의 때가 다가왔을 때 함께하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말합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고난과 시련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선조들은
진정한 친구였습니다. 일본의 침략으로 나라를 빼앗겼을 때 자신의
사욕과 영달을 채우려 했던 사람은 진정한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100번째 삼일절을 지내면서 조국을 사랑하셨던 함석헌 선생님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만 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 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만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탓 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 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의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하나 있으니" 하며
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찬성하여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다면, 내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고, 진정한 친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혼인을 통해서 가정을 이룬 부부는 바로 그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진정한 친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혼인의 해소 불가성|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3월1일 연중 제7주간 금요일: 혼인의 해소 불가성
복음: 마르 10,1-12: 하느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유다인들은 결혼에 대해서는 아주 고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정절의 덕은 덕 중의 덕이었다. “우리는 하느님이 부정의 죄
이외의 죄에 대해서는 오래 참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부정은
하느님의 영광을 떠나보냈다.” “모든 유다인들은 우상숭배, 살인,
간음을 범하는 것보다 죽는 편이 더 낫다.” “사람이 젊은 나이에
아내를 내어 보낸다면 제단이 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혼문제를 들고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오직 한 사람 하와만을 짝을
주신 것은 두 사람이 모든 일에 동등하게 하나가 되고 모든 것을
나누고 모든 것을 희생하도록 하신 것이다. 이혼에 대한 가르침은
남성과 여성에게 동등하게 적용된다. 간음이란 혼인의 원래 목적에서
실패했던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5절)라고 하신 말씀은 처음에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에, 아담이 하느님께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창세 3,12) 그리고 여자는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먹었습니다.”
(창세 3,13)라고 핑계를 대는 것에서 나온 법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인간의 본 모습인 것
같다.
혼인은 교회가 묶어주고 봉헌으로 굳건히 하며 축복으로 봉인하고
천사들이 선포하고 아버지께서 확증하시는 것이 혼인의 행복이다.
하나의 희망, 하나의 열망, 하나의 규율, 하나의 섬김으로 일치된 두
그리스도인과 같은 짝은 없다. 이 둘은 형제와 같은 관계이며 각자의
소임에서 동등하다. 그들 사이에는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갈라짐이
없고, 참으로 “둘이 한 몸입니다.”(창세 2,24; 마태 19,5; 에페 5,31).
몸이 하나이면 마음도 하나이다. 부부는 함께 기도하고, 하느님 앞에
함께 엎드리고, 함께 단식하고, 서로 가르치고 서로 권고하고, 서로
위로하는 관계이다. 하느님의 잔치에서도 완전히 등등하고 환난과
박해 속에서도 완전히 동등하며 위로를 받을 때에도 그러하다. 서로
아무 것도 숨기지 않으며 상대방에게 소홀하지도 않고, 서로에게 짐이
되지도 않는다. 이것은 혼인생활을 절제 있게 엮어 가고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9절)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님의 가르침은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이
가르침은 간음의 경우 외에는 모든 이혼을 금한다. 그 간음은 여자나
남자가 아내이기를 남편이기를 원하지 않았고 혼인의 신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부는 살아 있는 동안 서로에게 매여
있다.(참조: 1코린 7,39)
부부는 항상 서로에 대한 믿음 안에서 서로를 위하여 어떠한
경우에라도 부부간의 도리와 혼인의 신성한 의무를 충실히 하여야
한다. 부부는 하나라고 한다. 하나이면서 둘이며, 주님을 모시기
때문에 셋인 삶으로 삼위일체의 삶을 살아야 한다.
- 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수도회] 우리들의 큰 부끄러움 앞에 참회에 참회를
거듭해야겠습니다!
2019년 다해 3월1일 연중 제7주간 금요일
우리들의 큰 부끄러움 앞에 참회에 참회를 거듭해야겠습니다!
존경하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님께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공개 사과문을 발표하셨습니다. 우리 한국천주교회가
구체적인 사실을 직접 언급하며 사과를 한 것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큰 용기를 내신 대주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3·1운동이라는 역사의 현장에서 천주교회가 제구실을 다 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민족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고 저버린 잘못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성찰하며 반성합니다...한국 천주교회는 과거를
반성하고 신앙의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어, 한반도에
참평화를 이루고, 더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종교계가 주도한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에 천도교 15명, 개신교
16명, 불교 2명이 참여했으나 천주교는 단 한명도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민족대표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고 해서, 3·1운동에 천주교
신자들이 전혀 동참하지 않았다고 볼수는 없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신자들의 참여는 미미했고 소극적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당시 조선 교회 지도층 인사들의 그릇된 식별력과 판단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일제를 합법적인 정부로, 조선을 일본의 한
부분으로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독립 운동을 반정부 운동으로 단정한
것입니다.
당시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신자들에게의 독립 운동 참여를 금지했습니다. 나중에는 일제의 침략
전쟁에 적극 동참할 것과 신사참배까지 하도록 권고하였습니다.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 같은 경우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토마스 의사의 종부 성사와 미사 요청에 대해 공식적으로
거부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조선교구장은 그를 테러리스트로 간주한
것입니다. 지시를 어기고 성사를 집전한 빌렘 신부에게는 2개월간
성무집행을 정지시키기도 했다.
다행히 세월이 흐른 지금 안중근 토마스 의사의 의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그는 이제 독립운동가로서뿐만 아니라 충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신앙이자 애국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큰 어르신이신 김희중 대주교님께서 오랜 고뇌와
깊은 성찰 끝에 마련하신 대국민 담화문 전문을 천천히 읽으며, 깊은
공감과 함께 큰 감사의 정을 느꼈습니다.
대주교님의 권고에 따라 앞으로 더 이상 시대의 징표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한국천주교회 구성원 전체가 다같이 노력해야겠습니다. 더
이상 교회 담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료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는
일이 없도록 늘 깨어있어야 하겠습니다.
자신의 죄, 자신의 부끄러움을 뉘우친다는 것, 참으로 인간적인 동시에
영성적인 태도입니다. 이번 한번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두고 두고,
우리들의 큰 부끄러움 앞에 참회에 참회를 거듭해야겠습니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윤동주, 참회록)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수도회]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마르 3, 8)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3월1일 .연중 제7주간 금요일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마르 3, 8)
세상에서 가장 힘든 수행은 결혼이라는 수행입니다.
결혼이라는 삶은 소임지 이동과 안식년이라는 배려조차 없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때가 되면 떠나야 하는 것이
자연의 건강한 순리입니다.
저마다의 부모를 떠나야 젊은 부부는 진정 한 몸이 될 수 있습니다.
한 몸이 되기위해서는 수 없이 많이
보따리를 쌌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부부가 되어갑니다.
오랜 세월동안 서로를 찌르면서 결국 한 몸인 것을 나중에 알게됩니다.
서로를 탓할 수 없는 부부라는 한 몸입니다.
부부는 세월이 만들어가는 인생의 신비입니다.
부부의 인연이 시작된 곳은 하느님 사랑입니다.
하느님 사랑이 부부를 부부로 만들어갑니다.
이 땅의 모든 부부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부부로 함께 살아가는 삶이 사람들 사이에서 은총임을 믿습니다.
서로를 위해 부부가 되었고 서로의 사랑을 자식들에게
전하여 주라고 부부가 되었습니다.
힘들기에 아름답고 힘겹기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서로의 아픔을 나누어 가지며 한 몸이 됩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청주] 단호한 결단|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9년 다해 2월28일 연중 제7주간 목요일(마르9,41-50)
단호한 결단
“행동을 통해서 수확하는 것은 습관이고, 습관을 심어 수확하는 것은
성격이며 성격을 심어 수확하는 것은 운명입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그 다음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듭니다.”그러니 좋은
습관을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좋은 습관은 덕이 되고, 좋지
않은 습관은 그야말로 악습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악한 표양으로
남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마르9,42).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릇된 말과 행동으로 신앙이
약한 사람을 죄짓게 하여 신앙을 저버리게 한다면 그 책임이
막중하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네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네 발이 너를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마르9,45-47). 이렇게 섬뜩한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신앙에 걸림돌이 되는 악한 행동은 절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 섬김의 자세로
살지 않고 오히려 잘못된 행동으로 다른 이들을 신앙에서 멀어지게
한다면, 짠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되어서 버려질 뿐입니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옛 말이 스쳐지나갈 말이 아니지요. '세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합니다. 매순간 단호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말씀하십니다. '교회가 권력과
돈과 허영을 쫓기도 하지만,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이끄시는
그리스도인의 길은 봉사와 겸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분열시키는 ‘세속적인 유혹’을 이겨내고 출세와 출세를 위해 타인을
망가트리고 싶은 유혹에 잘 맞서야 한다.'
날이 갈수록 신앙이 여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참된 신앙인의 삶보다는
무늬만 신앙인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환경은 좋아졌는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정도는 부족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예전에는
모든 환경과 여건, 처지가 어려웠지만 믿음의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세상 안에서 나를 유혹하는 것이 너무도 많기에
마음이 흔들리고 심지어 신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도
늘어만 갑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은 한 순간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돌립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
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4,18).
그러므로 영원한 것을 잡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마르9,41-50). 사람이 하느님의 나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소금은 보존하기 위한 소금이 아니라 주기 위한 소금입니다. 소금은
자기 맛을 느껴지지 않게 하고 오히려 각 음식의 맛이 좋아지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듯이 우리의 신앙생활도 자신의 풍요로움을
가지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5,13).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소금의 맛을 내기 위해서는 그만한 수고와 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과하면 소금 맛만 느껴지고 다른 식재료의 맛은
느낄 수가 없게 됩니다. 따라서 매 순간 단호한 결단이 요구됩니다.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것을 주고자 하십니다.
영원한 것을! 일상 안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여 드리는 일이
무엇인지를 가려내시길”(에페5,10)바랍니다.
지옥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마르9,48). 지역은
엄연한 실재입니다. 우리가 아직 볼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하느님과 멀어져 마음의 불안을 느낄
때를 생각하면 지옥이 따로 없다는 의미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지옥불의 뜨거움은 현세에서 불의 뜨거움을 통해서 비유적으로
체험할 수 있겠지만 원한에 사로잡힐 떼에 영혼의 뜨거움을 체험하게
됩니다. 천국은 사랑으로 채워져 있지만 지옥은 온갖 증오와 원한,
분노, 미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비가 허락되는 이 지상의 삶에서 천국을 희망하고 지옥의 삶을
피해야 합니다. 천국은 이미 지상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매순간
사랑으로 천국을 완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기타] 3월 1일 (금) - 미래의 사람
오늘은 “미래의 사람”에 대해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민수기 14장 7절 말씀에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미래의 사람입니다. 미래의 사람은 현재에 있지만
미래를 선포합니다. 앞으로 되어질 일에 대해서 말하지요.
그리고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해낼 수 있기에 마음이 기뻐집니다.
그래서 기쁨으로 미래를 소리칠 수가 있지요. 여호수아와 갈렙은
바로 이와 같이 가나안 땅을 소유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미래를
노래하고 선포했습니다.
여러분은 현재에 머물러있습니까? 미래를 향하여 있습니까? 미래를
바라보는 눈 또한 위를 향합니다. 땅을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역사는 미래를 바라보고 미래를
선포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미래를 선포하고 미래를 향하여 당당하게 나아가 영적
가나안땅을 소유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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