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118) - 기후변화와 폭염대비에 만전을
절기상 더위가 가신다는 처서(22일)가 코앞인데도 살인적인 무더위가 한 달 여 지속되고 있다. 어제 기준 서울은 30일째, 부산은 25일째, 제주는 35일째 열대야(밤 최저기온 25도 이상)가 이어지는 등 모두 기상관측 사상 최장 기록이란다. 산책길에 살핀 청주의 아침기온은 30도, 오늘도 무척 덥겠다. 올여름 무더위의 특징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 대기 중 다량의 수증기가 온실효과를 일으키면서 낮 열기가 밤에도 식지 않는다고.
연일 극심한 폭염과 열대야 속에 9호 태풍 종다리가 북상하고 있지만 더위를 식히기는 커녕 찜통 더위를 부추길 것으로 예상된다.
19일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태풍 종다리는 이날 오전 3시 현재 일본 오키나와 남서쪽 약 360㎞ 부근 해상에서 시속 10㎞의 느린 속도로 서남서진하고 있다.
폭염 피해는 취약계층에 집중된다. 뙤약볕에서 일하는 이들이나 건설 현장 노동자들은 무방비로 폭염과 맞서야 한다. 산책길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청소아주머니에게 무더위에 수고하신다고 건네는 인사에 진심이 담긴다. 한 언론은 오늘 사설에서 물가와 전쟁 중인 중앙은행에 폭염과 가뭄, 홍수 등 이상기후라는 강력한 복병이 등장했다며 이상기후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위해서는 여러 영역을 아우르는 단계별 종합 대응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기상청은 연내 발간을 목표로 폭염백서 작성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늦었지만 의미 있는 일, 당국과 시민 모두 일상이 된 극한 폭염대비에 만전을 기하여야 하겠다.
* 때에 맞춰 접한 전문가의 진단, ‘예측불허의 기후변화’라는 칼럼(요약)을 통하여 우리 앞에 닥친 기후변화의 실상을 살펴보자.
‘지겹도록 끝이 안 보이는 초유의 무더위에 시달리고 있는 독자들은 지구온난화라는 말이 실감 나게 들릴 것이다. 이 추세로 나간다면 한국은 이제 열대지방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러한 더위는 올해 우리나라뿐이 아니다. 호주·멕시코·미국·인도·일본 등 세계각지에서 기록적 폭염을 겪었으며, 2월에 서아프리카에서는 기온이 섭씨 50도까지 올라가서 사람들이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 편 북극해에 위치한 그린란드의 빙하가 기후변화 영향으로 시간당 평균 3000만t이나 사라지고 있다.
빙하에서 떨어져나온 그린란드 일루리사트 앞바다의 빙산. 중앙포토
많은 지역이 이렇게 극심한 더위에 시달리고 있지만,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영국은 올해 봄과 초여름 날씨가 유난히 시원했다. 북유럽은 사실 시원할 만도 한 것이, 케임브리지의 위도가 52.2도인데 서울은 37.5도 남짓하다. 영국 남부지방이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없을 정도로 온난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카리브해에서 유럽 근해까지 흘러오는 따뜻한 멕시코 만류(Gulf Stream)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바닷물은 그냥 출렁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방향으로 복잡하게 순환하는 해류 시스템이 있다. 그 해류의 대규모 회로 하나가 대서양에 있다. 멕시코 만류는 소위 말하는 대서양 자오선 역전 순환(Atlantic meridional overturning circulation)의 일부이다. 그런데 이 대서양 해류 시스템이 약해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복잡하지만,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북극권도 따뜻해지므로 거기까지 간 바닷물이 예전만큼 차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 주목된다. 또 그 바닷물이 얼면서 염도가 높아져야 무게를 싣고 가라앉아서 역전 순환이 되는데, 이제 물이 얼기는커녕 그린란드 등 북극권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얼음이 많이 녹으면서 바닷물의 염도를 내려버린다. 2050년경이 되면 그 해류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하리라는 우려를 제시한 최근의 연구결과도 나왔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보면 지구가 균일하게 더워지는 것도 아니고, 온도만 높아지는 것도 아니므로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라는 단순한 말을 피하고 기후변화라고 한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올라가면 폭풍도 강해지고 산불도 늘어나며, 한쪽에서는 큰 가뭄이 들 때 한쪽에서는 대홍수가 나는 등 극단적인 현상들이 더 늘어난다. 지구의 기후란 정말 풀기 어려운 과학적 문제이고, 인류는 거기에 대한 연구에 전력투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여러 가지 지형과 물질들과 동식물들이 오묘하게 엉켜서 살아가는 지구라는 시스템은 우리가 예견하지 못하는 이치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과학의 역량에 대한 자만을 버려야 한다. 과학지식의 제한성을 인정하되, 그래도 우리가 아는 것을 총동원하여 여러 가지로 일어날 수 있는 사태에 대해 유연한 대책을 세워가야 할 것이다.’ (2024. 8. 19 중앙일보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칼럼, ‘예측불허의 기후변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