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라고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증거된 말씀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들 중에서는 시간과 공간들을 뛰어 넘어 그 백성들을, 더 나아가 상대방을, 또한 대적들을 두렵게 하시는 실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그러한 두려움으로 인해 그 백성들이 한 사람 같이 모이게 되어 사울 왕과 그 백성들에 있어 결코 유리할 수만은 없었고 두려움들이 없을 수가 없었던 이방 암몬의 침략에 능히 맞설 수 있게 된 것일 뿐 아니라 결국 그 전쟁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게 되었는데..
참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는 것이며, 실상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더 큰 어려움과 위기들에서도 해결하시는 분인 것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방법들은 수백, 수만 가지 이상인 것으로 그렇게 두렵게 하시는 방법은 그러한 것들 중 지극히 일부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인 성령님께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정말 두렵게 하신 것이고 경험이 되게 하신 것이며..
또한 그러한 두려움의 실제는 사실 성령님 단독이실 수는 없는 것으로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경험케 하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중에 속하는 것이고,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에 있어서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두 다 이루신 구원과 어떤 식으로든 전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인데 실상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정 그러한 사실과 이치와 원리는 오늘 나에게 필요한 사람들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방법들로 일하실 수 있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나에게 있어서의 대적들이나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 있어서까지도 시간과 공간들을 뛰어 넘어 하나님께서는 두렵게 하심으로 인해 해결하시고 역전까지 되게 하실 수도 있는 것임을 방증하는 것으로..
마찬가지로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들인 것이고,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는 일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게다가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은 하나님의 일하심들에 있어서 그렇게 두렵게 하시는 것에만 제한될 수는 없는 것인데 아래 본문의 앞부분에서도 잘 증거되어 있는 것이듯이 사울 왕이 왕으로서의 직무를 잘 감당하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게 한 실제에 있어서도, 오늘날 우리들이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에 있어서 하늘의 힘으로 근심을 이기고 담대케 될 수 있게 됨에 있어서도, 누군가를 긍휼히 여기고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게 됨에 있어서도, 병이 치료되고, 은사가 나타나며, 기도의 응답이 체험되고, 이적이 나타남 등에 있어서도, 더 나아가 수많은 시간과 공간들을 뛰어 넘어 이신칭의의 구원이 가능하고, 죄악이 아닌 말씀으로의 살아 있는 믿음이 되며,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을 누리고, 세상 끝 날의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에 있어서도, 심지어는 무에서 유로의 천지창조에 있어서도, 홍해 바다가 갈라지게 됨에 있어서도, 다윗이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뜨리게 됨에 있어서도, 느헤미야 때의 성벽 재건에 있어서도 모두 다 하나 같이 실상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고 세상적 방법들로는 불가능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행하시고 실제로 경험케 하실 수 있으며 그 이상도 얼마든지 가능하신 분인 것인데..
다 마찬가지로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성령님으로 인한 것이고,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심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고 애초부터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이며, 게다가 어떤 식으로든 그와 같은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에 있어서, 또한 그에 있어서의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실제와 경험들에 있어서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다 이루신 구원에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와 같은 하나님으로 인한 모든 역사들의 실제와 경험들, 생생함과 강렬함들에 있어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바로 그렇듯 근원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바로 그 자체가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치열하고 절실하며 뜨거운 말씀의 열정이 중요하고 또 중요하며, 긴급하고 또 긴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인 것이고, 바꾸어 말하면 우리 인생들이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붙잡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며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으면서 어느 정도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느냐가 하나님으로 인한 크고 작은 모든 역사들의 온전함과 강렬함과 풍성함들에 있어 전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사실상 생각 이상의 기준과 관건, 방법과 통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한 겨리의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전령들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두루 보내어 이르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
(사무엘상11:6~7)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4월 24일(수)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