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남영동 대공분실을 다녀왔습니다.
모든 사진은 제가 직접 촬영했습니다.
잘 감상해주세요.

어둑어둑한 남영동 하늘.
그 아래 좁은 창문을 한
남영동 대공분실이 보입니다.

이 곳은 1976년,
20세기 한국 현대 건축을 대표했던 인물
김수근의 설계로 지어졌고,
수많은 민주투사들이 고문을 당해오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남영동 대공분실입니다.
위치는 여러 영화에서 소개되었듯이,
남영역 플랫폼에서도 보일 정도로
역과 가깝습니다.

2005년까지 보안분실로 사용되다가,
2018년까지 경찰청 인권센터로,
그리고 지금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운영 아래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6월 민주항쟁의 불씨를 당긴 곳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장소입니다.


이 잿빛색의 건물은
5층 창문이 매우 좁습니다.
(밑의 빨간색으로 칠한 부분 :
전시 때문에 칠해놓음)
이유는 바로 5층이
고문이 이뤄졌던 곳이기 때문.

현재 이 곳은
리모델링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잠금해제'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 곳은 메인 건물 옆에 위치한
식당 건물로,
고문을 끝마친 경찰들이
고된 몸을 끌고 와서
식사를 하던 곳입니다.
비상식적인 공간과
일상적인 공간의 공존.


영화 1987에서
하정우와 김윤석이 대치한 그 곳,
대공분실 뒷길입니다.

그 곳에 있던 소각로.
섬뜩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그런 용도로
쓰였던 게 아니길 바랍니다.


김수근의 건축적 역량이 드러난,
대공분실의 휴식 공간의 일부를
찍은 사진입니다.
더운 날씨에도 바람이 잘 통하도록
설계된 통로여서,
여기 상주하던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던 쉼터입니다.
몰론, 그 휴식이
어떤 악마들에게 주어졌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겠지만요.

과거와 현재의 조화.
그 당시에도 저 높이의 건물이 있었더라면,
이 건물의 악명이 좀 더 일찍 알려졌을텐데.

이 곳은 섬뜩한 비밀을 담은
대공분실의 뒷문입니다.
고문 대상자들은 '특별히'
정문이 아닌 이 곳까지
눈을 가린 채로 끌려갔습니다.

카메라 오류로 사진이 갈라졌는데,
오히려 더 느낌있어서 올려본 사진.
이 좁은 창문들은 바로
이 공간이 담은 추악함의 상징으로,
고문당하는 사람들이 투신하지 못하도록
극단적으로 좁게,
또한 고문 피해자들이 밖을 바라볼 수 없게끔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뒷문으로 끌려온 민주 투사들은
이런 나선형 계단을 따라
악마들이 기다리고 있는 5층으로 갑니다.
눈을 가린채 끌려가는 그들은
본인이 몇층에 가는지,
어디에 왔는지 전혀 모른채
이 계단에서 극한의 공포감을 가진 채
5층의 고문실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5층에 올라가면,
이 방이 있습니다.
바로 박종철 열사가 고문당했던 509호.

이 509호는 현재
유리로 보호되어 있어,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지켜볼수만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일터로.
또 다른 누군가에겐 지옥으로.

이 스위치는
고문실의 불을 켜는 용도로,
특이하게 고문실 밖 통로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의도는 아시겠지만,
당연히 이 스위치는
고문경찰만이 켤 수 있도록
이렇게 밖으로 나와있던 것입니다.
이 곳에 들어온 이상,
고문 당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방의 불조차 켤 수 없는,
아무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철창 밖의 풍경.
정면에 보이는 '청운학원'은
왠지 그 당시에도 있었을 법한
비쥬얼을 지니고 있네요.

방 안에 설치된 CCTV.
고문경찰들은 이 곳에서
그들과 그들이 따르는 이들이
마음대로 골라잡은 '범죄자'가 당하는 고문을
마음대로 지켜보고 있던 겁니다.

고문실마다 존재하던 방음벽.
근데 특이하게도
방음벽에 구멍이 뚫려있습니다.
왜지?
방음벽의 이 구멍을 뚫고
피해자들에게 들리는 소리는
옆방에서 고문받는
다른 사람들의 끔찍한 비명소리.
네.
고문 피해자들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인 것입니다.

몇몇 고문실에는
이렇게 전시를 해놨습니다.
이 곳에서 우리는
'빨갱이'라는 단어가
절대 가볍게 쓸 수 있는
농담이 아님을 깨우치게 만들죠.
어라, 뒤에 익숙한 분이 보이시는데,
'K리그는 구닥다리'라고 말하신
논란 메이커네요.

심지어 위의 문장은
아직도 심심찮게 통하는 논리이죠.
'빨갱이'라는 단어는 이렇게
트라우마처럼 한국 근대사와
현재를 동시에 관통하고 있던 겁니다.

고문 피해자들이 들은
고문 경찰들의 대화.
'점심 뭐 먹지?'
'아들놈이 체력장을 잘 치뤘나?'
'우리 딸은 시집을 언제쯤 가려나?'

그리고 그들이 당한 고문.
텍스트만으로도 전해지는
국가가 가한 폭력의 끔찍함.

오늘 이 시간,
대한민국은 처음으로
민주주의의 맛을 봅니다.
우리가 이제는 이 끔찍했던 공간을
웃으면서, 이렇게 카메라를 들면서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 수 있게 된
계기가 이뤄진 날이죠.

이 곳에 전시되어 있는
박종철 열사의 실제 옥중편지 글씨체.
공부 얘기, 친구 얘기,
여자 얘기, 가족 얘기.
그도 우리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지금의 평범한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을테죠.


이 건물에 대한 평으로
'천재가 악마를 위해 지은 건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안을 깊이 들여다보니,
저에게 그저 이 건물은
'악마도 한 수 배우고 갈 발상의 건물'
로 보이더군요.
가슴이 아팠던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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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악마를 위해 지은 건물, 남영동 대공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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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봤습니다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혀 몰랐던 내용이네여 사진이 많은걸 느끼게 하네요 감사합니당
저 또한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좋은사진과 좋은글을 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정독했어요 너무 감사해요😊
정독해주셔서 감사해요.
좋은글 잘봤습니다 제발 삭제하지 말아주세여
삭제할 일은 절대 없을겁니다😊
아침에 박종철열사 추모공간 지나왔는데 이 글을 보니 뭔가 멍해지네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박종철 열사님 편지 보니깐 울컥하네요 엄혹한 시대에 태어나서 부조리에 눈돌리지 않았을 뿐인데 많이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남영동에서 고문받고 힘들었을 수많은 민주주의 열사들에게 미안합니다 덕분에 투표라는 힘을 얻고 민주주의를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