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559387.html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16일 경남동지회 창립총회…항쟁참가 증명해야 참여가능
박정희 유신정권을 무너뜨렸던 1979년 부마민주항쟁의 주역들이 다시 모인다.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부마민주항쟁경남동지회 창립총회를 오는 16일 저녁 7시30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불로식당에서 연다고 6일 밝혔다.동지회 회원은 부마민주항쟁에 참가했던 사람이면 누구나 가능하지만, 구속기록·증인 등을 통해 항쟁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창립준비위원장은 79년 당시 경남대 국어교육학과 3학년생으로 항쟁에 참가했다 붙잡혀 53일간 구금상태에서 성고문 등 고통을 당한 최갑순(56)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회장이 맡았다. 동지회는 창립총회에서 규약을 확정하고, 부마항쟁특별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는 등 부마민주항쟁의 정신을 이어가는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기념사업회는 또 10일 지역 청소년들에게 부마민주항쟁의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청소년 민주올레’를 열기로 했다. 참가자들은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경남대 부마시원석, 오동동, 북마산파출소 등 부마민주항쟁 관련지와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3·15기념탑 등 3·15의거 관련지를 답사하며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된다.최갑순 위원장은 “마산의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그 자체가 동지회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념사업회 외에 별도의 동지회 조직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며 “하지만 최근 정체불명의 단체가 동지회라는 이름으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지지선언을 하는 등 정치활동을 벌여, 마산에서만큼은 이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정통성을 갖춘 동지회를 조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16일 부산, 이틀 뒤인 18일 경남 마산에서 일어났다. 정부는 18일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20일 마산에 위수령을 발동하며 군부대를 투입해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3명(비공식 집계)이 숨지고, 1563명이 연행돼, 87명이 군법회의에 넘겨졌고, 20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055)22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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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 항쟁
1979년 10월 부산 및 마산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져, 부산과 마산시의 첫 글자를 따 '부마항쟁'이라고 일컬어진다. 당시 야당인 신민당 김영삼 총재의 의원직 박탈 후 부산에서 5,000여 명의 학생들이 유신체제 반대 시위에 나섰고 시민들이 합세,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진 사건이다. 10월 16일 부산에서 시작된 시위는 18일과 19일에는 마산 및 창원 지역으로 시위가 확산됐다. 이에 정부는 10월 18일 0시 부산 지역에 비상명령을 선포하고 1,058명을 연행, 66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하였으며, 20일 정오 마산 및 창원 일원에 위수령(衛戍令)을 발동하고 군을 출동시켜 505명을 연행하고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하였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010년 7월 12일, '1979년 10월 부마항쟁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과 시민들이 군인과 경찰의 진압ㆍ수사 과정에서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 등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대해 부마항쟁 과정의 피해자를 확인하고 명예회복 및 피해 구제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부마 민주화 항쟁 (*부마 사태)
➀ 1979년 5월 야당 대표로 김영삼이 선출되었다.
당시 김영삼은 그 어떤 야당 정치인보다 ‘강경하게 박정희를 비판’하는 정치인이었다.
→ 이에 박정희의 지시를 받은 중앙정보부는
김영삼이 야당 대표로 선출되지 못하도록 여러 공작을 시도하였으나 실패
② 이러던 중 1979년 9월 16일 <뉴욕타임스>에 ‘김영삼 인터뷰’가 실렸는데 여기에는
“미국이 한국 경제를 압박해서 박정희의 민주화 탄압을 중지해야 할 것‘
이란 의견이 담겨져 있었다.
③ 이에 박정희는 ‘김영삼이 대한민국을 모독’했다며
김영삼의 국회의원 자격을 박탈하고 야당 대표자격을 박탈하였다.
④ 그러나 김영삼이 제명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김영삼의 정치적 근거지였던 부산과 마산에서 대규모의 반유신, 반박정희 운동이 전개되었다.
→ 시민들과 학생들은 ‘민주선언문’을 작성하여 베포하고
파출소·경찰서·도청·세무서·방송국 등을 파괴
‘박정희는 정치 탄압을 중단하라!’, ‘ 유신 독재 체제를 타도하자!’
⑤ 부마 민주화 항쟁이 커지자 박정희는 부산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시내 곳곳에 배치하고
시위에 가담한 학생과 시민들을 체포하여 군사 재판에 넘기는 등 강경하게 대처하였다.
광주민주화 운동도 있듯이 부산`마산에는 박정희 유신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이 있었음.
사람들은 왜 꼭 피를 봐야 기억하는 건지...참..
첫댓글 ㅠㅠ...ㅠㅠㅠㅠㅠㅠ멋잇다.. 진짜 좀 ㅠㅠㅠㅠㅠㅠ 나도 광주여시라.. 에혀ㅠ
와ㅠㅠㅠㅠ나 제목 보고 헐??부마항쟁 주역들이 박근혜 지지한다는 건줄알고 식겁하고 들어왔더니 아니구나ㅠㅠㅠ 정말 멋지시다ㅜㅜㅜ
삭제된 댓글 입니다.
성고문은 전두환정권에도 있었다는것도무섭다ㅠㅠㅠㅠ
멋있다진짜 그리고 대우받고 존경받아야하는 분들이 치이고 기억에서 사라지고 심지어 일베새끼들때매 욕먹는게 치가떨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