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범님 완죤 카수!> 백홍석이 비씨카드배 우승 자축연에서 분위기를 돋우고자 트로트 가요 땡벌을 부르고 있다. 주위엔 제자들과 원생들이 몰려 들어 환호하고 있다. |
흐름으로 보건대 중국의 우승은 확실해 보였다. 올초부터 5달간 전 세계 바둑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제4회 비씨카드배는 예선부터 중국에 약간 밀리는 조짐이 일더니 본선에 접어들어선 완연한 중국 잔치였다.
정상급이라 분류되는 한국의 우수한 기사들과 주목받는 신예 스타들은 재앙 앞에서처럼 속수무책으로 하나 둘 패국했다. 이세돌, 이창호, 원성진, 박영훈, 박정환... 이름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중국으로선 우승에 위협적일 것이라 여겨지는 기사는 모조리 제거한 셈이나 다름 없었다. 한국 언론들은 참담함을 토로했다.
백홍석이 마치 이런 사정을 모르는 것처럼 홀로 바람처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 바둑의 위기는 백홍석의 바둑에서도 예외 없이 압축되어 나타나는 듯이 보였다. ‘100% 진 바둑’은 백홍석이 대국할 때마다 내려지는 평가였다. 대국 중엔 나타나는 백홍석의 표정과 한숨은 그 평가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삶의 집착에 가까운 숭고한 승부 근성으로 그 모든 비세를 이겨냈다. 한판 한판 승리해 결승까지 갔고, 비씨카드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어지던 중국 우승설을 일축해버리며 승리를 일궜다.
9번 준우승 설움 끝의 우승은 세계대회 우승이었다. 명랑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보통 기사 백홍석은 난세를 평정한 영웅이 됐다.
▲ 이 날은 마침 응씨배가 열린 날이다. 비씨카드배에서 한국은 얼마나 밀렸던가. 잔치 전, 백홍석이 모니터로 한국 선수들의 대국 후반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옆의 온소진과 의견을 나누면서. 23일 저녁 백홍석은 바둑계 사람들을 불러 거하게 냈다. 왕십리 한국기원 근처, 골든벨 바둑도장 지하의 한 고깃집에 100명이 넘는 바둑인들이 모였다. 골든벨 바둑도장은 백홍석이 이 도장의 원생 중 10명의 제자를 가르치는 곳이다.
그냥 편안한 저녁 식사 자리였다. 청년 백홍석은 거창한 것을 싫어한다. 그가 노래 한곡을 땡겼다. ‘땡벌’이라는 트로트 가요다. 걸쭉한 창법을 잘도 해낸다. 보통은 연구생이거나 바로 직전 수준인 제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제자들에게 백홍석은 고마워한다. 가르침을 주는 대상이 제자란 존재인데 백홍석은 제자에게서 배운다고 말한다.
“도장의 원생지도는 온소진 사범이 주로 맡아서 합니다. 저는 도장에 나오면 원생 중 10명 정도와 실전을 하죠. 정말 실력 있는 원생들이 많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제가 배운다는 느낌입니다. 겸손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비씨카드배 때 실전 감각은 제자들과의 대국에서 나온 거에요. 이렇게 원생들이 이렇게 센 데 입단문호를 넓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재능있는 인재들이 빨리 프로기사가 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백홍석을 옆집 형처럼 느낀다. 자상한 형은 아니라고들(?) 한다.
“백 사범님한테 혼나는 경우는 정해져 있는데요, 싸워야 할 때 안 싸우는 거랑 재미없게 두는 거가 가장 크게 지적받아요” “검토를 길게 하지 않고 요점만 찍어서 하시는 편이에요. 백 사범님과 축구할 때가 좋아요”
백홍석은 요즘 바쁘다. 우승턱도 내야하고 대국도 있고 6월 5일에는 중국 을조리그에 참가하러 중국에 간다. 비씨카드배 우승상금 3억원은 아직 입금되지 않았다.
- 요즘 매일 같이 한턱 내는 게 하루 일과 아닌가요?” “그러게요. 오늘 여기서 쏘는 게 마지막입니다 ^^ . 마지막이니까 마음껏 드시고 가세요”
- 중국을조리그, 아이고 우승 뒤에 계약했으면 좋았은 텐데요. 세계대회 우승자를 헐값(?)에 쓰는 격이겠네요. “같이 을조리그에 출전하는 '잘나가는 한국 신예'보다 제 몸값이 낮아요. 비씨카드배 우승 훨씬 전에 계약이 됐고, 계약 한 해전의 성적이 상당히 안 좋았어요. 쩝, 하하 어쩔 수 없죠.”
- 이번 우승은 제자들에게도 꿈을 불어 넣어줬을 것 같은데. “제자들이 누구도 포기하지 말았으면 해요. 꾸준하게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 "비씨카드배 우승자축연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백홍석.
▲ 백홍석이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는 도장의 원장 김정렬 씨와 부인.
▲ 한 곡 뽑아야죠~ 동네가 시끄러울까봐 주인공만 부르기로 했다."무슨 노래를 부를까나~"(백홍석) "혹시 노래 번호 외우고 있으면서 쇼하는 거 아니죠? ^^"(기자) "아니에요, 아니에요. 음, 이거 '땡벌'로!"
▲ "기다리다 지쳤어요 땡벌~" 아싸 걸쭉하다.
▲ 제자들의 부모님들과.
▲ 사범님 맨날 우승하세요~
▲ 저희 고기 잘 굽죠.
▲ 이 가게는 우리나라에서 고기맛 좋기로 세 손가락 안에 든든다는 소문을 듣는 곳.
▲ 바둑인으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는 백홍석.
▲ 꽃다발을 준비한 원생과 함께.
▲ 김정렬 골든벨바둑도장 원장과 한 컷.
▲ 축하합니다. 건배~!
[취재| 최병준, 김수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