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시와 숭늉이 만날 때 ♧ 원문보기 글쓴이: 청안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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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만종 |
화가 |
장 프랑수아 밀레 | |
그림
설명 |
1859-1859년. 55.5×66㎝.
해질녘 들판에서 기도하는 농부 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제작 당시로는 꽤 비싼 1천 프랑에 미국으로 팔려나갔다가 1890년 프랑스인 한 명이 원래 그림값의 800배인 80만 프랑을 주고 되샀다가 1906년 루브르에 기증했다. 1986년 오르세미술관 개관과 함께 이전했다.
당시는 산업화 시절이었지만 밀레는 농촌의 모습을 담았다. 부부가 추수의 기쁨을 신께 감사하는 종교화라고 일반적으로 해석되지만 부부 앞 바구니에는 죽은 아이가 담겼다는 등의 여러 해석을 낳았다.
살바도르 달리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이 그림을 다양하게 해석한 작품을 내놨고, 반 고흐도 밀레를 절대적으로 추앙하면서 모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한국의 박수근도 12세에 이 그림을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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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피리부는 소년 |
화가 |
에두아르 마네 | |
그림 설명 |
1866년. 161×97㎝.
인상파 탄생의 대부격인 마네의 대표작이다. 오르세는 이 작품을 특별 대우해 여러 도록의 표지로 사용하고 한쪽 벽면 전체를 이 작품을 위해 할애한다.
빨간 바지와 검은 상의를 입은 왕실 근위군 소년이 한 발을 앞으로 내밀고 피리를 부는 이 작품은 무채색으로 처리한 화면, 원근법을 배제한 평면적인 묘사, 불필요한 장식을 삭제하고 핵심만 자세하게 강조한 기법 등이 특징이다.
1866년 살롱전에서 이 작품이 낙선하자 에밀 졸라가 심사위원들에게 항의서를 제출했으며 세잔, 피사로, 르누아르 등 인상파 화가들이 모임을 갖는 역사적인 계기가 된 바로 그 작품이다.
마네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당시 파리 화상 뒤랑 뤼엘이 1천500프랑에 샀고 20년 뒤 이작 드 카몽도가 20배의 웃돈을 주고 사들였다가 1911년 루브르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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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제비꽃 장식을 단 베르트 모리조 |
화가 |
에두아르 마네 | |
그림 설명 |
마네는 1868년 팡탱 라투르의 소개로 베르트 모리조를 처음 만났다. 당시 그림 속의 이 젊은 여인은 그림을 배우고 있었으며, 곧잘 루브르박물관에서 옛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곤 했다. 모리조는 곧 마네와 절친한 사이가 되었고, 1876년에는 마네의 막내 동생과 결혼한다. 그녀는 마네를 위해 여러 차례 모델이 되어주었고, 오르세미술관의 걸작 ‘발코니’를 위해 다른 모델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마네는 깊이 있는 시선에 섬세하고 각진 얼굴을 한 그녀의 색다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그녀의 매력적인 얼굴과 눈은 마네의 검은색에 감싸여 화사하게 빛난다.
이 초상화는 마네가 그녀를 모델로 그린 그림 중에서 말년 작품에 해당한다. 작품의 모델인 모리조는 당시 인상주의 화가였다. 여성화가가 등장한 것은 당시가 격변기였음을 말해준다. 제국주의의 파급 속에서도 시민의식이 대두하고 의무교육과 언론집회의 자유가 확보되어, 인상주의를 근대화의 산물로 본다. 흑백의 대조가 눈을 사로잡아 모리조 부인의 미모가 더욱 살아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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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아를의 반 고흐의 방 |
화가 |
빈센트 반 고흐 | |
그림 설명 |
1889년. 57.5×74㎝.
반 고흐가 고갱과 아를에서 두 달간 함께 살면서 화가 공동체를 만들 꿈을 꿀 당시 자기 방을 그려 동생 테오에게 보내준 작품이다.
3점이 남은 반 고흐의 유명한 방 그림 중 한 점으로 소박한 침대와 의자를 반 고흐 특유의 원근법을 넣어 그려냈다. 반 고흐의 거친 붓터치가 약간 누그러진 대신 진홍빛 이불과 파란 세숫대야, 노란 침대 등 색채들이 강조돼 고갱의 영향이 배어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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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타히티의 여인들(바닷가에서) |
화가 |
폴 고갱 | |
그림 설명 |
이미 브르타뉴 지방에서 원시성과 야만성을 발견한 고갱은 마침내 1891년 그토록 동경하던 원시적인 삶을 찾아 타히티로 떠났다. 그에게 타히티는 원시적인 종교성, 그 끝없는 탐구에 대한 최후의 답안으로 여겨졌다.
고갱은 타히티에서 나른한 여인들의 자태, 우수에 찬 시선 등에 매료되었다. <타히티 여인들>, 혹은 <해변에서>로 알려진 이 작품은 해변가에 앉아 있는 두 여인의 모습을 아주 가깝게 묘사하였는데, 대담한 구도와 과감한 색채가 돋보인다.
화면은 전면의 여인들이 앉아 있는 공간과 뒷배경을 구획 짓는 수평띠에 의하여 평면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브르타뉴 시기 고갱이 즐겨 썼던 도식적인 구성으로서, <식사>에서도 이와 같이 화면을 가로지르는 수평선이 화면의 깊이감을 약화시켰다.
한편, 이러한 명확한 구도 속에서도 여인들의 자세는 시각적인 균형을 최대한 고려하여 그려졌다. 왼편에 앉아 있는 여인의 옆 얼굴과 앞으로 내민 오른팔, 그리고 오른편 여인의 뭉툭한 발바닥과 툭 불거져 나온 무릎의 선 등이 이루어내는 시각적인 조응은 작가의 치밀한 조형 의식이 뒷받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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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우물가의 여인들 |
화가 |
폴 시냐크 | |
그림 설명 |
1892년. 195×131㎝.
쇠라와 함께 과학적인 점묘법을 발전시켜 나간 시냐크의 대표작.
일곱가지 색채를 점찍듯이 찍어나가면서 풍부한 햇살이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를 묘사했다. 쇠라가 사망한 후 그린 작품으로 쇠라의 그림에서 보이는 부푼 치마의 여인들과 파란 바다가 어우러졌다.
그림을 보면 푸른 바다와 노란 언덕이 대비를 이루는 눈부신 생트로페의 풍경 속에서 두 여인이 우물가에 있고, 또 다른 여인은 언덕을 향해 멀어져간다.
이 작품은 시냐크가 생트로페라는 지중해의 작은 항구 마을을 발견하고 얼마나 감탄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실제로 이곳에서 지내며 작업하곤 했는데, 이 작품은 그의 생트로페 풍경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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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오페라좌의 관현악단 |
화가 |
에드가 드가 | |
그림 설명 |
1868-1969년. 32×46㎝.
발레하는 무희들의 모습을 역동성이 돋보이는 구도로 그려낸 작품들로 유명한 드가는 <오페라좌의 관현악단>에서 역시 파격적으로 화면을 구성했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구도로 시선은 연주자들에게 집중되고, 화려한 옷을 입은 무대 위의 무희들은 배경이 되었다.
이 작품은 드가의 친구였던 바순 연주자 데지레 디오Désiré Dihau를 주인공으로 한다. 데지레 디오는 드가와 같이 몽마르트르Montmartre에 살고 있었고, 이 둘은 오페라가 끝난 뒤 같이 귀가하는 절친한 친구였다. 드가는 디오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 뒤에 위치하는 바순 연주자를 앞으로 끌어내기도 했다.
또한 드가는 주변에 다양한 표정의 인물들을 배치하여, 초상화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초상화란 가장 편안한 평소의 모습으로 그려져야 한다’고 말했던 드가의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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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M 부인의 초상 |
화가 |
앙리 루소 | |
그림 설명 |
1896년경, 198×115㎝
루소는 일상생활에서 시적인 분위기와 영감을 얻곤 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근엄한 표정의 매혹적인 여인을 크게 그려넣음으로써 일상생활 속 인물에 어떤 틀을 부여했다. 세관원 루소는 이 그림에서 여성 초상화에 흔히 쓰이는 소품들을 약간 변형시켜 사용하고 있는데, 가령 M부인이 들고 있는 것이 양산이 아니라 어두운 색 우산인 점이 그러하다. “나에게 스승은 자연밖에 없다.”고 주장하던 루소는 자신이 ‘인물 풍경화’를 고안해냈다며, 1890년부터 이러한 화풍을 자화상에도 적용했다. 이때 그린 자화상에서는 그가 그린 대부분의 초상화와 마찬가지로 그림의 모티프가 그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은 화면 전체에 편재된 균일한 빛과 함께 그림자의 부재를 통해 통일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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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오르페우스 |
화가 |
귀스타브 모로 | |
그림 설명 |
1896년경, 198×115㎝
낭만주의와 이탈리아 회화의 영향을 받은 모로는 신화를 주제로 한 연작을 그려 명성을 얻었다. 1866년 살롱전에 출품된 이 작품을 통해 모로는 그리스 신화를 시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으로 표현해내었고, 많은 비평가들에게서 극찬을 받았다.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신화 속 최고의 시인이면서 음악가였다. 아버지이자 태양, 궁술, 예언, 음악의 신 아폴론Apolon에게서 선물로 받은 리라는 오르페우스의 상징이었다.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Eurydice를 잃은 오르페우스는 슬픔 속에 모든 여성을 멀리하게 되었고, 그를 사랑했던 트라키아Thracia 여인들은 오르페우스가 자신들을 무시한다며 그를 찢어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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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푸른 화병 |
화가 |
폴 세잔 | |
그림 설명 |
1889-1890년, 62×51㎝
이 정물화는 폴 세잔의 1880년대 말 작품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공들여 그린 작품 가운데 하나로, 서로 다른 요소들을 능숙하게 배치했다는 점에서 그의 1870년대 작품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 그림에는 그림자가 없는 게 특징이다. 빛이 대상 정물의 맞은편에 있는 관람자의 위치에서 나오기 때문인 듯하다. 그림자를 없애는 이러한 빛 처리는 사물의 윤곽을 뚜렷하게 만들어주며, 동시에 낯설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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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옹플뢰르의 눈 덮인 길 위의 수레 |
화가 |
클로드 모네 | |
그림 설명 |
1867년경, 65×92㎝
클로드 모네는 일찍이 눈이라는 소재에 매료되었는데, 그것은 노르망디에 머물며 아름다운 눈풍경을 여러 점 그린 쿠르베의 영향을 받았던 까닭이었다.
눈의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눈 위에서 반사되는 빛의 변화를 연구해야 했다. 모네는 눈 덮인 길을 흰색으로만 처리하는 대신 색조의 미묘한 차이를 한껏 활용해 푸른색의 반사광이 감도는 무지개빛으로 채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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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줄리 마네(고양이를 안고 있는 아이) |
화가 |
오귀스트 르누아르 | |
그림 설명 |
1887년, 65.5×53.5㎝
줄리 마네는 화가 마네의 동생인 외젠 마네와 베르트 모리조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어렸을 때부터 인상주의 화가들 사이에서 살았다. 줄리 마네의 엄마인 모리조는 르누아르에게 자신의 딸을 새로운 기법으로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르누아르는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몇 점의 데생을 그렸고, 줄리는 화가의 요구에 따라 여러 차례에 걸쳐 오랫동안 포즈를 취해야했다. 르누아르는 이 초상화를 그리며 새로운 기법을 찾아내는데 몰두했다.
데생의 정확성과 서서히 엷어지는 색조의 조화, 그리고 캔버스 표면 일부가 도자기처럼 정갈한 점 등을 보면 르누아르가 이 그림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
2007. 05. 25. 淸顔愛語
출처: ♧ 시와 숭늉이 만날 때 ♧ 원문보기 글쓴이: 청안애어
첫댓글 오늘 나름 예술관련 일을 하는 분이 대부분,저와 제친군 그림을 좋아해서 함꼐한 시간, 유쾌했어요..무엇보다 저녁6시 신께바치는 삼종기도가 모티브가 된 밀레의 만종,바구니속에 감자든 죽은 아이였건, 삶의 경건이 느껴지는 순간..별로 감동적이지 않은 m부인의 초상화 앞에서 넘 많은 수다를 떨고, 남들도 못본 여자 레이스 강한 감동을 받은 라퓜,신인상주의와 신고전주의를 불분명한 발음 으로 잘 설명해준 레몽,손으로 찍은 듯한 기법을 기억못하는레몽에게 '도트프린트'라 했다 욕엄청 먹고 ㅋ,자꾸만 청동상의 터치 기법이 내게는 새똥같은 밀알..이렇듯 미술관이 좋은 이유는 정형화된 사고가 아니라 한 작픔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펴며
밀알님 넘 재밌는 발상, 도트프린트와 새똥...ㅋㅋ 생각하면 계속 웃음이 ㅋㅋ 한가지 그림을 보고도 다양한 상상을 하는건 넘 즐거워요~ 저도 속으로 별별 생각들을 다했어여 ㅋㅋ 유치해서 말못해 -.-
다양한 사고를 교환하고 이면에 숨겨진 생각까지 끄집어 낼 수 있다는 점, 제멋대로 생각하기를 할수 있어서 좋다는 거.ㅋ "언어의 유희" 까지 ..제타의 독특하고 저희보다 깊은 지식에 놀라기도 했어요. 뿌듯한 하루 였어요!!
넘넘 즐거운 시간이었어여~ 레몽,밀알님 덕분에 :) 실제로 본 그림들도 감동적이었고,, 또 남산까지 가서 맛본 돈까스도 맛났어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