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115) - 폭염을 식혀주는 묘약, 올림픽 승전보
연일 날아드는 안전 안내문자, ‘폭염특보 발효 중. 낮 시간 동안 야외활동을 자제하여 주시고 충분한 물 섭취,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등 온열질환 예방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당국의 경보처럼 내내 무덥고 수시로 퍼붓는 장맛비로 힘들었던 7월이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렀다. 때에 맞춰 지인이 보낸 메시지가 마음에 든다. ‘떠나는 7월, 애썼다. 그리고 고맙다. 짓궂은 장마로 마음 찌푸리게 만들었고 뜨거운 날씨 때문에 그늘을 찾게 만들기도 했지만 지나고 나니 미움보다 서운함이 앞선다. 내년이면 지금보다 더 성숙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날 7월, 나도 더 세련된 분위기로 반기겠다.’
사진작가 지인의 작품, 시원함이 느껴지는 철원직탕폭포
지난 주말에 막을 올린 파리올림픽, 지구촌을 사로잡은 화려한 개막식이 환상적이고 연이어 날아드는 태극전사들의 승전보가 생기를 돋운다. 개막식 때 우리 선수단의 입장을 북한으로 잘못 소개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이를 잠재우듯 뛰어난 투지와 기량으로 대회 초반부터 사격, 펜싱, 양궁 종목 등에서 다섯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거는 등 기대이상의 선전을 펼치는 우리 선수단이 자랑스럽다. 특히 올림픽 10연패와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남녀양궁 선수단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약관 17세의 최연소금메달리스트로 우뚝 선 사격소녀가 대견하다. 다른 때보다 단출한 규모로 출전한 선수단 모두 파이팅!
올림픽 10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여자양궁선수들
내가 올림픽에 처음 눈을 뜬 것은 1956년에 열린 멜버른 올림픽, 그 당시 권투종목에 출전한 송순천 선수가 은메달을 획득한 것이 가장 큰 화제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양정모 선수가 레슬링종목에서 딴 금메달이 대한민국 최초, 이번 대회 전까지 96개였는데 어제 사격의 반효진 선수가 100번 째 여름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이 대견하다. 며칠 후면 금, 은, 동 합쳐 300개의 메달획득이 이루어진다니 금석지감(今昔之感)이 아닐 수 없다.
여름올림픽 100개의 금... 영광의 얼굴들(동아일보 2024. 7. 30)
* 대한민국이 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것은 1948년의 런던올림픽, 아직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기 전의 열악한 여건에서 출전한 선수들의 행장은 이렇다.
‘한국 선수단이 처음 참가한 하계올림픽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보름 앞두고 개막한 제14회 런던올림픽(1948년 7월 29일~8월 14일)이었다. 한국 선수단이 런던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런던올림픽을 2년 앞둔 1946년, 조선체육회는 올림픽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참가 자격 확보를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가입을 서둘렀다. 대책위 부위원장 전경무는 미국올림픽위원회(USOC) 위원장이자, IOC 부위원장 브런디지에게 한국의 올림픽 참가를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 1946년 말 브런디지는 조선체육회에 서신을 보내 한국에 국가올림픽위원회(NOC)가 조직되고, 3종목 이상의 경기단체가 국제경기연맹(ISF)에 가입한다면, 1947년 6월 스톡홀름에서 개최되는 IOC 총회에서 한국의 가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5월 29일 전경무는 한국의 가입 승인 여부가 확실치 않은 IOC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군 수송기를 타고 도쿄로 출발했다. 도쿄에서 스톡홀름 행 항공편으로 갈아탈 예정이었지만, 미군 수송기가 일본 아쓰키 산악지대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KOC는 전경무의 순직을 추모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후임을 물색해 뉴욕에서 한미무역상사를 경영하는 이원순에게 IOC 총회 참석을 요청했다. 이원순은 영국, 덴마크를 거쳐 개막을 이틀 앞두고 스톡홀름에 도착했다. 이원순의 헌신적 노력과 미국의 적극적 지원 덕분에 IOC 총회 개막 직전 육상과 축구의 ISF 가입이 승인되었다. 6월 20일 IOC는 가입 조건을 모두 충족한 KOC의 IOC 가입을 승인했다. 이에 맞춰 올림픽 참가비용 마련을 위해 올림픽후원회가 조직되었다. 영화 상영과 공연 수입, 하와이·LA 교포들의 성금으로 적지 않은 후원금이 모금되었지만, 참가비용 대부분은 한국 최초의 복권으로 기록되는 올림픽후원권 발행을 통해 충당되었다. 어려운 경제 사정에도 후원권을 사고, 성금을 모금한 한국인들은 한마음으로 한국 선수단이 세계를 제패하고 런던 하늘에 태극기를 휘날리고 돌아올 것을 기원했다. 1948년 6월 21일 한국 선수단은 서울역에서 부산행 특별열차 해방자호 1등 침대차를 타고 장장 20여 일 동안 이어질 런던 행 장도에 올랐다.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은 역도의 김성집과 권투의 한수안이 동메달 2개를 획득해 올림픽 첫 출전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얻었다. 숨은 영웅들의 헌신과 희생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출범하기도 전 런던 하늘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감격은 없었을 것이다.(조선일보 2024. 7. 20. 전봉관의 글, ‘태극기 처음 휘날린 1948년 런던올림픽의 감격’에서)
제14회 런던올림픽 참가를 위한 기금 마련을 목적으로 1947년 발행된 한국 최초의 복권. 2012년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