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119) - 은퇴 15주년을 맞으며
한 달 넘게 이어오던 폭염과 열대야가 오늘(27일)부터 수그러든다는 예보가 반갑다. 무더운 여름 잘 견뎌낸 모두에게 박수!
8월말로 오랜 공직생활에서 은퇴한 지 15년,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속담보다 더 빠르게 바뀌는 세파를 견디며 건강하고 평안한 가운데 지나온 날들이 고맙다. 남은 때도 그러하기를.
15년 전, 정년에 즈음한 소회를 집안의 카페에 다음과 같이 올렸다.
‘나는 1962년, 열아홉 살에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22년간 정부에서 일하다가 1984년에 대학교수로 전직하였다. 그로부터 25년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지난 8월 말에 정년으로 퇴임하였다. 젊은 시절에는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자취생활과 고시공부를 병행하는 등 여러 몫의 삶을 치열하게 살았다. 공무원으로는 공익의 구현과 직원들의 사기진작에 관심을 기울였고 대학에서는 교육과 연구 등 본연의 일에 충실하면서 여러 차례 다른 분야의 일을 맡아 봉사하였다.
일찍부터 자립하여 자신은 물론 형제자매의 뒷바라지에 힘을 보태고 노령의 부모를 봉양하는데도 제몫을 감당하였다. 30세에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아 양육하고 어느덧 손자와 손녀를 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의 신앙생활을 50년 째 이어오고 20년 넘게 사회복지시설의 후원자 및 봉사자로 지내고 있다. 공직생활의 마무리에 즈음하여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여행 중 틈틈이 쓴 글을 정리하여 "여행에서 배우는 삶과 문화"라고 제목을 붙인 책을 출판하여 한 권씩 전하였다. 정년에 이르기까지 건강하게, 성실하고 근면하게 살아온 것을 감사하며 남은 때도 주 뜻대로 살아가기를 다짐한다.
대학의 정년퇴임행사에서 전한 인사말,
‘1984년부터 봉직해 온 본 대학에서의 교수생활을 마무리하는 시간에 그간 따뜻한 사랑과 격려를 베풀어 준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총장께서도 소개한 바와 같이 우리 대학에 오기 전에 봉직한 공무원 생활을 합하여 47년의 공직생활을 총 정리하는 자리라서 저에게는 더 의미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침에 47년여의 공직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정년에 이른 것을 감사하면서 우리 대학의 발전과 학생들의 성취를 기원하였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학교 사랑과 제자 사랑의 마음이라 여기면 좋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평안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저도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정년퇴임행사 때의 인사말 모습
은퇴와 함께 시작한 것이 이번으로 1119회를 맞는 ‘인생은 아름다워’ 시리즈의 글쓰기와 하루 평균 10km의 걷기운동, 그 덕분인지 내내 건강하고 행복한 날들로 이어지는 일상이 뿌듯하다. ‘인생은 아름다워 시리즈’는 1년마다 책으로 엮어 주변의 지인들과 공유, 이번 가을에 15권 째를 상재할 예정이고 동호인들과 함께 국내외 여러 곳을 순례하며 다양한 분야의 역사와 문화, 자연의 향기를 체득할 수 있음이 큰 소득이다. 이에 대한 주변의 반응 한 두 개, ‘최고이시고 멋지십니다.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교수님의 노고에 머리가 숙여지고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멋있네요. 교수님의 걷기와 쓰기를 앞으로도 응원하겠습니다.’
지난 5월 맞은 생일에 가족들이 만들어온 걸개의 문안은 이렇다.
‘세상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오신 80년의 세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은혜에 감사와 사랑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늘 건강하게 오래오래 저희 곁에서 함께 해주세요.’
그때 이를 바라보며 가슴이 뭉클하였다. 세상의 다른 누가 주는 훈장이나 표창보다 값진 포상, 돌이켜보면 한 평생 성실하고 꾸준한 생활인의 일상을 이어왔고 은퇴 후는 다방면의 사회활동과 취미생활로 비교적 충실한 노후생활을 누리고 있는 셈. 성서의 어떤 왕은 죽을 병에 걸렸다가 15년의 여생을 허락받아 황감하였다. 강건한 삶은 큰 축복, 지금까지 무탈하게 지내온 것 감사하며 모두의 평안을 염원한다.
* 때에 맞게 살핀 글, ‘흘러가는 것이란 이와 같구나(逝者如斯夫, 서자여사부)’를 통하여 남은 때의 충언으로 새긴다.
‘선생님께서는 냇가에 서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시며 ‘흘러가는 것이란 이와 같구나! 밤낮을 가리지 않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제자의 말이다. 『논어』의 여러 구절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구절이니 원문을 외워두면 좋으리라. “자재천상왈(子在川上曰), 서자여사부(逝者如斯夫), 불사주야야(不舍晝夜也).”
흘러가는 것이 어디 물뿐이랴. 흐르는 물만큼이나 쉼 없이 흐르는 게 시간이다. 공자는 시간을 흘러가는 물에 견주어 흘러 소진(消盡)해가는 인생을 한탄한 것이다. 삶은 소진 즉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의 점철인 것 같다. 사랑하는 부모님의 기력이 소진해가고, 나의 체력 또한 소진해가고, 총명했던 기억력이 소진해 가고…. 그렇게 흘러가고 소진해가는 것들을 어찌 붙잡을 수 있으랴! 물, 바람, 구름, 저 흘러가는 것들이 모두 나의 스승! 나만은 안 흘러가겠노라고 버틸 게 아니라, 물 따라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나도 흘러가도록 놓아두어야 한다. 다만, 흘려보내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 것! 모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다 안고서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가는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길은 외줄기,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중앙일보 2024.08.26 김병기 의 글, 필향만리 ‘逝者如斯夫(서자여사부)’에서)
칼럼에 실린 필자(김병기)의 서자여사부(逝者如斯夫) 휘호