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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의연은 정여립이 죽었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헛소문일 것이다. 누군가 대동계를 흩어놓기 위해 헛소문을 퍼트린 것이다. 그는 당장 정여립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전주로 달려가면 정여립이 ‘아니, 스님도 그런 헛소문에 속으신 게요?’ 하고 웃음을 지어줄 것만 같았다. … 의연이 대동계 안에서도 몇몇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해도 정여립은 그저 웃기만 했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고, 그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이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서평
《소설 동의보감》의 허준, 《태양인 이제마》의 이제마에 이어
드디어 소설 속 주인공으로 모습을 드러낸 조선 3대 명의 사암도인,
그는 왜 이름 없는 떠돌이 의원의 삶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가!
“굳이 저를 기억해주시겠다면, 침이나 놓고 다니는 떠돌이일 뿐이니
그저 침객(針客)이라 불러주시면 그것으로 족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5KGUAd4V24
<침구요결>이라는 책 한 권만을 남기고 흔적 없이 사라져간
미스터리의 명의, 사암도인의 삶을 재구성하다
사암오행침이라는 독특한 침술을 창안해낸 전대미문의 의학자였음에도 그 행적은 물론이고 본명과 생몰년도조차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사암도인. 지금 우리가 그의 삶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침구요결>(鍼灸要訣)이라는 의서(醫書)에 적힌 ‘사암도인’이라는 이름뿐이다. 아마도 그는 가난한 백성들의 틈바구니에서, ‘의술(醫術)은 곧 인술(仁術)’이라는 참된 의원의 도리를 온몸으로 실천하다가 홀연히 세상을 등졌던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사암이라는 법명과 함께 전해지는 ‘도인’이라는 호칭이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
제 몸을 던져 생명을 구하는 것은 곧 어머니의 마음이며,
이것이야말로 바로 세상을 구원할 대동의 씨앗이다
<침구요결>의 행간에서 생명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 불교(佛敎)과 도가(道家)를 넘나드는 드높은 정신적 사유를 읽어낸 저자는 소설 속의 사암도인을 ‘대동세상’을 꿈꾸다 역모로 몰려 참수당한 정여립의 외손자로 설정하였다. 비록 제 신분을 숨기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으나 가족의 비극을 통해 대동세상의 꿈을 물려받은 사암은 어린 시절 임진란을 겪으며 삶의 극한으로 몰리는 백성들의 고통을 두 눈으로 목격한다. 그리고 인연에 따라 선승(禪僧) 사명당과 지리산 도인 청운거사의 제자가 되어 생명의 이치에 대해 눈을 뜨게 된 후 진정한 의술, 곧 인술(仁術)로써 세상을 바꾸어보려 당대의 문제아 허균과 함께 한양으로 향한다.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생명 앞에 하심(下心)하여 더불어 사는 지혜를 실천한
사암도인의 삶이야말로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오늘날 우리의 귀감이자 희망이다
우리는 물질만능주의와 출세지상주의가 극에 달한, 즉 더불어 사는 지혜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의술이 이미 상술로 전락해버린 모습이야말로 바로 그 단적인 예이다. 물론 조선시대도 다를 바 없이, 입신양명과 출세에 제 삶의 초점을 맞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암도인은 그런 이들의 삶을 조롱이나 하듯 자신의 본명조차 후세에 전하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 사암은 밝은 눈으로 그 의술의 경지를 알아본 허준의 추천으로 내의원과 왕실을 오가며 광해군의 총애를 받게 되고, 명나라로의 사신단에 합류하여 명황후를 고침으로써 중국의학과는 결을 달리하는 조선의학의 명예를 드높이고, 훗날 인조가 될 능양군의 생명까지 구해주지만, 결국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혁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굶주리고 병든 백성들의 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진정한 대동세상의 참된 의미를 깨닫는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란 한두 사람의 마음이 바뀐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생명존중과 대동세상의 씨앗이 심어져 꽃을 피울 때 실현될 수 있음을. 그리하여 사암은 이름 없는 떠돌이 의원, 곧 침객(針客)으로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박광수는 그동안 문학계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사암도인의 삶을 몇백 년 뒷사람인 우리들 앞에 되살려냈다. 작가란 이렇게 숨겨져 왔던 일이나 잊혀진 사람들의 아름다움, 또는 위대한 정신을 복원하는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 또한 사암도인이 살았던 왕권 시대 못지않게 후줄근한 도덕성에 부조리가 덕지덕지 붙어 있을 뿐이니 말이다.
― 정현기, 문학평론가, 前 연세대학교 국문학교 교수
침객은 글줄이나 쓴다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그런 글이 아니다. 작가적 상상력과 창의성만으로 쓸 수 있는 그러한 글 또한 아니다. 환자이고 의사라야 겨우 공감이나마 가능한 글이다. 작가가 질기고 매운 손끝과 바름과 옳음을 헤아리는 갸륵한 마음으로 쓴 사암도인의 삶, 시대의 부조리를 아파하고 인간의 비열함을 고치려는 그의 마음은 미륵과 지장보살의 현현이다.
― 김의규, 화가, 미니픽션 작가모임 초대회장
나는 허준과 이제마, 그리고 사암도인을 3대 의성醫聖으로 여기며 평생 추앙해왔다. 이제 오행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박광수 씨가 상상의 나래를 펴서 사암도인의 인술보시행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한다니 더없이 기쁘다. 아름다운 민중사랑을 바탕으로 삼았던 사암도인의 삶과 의술을 일으켜 세우는 작업은 한의학계의 숙원사업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 금오 김홍경, 한의학자, 신농백초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