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이마트를 갔다. 회를 뜨고 남은 머리, 뼈 등등 모아서 포장해 놓은 참돔 서더리탕이 보였다. 무를 넣고 끓이면 우러나와 맛있다. 두 팩만 남아있길래 누가 가져갈까봐 얼른 다 담았다. 이거저것 필요한 걸 여러개씩 골라서 담으니 꽤 무거웠다. 집까지 거리는 멀지는 않지만, 근육이 굳고 힘이 없는 못된 병에 시달리는 나에겐 양쪽 도합 10키로그램 넘는 짐은 그렇지 않아도 힘든 나를 땅바닥에 쩍! 들러붙게 만들어 내 몸무게에 보태서 나를 땅바닥에다 짓눌렀다. 그렇게 천근만근 십리길처럼 띠뚱띠뚱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뭘 그렇게 무겁게 들고 가시오?"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그거 나한테 주시오!"하는 것이었다. 돌아보니 연세가 지긋한 분이었다. 종량제 봉투에 담겨 미어터지려는 것을 자기한테 달라는 것이었다. 됐다고 극구 사양을 해도 빼앗다시피 가져간다. 그것도 모자라 나머지도 달라며 빼앗아 간다. 나는 어느새 그분 말 몇 마디에 설득당해 못 이기는 척, 나의 짐을 그분에게 넘기고 말았다.
그리고 염치없게도 맨몸으로 걸었다. 집까지 거리는 100미터 남짓이지만 도로를 건너고 돌아서 가는 길은 파킨슨에 시달리는 나로선 쉬운 일은 아니다. 정말 고마웠다. 그러나 실은 그 따듯한 마음이 더 고마웠다. 염치도 없이 뒤따라 걸으며 두러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물건을 들어주고 싶을 정도로 안쓰럽게 보인 이유가 내가 파킨슨병 때문이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그분은 같은 아파트 옆에 동에 사는 분인데 연세는 73세이고 그분의 건강은 폐가 말썽이란다. 혹시 암인가 하여 회복이 가능한지요? 여쭤보니 폐가 섬유화가 되어가는 중이란다. 그래서 담배를 끊어야 하는데 끊을 수가 없단다. 그것만 빼면 건강 나이는 자기 나이보다 훨씬 적은 60대 초반이라고 하신다
이야길 나누다 보니 드디어 우리 아파트 ***동 경비실 앞에 도착했다. 나는 종량제 봉투에 담긴 걸 의자에 얹어 달라고 하면서 그분에게 "잠깐만 기다려주세요."라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봉투를 뒤적여 참돔 서더리탕을 꺼내어 그분에게 드리고 무를 넣고 끓여 드세요.라고 하였다. 다행히 그분이 받아주시는 것 같았다. 그분에게 "건강이 최고입니다. 속 끓여봤자 다 소용없습니다. 나이가 들어선 건강한 것이 성공한 것이라고 합니다."라고 담배를 끊으시라는 뜻으로 말씀 드렸다. 그분은 참돔 서더리를 보시더니 이걸 가져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망설이셨다. 나는 또 있으니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우린 생면부지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위로했다. 건강하시라고 그분을 보내드렸다. 그런데 돌아서서 가던 그분이 갑자기 획~ 되돌아 오셨다. 그러더니 "나한테 신발이 크니 맞으면 신으시오."하며 한쪽 신발을 훌러덩 벗으면서 나에게 신어보라고 하신다. 나는 무슨 심보인지 아마 실은 탐욕이었을 것이다. 구두를 신어보고 맞는다고 하였다.그분이 "그럼 신으시오. 내가 실은 오피스텔 경비인데 요즘 젊은 사람은 그렇게 새것을 버린다오." 그러시더니 그냥 맨발로 땅바닥에 서시는 것이었다. 절대로 안된다는 나를 향해 자기에겐 안 맞아 내일이면 버릴거라는 것이었다. 난 그분에게 그래도 맨발로 가시면 안된다고 애원하다시피 정 그러시면 내가 댁까지 같이 가겠다고 했지만 그분은 가깝다면서 이 추운 겨울 날, 홀연히 구두를 나한테 벗어주고 양말만 신은 발로 가셨다.
그 구두를 들고 집으로 들어와 밝은 곳에서 보니 구두 뒤꿈치 쪽이 신은 흔적없이 날이 그대로 서있고 내피는 실오라기도 그대로 바닥창도 멀쩡하니 반짝반짝 빛나는 새거였다.
그리고 한 시간이나 흘렀을때였다... 나는 그분이 어두운 밤, 가시다가 날카로운 것에 발이 다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속상해지기 시작하더니 자꾸 눈물이 흐르며 목이 메어왔다.
그때 나는 신발이 맞지 않는다고 해야 했었던 것이었다. 자신에게 성실한 사람만이 타인에게도 성실할 수 있다는 나의 이야긴 거짓이었어, 나는 요즘 '신'이 되고자 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해댔었어. 신은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만 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어, 이 세상에 착한 사람들이 불행하게 끝을 맺는 것을 숱하게 봤었기 때문이었어, 나의 곁을 떠나간 그 착한 사람들이 늘 가슴에 남아 밟히기 때문이었어. 이 세상엔 없는 그들이 나를 기다리는 것으로 생각을 해 도약하려고 하지만, 나는 아직 멀었어...
첫댓글 사랑방에 안 올리면 허전해서 조금 더 다듬어서 올립니다. 타카페서 보셨더라도 이해해 주셔요. ㅎ
글을 읽는 내내 공감하며
읽어 내려가다가..
목젖에 울컥하며 맺히는데,
글 말미에 님의
독백같은 고백이랄까, 고백 같은 독백이랄까..
에서 결국 참아내어지질 못하고..
저는, 사랑방 붙박이 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죠?
이곳아니면 글을 볼수가..)
자꾸 나를 동정하는 글 느낌 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 들지 않아야 하는데 저 아는 횐우가 많이 안 좋아져서 더 심란하게 씌여졌는가 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장미화관님!
오해를 불러 일으켰군요.
제가 울컥~하다가 끝내 뜨거운것을 삼켜야 했던 부분은..
[자신에게 성실한 사람만이 타인에게도 성실할 수 있다는 나의 이야긴 거짓이었어, 나는 요즘 '신'이 되고자 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해댔었어. 신은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만 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어, 이 세상에 착한 사람들이 불행하게 끝을 맺는 것을 숱하게 봤었기 때문이었어, 나의 곁을 떠나간 그 착한 사람들이 늘 가슴에 남아 밟히기 때문이었어. 이 세상엔 없는 그들이 나를 기다리는 것으로 생각을 해 도약
도약하려고 하지만, 나는 아직 멀었어...]
라고 쓴 글 에서 였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했을 부분을 이렇게 깊은 성찰을 할수 있는 분이구나..하고서.
처음 울컥 하게 했던 부분은 감동그자체인 mk1000님 특유의 필치로 쓰신
'양말만 신은 맨발의 천사님' 모습에서 였구요.
왜..
mk1000님을 동정하는 느낌을 받게 해드렸는지..
그 뜻이 아니고요. 내가 나를 동정하는 거 같다는 뜻입니다.
그 이야기가 제가 아는 환우가 더 많이 아파졌는데도 아무것도 못해주고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부분하고 이야기가 닿아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분들이 불행한 결말을 짓는 경우도 봤더랬죠. 예전 y대 나온 동생뻘 되는 사람 학원 강사였는데 무슨 일인지 알콜 중독이 빠졌어요 결국은 이혼 당했죠 그러더니 지하실 방으로 전락 했어요 사람이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어요. 거기서도 그치지 않고 더 추락해서 나중에는 밥을 아예 안 먹었어요 그리고 막걸리만 먹었어요 저는 도와줄 방법이 없었어요 연락이 안 돼서 한참만
@mk1000 갔더니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단층에 사는 사람이 나오길래 아래 지하실 방 사는 사람 어디갔냐고 했더니 그 사람이 자꾸 쓰러져서 119에 신고를 했더니 그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이 치료를 못 받으니 연락을 하지 말라고 하더랍니다. 가족도 버린 그 사람을 어쩔 수 없이 구청에 신고를 해서 시설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얼마 전에 그 사람이 손을 몹시 떠는 걸 봤었어요 어느 날 자기 동창이 의사인데 찾아갔더니 기계에 넣더래요.
그리고 결과가 나왔다고 하면서 나한테 그러더라고요. 그 큰 눈이 휘둥그레 가지고 아무개님 나 무서운병 걸렸어요 파킨슨이래요. 그러더라고요 그때는 파킨슨이 뭔지 몰랐죠.
@mk1000 그때도 아무것도 못 해 주고 그 친구를 보냈어요.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술 먹지 말고 치료를 받으라 하니까 나보고 그러더라고요 "ㅇㅇㅇ님 돈이 있어야 치료를 받죠?" 그게 가슴에 맺혔어요. 아무튼 저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다 챙기지 못 합니다 그렇게 해서 보낸 사람들이 있어요. 요즘에도 생겼어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눈에 밟히는 환우인데 살고 싶지 않다고 자꾸 죽는다는 거예요. 휴...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 너무 착한데 아무것도 못 해줍니다.
오해하지 않습니다. 이해하실 거라는 생각이 앞서서 댓글이 그렇게 씌여진 것입니다. 장미화관님이 느끼시는 정서 많은 부분을 이미 공유하니 염려 마세요.
@mk1000 별 이야길 다하며 댓글이 장황하니 길어졌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장미화과님!
@mk1000 에구..하여간 밀크천님속은
댓글까지도 지하1000m네요 ㅎ
기이이~퍼요~~🤭
@파주댁 그러시는 파주댁님은 하산하셔야 겠어요. 근데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 떠날 파주댁님까지도 미리 대학병원에 맞기셨다면서요...
제가 다른 건 다 시원치 않은데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하나는 기가 막히게 척 보면 알아낸답니다.
저는 말로 떡을 하는 사람이어요~~
읽어 주시고 공감해 수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꿈 꾸세요~~^^ 고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