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노래
최 병 창
갈데없는 신세라고
그동안 헛물만 켜고 살았지
그러다 보니
눈 자국만 퉁퉁 붉어졌잖아
보이는 것마다
제 몸을 움츠리며 제 몸을 밟고
벼랑 같은 음지를 건너왔다지만
체온을 가둬주는 햇살 앞에서는
구부러진 얼굴을
함부로 내보이지 않아야 했지
그리고는 한참 동안을 서성였지
부당하거나 옳지 않은 것은
쳐다보거나 부르지도 말랬는데
그대 몸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
오직 향일 성을 위해 목숨 다하면서
환한 빛살을 오래오래 간직하는 거
내심 속 끓인 날들을 몰라도 좋다 했지
꾹꾹 담아낸 떡잎하나에
앞뒤를 접어보는 일이 한나절
안온하다는 자유가
더는 아프거나 추워서는 안 된다고
뒤집힌 나들 목에는
꼭 화석 같은 무지개가
목을 빼고 기다리는지도 몰라
이젠 찬찬히 몸을 일으켜야지
사지 멀쩡한 불면을 절뚝이며
꿈쩍 않고 자리를 지켜낸
계단을 오르거나 내릴 필요는 없어
더는 툭하고
눈물 같은 설음을 떨굴 필요는 없지
실패보다 마음을 못 이기는 건
후회하는 일이라고
그려지지 않는 그림사이를
조심스럽게 건넌다지만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해서
모두가 다 환하게 보이는 건 아니지
해사하게 반기는
나무가 엿듣는 노래를 들어봐
그리고 싶은 그림보다
남은 몸을 다시 돋음 질 하는 거
아마도 손가락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거야
바꿀 수 없는 신세라고
내일 같은
속살을 두런두런 다듬고 있을 거야.
< 2023. 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