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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오전 10시경 서해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 남쪽 해역에서 북한 해군이 한국 해군을 기습 공격, 사망 4명, 실종 1명, 부상 20명의 인명피해를 입히고 한국 고속정 한 척을 침몰시키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북한 경비정 한 척도 한국 해군의 대응 사격으로 화염에 휩싸인 채 북으로 돌아갔다고 하며 아직 북한측 피해 규모는 알 수 없으나 우리측보다 피해 규모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현재의 상황 판단입니다.
많은 이들이 황당무계하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6월 29일의 서해 도발 사건은 왜 발생한 것입니까? 많은 언론 기관과 전문가들이 여러 가지 설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모든 설명이 다 나왔습니다. 계획된 도발이라는 설명에서부터 우발적인 도발이라는 설명까지 그리고 북한 해군의 보복작전, 혹은 북한 강경파의 획책이라는 설명, 앞으로 있을 미국과의 회담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라는 등 다양한 설명들이 제시되었습니다. 혹자는 이 사건이 북한의 대내용인 동시에 대남 심리전 용, 한국의 대북 정책에 대한 경고이며 또한 북한 권력집단의 갈등을 나타낸 것이라는 너무 포괄적이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국제정치 사건도 단정적인 설명을 제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번 서해도발 사건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다만 이 사건이 발생한 시기 그리고 북한 해군이 흔들리는 배에서 수동(手動)으로 조준해야 하는 상당히 큰 구경의 포인 85mm 포를 발사하여 일격에 한국 군함을 명중시켰다는 군사적 사실은 이 사건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라 보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사전에 계획된 도발이기 때문에 이 사건은 전술적 전략적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사료됩니다.
6.29 서해 도발의 전술적 의미
6.29 서해 도발은 우선 지난 수년간 지속 되어온 남북한 간 해양분쟁의 맥락에서 설명 될 수 있습니다. 북한 해군은 1999년 6월 15일 연평 해전에서 한국 해군에게 당한 패배에 대한 보복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 어느 나라의 군대라도 자신의 명예는 물론 치욕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99년 연평해전 당시 북한측은 사상자 100여명에 함정 6척이 침몰되는 대규모 피해를 입은 반면 한국 해군은 경상 7명과 약간의 함정 피해밖에 입지 않았었습니다. 그 후 북한은 꽃게잡이를 이유로 자행했던 서해 해역 북방 한계선(NLL)에 대한 노골적인 도발은 자제했습니다.
당시 사건을 보고 햇볕정책의 승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햇볕정책이 없었더라면 북한이 그처럼 당하고 가만히 있지 않을 터인데 햇볕정책 때문에 북한이 그 정도에서 멈춘 것이라는 논리였습니다. 혹자는 햇볕정책은 강력한 안보와 함께 하는 것이고 한국 해군의 단호한 대응은 그 증거라고 말하며 정부의 정책을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당시 한국 해군이 전투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햇볕정책이 그후 지속될 수 있었다고 보는 편이 더욱 논리적이라는 생각입니다. 만약 1999년 6월 연평해전 당시 한국 해군이 거꾸로 10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군함을 6척이나 잃은 반면 북한은 경미한 피해만 입었다면 햇볕정책이 지속 될 수 있는 국민의 지지 기반은 무너졌을 것입니다. 정부는 늘 햇볕 정책은 强者의 자비스런 정책이라 말했고 한국 해군의 승전은 국민들에게 이 말을 증명하는 것으로 비추어 졌습니다. 당시 한국 해군 참모총장은 북한 해군이 파손된 선박을 인양하고, 물에 빠진 동료들을 구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국 해군은 스스로 작전을 중지하고 귀환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사실 1999년 6월 연평해전은 대통령이 햇볕정책의 효과에 조급해 하는 국민들을 향해 한 일년정도 기다려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 후 1년만에 일어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6.29 교전에서 북한 해군은 99년의 패배에 대한 작은 만회를 거두었다고 생각 할 것입니다. 우선 전술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북한 해군의 작전 능력이 그 동안 상당히 개선되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99년 해전 당시 한국 해군의 승전 요인 중 하나로 한국 해군 장비의 우수성이 언급되었습니다. 즉 한국 경비정들은 자동 사격 통제 장치가 장비 되어 있는 포를 가지고 있지만 북한측은 수동식으로 포를 조준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번 북한 해군이 발사 한 것으로 추정되는 85mm 포는 사실 탱크포 수준의 구경을 가진 큰 포이긴 하지만 수동 조준해야 하는 舊式 砲입니다.
이번에 북한 해군이 수동 조준 포 한방으로 한국 경비정을 명중 시켰다는 사실은 한국 경비정이 교전수칙 제 1 단계인 경고를 위해 접근 할 당시 이미 북한 해군은 한국해군을 공격하기로 작심하고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85mm 포를 장착한 북한 해군 함정은 연안 해군용으로는 가장 규모가 큰 코르벳함(Corvett)으로 한국 경비정의 화력을 앞서는 重型 경비정이었습니다. 북한 해군은 일단 화력의 우세 상황을 창출하고 사전 계획된 대로 선제 공격을 가해 온 것입니다. 이번 해전은 99년 6월15일 교전 당시 현장 해역의 화력에서 한국 측이 훨씬 압도적인 것과 逆의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99년 해전은 NNL에서의 긴장이 1주일 이상 계속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었다고 하지만 이번 한국 해군의 패전은 우선 경계에 실패 한데 그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 해군이 경계에 유념해야 할 사건이 이미 많이 발생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불 때 그렇습니다.
예로서 작년 6월 북한은 상선, 어선, 군함을 포함한 각종 선박을 이용, 한국의 영해 및 북방한계선을 의도적으로 침범하는 행위를 감행했었습니다. 2001년 6월 3일 시작된 북한의 한국 해역 침범 행위는 7월초에 이르기까지 거의 1개월 이상 지속되었었습니다. 북한은 조각배 수준의 선박으로부터 13,000톤 짜리 대형 선박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종류별로는 소형 어선으로부터 초대형 화물선, 그리고 군용 경비정(2001년 7월 6일 새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박을 동원하여 한국 영해를 침범했고, 이에 대해 유화적인 조치를 취한 해군 및 정부 당국은 국민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해군은 NLL을 넘어온 북한의 소형 어선을 향해 경고사격을 한 것이 무력 대응의 전부 이었습니다. 한국 해군은 한국 영해를 침범한 북한의 화물선에 대해서는 나가 달라고 애걸했고 당시 열린 국가안보회의는 오히려 북한측이 ‘사전 통보 및 허가 요청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 혹은 ‘향후 북한측이 제주해협 통과와 관련, 우리측에 사전 통보하거나 허가 요청이 있을 시 긍정적으로 검토할 방침‘ 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은 그 동안 북한의 해상 도발에 대한 한국 측의 대응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분석했을 것입니다. 특히 북한은 무기의 개선보다는 작전의 개선을 통해 6.29 서해 교전에서 한국 해군을 압도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단지 남북한의 해양분쟁 요인만이 이 사건을 일으킨 모든 원인은 아닙니다. 한국내의 정치 사회적 변화, 지난해 9월 11일 이후 특히 2002년 초 이후 북한을 향한 미국의 점증되는 압력 등 한반도는 물론 국제 정치적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이번 6.29 서해 교전 사태는 전략적인 사건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6.29 서해 교전의 전략적 의미
우선 북한 해군의 도발이 온 한국인이 월드컵 4강 진출의 감격에 기뻐하는 시점에 야기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많은 국민들을 황당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 시점은 바로 이 같은 한국 내의 특이한 변화상황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사실 월드컵은 그 동안 한국인들이 잊고 있었던 상징들을 재발견하게 했다는 예상 밖의 효과를 초래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목청높이 외쳐졌고, 심지어는 촌스럽다던 태극기가 국민과 국가의 상징으로 다시 떠올랐습니다. 근래에 볼 수 없었던 상황입니다. 젊은이들이 태극기가 그려진 옷을 즐겨 입게 되었고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러워 태극기를 차에 달고 다닌다는 시민도 나타나는 상황입니다. 즉 국가와 민족의 상징이 강하게 되살아나고 있으며 이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무형적 국력이 놀라울 정도로 강화되고 있다는 상징입니다. `적은 약할수록 좋다`는 것이 국제정치의 원칙입니다. 사실 `친구도 약한 것이 좋다`는 것이 국제정치의 슬픈 원칙입니다. 한 국가와 민족이 단결하는 상황은 그 나라가 강해지는 상황이며 이는 친구와 적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북한은 세계를 향한 한국인의 애국심, 민족주의를 다시 한반도로 돌리게 함으로서 최근 한국에 형성된 열정에 찬물을 뿌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또한 6.29 서해 도발은 한반도의 정치 일정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햇볕정책을 주도한 현 정부는 이미 레임덕이 된 상황이고 다음 정권과 협상해야 할 북한은 현정부의 대북 정책에 상응하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제약이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북한은 특히 각종 부정 부패 사건으로 정통성을 잃어버린 현재의 한국 정부를 효과적인 대화를 한다거나 약속을 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의 효율성과 정통성은 정부의 도덕성과 청렴성에 있습니다. 현재 한국 정부는 한국 국민의 지지를 잃음으로서 결국 대외정책, 대북 정책에도 무능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제상황의 변화입니다. 2001년 미국 부시 행정부의 출범 이후, 특히 작년 9월 11일 테러사건이후 한국의 대북 햇볕 정책은 한반도 주변에 형성된 국제체제의 대 북한 정책, 특히 미국과 일본의 대 북한 정책과 부조화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한국 정부의 대북한 햇볕정책이 이 같은 부조화를 극복할 수 없는 한계점에 봉착했음을 북한은 잘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북한은 본시 한국을 전략적 거래의 대상으로 삼은 적은 없었습니다.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 정도로 인식하는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 협상, 혹은 대결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즉 북한은 한반도 문제 해결의 궁극적 열쇠를 쥐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라고 보고 있으며 미국과의 협상, 거래, 분쟁 등 제 수단을 통해 ‘조선은 하나’ 라는 북한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입니다.
한국은 물론 북한의 전술적인 대상이기는 했습니다. 그 동안 햇볕 정책에 집념하고 있었던 한국 정부는 바로 이 같은 국제정치의 현실-즉 북한 대외정책의 핵심 軸은 미국이라는-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국제관계라도 당근과 채찍의 두 가지 정책이 배합됨으로 이루어집니다. 현 한국 정부는 채찍의 요인은 배제한 채 당근의 요인을 강조하는데 주력했습니다. 북한의 행동을 변경시킬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당근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은 햇볕정책의 한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채찍의 요인을 애써서 회피한 결과가 6.29일 서해 도발과 같은 사태를 야기한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 해 보아야 합니다.
전쟁은 정치의 반영일 뿐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군대를 가지고 있어도 정치적인 목적이 모호할 경우, 정치 지도자들이 훌륭한 국가 전략을 결여하고 있을 경우, 그 나라의 군대는 전쟁을 방지할 수도 없고 전쟁에 승리할 수도 없습니다. 한국의 해군이 정치적인 이유에서 군사적인 능력을 발휘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닌지 철저히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정책적 교훈
어떤 정책이 훌륭한 정책인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다만 편리한 평가 기준의 하나는 결과에 비추어 판단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善意에 의한 정책이라도, 아무리 능력을 잘 반영한 것이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정책은 다시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북한의 도발은 시간적으로 볼 때 우리의 현 정책이 성공적이 못한 것임을 보여 줍니다. 정권이 끝나는 시점에, 그리고 온 민족이 월드컵의 성공에 감동하고 있는 시점에 야기된 불행한 무력충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동안의 대북 정책을 검토하고 더욱 효율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변수들은 5년 전 햇볕정책이 작성 될 때보다 더욱 많아졌습니다. 우선 국제정치 상황이 대폭 어려워 졌습니다. 지금 미국은 끝날 가능성 조차 없어 보이는 대 테러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특히 테러리스트들이 대량파괴 무기를 수중에 넣을 것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미국은 이라크, 이란과 더불어 북한을 테러리스트들에게 대량파괴무기를 지원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이미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겠다고 천명한 미국은 며칠 전 테러를 지원했다는 정보를 포착한 후, 아라파트(Yassir Arafat)를 대체 할 새로운 팔레스타인 지도자가 나타날 경우에만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협조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아직 미국이 어떤 방법으로 이라크 문제를 다룰 지 알 수 없으나 부시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 이전 즉 앞으로 1-2년 이내에 작전을 개시할 것은 분명합니다. 결국 세계체제가 대 테러 전쟁체제로 바뀐 상태에서 우리도 이에 적응, 우리의 이익을 보장받는 대외 정책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최근 북한을 탈출하는 북한 주민의 급증, 이들에게 국제적인 난민의 지위를 부여하겠다는 미국 의회의 결의, 해결되지 못하는 북한의 경제난 역시 고려되어야 할 변수 들입니다.
일부 분석가들은 북한의 군부의 강경파가 6.29 서해 교전을 도발했다고 분석하기도 하고, 북한내의 권력 갈등의 결과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필자는 이 주장에 동조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북한 정치의 성격상 군이 당의 노선과 다른 정책을 독자적으로 수행한다거나, 또는 북한에 다원적인 정치권력이 존재, 상호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과 같은 민주국가에서도 해군이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판인데 북한에서 일선 해군 경비정 함장, 해군 혹은 군부가 상부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고, 혹은 상부와의 정책적 갈등에 의해 이런 사태를 야기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치 권력의 내부적인 요인 때문에 6.29 서해 교전과 같은 사태가 발생한 것이 진실이라면 그 경우 현재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은 진정 재검토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햇볕정책의 주요 가정(假定)중 하나는 북한체제의 성격상 북한 정부에 대북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이 같은 논리로 북한 주민을 무시하고 북한 정권에만 치중하는 것 아니냐는 햇볕정책 비판자들의 논리를 무마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6월 29일 서해에서의 교전 사태를 작은 무력 충돌일 뿐이라고 넘겨 지나갈 일은 아닙니다. 한반도와 주변에 형성되고 있는 정치적인, 사회적 기류, 그 시기 등을 고려 할 때 단순한 도발이기보다는 계산된 행동으로 보아야 합니다. 물론 그 계산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실한 목표를 알고 있고 이에 대비할 수는 있습니다. 확실한 목표란 이 땅에서 전쟁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전쟁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전쟁이 두렵다고 피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전쟁에 대비하고, 그럼으로써 전쟁을 억지(抑止)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해군이 모든 책임을 질 일은 아닙니다만 이번에 우리 해군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지는 못했습니다. 국방정책 담당자,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이 오히려 더 크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고심하다가 금년도 국방백서의 발간을 포기했습니다. 主敵을 표시하느냐 마느냐의 문제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어떤 네티즌이 주적을 반드시 명시하지 않아도 국방은 가능한 것 아니냐고 글을 띄운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많은 국민들은 정부 지도자, 국방 지도자의 선의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국제정치는 그렇게 선의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 전쟁사, 외교사에서 배우는 교훈입니다. 이 세상 많은 나라들은 자신의 군사력이 존재하는 이유와 정책을 명백히 밝히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힘의 한계와 적용 범위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며칠 전 읽었던 책의 한 문장을 인용함으로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전쟁은 두 나라가 벌이는 것이라 한다면, 어떤 특정한 국가 혹은 위협을 명시하지 않은 채 전쟁을 억지 하겠다는 생각은 난센스다.” (原文: "If it takes two to war, then the idea of deterring wars without a special adversary or threat is non sense." Philip Bobbit, The Shield of Achilles: War, Peace and the Course of History, New York: Alfred A. Knopf 출판사, 2002년 간행, 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