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자유가 보장이 되는 것은 미타정토 극락세계에 가는 것
우리 영산불교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주된 관심사예요.
우리 부처님은 생로병사(生老病死) ‧ 사고팔고(四苦八苦) ‧
중생의 고통 ‧ 고뇌에서 벗어나기를 바랐어요.
이 우주의 진리를 깨친다는 것은 그 다음이었어요.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첫 번째로 희구(希求)했고,
그것이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힌두교에서는 우주의 진리를 깨쳤어도 아라한밖에 못 가잖아요. 보살 안 됩니다.
아라한이 영원히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아니어요.
아라한이 다음 생에 인간 몸을 받아서 잘못하면 윤회에 떨어져버려요.
완전한 자유가 보장이 되는 것은 미타정토 극락세계에 가야 됩니다.
보살이 되어야 되요. 보살이 되어야 되거든요.
그래서 우리 부처님께서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을 바랐다고요.
그래서 출가하신 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불과를 증한 후 많은 고통 중생을 건져야 되겠다는 것을 발원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현지사에서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관심사예요.
저기 힌두교나 선불교에서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라고 하지요. 진리를 깨닫는 것이어요.
그러나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어요.
과연 이 마음자리를 보는 것, 이것을 깨친다 해도 아라한 법위도 어려워요.
아라한 어려워요. 화두타파 해서 아라한 되려면 상당히 어려운 공부를 많이 해야 되요.
그런데 힌두교는 삼매 정도 들어가게 되면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단 말이에요.
이런 면에서 힌두교가 상당히 수승합니다.
그런데 영산불교에서는 아라한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아라한으로 만족 못해요.
아라한이 영원히 생사에서 해탈하는 것이 아니어요.
보살과를 얻어야 됩니다.
보살도 영원히 보장되는 것이 아니어요. 예외가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예를 들고 싶은데 덕스럽지 못해서 여기서 끝냅니다.
영원히 환희로 있으려면, 완전히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영원히 벗어나려면 붓다가 되어야 됩니다.
무량억종광으로 이루어진 그 불신(佛身)을 얻어야 되요.
대적정삼매를 통해서 무량억종광으로 이루어진 그 불신을 얻어야 붓다예요.
그때가 붓다입니다.
그 정도가 되어버리면 영원히 멸도할 수 없어요.
영원히 멸도할 수 없어요.
그건 완전무결한 보장이어요.
이렇게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는 것,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을 해요.
그것을 알아두시면 좋겠습니다.
출처:2014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