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이면 다들 고향에 도착해서 식구, 친척들과 즐거운 한가위 명절 보내고 계시겠죠?
고향오니 옛날 추억들도 새록새록 나고...
그래서 제가 기억하는 옛날 축구 이야기 한 번 해볼까 합니다.
물론 새 국가대표팀 감독님이 선임되고,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을 앞 둔 이런 시국(?^^)에
무슨 옛날 이야기냐? 하시겠지만...^^
그래도 명절 맞아서 옛날로의 시간여행 떠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죄송하지만... '저' 대신 '나'로 조금 건방지게(?) 쓸께요. 다른 분들도 기억하는 옛날
국가대표 축구팀 이야기 계시면 나누어 봤으면 좋겠고,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불완전한
지라 이름도 내용도 다 틀릴 수 있지만, 아마 이에 대해 바로잡아 주실 분들도 많이 계실테니까...^^
그냥 정확한 확인 없이 제 기억 속의 이야기를 한 번 적어볼까 합니다.
아스날팬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에 작가 닉 혼비의 'Fever Pitch'라는 자전적인 소설이 있다.
그 이야기처럼 닉 혼비의 피버 피치가 아닌 나의 피버 피치는 어땠을까? 회상해 본다.
물론 피버 피치가 아닌 피버 'TV'라고 쓰는 것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르지만...
내 기억 속의 첫 번째 국가대표 이벤트는 1983년에 펼쳐진 멕시코 청소년 월드컵이다. 아직 '학생'이라는
내 경력에 가장 많이 차지하는 직업을 갖기 훨씬 전이라서 모든 것이 세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그 때 텔레비전을 뚫어져라 보면서 열심히 응원했던 것이 축구에 대한 내 첫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당시 스코틀랜드에 1차전을 지면서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결국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때 정말로 선수들이 열심히 뛰어다녔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우리나라는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하기 전에 항상 가장 먼저 내세웠던 기록 '청소년 월드컵 4강 신화'
를 만들어 냈는데, 그 때는 우리나라 축구 실력이 정말 대단한 것으로 알았다.
아마 8강에서 우루과이를 꺾었을 때, 월드컵 우승팀을 꺾었다고 캐스터들이 흥분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고,
변방의 코리아 라는 나라에 져서 분함을 참지 못하던 우루과이 선수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당시 우루과이에서도 말도 안된다고 다시 경기를 하자고 했다는 둥, 국가대표끼리 한 번 붙어보자고 했다는
둥 하는 루머가 떠돌았을 정도로 우리나라가 우루과이를 꺾은 것은 이변 중의 이변이었나 보다.
그 후 4강에서 브라질과 만나서도 대등하게 잘 싸웠지만, 박종환 감독님이 '편파'판정이라고 주장했던 몇몇의
장면들을 아쉽게 뒤로하고, 4강에서 멈췄던 것 같다.
이 때부터 특정 '선수' 하나보다는 '팀'을 좋아하는 편애가 시작되었는지 모르고, 그 팀에 소속된 선수들이 다
잘되기를 바라는 해바라기도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청소년 월드컵 4강 신화라는 타이틀을 얻기는 했지만 그 주역인 선수들은 그 이후로 생각보다 크게 성장하지
못 했다.
청소년 월드컵에서 3골을 넣어, '한국의 작은 펠레'라고 불리던 신연호 선수는 그 이후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국가대표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고, 아시안게임인지 올림픽 직전, 대표팀을 상대하는 평가팀으로 대학선발팀(?)
의 일원으로 출전하여 대표팀을 상대로 페널트킥을 성공시키면서 재활을 알렸고, 진한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울산현대에서 위치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바꾸면서 꾸준하고 성실하게 뛰었고, 가끔 골을 넣을 때는
다시 공격수로 바꿨으면 하는 나만의 바람도 갖었던 것 같다. 은퇴이후, 우리 전북팀의 트레이너와 코치를
하면서 은근히 다음 승진하면 전북팀의 감독님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최만희 감독님이 물러나시면서
전북과는 더 이상 연결이 되지 않아 무척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금도 회자되는 김종부 선수, 신연호 선수가 크지 않은 키에 골 에어리어에서의 감각적인 움직임과
위치 선정이 돋보이는 그런 선수였다면 김종부 선수는 차세대 대형 스트라이커 감이라는 평가가 많았고,
청소년 월드컵에서도 2골을 넣으면서 그 이름을 알렸다. 이후 스카우트 파동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서도 멕시코
월드컵의 그 멋진 골을 터뜨렸지만, 그 것만으로는 그에 대한 기대를 만족시킬 수 없었던 아쉬운 선수라는
생각이 든다.
유공에 들어가 뛰었던 수문장 이문영 선수... 청소년 월드컵때는 정말 잘 했던 것 같은데 프로에
와서는 그냥 프로팀의 주장 골키퍼 수준에 머물렀던 것 같다.
그 외에도 고향 출신이라 더 정이 갔던 장정 선수, 당시 대표팀의 막내라던 이기근 선수, 터프한 수비를 하던
남기영 선수 등 아직까지 내 기억 속에 그 선수의 이름들이 오롯이 기억날 정도로 내 축구팬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던 이들은 물론 그 이후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내게는 첫 번째 좋아하는 선수들이자 영웅들로
남아있다.
첫댓글 김풍주도 진짜 아쉬웠는데 .. 대표팀에서 부상으로 월드컵 주전도 뺏기고
당시 보기드문 192cm 장신키퍼였던걸로 기억함
김종부도 183cm 탄탄한 체격의 공격수였는데 성장이 더뎠던걸로 암..
네.. 제 기억으로는 당시 이문영 선수가 주전, 김풍주 선수가 서브 였는데, 그 이후에는 김풍주 선수가 굉장히 잘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도 부상이 없었다면 김풍주 선수가 주전이 유력했었던 것으로 기억 나구요. 김종부 선수는 정말 큰 기대를 받았는데 스카우트 논쟁 이후 그냥 서서히 사라져버린 정말 안타까운 선수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