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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5: 6 적은 누룩 - 고전 5: 8 명절을 지키되
고전 5: 6 적은 누룩 -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고린도 교인들은 그런 악을 포용하면서도 뻔뻔스레 자랑하였던 것 같다. 아마 그들은, '우리는 대체로 다 건전하다. 단지 한 명이 잘못되었을 뿐이다'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자랑은 옳지 않았다. 그 한 명을 용납한 것이 문제이었다. 왜냐하면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죄악은 전염성을 가진다. 범죄한 그 한 명 때문에 교회의 거룩함이 상실되고 교회의 기강이 심히 흐려지고 있었다. 그가 용납되었다면 또 다른 죄인이 용납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면 교회는 점점 더 부패될 것이다. 이것은 지교회나 한 교단이나 전체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1] 너희를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여기 "자랑"이란 것은, 고린도 교회가 그 큰 범죄자를 용납해 두고 잘한듯이 교만함을 이름이다. (5: 2).
'자랑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우케마'(*)는 자랑하는 표면적 행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랑하는 내용을 의미한다.
헬라어로 '자랑하는 행위'는 '카우케시스'(*)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자랑할 것이 없다'라고 말한 것은 단순히 그들 교회가 분열과 음행으로 가득찬 교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그들이 하나님의 은사를 가졌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음에도 그 사랑과 은사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은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은사를 죄악을 묵인하는 곳에 사용하였으며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곡해하여 죄악을 용납하고 그들과 더불어 죄악에 빠지는 것에 사용하였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죄악의 행위를 묵인하는 것이 그들의 자랑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L. Morris).
2]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적은 누룩"이란 것은, 비유니 위에 말한 것과 같은 "자랑"의 죄악을 가리켰든지 혹은 범죄자 자신을 의미하였을 것이다.
죄악은 누룩과 같아서 은근히 퍼진다. 곧, 사람이 모르는 가운데 퍼진다. 개인에게 있어서도 그러하고 단체에서도 그러하다.
적은 죄악이 개인의 생활에 퍼지는 것을 들어 말하자면,
(1) 그 은밀한 죄가 양심을 부패케 하며
(2) 그것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며,
(3) 그것이 모든 다른 죄악의 세력들을 강화(强化)싸키며,
(4) 그것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은혜받을 방편(예를 들면 기도하는 것)을 등한히 여기게 하여 은혜를 받는 방편의 효능(效能)을 파괴시킨다. (Hodge).
아일란드(Ireland)의 바다에서 한 번 배가 파선한 일이 있었다. 그 배를 운전하는 사공은 주의(注意) 깊은 사람이었고 그때의 기후(氣候)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 파선의 원인은 이것이었다.
곧, 그날 선원(船員)중 한 사람이 배의 나침판을 소제 하느라고 소도(小刀)를 사용하였다. 그러던 중 칼날의 조금 떨어진 쇠조각이 나침반함(函)에 떨어졌다.
그 쇠조각 때문에 지남침이 끌려서 배의 방향을 달리 가리키게 되었다. 그래서 배는 방향을 잘못 가다가 파선하였다. 조그마한 쇠조각의 영향이 그 배의 전체를 잘못되게 하였다. 한 가지 실수와 과오(過誤)가 그 범과자의 전 생명을 망치는 실례(實例)는 많다.
누룩은
(1) 그리스도의 복음
* 마 13: 33 -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 눅 13: 21 -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2) 죄 등을 의미한다.
* 출 12: 15 - 너희는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 갈 5: 9 -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여기서는 죄악을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본문의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누룩, 즉 죄악으로부터 구속함을 받은 새로운 존재임과 죄악의 파급적인 영향력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할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 살전 5: 22 -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즉 바울은 그들의 자만이 결국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누룩'이라는 하나의 실례를 들어 증명한다.
누룩은 아주 작은 미량의 효소로 그보다 몇 배나 더큰 반죽 덩어리를 발효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효력은 더욱 왕성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교회 내의 범법자는 처음에는 그 이웃을 감염시키지만 결과적으로는 교회 전체를 부패시키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갈 5: 9).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의 지혜와 은사에 비하여 악의 요소인 누룩이 작아 보였기에 자만할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들 앞에 닥친 위협은 결코 작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의 지혜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악으로부터 교회의 순결성(純潔性)을 유지하는 일이다. (Harris).
고린도 교인들은 그런 악을 용납하면서도 뻔뻔스럽게 자랑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대체로 건전하다. 단지 한 명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자랑은 옳지 않았다. 그 한 명을 용납한 것이 문제이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기 때문이다. 악은 전염성을 가진다. 범죄한 한 명 때문에 교회의 거룩함이 상실되고 기강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용납되었다면 또 다른 죄인이 용납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면 교회는 점점 더 부패될 것이다. 이것은 한 지교회나 한 교단이나 마찬가지이다.
고전 5: 7 새 덩어리 -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
묵은 누룩은 옛 죄악들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구약에 예표된 유월절 양이시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되심으로 우리의 옛 죄악들이 깨끗이 씻음을 받았다. 유대인들이 유월절 양의 피를 문틀에 바름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듯이, 우리는 구주 예수님의 보혈 공로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옛 죄를 씻음 받은 성도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묵은 누룩을 내어버려야 한다. 우리는 옛 죄악들을 내어버려야 한다.
1]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1)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여기서 "누룩"은 죄악을 비유한다. 기독자는 원칙에 있어서 누룩(죄) 없는 자이다.
* 요일 5: 18 -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 요일 3: 9 -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기독자가 습관적(習慣的)으로 범죄를 계속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Ross,"He can not go on sinning." 1Jn. 3: 9).
신자가 죄를 범하는 것은 하나의 사고(事故)요 원칙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었으니 우리가 어찌 범죄하리요! 누구든지 범죄를 예사로이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를 대신하여 죽지 않았다는 거짓된 고백과 같다.
중국의 왕 목사가 어렸을 때에 한 번은 좋지 못한 장난을 하였다. 그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붙잡아 벌을 세우려 했으나 그는 도망쳐 버렸다.
그 어머니는 기어이 그를 붙잡아 놓고 하는 말이, "내가 낳아서 기른 아이가 잘못한 일 때문에 내가 벌을 세우려 한다고 달아나니 나는 이런 아이를 낳아 기른 것이 부끄럽다.
나는 나를 벌 세울 수밖에 없다"라고 하면서 자기 종아리를 때려 상하게 하였다. 그때에 그는 어머니에게 안기면서, "나를 벌하여 주시고 어머니 자신을 때리지 마십시요"라고 하였다. 그후부터 그는 좋은 아이가 되었다고 한다(Knight's Master Book of new Illustrations, pp.142-144).
이것은, 대신으로 벌 받은 한 가지 실례(實例)이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 때문에 받을 영원한 멸망을 대신 담당한 것 같은, 무궁한 가치 있는 하나님 아들의 속죄와 같은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희생은 우리 밖에 있는 객관적 사실(客觀的事實)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월절 양을 먹은 것과 같은, 먹고 마심과 같이 우리 신자들의 심령 속에 화합되어지는 것이다. 화합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믿음으로만 성립 된다. (4: 2)
하나님의 백성은 이미 죄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기 전의 타락한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Calvin).
특별히 바울은 '누룩 없는 자이어야 한다'라는 표현하지 않고 '누룩 없는 자'(*, 아주모이 온테스)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의 표현은 그들이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존재 자체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강조한다.
* 고후 5: 17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만 하는 신분임을 상기시킨다. (4: 17).
만약 그들이 아직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었다면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누룩없는 상태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실제적인 상태로서 그들이 다시 묵은 누룩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신분임을 강조한다.
(2)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새 덩어리"는 새사람의 단체를 이름이니 곧, 거듭난 신자들의 단체이다.
"묵은 누룩"은 죄악을 가리키는 비유이다. 이 비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양을 먹는 저녁부터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은 사실에서 나온 것이다. (출 12장).
그것은 기독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받은 이후 원칙상으로 범죄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한다.
2]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예수께서는 구약에 예표 된 유월절 양이시다. 그가 우리 대신 희생되심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얻었다. 유월절 양의 피를 문틀에 바름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듯이,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묵은 누룩은 옛 죄악들을 가리킨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 받은 성도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날의 죄악 된 행습을 버려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유월절 양에 비유한 말씀이다. 물론 유월절 양은 예수님 탄생하시기 1500여년 전 모세 때에 그리스도 예수를 예표(豫表)하도록 제정된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양처럼 희생된 때문에, 기독 신자들은 거듭나서 누룩 없는(속죄 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라는 헬라어 원문에서 '가르'(*)로 시작하는데 '왜냐하면'의 뜻을 가진 '가르'는 왜 묵은 누룩을 버려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와 그들이 어떻게 누룩 없는 자가 되었는가 하는 이유를 암시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리스도께서 희생양이 되셔서 그들의 백성의 죄를 다 도말하셨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들을 멸망으로부터 끌어냈으며 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주셨다. 바울은 누룩으로 시작된 비유를 유월절의 무교병과 유월절 어린 양이라는 또 다른 비유의 의미에 연결하면서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성취된 무교병에 참여한 자들은 더 이상 누룩있는 떡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Lenski).
고전 5: 8 명절을 지키되 -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
그리스도인의 주일 집회는 명절과 같다. 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에서 유래한다. 그 날 제자들은 주의 부활을 기뻐하며 모이기 시작했다.
이로써, 그리스도인의 휴식과 예배의 날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제7일 토요일로부터 주간의 첫째날 곧 주일로 변경되었다.
신약 교회는 공적 집회를 가질 때, 구약의 유월절과 무교절처럼, 누룩 없는 떡을 가지고 지켜야 한다. 그것은 괴악함과 악독함 등의 옛 죄악들을 다 버리고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모이는 것을 말한다. 교회는 거룩해야 한다. 교회의 구성원들도 거룩해야 한다. 또 교회의 모임들도 거룩해야 한다.
1]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여기 "명절"이란 것은, 유월절 양을 먹은 이스라엘 백성이 일주간(一週間) 지킨 것이니 기독자의 한 평생에 해당하는 비유였다. 기독자는 비유컨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은(믿음을 비유함-요 6:55) 사실을 배경하고, 한 평생을 거룩되이 하나님께 바친 절기 처럼 생활하여야 한다.
여기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이란 말은, 그 윗말 "묵은 누룩"이란 말에 대한 설명이다.
바울은 '묵은 누룩'과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을 버려야 할 것을 권고한다. 여기서 '묵은 누룩'과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이란 성도들이 그리스도께 속하기 이전에 지니고 있던 죄의 습성을 가리킨다.
그리스도 안에서 빚어진 성도들은 묵은 누룩이 뜻하는 음란과 정욕, 술취함과 방탕,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 등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 엡 4: 22 -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 벧전 4: 3 -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주 예수께서 부활하신 주일은 명절과 같다. 주의 제자들은 이 날 공적 예배를 위해 모이기 시작했다. 이로써,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제7일 토요일로부터 주간의 첫째날인 주일로 변경되었다.
신약 교회는 공적 집회를 가질 때 누룩 없는 떡을 가지고 해야 한다. 그것은 옛날의 죄악들을 다 버리고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주일 집회로 모이는 것을 말한다.
교회는 거룩해야 한다. 교회의 구성원들도 거룩해야 하고 교회의 집회들도 거룩해야 한다.
2]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순전함"이란 말(* )은, 본 바탕에 인연(因緣) 없는 요소를 조금도 섞지 않은 순수성을 의미하고 "진실함"은 하나님 뜻의 진상(眞相)에 부합하는 도덕 생활을 의미한다. (Hodge, Lenski).
위의 두 가지는, 어디까지든지 신앙생활에 있어서 불순수(不純粹)한 것과 가면(假面)에 속한 요소를 금하는 말씀이다. 신앙 생활은 일심전력(一心專力)으로라야 성립된다.
칼빈(Calvin)은 이 구절을 '영적(靈的)인 유월절을 지키자' 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왜냐하면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새로운 유월절의 개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잡히시기 전날 밤에 만찬에서 떡을 떼시고 포도주를 나누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다시 범죄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새로운 명절에 참여한 자들은 옛 습관의 죄악된 누룩을 가지고 새 덩어리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새 명절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누룩이 아니라 순전함과 진실함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적인 생활이다.
'순전함'(*, 에일리크리네이아스)은 동기의 순수함을 나타내고 '진실함'(*, 알레데이아스)은 행동의 순수함을 나타낸다.
새로운 명절은 더이상 종교적 의식과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누룩없는 새 명절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거룩한 삶으로 드려져야 할 성도의 순결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 롬 12: 1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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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이 즐거워야 행복해 진다고 합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모든것이 긍정적으로 보이게 되므로
얼굴엔 늘 미소를 짓게되고 밝고 유쾌하게 된답니다.
얼굴에 환한 웃음과 함께 오늘도 멋지게 시작하시고요.
항상 웃음이 있는 그런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