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예와 가치
고삐 풀린 말은 쫓기 힘들다고 합니다. 말 한 마디를 하면서도 자기가 한 말에
대해서 책임이 있어야 하며 대중에게 더욱 영에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고대의 많은 성현이 충성과 효도, 절개와 의를 위하여 절조를 굳게 지켜 만고에
이름을 드높였는데, 이는 바로 도덕적 영예의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보살의 도덕적 영예는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 하는 데서 생깁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깨끗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능력이 부족함을 부끄러워 하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능력에 결함이 있어 중생을 제도하는 것에 온 힘을 다할 수가 없다고 느끼며,
만약 원력을 달성할 수 없다면 불명예스러운 일이니 더욱 용맹정진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편 법문을 부지런히 구합니다.
마치 운동선수가 시합에서 진 뒤 불명예스럽고
면목없으니 이로 해서 더욱 열심히 연마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현은 그의 몸에서 퍼져나오는 빛의 범위를 자기가 감상하지 않습니다.
보살의 도덕적 영예가 나중에는 무아無我로써 중생을 제도하고
무상無相으로 보시하니 《금강경》에서 말하는 "머무르지 않고
그 마음을 내라(應無所住而生基心)"는 뜻과 같습니다.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는 목표는 모든 중생을 다함이 없는 열반에 들게 하고
제도하는 것입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끝없이 많은 중생을 제도했으나
진실로 한 중생도 나로 인해 제도를 얻은 자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속적으로 말한다면 자기의 공을 뽐내지 않는 것이고,
불교적으로 말한다면 출가의 정신으로 세상의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보살의 도덕적 영예는 무아상無我相, 무인상無人相,
무중생상無衆生相, 무수자상無壽者相의 평등경계에 달해 있습니다.
위대하다라는 말은 많은 수고와 노력으로 바뀐 찬탄사입니다.
세간에 좋은 사람 되기 힘들고, 착한 일 하기 힘들다는 현상이 이따금 있고,
'도가 한 자 높아지면 마는 한 길 높아진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발을 굳게 딛고 믿음을 굳게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면 정의는 반드시 사악함을 이겨내며,
어둠이 지나면 틀림없이 광명이 옵니다.
선에는 선보가 있고, 악에는 악보가 있습니다.
이같은 도덕 가치의 변함없는 진리를 나타내는 시 한 수를 소개하겠습니다.
선善은 푸른 소나무와 같고
악惡은 꽃과 같다
소나무는 보기에 꽃보다 못하나
하루아침 서리를 맞으면
꽃은 뵈지 않고
소나무만 푸르다
어느 날 아침 서리를 맞아 푸른 솔만 보이고 꽃은 보이지 않듯이,
선의 도덕만이 영원히 시들지 않고 푸른 솔과 같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도덕의 가치를 긍정하고, 자기를 위해 앞으로 나가야 하고
다시 나아가야 하며, 진리를 위하여 기여하고 다시 기여하며,
세상을 위하여 봉사하고 다시 봉사해야 합니다.
도덕은 선한 것이고, 부도덕은 악한 것이며, 선한 것은 필경 향기로운 것이고,
악한 것은 결국 더럽고 구린 것입니다. 이것은 도덕의 가치론이고
영원토록 변치 않는 법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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