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분망천(戴盆望天)
동이를 머리에 이면 하늘을 바라볼 수 없고 하늘을 바라보면 동이를 일 수 없다는 뜻으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병행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戴 : 일 대(戈/13)
盆 : 동이 분(皿/4)
望 : 바랄 망(月/7)
天 : 하늘 천(大/1)
출전 : 사마천(司馬遷)의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
이 성어는 중국 한(漢)나라 때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친구인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에 나오는 말로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且事本末未易明也.
또한 일의 처음과 끝(本末)도 결코 쉽게 밝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僕少負不羈之才, 長無鄉曲之譽, 主上幸以先人之故, 使得奉薄技, 出入周衛之中.
저는 어려서는 무엇에도 얽매지 않는 재능을 지녔다고 자부했으나, 자라서는 촌구석에서 칭찬받은 일이 없었는데, 주상(主上)께서 다행히 돌아가신 아버님과의 인연으로 태사(太史; 사관직)의 일을 이어 받게 되어 궁궐의 안을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僕以為戴盆何以望天, 故絕賓客之知, 忘室家之業, 日夜思竭其不肖之材力, 務壹心營職, 以求親媚於主上.
저는 ‘동이를 머리 위에 올려놓고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겠는가.’라고 생각하였고, 그런 까닭에 손님들과의 사귐도 끊고 집안(一家) 일도 잃어 버렸으며, 밤낮으로 부족하나마 능력을 다하고 한마음으로 직분에 힘써, 주군을 즐겁게 해드려 했습니다.
而事乃有大謬不然者.
그러나 일이 크게 잘못되어 그렇지 못했습니다.
대분망천(戴盆望天)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하늘을 바라본다.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다는 사마천의 말이다(戴盆望天 望天戴盆).
옛 글에 ‘사람의 생각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날카롭게 볼 수가 없고, 일이란 두 가지를 동시에 융성하게 할 수는 없다. 한쪽이 성하면 다른 한쪽은 쇠하게 마련이다. 밤에 누워 뒤척이기 좋아하는 자는 아침 일찍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意不竝銳 事不兩隆 盛於彼者 必衰於此 長於左者 必短於右 喜夜臥者 不能蚤起也)라는 내용이 있다.
뿐만 아니라 유사한 글은 얼마든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둥근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원만을 뜻하기 때문으로 두루두루 다 알아야 하고 이것저것 다 갖기를 원한다. 모자람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오른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왼손으로 네모를 그리다 보면 두 가지 모두 이룰 수 없다’(左手畵圓 右手畵方 不能兩成)라 하지 않았던가.
못하는 것이 없는 자는 한 가지도 잘하는 것이 없고, 무엇이든 다 하고자 하는 자는 한 가지도 제대로 얻는 것이 없다.
바른 행동을 쌓아두면 미치지 못할 복이 없으며, 사악한 행동을 쌓아두면 찾아오지 아니하는 화가 없는 것이다.
대분망천(戴盆望天)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하늘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두 일을 함께 하기란 어렵다는 말이다.
한서(漢書)에서 전한(前漢) 시대 역사가 사마천의 일화를 전한 데서 유래한다. 한나라 때 사마천은 나이 40이 다 되어 뒤늦게 사관에 등용돼 역사책을 편찬하는데 참여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사마천은 자신의 생활을 친구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에서 대분망천(戴盆望天)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어떻게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그런 까닭에 밖에 나가 친구도 사귀는 것도 끊고 가사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부족하나마 밤낮으로 직분에 충실해 성은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주변과 교분도 쌓고 집안일도 돌보는 일(戴盆)을 했다면 사마천은 아마 '사기'(史記)라는 불후의 역사서를 쓰는 일(望天)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사마천은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렸을 적에는 재주만 믿고 자유분방하게 설쳐댔지만 어른이 돼서는 누구도 알아주는 이 없는 존재가 됐다'는 말로 겸손해한다.
재주가 좀 있다는 사람들은 그것을 믿고 한 군데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래서 사마천은 오로지 최선을 다해 직분을 수행하는 대분망천이야말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요즘 대분망천의 각오로 공직을 수행하는 공직자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망천'은 아예 안중에 없고 '대분'에 몰두해 일신의 영락을 도모하다 발각되는 공직자들이 허다하다.
더 걱정되는 것은 망천의 각오와 사명을 강조하고 권장하는 이를 '꼰대'니 '꼴통'이니 하며 버릇없이 말을 내뱉는 세상 풍조다.
대분망천(戴盆望天)
물동이를 이고서 하늘을 바라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한 사람이 두 가지 일을 할 때 일인이역(一人二役), 또는 일신양역(一身兩役)이란 말을 쓴다.
게임이나 음악 연주에서의 멀티 플레이어(multiplayer)같이 능력이 있는 사람은 한꺼번에 두 가지 일보다 더 많은 일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할 수 없는 것이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戴盆) 하늘을 바라보는(望天) 일이다.
머리에 물동이를 얹고서 하늘을 바라볼 수는 없고 억지로 보려다가는 물이 와르르 쏟아진다. 두 가지를 잘한다는 사람도 한 가지가 더 뛰어날 것이며 욕심내어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이루려 하다간 되레 망칠 수가 있다.
불후의 기전체(紀傳體) 역사서 사기(史記)를 남긴 사마천(司馬遷)은 중과부적으로 흉노에 사로잡힌 친구 이릉(李陵) 장군을 변호하다 생식기를 잘리는 궁형(宮刑)을 당했다. 치욕스런 나날을 죽은 듯이 보내는 그에게 이번에는 임안(任安)이란 친구에게서 도움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자가 소경(少卿)인 친구는 전한(前漢) 무제(武帝)때 일어난 무고(巫蠱)의 난에 휩쓸려 억울하게 처형될 위기에 처했다. 딱한 처지에 있는 사마천도 답을 미루면 한이 될 것 같아 쓴 것이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다. 자신이 청을 들어줄 입장이 아니란 것을 구구절절 설명한 부분에 성어가 나온다.
사마천은 구차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은 선친의 유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며 말한다. "나는 물동이를 이고 어떻게 하늘을 볼까 하는 속담을 옳게 여겨 손님과의 왕래도 끊고 집안일도 잊어 버렸습니다(僕以爲戴盆何以望天 故絶賓客之知 亡室家之業)."
임안은 마음에 위로는 됐겠지만 그 얼마 뒤 허리가 잘리는 요참형(腰斬刑)을 당했다.
같은 말은 아니라도 비슷한 뜻의 재미있는 비유가 있다. "오른손으로 원을 그리고 왼손으로 사각형을 그리면 모두 이룰 수 없다(左手畵圓 右手畵方 不能兩成)"는 말은 한비자(韓非子) 공명(功名)편에 있다.
설원(說苑) 담총(談叢)편에는 "왼쪽이 길면 오른쪽은 짧을 수밖에 없고, 밤에 누워 뒤척이기 좋아하는 자는 아침 일찍 일어날 수가 없다(長於左者 必短於右 喜夜臥者 不能蚤起)"는 말이 나온다.
다방면에 두루 재능을 떨치는 팔방미인(八方美人)은 필시 어느 부분에선 수준 이하의 성적을 받는다. 양손에 떡이 있다고 한꺼번에 먹다간 체한다.
두 가지 일이 닥쳤을 때 우물쭈물 선후를 가리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자신도 없으면서 한꺼번에 하려다간 모두 실패한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부터 확실하게 처리해야 뒤탈이 없다.
대분망천(戴盆望天)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하늘을 우러러 본다
1. 욕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류 역사를 반추해 볼 때, 인간은 더 많은 자유와 인권을 끊임없이 추구해 왔다. 그 중심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인간의 자유와 인권을 확대하고 신장하는데 초석이 되었다. 자본주의적 시장주의는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를 기반으로 성장하였으며, 민주주의 또한 그 선택의 자유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 시장에서의 구매행위는 선택의 자유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민주주의에서의 선거권 또한 선택의 자유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할 자유를 확장해 왔다. 그뿐 아니라 자유로운 창업과 기업 경영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지도자가 되기 위한 피선거권 또한 선택의 자유의 확장 덕택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인권과 자유의 확대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이익의 극대화에 의한 이기주의의 천박한 늪에 빠지면 합법성이란 가면을 쓰고 무한하게 확대된 자유를 바탕으로 인간의 도덕적 타락과 함께 타인을 조롱하고 짓밟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이익의 극대화에 빠진 자본주의가 도덕적 원칙과 감화력을 상실하면 독점자본으로 변질된다. 그리고 그것은 권력과 유착하여 세상을 전체주의로 몰아갈 수 있다. 민주주의가 특정 정치 집단의 이익 극대화에 빠지고 국민이 그에 편승해 버리면 민주주의 탈을 쓴 전체주의로 흐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 중심에는 한없는 욕망 추구만 도사리며 그 욕망 추구의 이면에는 온갖 기만 행위가 난무하게 된다.
이런 상황은 역사가 증명하며 모든 영역에서 발생한다. 선택과 집회결사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노동조합이 담합과 독점으로 흐르면 역시 독과점과 전체주의로 흐를 수 있다. 그리고 한 개인의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할 자유가 지나치게 극대화되면 타인을 조롱하고 비방하는 한계를 벗어나 나의 자유를 위한 타인의 인권 침해라는 도덕적 모순을 유발하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되려면 만인이 공정한 법률의 지배를 받아야 하며 개인 또한 그것을 존중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타락하여 세상을 더 혼탁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린 도덕적 원칙과 도덕적 감수성의 확장으로 끊임없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정화하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비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많은 도덕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가장 적합하며 인류가 고안해 낸 가장 훌륭한 제도 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에 우린 정화를 통해 그것을 발전 시켜야 한다.
이러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인간의 꿈과 욕망 추구의 확장을 키워왔다. 인간은 누구나 동등한 선택의 자유를 가지며, 자기의 꿈과 욕망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그것은 인권과 자유의 확장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꿈과 욕망은 충돌하고 때로는 욕망이 꿈을 삼켜버리는 기이한 현상을 만들어 낸다. 지나친 욕망에 기반을 둔 꿈은 도덕적 감수성을 상실하여 무한대의 욕망추구의 노예가 되어 비정상적인 충족으로 타인과 세상에 해로움을 끼친다. 이를테면 부자가 되기 위한 꿈과 욕망의 실현을 위해 사기 행위를 함으로 타인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 돈을 매개로 타인을 지배하는 행위 등이 그러한 것이다. 말할 자유란 이름으로 특정한 타인을 비방함으로 그의 인격에 침해를 가하는 행위 또한 욕망의 왜곡된 모습이다.
꿈과 욕망의 관계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다. 하지만 꿈은 가치 중심적이고 합리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방법과 절차와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정당한 방법과 절차와 노력이 수반된 욕망의 추구 또한 꿈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가치와 합리성이 상실된 단지 욕망 지향의 욕망이 있다. 그것에는 꿈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리고 무한대의 욕망 추구에는 절제가 상실됨으로 세상에 해악을 끼친다. 현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행되는 수많은 사기 행위와 탈법, 편법, 온갖 성적 타락, 타인에 대한 비방과 테러 행위 등 모든 행위가 꿈의 범주를 상실한 무한대의 욕망 추구와 관계 된다.
이를테면 자본주의에서의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지나치면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도덕적 타락에 빠질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도자가 되기 위한 꿈을 벗어난 권력 욕망에 지나치게 빠지면 민주주의를 가장한 온갖 타락과 기만과 교묘한 탈법을 자행하며 대중을 정파 주의로 규합할 수 있다. 그리고 대중들이 그 정파 주의의 늪에 함께 빠지면 민주주의는 대중과 함께 정파적 분열의 길을 걷는다. 그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런 사회는 꿈보다 욕망이 지배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그 욕망의 중심에는 돈과 권력이 도사린다. 어떤 이는 돈에 대한 욕망에 인생을 걸고 어떤 이는 권력에 대한 욕망에 인생을 건다. 또 어떤 이는 돈과 권력 모두에 인생을 건다. 의사에게는 환자를 치료하는 숭고한 도덕적 사명이 있다. 그러나 돈의 욕망에 빠진 의사는 환자 모두를 돈으로만 치환한다. 지금 한국 사회의 특정 분야와 농어촌의 의료공백과 의과대학 집중 현상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가치 있는 꿈인가? 돈을 향한 욕망의 추구인가? 권력이 욕망 추구에 몰입하면 온갖 정쟁과 탈법과 정파를 갈라 비방과 패싸움에 몰입한다. 그리고 대중들이 그에 합세하면 세상은 분열된 난장판이 된다. 여기엔 정상적인 담론과 법과 상식의 가치는 실종된다. 그리고 그 승자는 민주주의를 가장한 정치적 독점주의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돈과 권력의 욕망이 지나치면 둘은 연합하게 된다. 정치는 돈에 의해 부패하고 자본은 권력에 의해 왜곡된다. 지금의 한국 정치 상황이 그렇지 않은가?
이 모든 것들은 꿈과 욕망의 관계로 볼 때 꿈이 아닌 욕망의 노예가 된 세상임을 말해 준다. 절제되지 않은 욕망은 꿈을 왜곡시키고 변질시키며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그 욕망을 실현하고자 한다. 여기에 물든 사람들은 그것도 꿈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꿈의 범주를 일탈한 무한대의 욕망 추구 이를테면 절제를 상실한 욕망추구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늘 원대한 꿈을 꾸라고 한다.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큰 꿈을 가지라고 강요하듯 말한다. 그러나 그 원대한 꿈을 꾸는 것이 늘 좋은 것인가? 꿈은 원대하면 좋겠지만 현실과 노력이 전혀 따라주지를 않으면 그것은 망상이 되고 그 망상에 젖으면 그 꿈이 자신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특히 망상 같은 원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옳지 못한 방법과 절차를 고안하고 활용하면 그것이 되레 인생 전체를 파괴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하늘은 보기 위해서는 머리에 쓴 큰 삿갓을 벗거나 머리에 이고 있는 무거운 집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늘을 보는 것은 인간의 꿈이다. 큰 삿갓과 짐은 꿈을 가리고 있는 욕망이다. 욕망은 현실과 상황을 무시하지만 꿈은 현실과 상황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꿈의 실현을 위해 분수를 지키는 일이며 욕망에 가치를 부여하고 욕망을 절제하는 일이다. 우리는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기 때문이다.
2. 대분망천(戴盆望天)의 유래와 의미
대분망천(戴盆望天)[戴(일 대, 머리 위에 올려놓다, 느끼다, 생각하다) 盆(동이 분, 몰동이) 望(바랄 망, 바라다, 우러러보다) 天(하늘 천, 하늘)]은 사마천의 사기 <보임소경서補任少卿書>에서 ‘이릉의 화’에 대한 언급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의 본래의 뜻은 ‘큰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다’이다. 그러나 후세 사람들이 그 본말을 생각하지 않고 ‘두 가지 일을 함께 할 수 없음을 비유한 말’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본래의 의미는 분에 넘치는 욕망을 가지고 행동을 하면 화를 당할 수 있음을 스스로 경계한 말이다. 꿈을 가지되 분수를 지키며 욕망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매사에 경계하며 겸허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사마천은 늘 조심하며 살았지만, 본의 아니게 ‘이릉의 사건’에 끼어들어 화를 당하게 되었음을 한탄한 말이다.
사마천은 <보임소경서>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렇다 할 재주도 없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고향 사람들의 칭찬 한마디 들어보지 못한 채 살다가 아버님 덕분에 폐하의 부르심을 받고 궁중에 드나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여 저는 빈객들과의 교유를 사절하고 집안일도 잊고 밤낮으로 미약한 재주를 다하려 노력하고 한마음으로 직무에 최선을 다하므로 폐하의 환심을 사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비천한 몸으로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어찌 하늘을 바라보겠습니까?(僕以爲戴盆何以望天) 일에 큰 잘못이 생겨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되지를 않았습니다(而事乃有 大謬不然者) 이릉의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마천, 사기, 보임소경서>
사마천은 세상을 참으로 성실하게 살았다. 늘 조심하면서 자신을 연마하였다. 그리고 한무제에게 충성스러운 신하였다. 한무제 또한 사마천을 신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릉의 사건’에 참견하는 바람에 화를 당해 궁형에 처해 사경을 헤매다가 살아났다. 그가 살아난 목적은 단지 아버지 때부터 집필해 오던 사기를 완성하기 위함이었다. 사기의 집필은 아버지의 유언이기도 했다.
이 이야기의 본말은 이렇다. 사마천과 이릉 장군은 알고는 지냈으나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다. 사마천은 그런 이릉 장군은 기개가 있고 훌륭한 장군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릉 장군이 흉노정벌의 명을 받고 출정하여 싸우다가 흉노에게 크게 패하고 포로로 잡히게 되었다. 사실 패전은 본국에서의 추가 지원병과 보급이 되지 않은 것이 큰 원인이었다. 이릉은 전력을 다해 싸우다가 모든 병사를 잃고 포로가 된 것이었다. 이릉이 승전을 한다고 전갈이 올 때는 황제와 대신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축배를 들다가 패전 소식을 듣자 황제는 웃음을 잃고 즐거워하지 않았다. 신하들은 모두 황제의 비위를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마천은 그 모습에 배알이 꼬였다. 그래서 이릉 장군을 변론하였다. 그래서 황제와 신하들의 미움을 샀다. 화가 난 무제는 사마천에게 형벌을 내렸다. 형벌은 사형, 벌금, 궁형 중에 하나를 택하는 것이었다.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언인 사기를 쓰기 위해 살아남아야 했다. 그렇다고 벌금을 낼 만한 돈도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가장 치욕스런 형벌인 궁형을 선택했다. 궁형에 처해져 겨우 살아난 사마천에게 임안이 모함을 받고 황제에게 자신을 변호해 줄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사마천은 오랜 시간을 망설이다가 그럴 수 없는 처참한 자신의 마음과 현실을 한탄하는 답장을 보냈다. 그것이 보임소경서 즉 인안에게 보내는 편지다.
지금 우리는 자유와 인권, 만민평등의 시대에 살기 때문에 세상이 살얼음판이라는 것을 그리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마천이 살았던 시대나 조선왕조를 포함한 모든 왕조 시대는 늘 살얼음판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스스로 꿈이 아닌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리면 최종 결과는 머리에 이고 있는 물동이가 쏟아져 자신을 온통 물로 적셔 버리게 된다. 무한대의 욕망에 기반을 둔 권력과 돈, 향락만 추구한 최종 대가는 자기 파멸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다단계 사기나 정쟁에 빠져 낭패를 보는 사람, 폭력 등에 휘말려 낭패를 당하는 사람, 마약에 빠져 인생을 망치는 사람, 고위공직자가 음주운전을 하는 것, 부당한 방법과 권모술수로 권력을 장악하려는 것,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대분망천(戴盆望天) 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우리는 큰 꿈을 가지되 욕망을 절제하며 개입할 때와 개입하지 않을 때를 잘 구분하여야 한다. 앞에서 밝혔듯이 대분망천(戴盆望天)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겸허한 삶의 지혜를 강조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3. 대분망천(戴盆望天)하지 않는 삶을 위하여
꿈을 가지되 그 꿈이 지나치게 크고 왜곡된 욕망에 빠지면 그 꿈이 자신을 망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자본주의가 이기적 욕망의 늪에 빠지면 독점 자본주의가 되어 세상을 망가뜨린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도자가 지나친 권력 욕망에 빠지면 전체주의의 늪에 빠지게 한다. 국민이 특정한 권력의 편에서 편협된 권력적 대리욕망에 빠지면 나라는 분열되고 투쟁의 장이 된다. 인간의 지유가 지나치면 타인의 자유를 짓밟는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삶도 파괴된다. 이 모든 곳에는 욕망 과잉과 도덕적 타락과 도덕적 감수성의 상실이 도사린다. 그러한 삶은 모두 대분망천(戴盆望天) 하는 삶이다. 우리는 대분망천(戴盆望天) 하는 삶을 경계하여야 한다.
사마천이 사기에서 말하는 대분망천(戴盆望天)에는 자신을 경계하며 겸허하게 살아갈 것을 강조하는 의미가 숨어 있다. 사람들은 고난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겸허를 잃어버리기 쉽다. 역경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눈물 젖은 빵의 의미도 모른다. 사마천도 그 이전에는 그것을 조심하였지만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세상 사람들은 큰 고난을 경험하고 나서야 겸허와 경계하는 삶이 얼만 중요한가를 깊이 깨닫는다. 그래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고 역경은 인간을 성숙하게 한다고 했던 것 아닐까?
오랜 귀양살이를 했던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제자와 자녀들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에서 겸허하게 경계하는 삶을 살 것을 수없이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삶의 덧없음을 깨닫기를 바라고 있다.
‘세상 사물들은 대체로 덧없이 변화하는 것이 많다. 초목 중에 작약 같은 꽃은 활짝 피었을 때는 참 아름답지만 말라 시들어 버리면 덧없는 물건에 불과하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오래 산다고 하지만 수백 년이 못 되어 쪼개져 불태워지거나 바람에 꺾이고 송충이에게 갉아 먹히고 만다. 이 같은 사실은 선비라면 누구나 안다. 그러나 땅이 덧없는 물건인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내가 사람들의 땅 문서의 내력을 조사해 보니 백 년 동안 소유주가 바뀐 것이 대 여섯번에 이르며 심한 경우는 아홉 번도 된다. 땅의 성질은 유동적이고 쉽게 바뀐다. 그러니 땅을 믿는 것은 기녀의 정절을 믿는 것과 같다.’<다산이 52세 때인 1813년 8월 다산초당에서 가르친 제자 윤종심에게 보낸 편지, 가진 것은 덧없다>. 다산 성생은 땅 특히 재물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경계의 말을 하였다. 이는 땅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땅이나 재물을 가지려고 목숨을 걸듯 하지 말라는 경계의 말이다.
다산 선생은 또 이렇게 말한다.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기르는 일을 ‘한가한 일’이라고 하고 독서를 하고 이치는 탐구하는 일을 ‘옛날이야기’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세상에서 제일 경박한 사람들이다. 맹자는 ‘큰 것을 기르는 자는 대인(大人)이 되고, 작은 것을 기르는 자는 소인(小人)이 된다’고 했다.”<다산초당의 제자 장수칠에게 보낸 글>. 위의 글에서 ‘큰 것을 기르는 것’은 마음의 수양을 말하는 것이고 ‘작은 것을 기르는 자’는 일신의 안위와 이익에 눈이 먼 것을 말한다. 이처럼 다산은 마음의 수양과 올바른 성품을 기르는 일에 매진할 것을 강조하였다.
다산 선생의 글 중에는 욕심을 줄이고 겸허하게 학문과 수양에 힘쓰며 살 것을 강조하는 대목이 많다. 특히 다산의 그러한 삶은 그의 수오재기(守吾齋記)-나를 지키는 집에 대한 기록-와, 여유당기(與猶堂記)-겨울 시내를 건너듯 사방을 두려워하며 조심조심하노라-등에 잘 나타나 있다. 젊은 날 겸허하지 못하고 자신을 경계하지 못하여 오랜 귀양살이를 하였음을 후회하며 늘 자신을 다스리고 공부에 매진하고자 노력한 다산의 삶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자본주의가 이기주의에 빠져 천박한 이익의 극대화란 욕망의 노예가 되면 대분망천(戴盆望天) 하게 된다.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와 국민이 권력욕의 노예가 되면 대분망천(戴盆望天) 하게 된다. 인간의 삶이 돈과 권력, 향락의 노예가 되면 대분망천(戴盆望天) 하게 된다. 개개인들이 말과 행동 등 모든 행위에서 욕망의 노예가 되면 대분망천(戴盆望天) 하게 된다. 대분망천(戴盆望天) 하게 된 것은 꿈이 절제되지 않은 욕망으로 왜곡되고 변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꿈이 가치와 도덕적 합리성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이다. 가치와 방법과 절차를 상실한 꿈은 꿈이 아닌 욕망일 뿐이다. 그 모든 것에는 겸허와 절제를 잃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겸허와 절제를 잃으면 파멸한다. 우린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경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모두 평화로운 공존공영의 삶을 살 수 있다. 우린 결코 대분망천(戴盆望天)하지 말자.
▶️ 戴(일 대)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창 과(戈; 창, 무기)部와 귀신(鬼神)이 탈을 머리 위에 이는 모양을 본뜬 異(이)와 음(音)을 나타내는 재(戴에서 異를 제외한 부분)로 이루어졌다. 머리에 이다, 받들다의 뜻이다. 그래서 戴(일 대)는 ①이다, 머리 위에 올려 놓다 ②들다 ③받들다 ④느끼다, 생각하다 ⑤만나다, 마주 대하다 ⑥곁눈질하다 ⑦탄식하다, 슬퍼하다 ⑧널을 묶는 끈 ⑨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제왕이 왕관을 받아 씀을 대관(戴冠), 하늘을 이고 땅을 밟는다는 뜻으로 이승에서 살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대리(戴履), 치관을 썼다는 뜻으로 어사를 이르는 말을 대치(戴豸), 머리에 꽃을 꽂음을 대화(戴花), 머리에 흰 머리털이 많이 남 또는 그러한 노인을 대백(戴白), 하늘을 머리에 임 곧 하늘 밑에 생존하고 있는 것을 대천(戴天), 어떤 사람을 높은 직위로 오르게 하여 받듦을 추대(推戴), 정성스럽게 받들어 추대함을 익대(翊戴), 입은 혜택에 대해서 감사히 여겨 떠받듦을 감대(感戴), 공경하여 받듦을 경대(敬戴), 공경하여 높이 받듦을 봉대(奉戴), 우러러 받듦을 앙대(仰戴), 좌우에서 웃사람으로 떠받듦을 협대(挾戴), 서로 웃사람으로 떠받듦을 서대(胥戴),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라는 뜻으로 임금이나 어버이에 대한 원수는 하늘을 함께 하고 살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대천지수(戴天之讐), 동이를 머리에 이면 하늘을 바라볼 수 없고, 하늘을 바라보면 동이를 일 수 없다는 뜻으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병행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대분망천(戴盆望天), 별을 이고 가는 길이라는 뜻으로 객지에서 부모의 부음을 듣고 밤을 새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이르는 말을 대성지행(戴星之行), 이와 머리털을 가졌다는 뜻으로 사람을 이르는 말을 함치대발(含齒戴髮), 남자는 지고 여자는 인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살 곳을 찾아 세간을 이고 지고 이리저리 떠돌아 다님을 이르는 말을 남부여대(男負女戴),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나 죽여 없애야 할 원수를 이르는 말을 불구대천(不俱戴天), 한 하늘 아래서는 같이 살 수가 없는 원수라는 뜻으로 원한이 깊이 사무친 원수를 이르는 말을 불공대천(不共戴天) 등에 쓰인다.
▶️ 盆(동이 분)은 형성문자로 瓫(분)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그릇 명(皿; 그릇)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크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分(분)으로 이루어졌다. 물, 술 따위를 넣는 '큰 질그릇'을 뜻한다. 그래서 盆(분)은 화분(花盆)의 뜻으로 ①동이(질그릇의 하나) ②주발 ③부피 ④땅의 이름 ⑤(물에)적시다 ⑥(물이)솟구쳐 넘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산이나 대지로 둘러싸인 평지를 분지(盆地), 줄기나 가지를 보기 좋게 가꾸어 감상하는 초목을 분재(盆栽), 화초를 화분에 심음 또는 그 화초를 분종(盆種), 분에 심어 놓은 꽃을 분화(盆花), 화분에 심은 대나무를 분죽(盆竹), 분받침을 일컫는 말을 분대(盆臺), 분과 같은 모양을 분형(盆形), 목욕통을 달리 이르는 말을 분조(盆槽), 화초를 심어 가꾸는 분을 화분(花盆), 분에 심었던 화초를 뽑아 땅에 옮겨 심거나 또는 버림을 퇴분(退盆), 땅에 심었던 화초를 화분에 옮겨 심음을 등분(登盆), 봄꽃을 심은 화분을 춘분(春盆), 네모진 화분을 각분(角盆), 목욕통을 달리 이르는 말을 욕분(浴盆), 소금을 굽는 데 쓰는 질가마를 토분(土盆), 소금을 구울 때 쓰는 작은 가마를 협분(夾盆), 분은 중국에서 술이나 물을 담는 와기이며 고는 쳐서 울리게 한다는 뜻으로 아내의 죽음을 뜻하는 말을 고분(鼓盆), 술그릇을 두드리는 아픔이라는 뜻으로 아내 상을 당함 또는 상처한 슬픔을 일컫는 말을 고분지통(鼓盆之痛), 아내의 죽음을 한탄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고분지탄(鼓盆之歎), 동이를 머리에 이면 하늘을 바라볼 수 없고 하늘을 바라보면 동이를 일 수 없다는 뜻으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병행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대분망천(戴盆望天), 도공은 깨진 동이만 사용한다는 뜻으로 남을 위해서는 하지만 자기를 위해서는 하지 못함을 두고 비유해 이르는 말을 도자용결분(陶者用缺盆) 등에 쓰인다.
▶️ 望(바랄 망/보름 망)은 ❶상형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盳(망)과 통자(通字)이다. 기지개를 켠 사람 위에 강조한 눈의 모양을 본떠 멀리 바라보다의 뜻을 나타낸다. 또는 (형성문자) 臣(신; 내려다 보는 일)과 壬(정; 사람이 바로 서다, 바로 자라는 일)로 이루어진 글자 망(臣+壬)은 높은 곳에서 훨씬 먼 곳을 바로 바라보는 일, 朢(망)은 달이 해와 멀리 마주 보는 만월(滿月) 때, 望(망)은 같은 글자이나 발음을 똑똑히 나타내는 亡(망)을 글자의 부분으로 삼은 것이다. 나중에 朢(망)은 만월, 望(망)은 바라보는 일이라고 나누어 생각하였다. ❷상형문자로 望자는 ‘바라다’나 ‘기대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望자는 亡(망할 망)자와 月(달 월)자, 壬(천간 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人(사람 인)자에 目(눈 목)자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바라보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본래의 의미는 ‘망보다’나 ‘엿보다’였다. 후에 의미가 확대되면서 ‘바라다’나 ‘기대하다’, ‘바라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글자도 크게 바뀌었는데, 금문에서는 人자가 壬자가 되었고 月자와 亡자가 더해졌다. 여기서 亡자는 발음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望(망)은 (1)상대편의 동태를 미리 알기 위해 먼빛으로 동정(動靜)을 살피는 일 (2)명망(名望) (3)천망(薦望) (4)망(朢). 지구(地球)가 태양(太陽)과 달의 사이에 들어 셋이 거의 일직선 상에 있을 때의 달의 모양. 이때에 달 반구(지구 쪽을 향한) 전체가 햇빛으로 환하게 비침. 만월(滿月). 망월(望月) (5)음력(陰曆) 보름을 이르는 말. 망일(望)日) 등의 뜻으로 ①바라다, 기다리다 ②기대(期待)하다, 희망(希望)하다 ③그리워하다 ④바라보다 ⑤망(望)보다, 엿보다 ⑥원망(怨望)하다, 책망(責望)하다 ⑦보름, 음력(陰曆) 매월 15일 ⑧전망(展望), 풍경(風景) ⑨풍채(風采: 드러나 보이는 사람의 겉모양) ⑩명성(名聲), 명예(名譽) ⑪희망(希望), 소원(所願) ⑫부끄러워하는 모양 ⑬제사(祭祀)의 이름 ⑭천망(薦望: 벼슬아치를 윗자리에 천거하던 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바랄 기(冀), 바랄 희(希), 원할 원(愿), 원할 원(願)이다. 용례로는 주위의 동정을 살피려고 세운 높은 대를 망루(望樓), 바라던 것 이상의 것을 망외(望外), 멀리 바라봄을 망견(望見), 고향을 그리고 생각함을 망향(望鄕), 달을 바라봄을 망월(望月), 멀리서 그 대상이 있는 쪽을 향하여 절함을 망배(望拜), 한 가지 소망을 이루고 나서 다시 그 밖의 것을 바란다는 말을 망촉(望蜀), 쉰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나이 마흔 하나를 일컫는 말을 망오(望五), 예순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나이 쉰 한 살을 일컫는 말을 망륙(望六), 여든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나이 일흔 한 살을 일컫는 말을 망팔(望八), 아흔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나이 여든 한 살을 일컫는 말을 망구(望九), 백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나이 아흔 한 살을 일컫는 말을 망백(望百), 멀리 바라봄 또는 앞날을 내다봄을 전망(展望), 앞일에 대하여 기대를 가지고 바람을 희망(希望),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낙심함을 실망(失望), 모든 기대를 저버리고 체념함을 절망(絶望), 바라는 바나 기대하는 바를 소망(所望), 남이 한 일을 억울하게 또는 못마땅하게 여겨 탓함을 원망(怨望), 원하고 바람 또는 그 원하는 바를 원망(願望), 널리 바라봄 또는 바라다 보이는 경치를 조망(眺望), 부러워함을 선망(羨望),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간절히 바람을 갈망(渴望), 가능성 있는 희망을 가망(可望), 잘 되기를 바라고 기대함을 촉망(屬望), 크게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는 희망을 야망(野望), 열렬하게 바람을 열망(熱望), 허물을 들어 꾸짖음을 책망(責望), 어떠한 일이나 대상을 절실하게 여겨 원하거나 바라는 것을 요망(要望), 구름을 바라보며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타향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를 생각함을 망운지정(望雲之情), 넓은 바다를 보고 탄식한다는 뜻으로 남의 원대함에 감탄하고 나의 미흡함을 부끄러워 함을 망양지탄(望洋之歎), 구름을 바라보며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타향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를 생각함을 망운지회(望雲之懷),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수레 덮개를 서로 바라본다는 뜻으로 앞뒤의 차가 서로 잇달아 왕래가 그치지 않음을 이름을 관개상망(冠蓋相望) 등에 쓰인다.
▶️ 天(하늘 천)은 ❶회의문자로 사람이 서 있는 모양(大)과 그 위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하늘(一)의 뜻을 합(合)한 글자로 하늘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天자는 ‘하늘’이나 ‘하느님’, ‘천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天자는 大(큰 대)자와 一(한 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天자를 보면 大자 위로 동그란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람의 머리 위에 하늘이 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은 동그랗고 땅은 네모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天자는 사람의 머리 위에 동그라미를 그려 ‘하늘’을 뜻했었지만 소전에서는 단순히 획을 하나 그은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天(천)은 (1)하늘 (2)범 인도(印度)에서 모든 신을 통들어 이르는 말. 천지 만물을 주재 하는 사람, 곧 조물주(造物主)나 상제(上帝) 등 (3)인간세계보다 훨씬 나은 과보(果報)를 받는 좋은 곳. 곧 욕계친(欲界責), 색계친(色界天), 무색계천(無色界天) 등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하늘 ②하느님 ③임금, 제왕(帝王), 천자(天子) ④자연(自然) ⑤천체(天體), 천체(天體)의 운행(運行) ⑥성질(性質), 타고난 천성(天性) ⑦운명(運命) ⑧의지(意志) ⑨아버지, 남편(男便) ⑩형벌(刑罰)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하늘 건(乾), 하늘 민(旻), 하늘 호(昊), 하늘 궁(穹),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흙 토(土), 땅 지(地), 땅 곤(坤), 흙덩이 양(壤)이다. 용례로는 타고난 수명을 천수(天壽), 하늘과 땅 또는 온 세상이나 대단히 많음을 천지(天地), 타고난 수명 또는 하늘의 명령을 천명(天命), 사람의 힘을 가하지 않은 상태를 천연(天然),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이 곧 황제나 하느님의 아들을 천자(天子), 우주에 존재하는 물체의 총칭을 천체(天體), 부자나 형제 사이의 마땅히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를 천륜(天倫), 타고난 성품을 천성(天性), 하늘 아래의 온 세상을 천하(天下), 천체에서 일어나는 온갖 현상을 천문(天文), 하늘과 땅을 천양(天壤), 선천적으로 타고난 뛰어난 재주를 천재(天才), 하늘에 나타난 조짐을 천기(天氣), 하늘이 정한 운수를 천운(天運), 자연 현상으로 일어나는 재난을 천재(天災),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 하늘과 땅 사이와 같이 엄청난 차이를 천양지차(天壤之差), 선녀의 옷에는 바느질한 자리가 없다는 천의무봉(天衣無縫), 세상에 뛰어난 미인이라는 천하일색(天下一色)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