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밟아 죽인 어머니!
모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한 기사가 실렸다.
‘갓난아기를 친모가 발로 밟아 살해!’
전형적인 어그로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호기심에 기사를 읽었다. 대략적인 기사 내용은 이성을 상실한 어머니가 자신의 갓난아기를 발로 짓밟아 죽였다는 내용이었다. 신문에는 모자이크를 한 여성의 얼굴과 발에 밟혀 끔찍하게 살해된 아기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이 기사를 접한 사람들은 분노했지만 희한하게도 법원은 이 여인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라는 의외의 가벼운 형벌을 내렸다.
이에 분개한 시민들은 여성에 대한 신상털이에 나섰고 여인의 정체는 만천하에 폭로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찾아가 돌을 던지고 침을 뱉고 그녀의 사진과 포스터를 방방곡곡에 붙여 그녀를 단죄하고자 했다.
그 이후 여인의 삶은 처참했다. 모욕과 욕설, 심지어 밥 한 끼 얻어먹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기를 밟아 죽였다는 여인은 죄책감으로 인해 그 모든 형벌을 감수하며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끝내 눈 내리는 어느 겨울 길거리에서 선 채로 얼어 죽었다.
1945년 일본의 패망에 따라 대한민국은 민족의 염원이던 독립을 이루었다. 그리고 일본 관동군 731 부대의 만행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마루타로 잘 알려진 생체실험부대,
산 사람의 팔을 냉동실에 집어넣어 얼게 하고 괴사한 피부로 인한 사망원인을 알아보고.... 성기를 묶어 소변을 못 보게 한 후 얼마나 지나야 죽는지 실험하는.... 끔찍한 고문과 살인이 난무한…….
그 와중에 모성애가 얼마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지에 대한 실험 하나가 소개되었다.
좁은 방안에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를 아기와 함께 가두고 방바닥을 뜨겁게 한다. 방바닥의 열기가 점점 올라가고…….
어머니들은 점점 이성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견딜 수 없는 뜨거움에 결국 아기를 방바닥에 내팽개치고 자신이 살고자 아기의 몸뚱이를 밟고 올라선다.
아기는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끝내 사망한다.
모성애가 초능력을 발휘할거라는 사실은 순간적으로 가능할진 몰라도 지속적인 고통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보고서의 내용은 계속되고 있다.
실험과정을 생략하고 생모가 아기를 밟아 죽였다는 사회의 반응은 어떨까? 또한 이러한 실험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관동군에 대한 비난은 어떻게 면할 것인가?
간단하다. 어머니를 잔인한 살인자로 만들면 그만이다.
과정은 쏙 빼버리고 결과만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녀를 스스로 단죄할 것이다.
이것이 사건의 전말이었다.
사건의 내막은 이러했는데 그녀를 단죄하고자 돌을 던지는데 앞장섰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안타깝게도 진실이 밝혀진 건 50년 후의 일이었고 당시 그녀를 단죄하는데 앞장섰던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었다. 후세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관심조차 없었다.
나는 여기서 묻고 싶다. 누가 그녀를 죽였을까?
나라면 그 상황에서 아기를 밟고 올라서지 않았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나 또한 어쩌면 아기 엄마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내막을 안다면 누가 아기 엄마를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그래도 아기랑 같이 죽어야지 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직접 체험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군대 가스실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온 사람들이 허다하다.
나는 정치를 멀리하려고 무던히도 애쓰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번 조국 사건을 보면서 사회와 권력과 언론이 일가족을 어떻게 파멸 시키는지 똑똑히 보았다.
검찰이 조국을 파고 비리를 파헤쳐 그의 비리가 그러했다면 나는 검찰 편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비겁했다. 법무부 장관 당사자인 조국이 아니라 조국 가족의 허물을 벗기는데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내용이 정말 범죄인지 나는 의문이 든다.
아내와 투자 계획을 세우면서 삼성전자 주식을 사기로 했다. 그러면서 얼마가 오를 거라는 둥, 혹은 어떨 거냐는 등의 얘기를 나누었고 전화 통화도 했다. 그것이 죄란다.
딸이 이번에 대학교에서 조별과제 최우수상을 받았고 이 작품은 전국대학 연맹 금상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는 전교 꼴찌임에도 불구하고 3년간 케이티엔지 장학금 1200만원을 받았다. 전교 꼴찌인데 어떻게 장학금을 받을 수 있지요? 라고 묻는 다면 충분히 대답 가능하다. 그러나 검찰은 그딴 설명은 필요 없고 무조건 비리란다. 어이가 없었다. 언론은 오로지 검찰의 편에 서서 조국 가족 죽이기에만 몰두했다. 검찰과 언론에 휩쓸린 사회는 조국 죽이기에 힘을 보탰다. 안타까운 일이다. 공수처를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위에 인용한 내용과 조국 죽이기가 뭐가 다를까?
딸은 경복전문대 항공서비스학과에서 2년간 과 수석을 했다. 처음 일등을 받아오던 날 자랑삼아 아는 시인에게 전화를 했다. 그 시인님께서 농담 삼아 하시는 말씀이
“학과장이나 이사님들 하고 아는 관계 아니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뉴스 못 봤어? 일등하면 큰일 나, 상도 함부로 받으면 감옥 가는 세상이라니까.”
선배 시인의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지난 8월에 운명이라는 장편 소설을 세상에 처음 내 놓았다.
장편 소설 운명은 이러한 사회 배경을 그대로 반영한 작품이다. 어찌 보면 무식하기도 하고 극단적인 상황전개로 몰아가는 저돌적인 전개형태도 이런 사회형태를 고발하고자 함이기도 했다.
주인공 은영은 아버지의 진실한 모습은 외면하고 소문으로 아버지를 잔인한 살인자로 몰아붙인다. 잘못됨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이러한 전개 구조는 2부에까지 끊임없이 이어진다. 결과만 놓고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는 희생자 김용호 단장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글을 써놓고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극단적인 상황 설정과 전개, 잔인한 장면 묘사... 책을 낼까말까 3년을 망설이다 딸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세상에 내어놓았다.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면서 딸에게 정말 많이 물었다.
“너무 극단적이지 않니? 너무 잔인하지 않니?”
딸의 대답은 언제나 한결 같았다.
“아빠, 훨씬 잔인한 거도 많아. 이 소설은 더 극단적이고 더 잔인해야 해, 그래야 주제가 살어.”
“야 그래도 은영이 옷 홀딱 벗기고 침 뱉고 하는 거 좀 심하지 않니?”
“응 아빠 나도 처음엔 좀 심하다 했는데 아빠한테 침 뱉은 거랑 연관 시키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블라인드 칠까?”
“노노 블라인드 절대 노노... 솔직히 지금도 약해... 이 소설이 어쩌고 저쩌고...”
결국 딸의 의견을 받아들여 초안에서 문법과 문장을 제외한 어떠한 내용도 수정하지 않았다.
나는 소설을 쓰면서 이야기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감출뿐이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굳이 힌트를 주자면 운명이라는 소설은 위에 언급한 사회와 언론과 권력이 가지는 인물 죽이기 정도일 것이다. 그 외에도 몇 가지 하고 싶은 말이 서너 가지 정도가 있지만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려 한다.
내가 세상에 발표한 소설에 대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한 독자는 아직까지는 찾지 못했다. 다만 일부분만 꿰뚫어 보는 독자는 몇 분 계셨다.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의 숨은 의도를 찾아보는 것 또한 독서의 즐거움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이 글을 마치기로 한다.
2019년 12월 25일 소설가 김 태영 씀
첫댓글 독자는 괴로워 ㅠ
ㅋㅋ 쓰는 사람도 괴롭답니다
생각하게 하는 글 잘 읽었어요
하지만 전 아직도 그 책을 읽어보지 못해서 ㅠㅠ
보여주는 것을 보고
보고 싶은대로 보며 나름의 생각하에 판단을 하게 되는데
두 사건의 연관성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자기 의도와 관계없이 생과사의 극단적인 길에서 벌어진 일과
자기 주도하에 행하고 이루이진 일이 어떻게 비유될수 있는지
어차피 진실은 세월이 흘러야
알지 않을까요?
태영님은 얼마나 진실에 닿아 있다고 자신 하세요?
자기 생각을 표현 할 수는 있지만
너무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비유는 오히려 반감을 일으키지 않을까 제 생각도 조심스럽지만 적어 봅니다
뭐 어차피 이것도 제 생각일 뿐입니다.
정치색을 띤 글이라 논쟁의 소지가 많으므로 묵선님의 의견만 참조하겠습니다.
다만 저 조국지지자 아니라는건만 말씀드립니다
조국을 포함한 정치인들의 행태가 심히 눈엣가시처럼 보이는 요즘이라 몇자 적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