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을 뿌리고 후추를 뿌리는 사이 *제3회 구지가 문학상 수상작
박형권
고등어 한 손 사서
한 마리는 굽고
한 마리는 찌개를 끓이는 게 좋을 것 같다
바다로 씻어낸 무늬가 푸를 때
침묵으로 말하는 통통한 몸을 갈라
복장을 꺼내고 무구정광다라니경을 생각해 보자
당장 읽을 수 없다면 비늘을 벗겨보자
지느러미를 쳐내 보자
부엌방의 전등 빛으로 읽어 내려가자
마지막 소절에서는 바다의 일몰을 불러내어
몸으로 건설한 저녁 한 끼를 불그스름하게 경배하자
생선 구워 밥상에 올리면 그곳이 세계의 중심
혀로 말씀을 삼키기도 한다
오늘도 피 흐르는 가을, 단풍을 뿌리며 단풍에 베인다
그리하여 단풍은 피보다 비리다
이 가을도 오래 가지 않을 터
몇 마리 더 사서 따로 남는 추억은 냉동실에 넣는다
생선 한 손은 왜 두 마리이어야 하는지
한 손은 들고 한 손으로는 무위자연 하자는 것인지
점심에는 고등어를 굽고 저녁에는 끓인다
소금을 뿌리고 후추를 뿌리는 사이
경전처럼 가을이 온통 유유자적하시다
가을 산이 동네까지 내려오신 날
아, 한 손이 된 너와 나, 누군가를 먹이러 가자
뼈 우려낸 국물로 붉게 그을린 피로 떠먹이고 오자
아직 우리가 물이 좋을 때 하자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봤을 때
우리는 파르르 전율하고 싶다
― 예심 심사위원(신용목, 서안나, 임성구)
― 본심 심사위원(민병도, 구모룡, 정인근)
박형권
부산 출생. 200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우두커니』 『전당포는 항구다』 『도축사 수첩』 『가덕도 탕수구미 시거리 상향』, 동화 『돼지 오월이』 『웃음공장』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나무삼촌을 위하여』 청소년 소설 『아버지의 알통』. 오장환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