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고 중요하게 하는 일이 산에 가는 일이라니 참 싱겁다.
산에서 내가 보내는 것이 무엇일까?
나를 위해 땀을 흘리고 마음을 가다듬어 나의 행실을 바르게 하면
이 세상은 밝아질 것인가?
'자기 방에 혼자 앉아 바른 생각을 하고 있으면, 수천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의 소리가 들린다.'
그럴까?
세상이 그래도 망하지 않은 것은 산 속에서 선비가 글을 읽고 있어서다.
이런 따위의 말을 좋아할 때가 있었는데.
나는 이 세상에 밝은 기운을 보내는 사람인가?
교장실에서 혼자 있는 시간과 작은 내 방에 앉아 있는 시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나의 의식과 무의식, 나의 의무와 자유, 그리고 꿈은 무엇인가?
황제내경을 공부한다고 책 몇권을 주문했다.
황로와 연결지어 몇 권을 읽다보니 양생이 주요화제다.
나도 양생법을 익혀 건강하게 오래 살아볼까?
가닥없는 붓놀이, 가닥없는 책읽기, 그리고 가닥이 그나마 보이는 산행!
점심을 차려먹고 작은 종이 몇 장 채우고 집을 나서 능가사에 도착하니 3시가 다 되어간다.
천왕문 옆에 찻집이 마무리 공사 중이다.
대웅전 앞 너른 뜰엔 코스모스가 피어 있다.
코스모스와 대웅전과 팔봉을 찍어본다.
1봉쪽으로 서서히 걷는다.
국립공원이라고 여전히 공사중이다.
구들장처럼 등산로를 돌로 깔아두고 아마매트도 쌓아두었다.
86년초에 5학년 아이들과 이산을 오를 땐 바위 사이에 발판이나 난간 계단이 하나도 없었다.
산에 오르는 맛이 좋았다.
지금은 나의 걸음에도 힘이 바져 걸음을 편하게 도와주지만 재미는 덜하다.
한시간 다 걸려 유영봉에 도착한다.
지리산 반야봉과 천왕봉 줄기가 희미하다. 백운산 줄기도 지리산에 잠겼는데 억불봉이 끝에 뾰족하다.
눈 앞에 펼쳐지는 산과 들과 바다가 맑다.
제주도 한라산이 보일까?
일요일 산행 후 사흘만에 로른 산이서인지 다리에 힘이 난다.
두류봉까지 쉬지 않고 걷느다. 아니 뒤돌아 서 사진을 찍느라 자주 멈춘다.
두류봉 끝에 앉아 멀리 천관산 앞의 빛나는 득량만을 보며 맥주를 마시려다가
참는다. 바람이 차다. 옷을 걸쳐입고 과자를 먹고 일어난다.
손죽열도 지니ㅏ 거문도까지 보이는데 제주쪽은 안 보인다.
칠성봉까지는 가 보자.
통천문을 지나 칠성봉에 이르자 까마귀들이 날아 오른다.
해창만과 마복산 유주산 천등산 조계산을 본다.
나로도와 수락도 뒤로 바다 위의 섬들을 본다.
팔영산 줄기에서 운암산으로 이어져 바다 건너로 희미하게 이어지는 득량만 뒤의 산들을
이름 새겨 본다.
바람이 차 바위 사이로 내려가 배낭을 벗는다. 맥주 마시는 걸 찍는다.
4시 반이 되어간다.
내려가는 시간과 운전할 시간을 생각하면 6시 넘어 집에 가겠다.
적취봉으로 가지 않고 되돌아 두류봉 앞에서 탑재로 내려간다.
헬기가 떨어뜨려 놓은 커다란 정부양곡 포대에 돌이 들어 있다.
부지런히 내려오니 능가사까지 채 50분이 걸리지 않았다.
다시 능가사에 들러 비슷한 사진을 찍고 성주 앞을 돌아온다.
일몰시각을 확인하니 5시 52분이다.
부지런히 4차로를 달려 남양에서 우도가는 길로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