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슬리펠’/한미약품 제공
국내 불면증 환자 수는 지난해 기준 약 68만명에 달한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오늘도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다는 이야기다. 치료를 받아보고 싶지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건 왠지 모르게 꺼려진다. 대신 선택한 방법이 약국에서 ‘슬리펠’, ‘쿨드림’ 등과 같은 불면증 약을 사먹는 것이다. 이들 약은 항히스타민제의 부작용 중 하나인 진정작용을 유도한다. 약을 먹으면 일시적으로 잠이 오는 효과가 있을 수는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불면증의 원인을 치료하지 않는 이상 수면 유도제만으로 잠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장기간 약을 복용할 경우 여러 가지 부작용을 겪을 위험도 있다. 불면증을 치료하는 의사들 역시 약으로 불면증을 치료하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수면유도제로 사용되는 항히스타민제, 진정작용 통해 졸음 유도
약국에서 판매하는 수면유도제(일반의약품)는 병원에서 처방하는 수면제(전문의약품)와 다른 약이다. 성분은 물론, 약효도 크게 차이난다. 일반의약품이 부작용 우려가 덜한 만큼, 효과도 떨어지는 편이다.
한미약품 ‘슬리펠’, GC녹십자 ‘쿨드림’ 등은 모두 디펜히드라민 성분 수면유도제다. 디펜히드라민 외에 태극제약 ‘자미슬’, 알리코제약 ‘아론’과 같이 독실아민이 주성분인 약들도 있다. 디펜히드라민과 독실아민 모두 1세대 항히스타민제로, 수면유도제는 이들 약의 부작용 중 하나인 진정작용을 통해 수면을 유도한다. 약 성분이 혈관 뇌 장벽(BBB)을 통과하면 뇌 각성이 억제되고 진정작용이 일어난다. 과거에 감기약이나 알레르기 비염약을 먹은 뒤 졸렸던 경험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1세대 항히스타민제는 주로 감기약·알레르기약으로 사용돼왔다. 수면유도제는 병원에서 처방받는 수면제에 비해 약효 발현 시간이 더디고 효과가 낮지만, 그만큼 부작용 위험 또한 상대적으로 낮다.
◇효과 일시적, 장기간 복용하면 입 마름, 변비, 복시 겪을 수 있어
잠이 오지 않을 때 수면유도제를 먹으면 일시적으로 잠이 오는 효과를 볼 수는 있다. 다만 말 그대로 약의 효과는 ‘일시적’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약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물론, 장기간 복용하는 것 또한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1세대 항히스타민제의 부작용을 이용한 약인만큼 오랜 기간 복용했을 때 항히스타민제를 장기 복용한 것과 같은 문제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헌정 교수는 “항히스타민 작용을 하는 수면유도제를 장기간 복용할 경우 살이 찌거나 입 마름, 변비, 복시 현상 등과 같은 문제를 겪을 수 있다”며 “오랜 기간 약을 먹다 끊으면 약에 의존성이 생겨 어지럼증, 현기증, 두통 등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특정 질환으로 인해 디펜히드라민·독실아민 성분 수면유도제를 먹지 말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반의약품연구회 오인석 회장(수지솔약국 약사)은 “녹내장 환자의 경우 약 성분으로 인해 안압이 상승할 위험이 있고, 배뇨장애를 겪는 전립선비대증 환자 또한 소변을 보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잠 안 오면 약 찾지 말고 원인부터 교정해야
전문가들은 불면증을 약으로 치료하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약은 잠이 오지 않을 때 순간적으로 수면을 유도할 뿐이며, 불면증 원인을 파악하지 않은 채 약만 먹어선 근본적인 치료가 어렵기 때문이다. 수면제에 의존하다보면 의존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불면증 역시 악화될 수 있고, 약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인해 다른 질환을 함께 앓을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이헌정 교수는 “불면증 치료는 잠을 못자는 원인을 파악·제거하고 생활습관을 교정하는 것이 먼저다”며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구매·복용하는 일반의약품 역시 함부로 먹거나 장기 복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저런 약을 먹은 뒤 병원을 방문하면 치료 전에 약을 끊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전종보 헬스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