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스타니슬라오
스타니슬라오 성인은 신자 베드로를 무덤에서 깨어나게 한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진=굿뉴스
스타니슬라오 성인은 폴란드 크라쿠프 교외에 있는 슈체파노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신심 깊은 부모로부터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주교가 된 뒤에도 열정적으로 설교하고 엄격한 고행을 실천했고 유산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당시 폴란드를 다스리던 볼레수아프 2세 왕은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폭력과 범죄에 빠져들었고, 타락한 행동을 많이 보였습니다. 누구도 왕에게 직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타니슬라오는 왕의 잔학성과 부도덕성을 용감하게 비판했습니다. 왕은 거짓으로 회개한 척 하기도 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아름답다고 소문난 한 귀족 부인을 궁으로 납치했습니다. 스타니슬라오는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공식적으로 왕을 파문하기로 했습니다.
분노가 치민 왕은 1079년 부하들을 대동해 크라쿠프의 성 미카엘 대성당에 들이닥쳐 미사를 봉헌하던 스타니슬라오를 끌어내 살해하였습니다. 화가 풀리지 않은 왕은 시신을 잔인하게 훼손하고 들판에 내던졌습니다. 그러자 네 마리의 독수리가 나타나 스타니슬라오의 시신을 지켰고, 사제들과 신자들은 그의 시신을 무사히 수습하였습니다. 이후 1088년 람베르투스 3세 주교는 스타니슬라오의 유해를 성 미카엘 성당에 안치했습니다. 왕은 스타니슬라오를 살해한 일로 성 그레고리오 7세 교황에 의해 파문되었고, 전국적인 분노가 이어져 폐위된 후 헝가리로 피신했습니다. 결국 그는 오시아크에 있는 베네딕도회에서 여생을 참회하며 살다 교황의 사면을 받았다고 합니다. 1245년 스타니슬라오의 유해는 크라쿠프의 바벨 대성당으로 옮겨졌고, 13세기 초부터 시성 절차가 시작되어 1253년 인노첸시오 4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베드로라는 신자를 소생시키는 모습으로 종종 표현되는데, 이는 그와 관련한 기적을 배경으로 합니다. 스타니슬라오는 계약서 없이 두 명의 증인만 배석한 채 베드로라는 신자에게 토지를 매입한 적이 있었습니다. 왕은 베드로의 자손들을 부추겨 토지 반환 소송을 제기하도록 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스타니슬라오는 재판관에게 사흘의 말미를 주면 죽은 베드로를 법정에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스타니슬라오는 베드로의 무덤을 찾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일어날 것을 명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죽음에서 깨어나 법정에서 정상적으로 땅을 팔았음을 증언하고 자손들을 꾸짖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마친 후에는 다시 무덤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스타니슬라오는 최초의 폴란드 출신 성인입니다. 이에 폴란드의 수호성인으로도 공경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탄생 비화
1948년 12월 12일, 대한민국은 유엔에서 찬성48 반대6 기권1로 탄생하였습니다. 나라가 건국된 후에는 유엔(UN)에서 인준을 받아야만 전 세계에 ''출생신고''를 하게 됩니다.
1948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건국을 선포합니다. 북한은 이듬해 9월 9일에 건국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북한은 유엔(UN)에 인준을 받고자 팀을 꾸려서 파리로 향합니다. 대한민국은 그 당시 국무총리 장면 외 4명이 유엔(UN) 인준을 받기 위해 파리에 도착합니다.
1948년 12월 12일까지가 마지막 인준이 가능한 날이었습니다. 11일 첫날부터 공산국가들의 ''의사진행 방해 작전''이 시작됩니다. ''미군의 앞잡이 이승만, 독재자 이승만'' 등등 2시간씩 소련, 헝가리, 동독, 체코 순으로 시간 때우기 작전에 11일 날은 시간이 다 지나갔습니다. 다음날 12일에 인준을 못 받으면 우리나라는 출생신고를 못하게 되는 절박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장면 총리는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함께간 팀원들과 함께 교회를 찾아갑니다. 팀원 중 한 사람은 무릎관절염이 심각하여 매우 고통스런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밤을 새워 4명과 함께 눈물로 기도합니다.
한국에서는 이승만 대통령께서 전국의 교회에 기도를 부탁하고 대통령께서도 밤세워 기도합니다.
다음날 12일이 되어서 또 다시 공산국가들의 ''의사진행 방해''가 시작됩니다. 소련, 헝가리, 동독, 체코 순으로 ''의사진행 방해''가 진행 되었습니다. 소련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또 다시 방해공작을 시작합니다. ''코리아 이승만은 미국 앞잡이고 독재자고...''라고 하다가 갑자기 목에 성대결절이 와서 숨을 못쉬고 쓰러져서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돌발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2시간 동안 짜여진 각본대로 ''의사진행 방해''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느긋하게 다른 데 가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헝가리 대표는 갑자기 소련 대표가 병원에 실려간 것을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사회자가 ''코리아 건국 인준에 관하여 다시 발언이 없습니까?'' 라고 물었으나 커피를 마시고 있던 헝가리 대표는 결국 깜깜 무소식으로 현장에 있지 않았음으로 어떤 대답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가, 부를 결정하는 표결로 진행되어 찬성 48 반대 6 기권 1로 우리나라의 출생신고가 유엔(UN)에서 극적으로 인준을 받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북한은 정반대로 반대 48 찬성 6 기권 1로 유엔(UN) 인준에 실패합니다. 그 후 2년 6개월 만에 북한의 공산군이 남침하였고 대한민국은 유엔이 인정한 나라이 때문에 유엔연합군이 참전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참으로 기적적으로 이 나라 대한민국이 세워졌습니다. 대한민국의 탄생은 "눈물의 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6.25사변의 위험은 유엔군의 참전으로 극복할 수 있었음을 우리는 한시라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유엔(UN)인준을 못 받은 북한은 선전포고도 없이 북괴군으로 남침하게 하여 6.25사변을 일으켰으며 동족 간에 엄청난 피를 흘리게 했던 사실도 결코 잊지말아야 합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리며 자유 대한민국을 보존하고 발전시켜서 후손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주어야 하겠다는 마음을 굳게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렇듯 고귀하게 극적으로 대한민국이 탄생하였기에 70여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살아 숨쉬며 지구촌의 평화를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